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6월 22일부터 7월 17일까지 영국의 런던에서 진행된 시티오브런던 페스티벌에서 올해의 메인 테마로 정한 것은 ‘서울 인더 시티’였다. 음악, 무용, 연극, 퍼포먼스 등 공연예술 분야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예술인, 예술단체들이 훌륭한 연주와 공연으로 한국의 문화 예술적 우수성을 과시하고 현지 관객들의 호평과 호응을 이끌어냈다. 이번 행사는 9종류의 다채로운 한국의 음악 및 공연예술 작품을 약 4주간의 기간 동안 집중적으로 런던의 관객들에게 소개함과 동시에 이와 관련한 심포지엄을 5차례나 개최함으로써, K-POP에 편중되어 전개되고 있는 유럽의 한류를 다양화, 다층화하고 한국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을 심화, 증폭시킬 수 있는 의미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할 수 있겠다.

한국 셰익스피어 공연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필자는 이번 페스티벌의 한국 측 행사 중 극단 여행자와 동행하며, 〈햄릿〉의 현지 준비 과정 및 공연, 그리고 현지의 반응 등을 면밀히 취재했다. 더불어 이번 〈햄릿〉공연과 관련한 심포지엄 “경계를 넘어서: 셰익스피어의 햄릿 재해석하기(Beyond Borders: Reinterpreting Shakespeare's Hamlet)"에 패널로 참여하여 현지 관객들과의 열띤 토론을 통해 런던 관객들의 이번 〈햄릿〉공연과, 나아가 한국 전체의 공연 문화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극단 여행자의 〈햄릿〉은 영국의 관객들을 대상으로 하면서 한국의 문화예술을 이해시킨다는 측면에서 이번 시티오브런던 페스티벌에 매우 적합한 공연이었다. 양정웅이 연출한 극단 여행자의 〈햄릿〉은 원작의 뼈대는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극의 시·중·종의 중요한 순간에 진오기굿, 수망굿, 산진오기굿을 대입시킴으로써 극 전체를 하나의 굿판으로 치환시켰다. 셰익스피어는 영국이 인도하고도 바꾸지 않겠다고 했던 영국의 자부심이다. 그의 작품들 중에서도 〈햄릿〉은 영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있기에 영국인들의 애정이 각별한 작품이다. 이러한 〈햄릿〉에 한국의 전통 연희 방식의 원시적 모태가 되고 있는 굿을 제대로 대입시켰으니 영국의 관객들이 뜨거운 관심을 갖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공연이 이루어졌던 1,000석 규모의 피콕 시어터(Peacock Theatre)나 공연 이틀 후 런던의 한국문화원에서 개최된 심포지엄에서나 객석은 현지의 관객들로 가득 채워졌다.

셰익스피어와 굿의 결합은 너무나 이질적인 요소들의 만남이다. 이들의 섣부른 결합은 호기심을 자극할 수는 있어도 결코 예술적 완성도를 담보해 주지 않는다. 하지만 극단 여행자의 〈햄릿〉에선 굿이 극적으로 또 논리적으로 당위적 위치를 확보함으로써 현지 관객들의 호기심을 넘어선 환호를 이끌어 냈다고 하겠다. 극이 시작되면서 죽은 선왕의 혼령을 위로하고 저승으로 인도하려는 진오기굿이 펼쳐진다. 그리고 여기서 선왕의 혼령에 접신한 무녀들에 의해 선왕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비밀이 햄릿에게 전해진다. 이후의 극의 진행은 원작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무대 세트와 음악, 음향 효과, 그리고 각종 소품들은 모두가 굿을 연상시키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기에 원작 그대로의 이야기 진행도 결국엔 굿의 일환처럼 여겨진다. 처음부터 무대는 무속의 당화들로 세 면이 채워져 있으며, 바닥은 무속에서 점을 치는 수단이요 또 생과 사의 상징물로 이용되는 쌀로 네 면이 에워싸여 있다. 등장하지 않는 배우들은 무대의 양옆에 앉아 굿에서 사용되는 전통 악기들로 무음을 연주한다. 무속의 칼과 부채가 실재의 검을 대체한다. 두 번째 굿은 광기에 빠진 오필리어가 물에 빠져 죽은 뒤 그녀의 혼령을 위로하려는 장면에서 이루어진다. 원작의 오필리어 장례식이 익사한 이의 혼령을 위무하려는 수망굿으로 대체된 것이다. 오필리어의 혼령에 접신된 무녀가 오필리어의 한 맺힌 심정을 레어티즈에게 토로하는데, 무녀의 곡이 객석을 압도한다. 마지막 세 번째 굿은 몸에 독이 퍼져 죽어가는 햄릿이 평안히 죽음을 맞도록 하는 산진오기굿이다. 무녀들뿐 아니라 무대 위에서 이미 죽었던 등장인물들이 모두 나서 산진오기굿을 진행한다. 이러한 의식은 햄릿의 죽음을 통해 그 동안의 모든 욕망과 분노, 그리고 복수 등 온갖 죄업의 무위(無爲)를 표현함과 동시에 그러한 죄업의 씻김과 산 자와 죽은 자의 화해와 용서에 대한 희구를 그려낸다.

극단 여행자의 〈햄릿〉은 원작의 스토리를 거의 그대로 쫓아가면서도 극을 풀고 펼치며 맺음에 있어 한국의 굿을 절묘하게 결합하여 기존의 어떤 〈햄릿〉과도 다른 〈햄릿〉을 창조해 냈으며, 무엇보다 한국적 미학과 철학으로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재탄생시켰다. 이러한 너무도 한국적인 〈햄릿〉에 런던의 관객들은 환호해 주었으며, 그들의 관심은 공연 이틀 후에 열린 심포지엄에까지 이어져 극단 여행자의 〈햄릿〉에 대하여 그리고 한국의 셰익스피어 공연에 대한 열띤 토론을 펼쳤고, 심지어 필자나 양정웅 연출에게 이메일로 추가적인 질문을 하기도 하고 별도의 인터뷰를 하기도 하였다.

단 하루의 공연에 쏟아진 뜨거운 관심과 호응이 이 공연의 온전한 성공을 직접적으로 진술해 주는 것은 물론 아니다. 셰익스피어 학자이자 평론가인 애들 리(Adele Lee)는 굿의 제의적 효과에 대해 자세히 분석하면서 특히 마지막 산진오기굿 장면을 “매우 감동적인 장면(highly moving scene)”이라고 극찬하기도 하였지만, 또 다른 셰익스피어 학자이자 평론가 피터 커원(Peter Kirwan)은 “색감과 에너지, 열정이 이 공연을 화려하고 즐길 만한 것으로 만들어주었다.(the color, energy, and passion of the company made for a spectacular and enjoyable take on the play)”는 결론에 앞서 “이 공연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완전히 관철시키지는 못했다.(this production didn't entirely see through its own ideas)”고 원작의 한국화 과정에서 노출된 불완전한 한계점들을 지적하기도 하였다.  
       
이번 시티오브런던 페스티벌에 초청된 한국 예술가 그리고 공연팀들, 특히 극단 여행자의 〈햄릿〉은 한국 문화예술에 대한 외부의 지대한 관심과 동시에 그들의 엄청난 가능성을 확인시켜준 소중한 수확들이었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동시에 이 소중한 수확들이 그냥 창고에 쌓여 사그라지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더 많은 열매를 맺고 더 많은 수확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한국 문화예술에 세계가 관심을 가져주는 이 천금 같은 기회를 맞아 창조하는 예술가들이나 그들을 지원하는 정부기관에 모두가 조금만 더 분발하자고 말하고 싶다. 서울을 주제로 한 이번 시티오브런던 페스티벌에 참여했던 필자의 가슴을 진정으로 벅차게 했던 것은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그려지는 내일의 서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