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미술계는 어떤 움직임이 있을까? 우선 중요기관이나 미술관들에 새로운 대표들이 임명됨에 따라 기관들의 운영 정책이나 방향에 다소간의 변화가 기대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위원장의 임기가 3월에 종료되고, 현재 공석 중인 국립현대미술관장도 연초엔 새로운 인물이 임명될 것이다. 임기가 다가오는 경기도립미술관장이나 수원시립미술관 등과 같이 새로 건립 중인 중소도시의 시립미술관장도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할 것이다. 전윤철 광주비엔날레 신임 이사장이 내년 1월 중순 취임할 예정이고, 현재 대행 체제로 되어있는 부산비엔날레의 운영위원장도 결정될 것이다. 새로운 기관장 임명은 기관의 정책이나 운영 방향의 변화를 예고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신임 위원장의 경우, 문예진흥기금 고갈 문제를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고, 지역 이전에 따른 새로운 사업 개발과 기관 운영의 안정화도 큰 과제 중 하나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경우 법인화 문제와 신설된 서울관의 안정적 운영, 그리고 국제적 위상을 가진 중장기적인 전시 콘텐츠 생산 등 사업 개발과 관련한 막중한 과제가 놓여있다. 새로이 민간 이사장을 영입하여 출범한 광주비엔날레 역시 그간의 연구된 혁신안을 어떻게 착근시킬 것인가가 가장 큰 과제일 것이다. 작년 예술감독 선임과 관련하여 홍역을 치른 부산비엔날레의 경우도 신임 운영위원장을 중심으로 그간의 혁신안을 내실 있게 구현해야 하는 과제가 남겨져 있다.
내년도 정부의 시각예술진흥기반 구축을 수행하기 위한 예산은 총 214억 원이 확보되었다.
공공디자인진흥에 31억 원, 건축문화진흥에 2억 원, 서울역사 복합문화공간운영에 22.5억 원, 남한강예술특구 조성에 65.5억 원, 미술진흥기반 구축에 73억 원, 유휴공간문화 자원화에 20억 원 등이 그것이다. 이중 미술진흥기반 구축을 위한 73억 원은 신규로 확보된 예산이다. 이 내용을 보면 미술시장 신뢰기반 구축 및 인식개선에 38억 원, 공사립미술관 핵심기반시설 육성 14억 원, 미술문화 확산 16억 원, 글로벌 미술인력 양성 5억 원 등이 그것이다. 내년도 예산에서 특이할만한 내용은 미술시장을 살리기 위해 38억 원의 예산을 책정하고 이를 2015년도의 중점사업으로 삼고있다는 점이다. 이외에도 문화예술공간조성 예산으로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리모델링비 47억 원 등 269억 원을 책정하고 있다. 이외 산업단지, 폐산업시설문화재생사업 예산으로 영주아트센터 조성 등 6개 사업에 118억 원, 문화시설확충 및 운영을 위한 예산으로 부산현대미술관 건립 등에 99억 원, 부산비엔날레 등 8개 비엔날레 운영지원에 27억 원 총 126억 원이 배정되어 있다.
하드웨어와 정책적 과제 중심으로 구성된 국고예산에 비해 문화예술진흥기금으로 시각예술 분야에 편성된 예산은 약 48억 원 정도이다. 그 주요 내용으로는 창작 및 전시공간지원 12.5억 원 시각예술행사지원 5억 원, 비평 활성화 1.5억 원, 공공미술 16억 원, 민간국제교류지원 5억 원, 해외레지던시지원 4억 원,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운영 및 전시 7억 원, 미술품 해외시장 개척지원 13억 원 정도로 구성되어있다. 이와는 별도로 지방의 문화재단과 위원회가 협력사업으로 추진하는 레지던시지원사업 등의 사업들이 있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국고나 공공기금을 통해 민간의 우수한 사업들이 더 활발하게 추진되리라 보지만, 늘 현장의 수요에 비해 지원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며, 현장의 요구에 부응하는 새로운 사업의 개발이 미흡한 수준이다.
내년 주요 국공립미술관의 전시로는 국립현대미술관의 경우, 〈올해의 작가 전〉, 〈한국미술포스트모더니즘 전〉, 〈윌리엄켄트리지 전〉, 〈한호교류 전〉, 〈현대모터스 브릴리언트아티스트 전〉, 〈한진해운 박스 전〉 등의 전시가 진행될 예정이며, 서울시립미술관의 경우 한중일 대표 작가전인 〈미묘한 3각관계-한중일 Top3 전〉, 70대 이상의 작가를 조명하는 〈윤석남 전〉, 대중문화와 현대미술의 협업을 추구하는 〈크로스 장르 전〉, 〈분단 70년 주제 전 북한 프로젝트〉, 〈fantASIA 아시아페미니즘 전〉 등의 전시가 기획 중이다. 특별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전시로서는 80년대 미술을 재조명하는 〈한국미술 포스트모더니즘 전〉과 〈북한프로젝트〉를 들 수 있는데, 후자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국내외 글로벌 아티스트들이 제안하는 북한에 대한 예술적 상상을 통해 이념적 대립 상황을 넘어선 공존과 평화의 공감대를 확대하고자 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국제행사로는 베니스비엔날레의 개최를 꼽을 수 있다. 현재 한국관의 커미셔너와 작가들이 선정되어 전시를 준비 중에 있는데 작년 건축비엔날레에서 거둔 황금사자상 수상의 쾌거를 미술 분야에서도 거둘 수 있을지…. 수상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해를 거듭하면서 국제 미술계에서 한국작가들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졌기 때문에 좋은 성과를 기대해 본다. 이외에도 개인작가나 기획자들이 참여하는 베니스비엔날레의 특별행사들이 다수 있다.
미술시장의 경우, 국제적으로 대표적인 아트페어인 아트바젤(3.15~17)과 홍콩아트 바젤(6.18~21), 프리즈 뉴욕(5.14~17), 프리즈 런던(10.14~17)이 각각 시기를 달리하여 개최될 예정이다. 정부가 내년도 중점사업으로 기획하고 있는 시장활성화사업의 구체적 전략은 현재 준비 중에 있지만, 종래와 같이 해외 아트페어에 진출하는 화랑들의 참가비를 지원하거나, 국내 아트페어에서 미술은행과 같은 제도를 통해 작가들의 작품을 좀 더 사주는 소극적인 방식으로는 문제의 해결이 쉽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방식으로는 메이저 화랑의 수익을 약간 증대시키는 결과밖에는 특별한 성과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한 경쟁의 양상을 보이고 있는 세계 미술시장에서 경쟁력을 얻기 위해서는 KIAF와 같은 한국국제아트페어를 경쟁력 있는 페어로 성장시키기 위한 국가적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국내외에서 인정받는 화랑과 작가의 초대, 판매액을 높일 수 있는 고도의 전략, 새로운 담론의 형성 등 기초적인 과제를 선결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국제적 감각과 역량을 갖춘 전문 인력의 확보가 그 무엇보다도 시급하다.
이 외에도 지원사업과 관련한 다양한 사업들의 변화가 예상된다. 사립미술관과 대안공간을 대상으로 하는 창작 및 전시공간운영 지원사업의 경우, 집중과 선택 방식으로 전환되어 연례적 수혜 대상 공간에 대한 다소간의 변경이 예상된다. 수도권 사립미술관의 경우, 중요한 전시 담론 생산 여부와 계획에 부합되는 우수전시의 개최 실적을 감안하여 집중과 선택의 방식으로 선정되었고, 지역미술관들은 수도권과는 달리 벽지나 접근성이 떨어지는 공간을 지역문화공간 육성 차원에서 지원하게 된다. 또한 대안공간의 경우도 새로운 대안적 담론 생산의 한계에 다다른 점을 감안하여 매년 별다른 대안적 노력 없이 관습적인 사업을 펼치는 공간이나 실적이 저조한 공간들을 배제하고 신진 공간들의 참여를 확대함으로써 새로운 대안적 담론 생산을 기대하는 방향으로 지원될 예정이다. 이와는 별도로 공간 운영에 필요한 전문 인력인 큐레이터와 에듀케이터들에 대한 인건비를 지원함으로써 안정 운영에 기여할 것이다. 또한 비평 활동의 저조함을 개선하기 위해 2013년부터 신설된 비평, 연구 활성화사업의 경우, 기존의 개인 비평집 발간 이외에 지속적인 담론 생산을 위해 장기 프로젝트인 비평 포럼을 신설하여 6개월 이상 지속적으로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심도 있는 담론 생산을 꾀하는 사업들을 수용하고 있다. 시각예술 행사지원의 경우도 가능한 전문기획자가 분명한 주제와 담론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대형 기획전을 중심으로 지원한다. 특별히 우리의 역사나 문화, 정신과 관련한 인문학적 연구를 바탕으로 한 전시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이상 간단히 살펴본 2015년도의 미술계는 큰 틀에서 기관과 인력, 제도 측면의 큰 변화가 예상되며 다양한 정책적 지원사업을 통해 새로운 방향의 활동들이 펼쳐질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변화의 중심을 관통하는 내용과 담론일 것이다. 하지만 현재로써는 그것이 무엇인지 분명치 않고 이렇다 할 이슈도 별반 없어 보인다. 제도나 지원 프로그램이 크게 부족하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어쩌면 제도의 과잉일 수도 있다. 부족하다면 그 내실을 기하는 방향이 필요하다. 해방 70주년이라는 역사적 의미는 차치하더라도 내년의 모든 행사나 프로젝트들의 수행 과정에는 한국미술의 정체성과 이를 국제적 문맥 속에서 재해석하려는 노력이 밀도 있게 녹아 있어야 하지 않을까?
[기사입력 : 2015.0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