리뷰

2013년 개관한 한솔뮤지엄은 지난 3월 ‘뮤지엄 산(SAN)’으로 새롭게 이름을 바꾸고 재개관했다. 드넓은 자연인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의 산 정상에 지어진 세계적 건축가 안도 타다오(Ando Tadao)의 건축과, 쉽게 접할 수 없는 한국의 근·현대 명작을 볼 기회라 개관 때부터 주목을 받았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지난 5월 28일 자 주말판에서 이곳을 ‘한국을 대표하는 미술관이자 다른 곳에는 없는 꿈같은 뮤지엄’으로 소개했다. 이곳은 미술품 전시뿐 아니라 건축(Space), 예술(Art), 자연(Nature)이 함께 하는 복합문화공간이다. 독특한 건축과 한국의 대표 회화와 판화를 함께 즐길 수 있고, 원주 오크밸리 산 정상에 있기 때문에 자연경관이 수려하다. 이곳의 백미는 아시아 최대의 제임스 터렐 전용 전시관이다.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은 이미 잘 알려진 대로 ‘빛의 예술가’다. 동서고금의 수많은 작가가 오랜 기간 빛을 탐구하고 묘사해 온 것처럼 터렐도 빛을 연구한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 그는 탐구의 수단과 내용이 모두 빛 그 자체를 활용한다는 사실이다.
그가 만든 최초의 빛에 관한 작품 〈애프럼 프로토(Afrum-Proto, 1966)〉는 할로겐 조명을 넣은 정육면체의 빛나는 상자를 코너에 설치한 것이다. 이 작업을 시작으로 1960년대 면과 경계 그리고 면의 경계가 만나는 코너에 대한 일련의 작업을 이어갔다. 1967년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패서디나 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으니 50년 가까이 공간과 빛에 대한 연구를 한 것이다. 미술가인 로버트 어윈(Robert Irwin)과 더그 윌러(Doug Wheeler), 심리학자인 에드워드 바우츠(Edward Wortz)와 함께 작업을 하며 빛의 생리학까지 연구했다. 그는 이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멘도타 두절(Mendota Stoppages, 1969~1974)〉을 선보였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멘도타 호수라는 야외 공간의 작업을 자신의 작업실 공간으로 들여온 것이다. 초장기에는 주로 빛 자체를 연구했으나 인공적인 공간을 바꾸면서 빛이 어떻게 반응하고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는지 연구했다. 그는 비물질적 존재인 빛을 물질화하여 착시 현상을 통해 지각을 조정한다. 시간과 공간의 변화를 담은 현상학적 공간의 체험은 관객에게 명상의 여유를 준다.

l 제한적 체험

이런 명상의 여유는 ‘제한적인 체험’이라는 장치를 통해 극대화된다. 그의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선 직접 현장에 가야 한다. 기존의 미술 작품과 다른 가장 큰 차이는 직접 작품 안으로 들어가는 ‘Walk in sculpture’ 개념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 관람자를 둘러싼 모든 공간의 빛이 바뀌고 관객은 황홀감에 빠지며 명상의 순간으로 인도한다.
현대 미술의 감상법은 최근 미디어의 발달로 달라지고 있다. 많은 작업이 몇 장의 이미지로 소비되는 데 이와 반대로 터렐의 작업은 현장에 직접 와서 보는 수고와 함께 극도로 제한적인 시간과 방법을 요구한다. 다른 작품과 같이 사진이나 이미지로 경험을 대신할 수 없다. 미묘한 빛의 변화는 어떤 카메라나 동영상으로 온전히 담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작업은 도심과 먼 대자연에 주로 설치된다. 뮤지엄 산도 도심과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있다. 서울에서 차량으로 2시간밖에 안 걸리지만, 교통이 불편한 외지에 있어 그의 작품만 보러 이곳까지 오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원주 시내에서 대중교통은 없고 오크밸리까지 오는 셔틀버스만 있다. 뮤지엄이 위치한 산은 좁은 산길을 돌아가야 한다. 이런 점이 제한적 경험을 통해 관객에게 더 극적인 환상을 느끼게 한다. 또한, 공간에 따른 빛의 변화를 체험하는 그의 작품을 온전히 감상하기 위해서 뮤지엄 산은 관람 인원과 시간을 극히 제한했다. 현재 운영 중인 ‘일몰 프로그램’은 더 제한적이다. 연간 멤버십 회원만 신청할 수 있고 사전에 반드시 예약해야 한다. 참가비도 만만치 않다. 또한, 눈이나 비가 오면 프로그램이 취소된다. 한 회당 참가 인원은 20명 내외로 제한한다. 한국같이 기상 변화가 심하고 눈이나 비가 자주 오는 상황에서는 어렵게 미술관까지 찾아간다고 해도 반드시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조용하고 여유로운 조건에서 ‘명상’을 콘셉트로 하고 있기에 이 방법은 적절하다. 더욱이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과 함께 하는 작품은 그 시간, 그 장소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함을 선사한다. 자연 속에서 천천히 걸으며 작품을 감상하는 뮤지엄 맨 끝에 터렐관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다. 산등선 아래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조도가 낮아지면서 새로운 빛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그의 작업은 단순히 빛뿐 아니라 빛을 담는 그릇인 공간을 직접 디자인한다.

l 빛, 건축 공간과의 조응

터렐은 공간과 빛을 조응시키는데, 먼저 광원이 되는 자연광이나 조명을 통한 인공광으로 빛을 세밀하게 조정한다. 또한, 빛을 담고 있는 공간의 형태를 바꿔 관객이 환영을 자각하는 다양한 환영과 착시를 유도한다. 결국, 그는 빛의 마술가뿐 아니라 공간의 마술가이기도 하다. 실제 뮤지엄에는 작품 4개가 설치돼있지만 보는 시간과 프로그램에 따라 6개가 된다. 지난 6월 말 터렐이 직접 한국을 방문해 작품을 세밀하게 조정하고 추가한 뒤 재개관했다. 그의 대표작인 〈웨지워크(Wedgework)〉와 〈간즈필드(Ganzfeld)〉를 업그레이드했다. 특히 비가 많이 오는 한국 날씨 때문에 덮개 조명을 추가해 ‘스페이스 디비전(Space Division)’이라는 새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리고 ‘일몰 프로그램’은 이 작업과 함께 해가 지는 일몰 시간(프로그램 시간이 매일 바뀐다.)의 하늘이 드라마틱하게 변할 때 하늘을 향해 뚫려있는 〈지평선의 방(Horizom Room)〉과 〈하늘공간(Skyspace)〉에서 내부 조명의 변화와 함께 자연광의 변화를 함께 감상하는 것이다.
본격적인 프로그램을 시작하기에 앞서 먼저 다른 두 작업을 보게 된다. 어두운 복도 끝 가장 어두운 방에 〈웨지워크〉가 있다. 터렐의 초기작인 이 작품은 슬라이드 영사기의 빛에서 착안했다. 빛과 공간의 관계가 강조됐는데 공간을 가로지르는 인공 빛들로 내부가 분할된 것 같은 착시를 느낀다. 작품을 보기 위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암전의 공간을 벽에 손을 짚으며 모퉁이 끝을 지나면서 안 보이는 두려움과 함께 내면의 차분함을 이끌어낸다. 그 시간 어두운 공간에서 눈의 동공이 열리며 오롯이 작품을 감상할 준비를 한다. 작품은 LED로 된 붉은 면과 프레임으로 구성된다. 두 개의 사각 프레임은 텅 빈 공간을 만들고 붉은빛이 그 내부를 채운다. 붉은빛은 뿌옇게 안개가 껴있는 환영을 만든다. 두 번째 프레임 너머로 삼각형 쐐기 모양의 옅은 붉은빛은 어디가 끝인지 모를 공간을 펼쳐낸다. 이렇게 ‘빛으로 가득 찬 비움’이라는 역설적인 상황을 연출한다.
두 번째 〈간즈필드〉는 계단과 계단 너머의 대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작품 밖에서 흰 사각의 공간을 보면 입체로 보이지 않고 평면으로 보인다. 가운데가 아니라 끝 쪽에 앉으면 이를 더 극적으로 느낄 수 있다. 계단을 올라가 프레임 안의 공간으로 들어가면 흰 공간은 다양한 색으로 변하는 빛으로 가득 찬다. 관람객은 그 공간 한가운데 놓이고 LED로 변하는 빛으로부터 착시와 환영을 온몸으로 느낀다. 빛은 물질이 아니고 비물질이라는 일반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빛의 존재를 물질로 경험할 수 있다. 변하는 빛으로부터 움직임을 느끼고 바람과 소리가 느껴지는 듯하다. 터렐의 대표작답게 공간의 건축적 요소는 이 경험을 극대화하는 장치다. 날카로운 모서리로 공간의 내외를 구분하고 완만한 곡면은 내부 공간을 무한하게 느끼게 한다.
하이라이트인 본격적인 ‘일몰 프로그램’은 작은 통로를 두고 한 공간에서 〈지평선의 방〉과 〈하늘공간〉을 함께 감상하는 것이다. 하얀 공간은 LED로 된 다양한 색으로 채워지고 변한다. 이 빛은 푸르고, 구름이 지나가고, 어둡고, 해가 뜨고, 노을 지는 하늘의 모습과 조응한다. 〈지평선의 방〉은 사각 프레임 안에 2차원으로 보이는 하늘은 계단을 올라 들어가 보면 산꼭대기 전망대이다. 평면 뒤로 숨겨진 3차원 공간을 만나며 착시를 직접 체험한다. 조용한 가운데 편안하게 앉아 작품 속에서 하늘을 바라보면 조명에 따라서 하늘의 색이 변하는 환영을 경험한다. 일몰과 일출 때는 하늘빛의 변화에 따라 달리 보인다. 관람객은 보이는 것이 진실이 아님을 새삼 경험하고 호기심과 내면 성찰의 기회를 가진다. 직접 들어설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시간에 따라 변하는 조명은 관람객이 스스로 보게끔 하는 경험적 공간을 제공한다. 빛이 시각으로부터 감정 상태를 유도하고 하늘을 바라보며 조용히 명상과 사색을 하게끔 하는 관객의 체험 전체가 작품을 하나로 완성하는 것이다.

(사진: 뮤지엄 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