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대학이 우리 마을로 온다는데…. 마을에 대학이 생기면 우리 마을은 어떻게 변할까?”
 “근처 부산대학교 주변에는 주택들이 모두 사라지고 원룸촌이 됐다고 하던데, 우리 마을도 그렇게 변하는 게 아닐까?”
 “대학생들이 밤늦게까지 술 마시고 취한 모습으로 다닐 테고, 길거리에 담배 물고 다닐 텐데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닐까?”
 “딸아이들이 밤늦게 다니는 게 그렇지 않아도 걱정인데 앞으로는 더 무서워져서 어쩐다지…?”
 “지금까지 만들어 온 마을의 분위기가 사라질까 봐 걱정이야….”

부산외국어대학교가 부산광역시 금정구 남산동으로 온다는 소문이 돈 지 10여 년 만에 드디어 이전이 확정됐다. 그리고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공사가 시작된다고 신문기사가 났다.

마을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마을에 대학이 들어오면 집주인들은 집값이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감에 환영하는 분위기와 집이 없는 세입자들은 전세보증금 또는 월세가 오를 것에 대한 걱정이 교차하고 있다. 상가들은 죽어가는 마을의 상권이 다시 살아나길 기대하는 눈치이고,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자녀를 둔 부모들은 우범 마을로의 변화를 걱정하고 있다. 그리고 마을 공동체와 마을 도서관 식구들은 마을의 공동체성이 훼손되고 정겨운 마을의 모습이 사라질까 우려하고 있다.

어느 날, 공동체 식구 한 사람이 모두에게 물었다.
 “대학이 우리 마을로 이사 오면 좋은 일이 하나도 없을까? 대학생들의 젊은 에너지가 우리 공동체와 만나면 더 큰 힘이 되지 않을까?”
모두들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래, 긍정의 힘을 찾아보자. 언제부턴가 우리 마음에 부정적인 마음만 자리하기 시작했어. 마을문화와 대학문화가 만나서 만들어 낼 수 있는 긍정들을 찾아보자!”
이렇게 금샘마을공동체의 생활문화공동체만들기(이하 생문공) 사업이 시작됐다. 그리고 올해로 3년째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2012년, 가장 먼저 한 일은 대학생들과의 만남을 통해 대학문화를 이해한 것이다. 아직 부산외국어대학이 본격적인 이전을 시작하지 않았고,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부산대학교가 있다는 점을 고려해 금샘마을공동체는 우선 부산 금정구 장전동에 위치한 부산대학교 대학생들과 부산대학교 주변의 인디문화 예술가들과의 만남과 교류를 계획했다. 그것이 ‘장전- 남산 커넥션’이다.
장전동에 있는 대학생들과 인디문화 예술가들은 남산동으로 취재를 오고, 남산동 마을 주민들은 장전동의 대학문화와 인디문화를 취재하러 갔다. 교차 취재를 통해 서로의 문화를 소개하고, 생각을 공유하며, 이해를 높이는 과정을 만들었고 3권의 잡지를 발행해 마을 주민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또 마을 동아리를 만들고 대학가의 젊은 예술가들을 적극적으로 섭외해 동아리 강사로 마을 주민들을 만나게 했다. 이때 만들어진 대표적인 동아리가 ‘아빠밴드’이다. 이 외에도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개설해 마을 주민들과 젊은 예술가들의 만남을 만들었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놀이터음악회’를 개최해 마을 놀이터에 젊은 예술가들을 초청, 마을 주민들에게 젊은 예술가들의 문화를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문화교류의 장을 만들어갔다.

2013 생문공 사업은 ‘남산동, 청춘바이러스’로 시작됐다.
1년 동안의 문화 프로그램을 진행한 성과들을 바탕으로 ‘춤추는 엄마들’, ‘우리동네 미술실’ 동아리가 만들어졌다. 2년 차에 들어선 ‘아빠밴드’는 어느덧 외부 공연을 섭외 받을 정도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해 마을 행사뿐만 아니라 인근 마을의 원정 공연을 다니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12월 첫 단독 콘서트를 계획하며 아빠들의 열정을 쏟았다.

2012년 3번의 잡지 발간을 통해 대학문화의 이해를 넓혔던 성과를 바탕으로 외국어대학생들과 직접적인 만남을 계획하고 본격적인 취재에 들어갔다. 외국어대학생들이 생각하는 대학 이전에 대한 생각, 이전되는 대학의 모습, 대학 이전에 대한 마을 주민들의 생각, 대학문화와 마을문화에 대한 젊은 예술가들의 의견 등을 담은 소식지 발간 사업을 통해 부산외국어대학의 이전 과정과 당사자들의 구체적인 생각들을 접할 수 있었다.

‘청춘 바이러스’의 또 다른 주요 사업은 이미 형성된 대학가 주변의 마을 주민들과 대학생들이 어떻게 만나고 교류하고 있는가를 배우고, 이를 바탕으로 부산외국어대학교와 금정구청, 그리고 남산동 마을 주민들이 만나서 대학 이전에 대한 의견과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대학문화의 대표로 꼽히는 신촌과 홍대로 향했다. 연세대 부근에서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있는 젊은 예술가들과 마을 주민을 만나 사례를 듣고 토론을 통해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홍대 앞의 예술가들도 만나고 대학 주변의 모습들도 돌아보았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대학생들과 젊은 예술가들은 마을문화에 대한 고민이 깊지 않았다. 대학생활이 끝나면 떠나는 마을이기에 마을의 삶을 배우고, 이해할 요구가 없었다. 대학생들은 사회 전체의 명제를 가지고 대안을 찾으려 애썼고, 젊은 예술가들은 살아남기에 급급해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 경험이 중요한 시사점을 주고 있음을 공유했다. 결국 마을의 문제는 마을 주민 스스로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마을로 들어와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고 우리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주인의식이 필요하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마을에서 토론회를 개최했다. 부산외국어대학교 이전의 당사자들인 부산외국어대학교 행정처와 금정구청 관계자, 그리고 남산동 마을 주민들이 모여서 부산외국어대학교 이전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이후 방향성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마련된 토론회는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여로 진지하고 열띤 토론의 장이 됐다. 그리고 서로의 입장을 분명히 알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부산외국어대학교는 마을에 대학이 들어오면 환영받을 줄 알았는데 마을 주민들의 우려와 걱정을 당황스러워했고, 금정구청은 행정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마을 주민들의 의견수렴이 다소 부족한 부분에 대해 추후에 의견을 모으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토론회에 참석한 구의원의 경우 마을 주민들의 다양한 의견들을 수렴하지 못한 점에 대해 사과하기도 했다. 토론회에 참가한 마을 주민들은 지금부터라도 함께 논의하고 발전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논의기구(외국어대학교, 금정구청, 마을 주민)를 상시적으로 운영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대학가 견학과 토론회를 거치면서 우리는 스스로 역량을 키우자는 의견을 모았다. 대학 이전으로 변화되는 마을의 모습을 고민할 수 있는 중심적 역할은 마을 주민이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마을 주민 스스로 역량을 높이고, 대학문화의 주체들과 적극적으로 만나면서 마을과 대학이 상생할 수 있는 발전 방향을 찾기로 했다.

2014 생문공 사업 3년 차에 접어든 금샘마을공동체는 ‘남산동, 꽃을 피우다’는 주제를 던졌다. 그동안 대학문화와의 교류를 통해 마을 동아리들이 하나, 둘 생겨나 ‘가족풍물단-얼쑤’, ‘가족풍물단-아이들세상’, ‘청소년 밴드-얼렁뚱땅 밴드, 뻔뻔한 밴드’, ‘우리동네 미술실’ 등 마을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그리고 활동들을 모아 문화 축제와 마을 송년회를 만들어가기 위한 계획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대학의 이전으로 주택가 곳곳에 원룸이 생겨나고, 작은 가게들이 사라져 가는 모습들을 목격하기 시작한 주민들의 요구로 마을의 역사와 현재의 모습을 담는 작업들을 진행했다. 뜻을 함께하는 주민들이 모여서 마을 역사와 관련한 자료를 찾고, 책을 통해 의견을 모으고, 직접 취재와 촬영을 통해 글과 사진으로 기록을 만들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고 자료화하기 위한 막바지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생문공 사업에 참여하는 마을 주민들과 금샘마을공동체 식구들이 함께 모여 공동체마을 만들기의 가치와 비전을 위한 워크숍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모으고 힘을 다지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결과는 하루아침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소중한 3년 동안의 생문공 사업의 경험으로 배웠다. 사람의 마음이 쉽게 변하지 않듯이 마을공동체를 만든다는 것이 쉽게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아직은 지역과 대학의 낯설고 어색한 만남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3년 전의 모습과 지금을 비교한다면 우리는 이미 변하고 있고, 지금도 변화 중이다. 대학문화의 주체들과 교류하고 있고, 또 대학생들이 마을 아이들에게 멘토가 돼주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인의식으로 생활문화공동체를 만들어 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희망적이다.
지금 우리는 생활문화공동체만들기의 본격적인 시작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