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을 처음 알기 시작했을 때, 스스로 참 행복했다. 그런데 힘들었던 게 있다. 주변 사람들이 문제(?)였다. 국악과 관련한 얘기를 나눌 수 없을 만큼, 그들이 국악에 대해 잘 모르거나 잘못 알고 있었다. 예를 들어서 다른 예술 분야를 전공으로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들이 타인에게 연극을 한다, 무용을 전공한다, 음악을 공부한다, 이렇게 말하면, 이 사회 사람들이 모두 대략 인식하는 게 있었다. 공통적인 질문도 있었다. 그러나 국악은 그렇지 못했다. ‘국악’이라는 범주에 들어가는 것들이 너무나 다양하기도 하고, 일반인들이 국악에 관해 너무도 몰랐기 때문이다.
국악을 한다는 것 자체는 마치 ‘축제’처럼 기쁜 일이었다. 그러나 국악을 주변에 알리는 것은 늘 ‘숙제’처럼 부담이 되었다. 그러다 얼마쯤 스스로 국악을 알게 되었을 때, 건방지다 손치더라도 이런 생각이 고개를 내밀었다. “내가 곧 국악이다.”
국악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국악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국악을 너무나 자기 식대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국악=윤중강’이란 인식을 심어주고 싶었다. 비유컨대, 이런 것과 상통한다. “미래가 궁금하거든, 미래를 알려 하지 마라. 스스로 미래를 창조하라”
나는 그때부터 ‘내 방식대로의’ 국악을 발견하거나, 국악을 창조하고 싶었다. 국악과 관련한 정보와 지식을 쌓는 데 주력하지 않았다. 국악과 관련해서, ‘보고, 들으면서’ ‘느끼고, 생각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내가 뭔가를 ‘깨닫게 되기를’ 바랐다. 그리고 나의 깨달음이 국악과 관련해서 이 사회의 ‘아름다운 자각(自覺)’이 되길 희망했다.
남들이 전통음악을 얘기할 때, 나는 창작음악을 얘기했다. 국악인들이 퓨전국악을 홀대할 때, 퓨전국악을 옹호했다. 평론가들이 거의 이구동성으로 어떤 음악과 어떤 개인을 지지할 때, 나는 의구심을 품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국악은 ‘또 다른’ 존재로 다가왔고, ‘더 넓은’ 의미가 되어주었다.
그간 국악과 관련한 글을 많이 썼다. ‘이론서’를 제외하고, 자신의 생각과 느낌에 바탕을 둔 글을 쓴 것으로 헤아린다면, 윤중강이 쓴 글이 자타 공히 제일 많다. 지극히 기네스북적인 사고라고? 그럴 수 있다. 이렇게 좁혀보자. 국악과 관련해서 실제 공연 현장에 관한 글을 가장 많이 쓴 사람은 누구인가? 여기서도 윤중강이다. 더불어서 ‘국악의 새로운 흐름’과 관련해서,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그런 기록을 가장 많이 남긴 사람도 윤중강이다. 이렇게 살아온 나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부터 한국 음악의 새로운 흐름을 알리는 글을 집필해 달라는 의뢰가 왔을 때, 정말 뛸 뜻이 기뻤다. 그간 내가 썼던 글(생각)을 나 스스로 정리할 수 있고, 그 안에서 엑기스를 뽑아낼 수 있다는 기대에서였다. 이렇게 해서 탄생된 책이 「Gugak: Traditional Korean Music Today」이다. 『한국현대예술시리즈』의 11권으로 출간되었다.
이 책이 외국어로 번역되어서, 전 세계의 문화예술 관련 기관에 퍼진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설레게 했고, ‘국악’에 처음으로 눈 뜨기 시작한 나를 떠올렸다. ‘국악’을 설명하기 무척 어려웠지만, 국악이 너무도 좋았던 그때를 생각했다. 지금도 분명 나와 같은 또 다른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가 이 책을 통해서 ‘국악’, 더 정확히 말해서 ‘오늘의 국악’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알도록 해주자. 그리고 그가 이 책을 통해서 스스로 국악을 판단할 수 있는 안목이 생기고, 더 나아가 국악을 주변에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을 만들자! 이게 이 책의 출발이었다. 이 책을 장별로 나눠서 설명해본다.
l 제1장 한국 음악의 새로운 흐름
전통음악, 창작음악, 퓨전국악의 어느 하나를 대세로 보는 시각은 옳지 않다. 21세기에는 국악이 여러 형태로 공존해야 한다. 이른바 ‘다양성 국악’을 지향해야 한다. 이 책은 이러한 시각으로 출발한다. 사람들 저마다의 가치와 취향을 반영하면서, 이를 뛰어넘을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국악이 나와야 한다.
여기서는, 우선 지금까지 국악을 다양하게 만들어준 인물들을 짚어 보았다. 결국은 ‘사람’이다. 외국인들에게 가장 관심이 있는 아티스트는 황병기로, 그를 통해서 가야금도 널리 알려졌다. 여기서는 인간문화재 정재국 명인으로부터, ‘사천가’의 소리꾼 이자람까지 만날 수 있다.
아울러 전통을 마치 ‘다이제스트’하듯이 접근하면서, 그 안에 젊은 에너지를 충실하게 채워 넣는 ‘불세출’에 대해서도 다루었다. 20세기 국악의 새로운 중심이 황병기였다면, 21세기는 누구일까? 이른바 ‘Post 황병기’로서의 가능성이 있는 허윤정(거문고)에 관해서도 언급했다.
l 제2장 음악극, 21세기 한국 음악의 아름다운 지향점
뮤지컬 〈인당수 사랑가〉(최성신 연출), 소리극 〈아리랑〉(오태석 연출), 가무악극 〈화선(畵仙) 김홍도〉(손진책 연출)의 작품에 관한 평을 통해서, 현재의 한국적인 음악극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아울러 판소리 중심의 창극, 경서도민요 중심의 소리극과는 다른, 타악과 연희를 바탕으로 하고 여기에 이야기가 만날 수 있는 ‘연희 뮤지컬’의 가능성을 생각하는 장이기도 하다. 분명 ‘국악과 이야기’ 형태가 전통예술의 산업화에 기여하리라고 본다.
국악 분야의 여러 장르적인 요소 가운데서, 뮤지컬 혹은 음악극으로 가장 가능성이 있는 것은 역시 연희다. ‘연희 뮤지컬’은 국악의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다. 한국의 전통예술은 가(歌), 무(舞), 악(樂), 희(戱)의 네 분야로 나뉜다. 노래와 춤, 연주와 놀이가 네 개의 축이 되는데, 현대 교육에서 가장 후발주자가 연희다. 대학의 전공에 연희가 수용된 것은 이제 10년이 조금 넘는다. 사물놀이와 탈춤, 굿 등을 전공한 젊은이들이 배출되면서, 이들이 전통연희를 소재로 극장 공연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기존의 마당을 중심으로 한 연희와 차별을 이루는 소재와 형식을 시도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l 제3장 21세기형 새로운 국악 축제
우리가 외국에 나갔을 때 그러하듯이, 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그 지역의 대표적인 ‘극장’과 대표적인 ‘축제’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 여기서는 ‘전주세계소리축제’와 같은 이미 정착한 축제에 대한 언급보다는, 새롭게 성장해가고 있는 국립극장의 ‘여우락페스티벌’을 다루었다. ‘여기, 우리의 음악이 있다’를 표방하는 ‘여우락페스피벌’은 젊은 국악인과 인접 장르의 아티스트들이 함께 만나서 새로운 음악과 공연을 만들어내는, 새로운 융합형 축제의 가능성이 있기에 비중 있게 다루었다.
l 제4장 한국 음악을 만들어낸 중견 작곡가
국악관현악의 역사가 반백 년이다. 이제 국악관현악에도 클래식이 있다. 요즘 활동하는 작곡가 중에 감각이 살아있고 국악은 물론이고 타 장르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작곡가가 많다. 그러나 ‘국악관현악’이란 형태에 한정했을 때, 20~40대의 작곡가가 현재 60~70대의 작곡가를 따르기 힘들다. 여기서는 세 명의 중견 작곡가들을 중심으로 다루었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일종의 별명을 붙여주었다. 이해식은 호모루덴스(이해식의 작품은 ‘놀이’로 통한다.), 강준일을 호모아카데미쿠스(강준일의 작품은 ‘공부’로 채워진다.), 김영동은 호모드라마티쿠스(김영동의 작품은 ‘이야기’를 통해 빛난다.)
l 제5장 한국 전통악기의 21세기적인 변신
악기의 역사에도 부침(浮沈)이다. 지난 세기에 가장 성장이 저조한 거문고를 어떻게 회생시킬 수 있을까? 여기서는 거문고의 연주 기교를 잘 살리고 있는 세 명의 작곡가의 사례를 들어보았다. 정대석의 ‘표현’주의, 김영재의 ‘장단’주의, 김만석의 ‘선율’주의를 예로 들면서, 거문고 음악의 새로운 가능성을 함께 생각하길 바라는 대목이다.
21세기에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다섯 악기, 이른바 ‘소생아양태’, 소금, 생황, 아쟁, 양금, 태평소의 다섯 악기가 어떤 진화 과정을 겪고 있는지를 기록했다. 이런 시각에서의 기록이 전무한 상태이기에, 비록 소략하나마 정리해 나간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싶다.
l 제6장 한국 음악의 세계화, 아시아적 정서의 창출
국악의 세계화에 대해서는, 거창한 포부보다는 우선 동북아시아를 중심으로 어떻게 경계를 넓힐 수 있을까에 대한 사례와 고민을 피력했다. 국악뿐만 아니라, 대중음악을 예로 들고자 했다.
이 책에서는 깊이 다루지 못했으나, 한국 음악의 세계화를 이룩하기 위해선, 디아스포라의 역할이 중요하다. 해외에 거주하는 한인들의 국악 활동이 그 지역에서 국악을 뿌리내리는 데 크게 기여한다. 이는 과거 태권도의 경우가 좋은 예가 된다. 전통예술 교류에 있어서의 모범사례로써, 일본의 지성자가야금연구소 이세환과 금율악회의 활동을 기록했다.
l 제7장 한류에서 신한류로, ‘온’과 ‘융’이 결합한 새로운 한국 음악 콘텐츠
한류는 어떻게 신한류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지금과 같은 드라마, 가요 중심에서 전통예술을 포함한 공연예술 전반으로 어떻게 영역을 넓힐 수 있을까? 이에 관해서는 기존의 한류 콘텐츠의 특징인 ‘따스함(溫)과 합쳐짐(融)’을 전제로 한 한국 문화의 특성에 관해서 언급했다. 이는 국악 자체에 대한 언급이라기 보다, 이런 정서적 측면을 고려해서 국악이 어떤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필자의 제안이 된다.
l 제8장 21세기 한국 음악의 현재와 비전
이 책은 단순히 오늘날의 현상만을 다루지 않았다. 주관적인 의도를 많이 반영해서, 한국 음악의 미래상에 관해서 생각해보았다. 국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가무악희의 균형적 발전을 이뤄야 한다. 노래(歌), 춤(舞), 연주(樂), 놀이(戱)를 말하며, 한국의 전통예술은 이를 두루 포함하는 종합 예술적 형태로 발전해 왔다. 그러나 지난 20세기 서구 교육의 영향과 극장 중심의 공연 활동을 통해서 이 네 가지의 균형이 많이 깨진 상태이다. 21세기는 바로 이런 네 가지의 조합을 잘 이루는 것만으로도 ‘오늘의 국악’을 바람직한 출발점에 놓이게 할 수 있다.
이 책은 ‘오늘의 국악’에서 국악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가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이제 이 책을 시작으로 지구촌 사람들이 ‘또 다른’ 새로운 흐름을 만들었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창작이 ‘미래의 전통’이 된다는 신념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간 한국 음악은 전통에 바탕을 두면서 서구적인 성향과 대중적인 성향이 추가되어 변화, 발전되어 왔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한국 음악의 성장이 급속도로 이뤄지고 있다. 더불어 한류의 흐름을 타고 전통음악을 통한 새로운 한류를 꿈꾸고 있다. 이 책은 이렇게 K-Pop 혹은 한류의 흐름을 간과하지 않으며, 그 안에서 탄생될 수 있는 K-Traditional 혹은 K-Traditional Pop에 관해서도 신중히 언급하고자 했다.
국악과 관련해서 많은 사람들은 ‘보존과 전승’에 초점을 맞춘다. 나는 다르다. 나는 국악을 ‘소비’의 대상으로 삼길 바란다. 많은 콘텐츠들이 만들어지면서 소비(향유)되고, 이를 통해서 새로운 콘텐츠가 만들어지는 수급 현상이 잘 이뤄져야 한다.
21세기 국악의 성장 모델은 ‘전승과 보급’이 아닌, ‘생산과 소비’의 모델이다. 따라서 이 책의 여러 사례들도 당대적으로 소비되고, 그 과정을 통해 앞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콘텐츠와 아티스트에 초점을 맞췄다.
지난 10년간이 ‘퓨전국악’의 시대(악기, 연주 중심)였다면, 앞으로의 10년은 분명 ‘국악뮤지컬’(노래, 연기 중심)의 시대가 될 것이다. 21세기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이야기’이다. 21세기 사람들이 가장 인정하는 것은 ‘창조력’이다. 국악이야말로 롤프 옌센이 이야기한 ‘꿈과 감성’을 담아내기에 정말 좋은 그릇이다. 한국적인 정서가 배어 있는 새로운 ― 전통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상투적이지 않은 ― 작품의 탄생을 기대한다. Dream Society! Dream GUGAK!
평론가들의 평론서에서 ‘현대국악’을 다루긴 했어도, 21세기를 전후로 한국 음악의 새로운 흐름을 대상으로 탄생된 책은 「Gugak: Traditional Korean Music Today」가 처음인것으로 알고 있다. 새로운 국악을 만들고자 하는 다양한 시도와 성과를, 제한된 지면을 통해서 한 사람이 정리한다는 것은 한계와 오류가 있을 수 있다. 이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서, 모두 나름대로 ‘국악’의 개념과 범주를 근간으로 오늘날 국악의 현주소와 가능성이 정확히 짚어지길 바란다.
[기사입력 : 2014.10.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