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ARKO한국창작음악제(이하 아창제)는 2012년도부터 아창제를 통해 초연된 작품들의 재연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으며, 이번 체코 야나첵 필하모닉 오케스트라(Janacek Philharmonic Orchestra)와 루마니아의 티미샤라 필하오닉 오케스트라(Filarmonica Banatul Timisoara)가 본인의 2012년 아창제 선정작인 〈까치소리〉를 연주하게 된 것은 지속연주 지원사업(해외 홍보 사업명 Tune in the Creative Korea)의 첫 번째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일정상 루마니아에는 가지 못하였고, 체코의 오스트라바에서 진행되는 연주회만 참석하였다. 2012년도 연주에 크게 실망한 관계로 기대 반, 의심 반으로 리허설과 음악회에 참석하였는데, 그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Heiko Matheas Foerster를 상임 지휘자로 하는 야나첵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본인이 작품을 완성할 당시의 흥분을 충분히 관중에게 전달될 수 있을 만큼 양질의 연주를 선보여서 가슴 뭉클한 감동이 있었다.

체코에서는 지난 8년 동안 이틀에 걸친 ‘한국의 날’ 페스티벌을 통해 재체코 한국인에게는 고향의 향취를 느끼게 하고 체코인들에게는 보다 친근한 한국의 이미지를 심어주고 있다. 본인의 작품이 발표된 음악회는 이 페스티벌의 일부였다. 체코에서 작품이 재연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과연 그 먼 길을 가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결국 가기로 결심하게 된 것은 연주회 프로그램을 확인하고 난 뒤였다. 이 음악회에 창작 관현악 작품은 본인의 작품과 2013년 아창제에서 작품을 발표하였던 정현수 작곡가 작품뿐이었고, 나머지 한 작품은 한국 바이올리니스트 김윤희가 연주하는 하차투리안 바이올린 협주곡이었다. 또한 이를 위해 3일의 리허설 일정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최소한의 연주 수준이 보장될 거라는 확신이 들어 먼 여행을 준비하게 되었다.

물론, 야나첵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현대음악 연주 경험도 풍부하고 한국의 오케스트라에 비해 훨씬 오랜 전통의 오케스트라였다. 하지만 본인은 한국의 오케스트라도 이제는 그에 못지않은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믿고 있다. 다만, 기대에 못 미치는 창작음악 연주는 비현실적으로 적은 리허설 시간과 무리하게 많은 창작음악을 담을 수밖에 없는 프로그램 편성에 많은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휘자 Foerster는 연주의 질을 위해서 현대곡은 두 작품만을 선택하였고, 기존 클래식 레퍼토리를 함께 연주하여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창작음악 연주에 대한 부담과, 이를 감상하는 관중의 집중력에 대한 부담을 줄였다. 일반적으로 6~7개 작품의 창작음악을 프로그램으로 할 수밖에 없는 공모사업과는 매우 대조되는 사항이다. 물론 중간 휴식이 없는 비교적 짧은 갈라 콘서트였지만, 더 긴 콘서트를 위해서도 그리 많은 창작음악을 프로그램에 넣을 것 같지는 않다.

지휘자 Foerster는 창작음악을 초연(물론 재연하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하는 것은 기존 클래식 레퍼토리를 연주하는 것에 비해 훨씬 힘들고 많은 리허설 시간이 필요하며, 관중 역시 창작음악을 감상하는 데는 이미 알고 있는 기존 레퍼토리를 듣는 것보다 더 많은 집중력과 이해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독일 음악계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지휘자로서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관중 모두 감당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직접 짜고 ‘책임’ 있는 음악회를 선보였다. 프로그램을 작품 공모를 통해 선정하고, 오케스트라, 지휘자와의 계약을 통해 연주를 의뢰하는 공모사업과 대조된다. 이런 구조에서는 지휘자가 음악회의 연주 수준을 ‘책임’질 수 있는 구조를 갖지 않으며, 오케스트라 단원들 역시 자신들의 무대가 아닌, 소위 말하는 오브리 무대, 그것도 굉장히 힘든 레퍼토리의 오브리 무대와 크게 다른 기분이 아닐 것이다.
 
아창제가 진정으로 한국의 창작음악 활성화를 위한 지원사업이 되고자 한다면 하루의 아창제 음악회에 6~7곡의 창작 관현악 작품을 연주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 사실 2012년에 아창제에서 연주했던 프라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최근 다수의 창작 관현악 작품을 자신들의 정기연주회 프로그램의 일부로 연주하여 작곡가들 사이에서는 그 실력을 인정받은 단체이다. 또한, 기존 클래식 관중에게 현대음악을 선보이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2012년에는 무리한 프로그램 구성과 비현실적인 리허설 시간, 그리고 아무도 연주의 질을 ‘책임’지지 않는 구조에 의해 예정된 실패의 수순을 밟았을 뿐이다. 창작음악 활성화를 위한 실질적인 방법은 기존 레퍼토리를 주로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단체가 한두 작품의 창작곡을 자신들의 연주회 프로그램의 일부로 연주하는 것이다. 이 방법을 통해 기존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이 자연스럽게 창작음악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이들을 창작음악 애호가로 흡수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 수 있다. 또한 창작음악 작곡가들과 음악대학 관계자 및 학생들 위주로만 참여하는 갈라파고스와 같이 고립되고 왜곡된 창작음악계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바로 잡을 수 있는 바람직한 방법이 될 것이다. 관객들도 이러한 음악회 프로그램을 통해 클래식 레퍼토리들과 다른 창작음악만이 가지고 있는 신선함을 즐길 수 있다. 많은 해외의 오케스트라들은 기존 레퍼토리와 창작음악을 포함한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선보이는 것이 일반적이며 관중들에게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물론 이 방법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따라서 이번 ‘지속연주 지원사업’과 같이 오케스트라가 자신의 정기연주회에 아창제 작품을 그들의 프로그램 일부로 연주하는 것이 훨씬 큰 효과를 발휘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작품 활동을 하면서 한국 창작음악 발전에 대한 상반된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한편에서는 작곡가가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작품 세계를 자유롭게 탐닉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다른 한편에서는 관중이 보다 호응하는 창작음악을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은 생산자 중심의 지원 방안이고, 한편은 소비자 중심의 지원 방안이다. 본인은 이처럼 상반된 의견들 모두가 옳다고 생각한다. 많은 관중이 필요로 하는 아창제와 같은 창작 관현악 음악회를 위해서는 관중의 호응을 얻을 수 있는 작품이 보다 필요하겠지만, 작곡가들이 자신의 작품 세계를 맘껏 펼칠 수 있는 무대도 역시 필요할 것이다. 다만, 어떠한 음악을 쓰는가는 오로지 작곡가들만의 선택이며, 그 누구도 강요할 수 없다.
 
이쯤에서 본인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창작음악 활성화 지원사업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아창제와 같이 무리한 프로그램 편성과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창작음악제 사업을 계속하기보다는 기존의 오케스트라가 양질의 창작음악을 공급받고 그들의 연주회에서 책임 있게 연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쪽으로 사업 방향을 바꾸어 나가는 것이다. 그 첫 번째 단계로 창작음악이 ‘책임’ 있게 연주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 당연히 오케스트라 연주회의 연주 수준은 지휘자의 책임이다. 아창제 공모를 통해 선정된 작품들의 악보를 이후에 그저 전달받기만 하고, 지휘자에게 책임 있는 연주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가 따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양질의 연주를 선보이게 하기 위해서는 창작 관현악 공모 작품 선정에서 지휘자들도 심사에 참여해야 한다. 이에 대해 다른 작곡가들은 의견을 달리할 수 있다. 하지만 본인은 지휘자들 자신들이 자신 있게 연주할 수 있는 작품을 선택하고 싶은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참여한 심사를 통해 선정된 작품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애착을 가지고 선정된 작품들을 지켜볼 것이다.
 
두 번째로 하루의 음악회를 통해 선정된 작품을 모두 몰아서 연주하는 음악회는 지양하고 각 오케스트라가 자신들의 음악회에서 선정된 작품들을 소화할 수 있는 작품 수만큼만 연주하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지휘자 자신이 참여한 심사과정에서 선정된 작품들을 자신들의 연주회에서 보다 애착을 가지고 연주한다면 당연히 음악회의 수준은 높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ARKO)는 이러한 음악회를 아창제 재연 지원사업 수준, 또는 필요하다면 적절한 수준의 기금으로 지원만 하면 된다. 아창제를 위해 각종 창의적인 홍보를 고안해내고 힘들게 뛰어다니며 준비할 필요도 없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가지고 열정적으로 일한 아창제 관계자들이 음악회를 둘러싼 구조적인 문제점 때문에 음악회 수준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행사의 성패가 결정되어 낙담하는 것을 목격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지난 몇 년 동안 본인은 우리나라가 ARKO를 통해 적지 않은 자원과 열띤 노력으로 여러 예술 지원사업을 수행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본인은 2014년에 처음으로 시작된 생애첫작품발표회 기금을 통해 개인 작곡발표회를 열었으며, 또한 올해 처음으로 시작된 오페라/뮤지컬 아카데미 1기생으로 매우 흥미진진한 학습과 창작의 기회를 갖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예술 지원사업 수혜자로서 ARKO 관계자들과 접촉하면서 그들의 창의적인 노력과 열정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다양한 예술 분야의 예산 집행에 있어서 불가피하게 나타나는 획일성과 비효율성도 다소 목격하였다. 예술은 절대적인 평가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공정성이라는 명목을 위하여 불가피하게 획일적으로 수치화된 기준을 사용하여 지원사업을 선정, 수행 할 수밖에 없는 것과, 경직된 예산 집행으로 인해 민간 예술단체가 수행하는 것보다 다소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는 그들의 직접 사업 시행이 바로 그것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몇 명의 정책 결정자들에 의해 예술 지원사업의 방향이 결정되는 것을 지양하고, 다양한 분야와 계층, 그리고 각 세대의 예술가들과 정책 결정자들이 함께 머리를 맞댈 수 있는 공식적이고 지속적인 통로가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럼으로써 ARKO의 예술 지원사업이 올바른 방향으로 진행되고, 예술가들은 가치 있는 예술 작품을 창작하는데 많은 힘이 될 것으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