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호항은 동해안의 대표적인 어업 전진기지였다. 1941년 개항 당시 3,000여 명이던 주민이 1980년대에는 60,000여 명으로 불어나며 동해안 최대의 어항이자 석탄과 시멘트 수출항으로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급격한 어획량 감소, 산업구조의 변화, 도시계획의 영향 등으로 노인들만 남은 마을이 되어 활력을 잃고 침체일로에 빠지게 된다. 동해시에서 쇠락한 구도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몇 년 전부터 묵호등대를 중심으로 바위에 붙은 따개비 마냥 조성된 언덕 마을의 골목길에 벽화를 그리면서 기울어 가던 이 지역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2010년부터 과거의 ‘좋았던’ 시절을 담은 벽화를 그리기 시작하면서 잃어버린 묵호의 과거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 과거의 모습을 소박하고 정겹게 묘사한 벽화는 동해안의 명물인 묵호등대와 결합되어 관광 명소로 부상하고 있다.
등대마을의 벽화 조성은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동해문화원과 벽화 그리기를 주관하는 프로젝트 미터의 협력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프로젝트 미터는 예술의 공공성을 추구하는 젊은 작가들이 모인 시각예술 단체로 수도권에서 활동하다가 묵호등대마을 벽화 그리기 작업에 초기부터 참여한 것이 계기가 되어 아예 동해시로 이주하여 예술로 지역 살리기에 전념하고 있다.
벽화는 동해시 묵호동 논골1길부터 3길과 등대오름길에 걸쳐 58종이 조성되었다. 이곳의 벽화는 지역 어르신들로부터 이야기를 채집하여 스토리텔링 작업을 거쳐 제작한다. 과거의 다양한 에피소드가 모여 지역의 역사를 시각적으로 재창조한다. 관람객은 벽화를 보며 지역의 실체를 마음으로 체험하게 된다. 모든 벽화 작품은 맥락을 구성한다. 논골3길 벽화는 '묵호의 과거', 논골1길은 '묵호의 현재', 등대 오름길은 '희망과 미래', 논골2길은 '모두의 묵호, 시간의 혼재'가 각각의 주제다. 이것이 성격이 모호한 타 지역의 벽화와 다른 점이고 프로젝트 미터가 작은 벽화 하나에도 정성을 쏟는 이유이다. 벽화 제작에는 프로젝트 미터 회원, 동해시 작가, 자원봉사자, 지역주민이 참여한다. 프로젝트 미터는 예술가들만의 작업이 아닌 주민과 함께 만들어 가는 예술 창작을 지향하고 있다.
프로젝트 미터의 유현우 대표는 벽화를 그리는 지역을 확대하기보다 벽화가 조성된 지역에서 벽화를 보강하고 벽화 외에 작품 설치 등 다양한 형태의 작업으로 벽화마을을 내실화하는 데 중점을 두겠다고 했다. 프로젝트 미터는 과거 무수한 사례에서 나타난 것처럼 벽화가 그려진 이후에 방치되어 노후화하고 흉물스럽게 변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벽화 유지보수도 철저히 하고 있다.
또한, 프로젝트 미터가 벽화의 주인공이기도 한 마을 어르신들이 관광객에게 벽화마을을 소개할 수 있도록 소정의 교육을 거쳐 안내요원으로 활동하게 함으로써 벽화제작 이후에도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특이한 점이다. 현재 30명의 어르신이 해설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올해 20명을 증원할 예정이다. 등대마을에서 벽화 해설이 가능한 어르신은 총 70여 명이라고 한다.
유현우 대표는 벽화마을을 기반으로 지역에서 축제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벽화마을이 묵호 지역의 재생을 견인하여 지역과 구성원을 아우르는 축제를 부활시키는 미래를 꿈꾸고 있는 듯이 보였다. 그는 과거의 풍요를 대변하는 오징어축제가 어획량 감소로 중단된 상황에서 묵호를 잘 나타내는 색인 파랑을 주제로 한 축제가 좋을 것이라고 했다.
묵호등대마을 벽화 그리기 작업의 또 하나의 결실로, 묵호항 일대 재개발 계획의 가닥을 잡아가는데에 있어 벽화마을이 시사하는 문화적인 접근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는 공감이 형성되고 있다고 한다. 과거와 소통하면서 현대를 풍요롭게 일구어 가는 벽화 그리기 운동의 정신이 확산되어 파급효과를 창출하는 고무적인 사례로 생각된다.
문화를 통한 지역 재생을 지속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도 등장하고 있다. 벽화마을은 활성화되고 있지만 정작 지역주민에게 주어지는 혜택이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는 현실이다. 관광객의 증가로 등대마을에 카페, 펜션이 들어서는 등 주변 경기가 좋아지고 있으나 주민들에게 돌아가는 과실은 아닌 것이다. 지역의 땅값이 과거에 비해 여러 배 상승했으나 거품이 있고 외지인이 투자를 위해 들어올 경우, 어렵사리 가꾸어 온 지역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도 해결책을 찾기 쉽지 않은 고민이다.
지역이 무분별하게 개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동해시에서 조례를 제정하여 지역을 보존하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으나 벽화마을의 구조와 성격상 현실성이 높지 않아 보인다. 주민협의체 등 주민에 의한 자체 규제가 가장 효과적일 것이나 노령층이 대부분인 주민들의 의지가 형성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현실이다. 유현우 대표는 이제까지는 동해문화원과 프로젝트 미터가 협력하여 사업을 이끌어 왔으나 향후 지역의 문제에 대처하며 발전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지역 주민과 시민사회단체의 긴밀한 협력체계가 구축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사입력 : 2014.06.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