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l 20주년 맞이한 한국관

1895년 창설된 베니스비엔날레가 100주년을 기념하던 1995년, 자르디니 공원 내에 26번째 국가관이 문을 열었다. 바로 한국관이다. 건축가 김석철의 설계로 지어진 한국관은 건축 면적은 219.7㎡, 연면적은 242.6㎡(약 73평)이다. 과거 베니스비엔날레의 사무국과 화장실로 쓰이던 벽돌 건물의 외형을 살리면서 거기에서 연장된 방식으로 큰 원통 공간과 철제 프레임과 유리로 된 비선형적 구조로 된 2층 건물로 지어졌다. 트랜스패런트홀, 히스토리컬홀, 실린더홀 등 3개의 전시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관은 대지에 뿌리를 내리지 않고 우리나라 전통 목조 한옥의 그것과 흡사한 16개의 석조 주춧돌 위에 우주선처럼 사뿐히 얹혀 있다. 중앙홀의 목재 파상벽과 2개의 테라스는 그 재료와 형태를 통해 한국관과 주변 배경과의 유기적인 관계를 연출한다. 프리즘 모양의 천창을 가진 주 전시공간인 직육면체의 유리상자와 유리, 알루미늄 패널로 마감된 6m 높이의 원통, 정육면체 벽돌 방 등 형태와 재료가 각각인 덩어리들이 서로 엮여 있다.  
한국관이 개관한 지 20년이 지났다. 한국관은 그 사이 10회의 미술전 9회의 건축전을 열었다. 또한 3번의 특별상(전수천 1995, 강익중 1997, 이불 1999)을 연달아 수상했고, 지난해 열린 건축전 〈한반도 오감도〉는 처음으로 황금사자상을 받는 쾌거를 이뤘다. 한국관이 ‘스무 살 성년’으로 잘 성장하기까지 그동안 예술가 및 건축가의 활약은 물론 한국문화예술위원회를 비롯해 현지 코디네이터 등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뒤따랐다. 베니스비엔날레는 단순한 전시회가 아니다. 지난 20년 동안 베니스비엔날레의 국가관은 더욱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한국관을 마지막으로 자르디니 내에 더 이상 공간을 확보할 수 없었던 다른 나라들이 베니스 시내 전역에 독자적으로 국가관을 마련했다. 2013년 88개였던 국가관이 올해 2015년에는 몽골리아, 모잠비크 등의 나라가 추가되어 총 90개의 국가관이 경쟁을 하게 된다. 즉, 비엔날레 기간 동안 베니스는 자국의 예술적 역량을 뽐내는 “총성 없는 전쟁터”라 할 수 있다.  
한국관이 개관한 1995년, 당시 한국에서는 광주비엔날레가 처음 출범했다. 뒤이어 부산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등도 설립되어 한국은 그야말로 ‘비엔날레 강국’이 되었다. 2000년 이후 한국을 포함해 아시아권을 중심으로 비엔날레가 급속도로 늘어났다. 전 세계 200개 이상의 비엔날레가 존재하는 지금, 이미 몇 해 전부터 비엔날레 제도에 대한 무용론과 회의론도 무성하다. 그럼에도 교통도 불편하고 물가도 비싼 베니스에 2년마다 전 세계의 주요 거물급 인사들이 바쁜 시간을 쪼개어 모여든다. 그 이유는 베니스비엔날레는 세계에서 가장 긴 역사를 갖고 있는 동시에, 국가관이라는 형태로 운영됨에 따라 비엔날레에 참여하는 것이 큐레이터는 물론, 작가에게 있어 국제 미술계로 진입하는 데 큰 기폭제가 되기 때문이다. 밀라노엑스포로 인해 다른 때에 비해 한 달 정도 일찍 열리는 제56회 베니스비엔날레는 올해, 2008년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으로 잘 알려진 오쿠이 엔위저가 지휘봉을 들고, 〈모든 세계의 미래(All the World's Futures)〉라는 주제로 세계 미술 관객을 맞이한다. 특히 6년 만에 한국 작가들이(김아영, 남화연, 임흥순) 본 전시에 이름을 올렸고, 〈단색화〉전 등 한국 미술을 알리는 특별전이 여럿 열려 올해의 베니스비엔날레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l 문경원 & 전준호의 〈축지법과 비행술〉

한국관 개관 이래 11번째 미술전을 선보이는 주인공은 작가 문경원 & 전준호. 2007년 이형구를 시작으로 양혜규(2009), 이용백(2011), 김수자(2013)까지 줄곧 작가 1인의 개인전 형식으로 진행되어 온 것과는 상이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사실 그렇지 않다. 이미 2012년 카셀도쿠멘타에서 〈뉴스 프롬 노웨어(News from nowhere)〉라는 공동 작업을 발표한 바 있듯이, ‘한 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2인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그룹전으로도 볼 수도 있겠다. 그들의 작품에는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협력하고 있으니 말이다. 틈틈이 개인적인 작품 활동도 이어 나가면서 ‘따로 또 같이’의 전술을 펼치곤 하는 문경원 & 전준호. 각각 회화와 조각으로 독자적인 작품 세계로 이미 미술 현장에서 단단히 입지를 굳혔던 두 작가가 만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2007년 문경원과 전준호는 각기 독립적으로 참여했던 타이베이비엔날레를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우연히 옆자리에 앉게 되었고, 서로의 작업에 대해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은 지금처럼 모든 게 가파르게 급변하는 사회에서 예술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지 묻기에 이르렀다. 마치 ‘영화’처럼 시작된 만남은 카셀은 물론 싱가포르, 후쿠오카 등 대규모 국제전으로 이어졌다. 미술 작품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힘들었던 영화배우들도 등장했다. 두 작가는 〈세상의 저편〉(2012, 주연: 이정재, 임수정), 〈묘향산관〉(2014, 주연: 고수, 한효주), 〈q0〉(2014, 주연: 소지섭, 정은채) 등의 영상 작품을 잇달아 제작했고, 그리고 마침내 베니스에서 또 한 편의 ‘영화’가 펼쳐진다.
〈축지법과 비행술〉이라는 제목으로 열릴 2015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는 전시장의 구조적 특성을 살려 공간 전체를 아우르는 7채널 영상 설치 작업으로 그동안 문경원 & 전준호가 선보였던 작품 중에서 가장 큰 규모라 할 수 있다. 〈축지법과 비행술〉은 대재앙 이후의 미래의 지구, 대부분의 육지는 물론 베니스도 물속에 가라앉아 사라진 채 한국관만이 부표처럼 물 위에 떠 있는 시놉시스에서 출발한다. 촬영을 위해 경기도 남양주시의 한 세트장에 실제 한국관을 본뜬 모형을 만들었고, 두 작가의 첫 영상 작품에 출연했던 배우 임수정이 노 개런티로 다시 호흡을 맞췄다. 또한 〈축지법과 비행술〉에 등장하는 모든 의상의 디자인은 패션디자이너 정구호가 맡았으며, 전시 개막과 함께 과거 〈News from Nowhere〉 때와 마찬가지로 프로젝트의 전 과정과 각 분야 석학들과의 토론과 인터뷰를 담은 책이 나올 예정이다. 도가의 술법에서 비롯된 ‘땅을 접는 법’이란 뜻으로 같은 거리를 일반적인 경우보다 훨씬 빠르게 이동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가공의 기술인 ‘축지법’, 순간 이동과 공간 이동에 대한 초자연적인 능력을 의미하는 ‘비행술’. 문경원 & 전준호가 베니스비엔날레를 겨냥하여 제작한 회심의 신작 〈축지법과 비행술〉은 단지 SF영화에서처럼 미래에 대한 디스토피아를 그리는 것을 넘어, 불확신과 불안정이 팽배하는 현시대에 다소 황당하고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예술이 가질 수 있는 진정한 역할과 의미를 탐구한다. 특히 이번 비엔날레의 전체 주제인 〈모든 세계의 미래〉와 맞물려, 예술가의 상상력을 통해 미래의 관점에서 현재를 돌아보는 기회를 마련한다. 또한 글로벌리즘이 도래한 21세기에도 여전히 국가관 전통이 지속되는 베니스비엔날레를 역설적으로 접근, 국가적 경계가 허물어진 가상의 미래를 제시하고자 한다.

일찍이 문경원 & 전준호를 작가로 지목한 한국관의 커미셔너 이숙경은 전시를 앞두고 “2015년의 한국관은 건립 20주년을 맞아 지난 성과를 되돌아보는 한편 또 다른 도약을 기할 수 있는 기회를 맞았다”면서, 이번 전시를 통해 동시대 미술의 가장 첨예한 이슈들을 다룰 뿐 아니라 그 미래 또한 이끌 수 있는 선각자적 시각을 제안하고 싶다고 덧붙여 설명했다. 특히 지난해 건축전의 수상에 이어 한국관을 향한 전 국민적인 기대가 커진 상황에서 부담감이 적지 않을 터. 이에 이숙경 커미셔너는 “중심과 주변이라는 틀이 깨지고 상대성과 다양성이 중시되는 오늘의 미술계에서 한국미술 또한 전 지구적 미술 담론의 중요한 일부임을 강조할 생각”이라며 글로벌 큐레이터로서의 폭넓은 시각과 확고한 신념을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