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문화수도’ 광주의 문화발전소인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하 문화전당)이 오는 9월 개관한다. 지난 2005년 12월 광주광역시 동구 광산동 옛 전남도청 부지에서 첫 삽을 뜬 지 10년 만이다. 옛 전남도청 일원은 금남로와 맞닿은 사실상 광주의 1번지다.
대표적인 정부와 지자체의 협력사업으로 탄생한 문화전당은 광주를 21세기 아시아문화를 선도할 대한민국의 대표 도시로 자리매김한다는 데 의의가 있다. 대형 문화 인프라의 불모지였던 예향 광주는 문화전당 개관을 계기로 문화산업의 거점이자 아시아문화교류의 터전으로 도약하는 전기를 맞게 된다. 또 광주시민, 국민들은 문화전당에서 선보일 수준 높은 공연·전시의 첫 관객이 되고, 문화전당에서 생산된 창작물은 대한민국의 브랜드가 돼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게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문화융성’을 국정기치로 내세운 정부의 국책사업을 상징하는 문화전당은 세계적인 규모의 복합문화공간이다. 퐁피두 센터(프랑스), 에스플러네이드(싱가포르), 구겐하임 뮤지엄 빌바오(스페인) 등 세계적인 문화·예술공간에 견줄 수 있는 규모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광주가 이들 도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문화도시로 성장하는 기회를 갖게 됐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문화전당의 차별성은 유럽 등 타 문화권을 수용하는 해외 공간과 달리 아시아의 의·식·주, 민속, 전설, 전통·현대예술 등 아시아권 고유문화를 아우른다는 데 있다. 아시아문화 특화 기관인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 문화전당은 아시아 문화를 세계에 알리고 상호 문화예술을 교류하기 위한 ‘아시아 문화허브(Hub)’를 지향하고 있다.
‘복합 문화공간’이라는 표현이 말해주듯 문화전당은 민주평화교류원, 문화정보원, 문화창조원, 예술극장, 어린이문화원 등 5개 원으로 구성돼 있다. 그 규모는 부지면적 13만4,815㎡(4만781평), 연면적 16만1,237㎡(4만8,774평)에 달한다. 연면적으로 치면 국내 최대인 중앙박물관(13만7,289㎡) 보다 넓다. 문화전당 건립에는 현재까지 모두 7,000여억 원이 투입됐다.
문화전당을 구성하는 5개 공간 가운데 신축건물 4곳의 건축공정은 지난해 10월 말 마무리 됐으며, 오는 9월 공개될 개관 콘텐츠(공연·예술, 운영프로그램)에 맞춰 내부 시설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나머지 한 곳인 민주평화교류원은 현재 막바지 공정이 진행되고 있다. 민주평화교류원은 옛 전남도청과 상무관, 도청별관·회의실, 경찰청 본관·민원실 등 광주민주화 운동 유적을 리모델링해 탄생하게 된다.

문화전당의 두드러진 점은 이들 5개 원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구동체제를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문화정보원은 아시아의 신화, 전설, 민담 등을 수집하고 연구한 뒤 자료로 축적한다. 예술극장은 이 콘텐츠를 창작의 소재나 모티프로 삼아 창작 공연물을 만들어 무대에 올리는 식이다. 그래서 문화전당을 문화발전소라고 부른다. 이런 구동원리는 미술품을 단순히 전시하는 박물관, 전시관 등 여느 공간과 차별화된다. 문화전당에 미술관, 박물관처럼 작품을 사들이고 수장하는 컬렉션 기능이 없는 이유다.
문화전당 5개 원의 세부적인 역할을 보면 예술극장은 아시아 동시대 예술(Contemporary Art)을 창작해 선보이는 공연장이다. 문화정보원은 아시아 각국 문화자원을 수집하고 연구하는 공간이다. 어린이문화원은 아시아문화를 기반으로 한 복합어린이 문화체험장이다. 문화창조원은 문화전문가, 인문학자, IT공학자 등이 협업으로 문화콘텐츠(공연, 전시 프로그램, 문화상품)를 생산하는 공간이다. 민주평화교류원은 광주항쟁의 정신인 민주·인권·평화를 주제로 문화예술 콘텐츠를 전시하고 예술가들을 대상으로 한 국제교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공간이다.

문화전당은 민주평화교류원을 제외한 대부분 건물이 지하에 배치돼 있다. 4층 규모의 건물이 지하 25m 깊이에 들어서 있는 셈이다. 분지형으로 땅을 파 내려간 뒤 그 가장자리에 에둘러 건물이 배치되어 있어 지하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대형 건물이 지하에 들어선 사례는 국내 건축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다. 재미교포 건축가 우규승 선생은 문화전당을 광주정신이 녹아있는 공간(옛 전남도청 등)과 새로운 건축물을 결합한 기념비적인 건축물로 만들기 위해 과감하게 건물들을 지하에 배치했다. 광주항쟁 정신이 깃든 공간인 옛 전남도청, 상무관, 경찰청 본관 등 보존 건물을 돋보이도록 하기 위해서다. 대표적으로 옛 전남도청 본관 등은 광주항쟁 당시 군부독재에 항거했던 시민군들이 최후 항전지다. 상무관은 광주항쟁 당시 희생자들의 시신을 안치했던 공간이다. 이들 공간은 현재 민주평화교류원으로 조성되고 있다.
건물을 지하에 배치하는 문화전당의 설계방식이 워낙 파격적이었기 때문에 당선작으로 선정되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문화전당 건립을 도맡고 있는 문화부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추진단(이하 추진단)은 지난 2005년 문화전당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국제건축가연맹(UIA)이 인증한 국제현상 공모를 실시, 모두 33개국에서 124개 작품을 접수받았다. 심사위원들이 으뜸으로 꼽은 작품은 재미교포 우규승 씨의 ‘빛의 숲(Forest of Light)’이었다. 공모작 가운데 건물을 지하에 배치한 유일한 설계작이었다. 당시로서는 국내에서 생소한 설계방식인데다 워낙 파격적이어서 10여 명의 국내외 심사위원들이 만장일치로 당선작을 내지 못해 무려 7차에 걸친 투표로 최종 당선작을 확정하는 등 곡절을 겪었다.

문화전당 시설과 공간 곳곳에는 이런 ‘빛의 숲’ 철학이 구현돼 있다. 건물들이 지하에 배치된 덕분에 무려 4만여 평에 달하는 도심 녹지공간이 탄생한 게 대표적이다. 시민들이 건물 지붕의 옥상정원에서 산책하고 휴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현재 문화전당에서 나무가 자라고 있는 곳은 지하에 있는 어린이문화원과 문화정보원, 문화창조원 건물의 지붕으로, 일종의 거대한 옥상화분이다. 이 공간에는 진달래 등 45종 6만6,103그루의 관목과 교목(1,961주)이 자라고 있다.
가장 돋보이는 공간은 ‘빛의 숲’을 상징하는 문화생태공원이다. 이곳은 문화창조원 옥상에 조성된 공원으로 사각형 유리시설물인 천창(天窓) 56개가 설치돼 있다. 천창(天窓)은 주간에 태양광을 지하 4층에 있는 건물까지 끌어들이고 밤에는 역으로 불을 밝히는 두 가지 역할을 한다. 우규승 건축가는 “나무들이 자라면 사계절의 표정을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밤에는 숲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빛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추진단은 문화전당 옥상을 정원으로 만들기 위해 최저 70㎝에서 최대 140㎝ 두께로 흙을 깔았다. 비용만도 무려 8억1,400만 원이 들었다고 한다. 옥상에서 나무를 키우기 위해 특별한 장치도 설치됐다. 수많은 나무에 물을 주기 위해 물을 공급하는 6억9,800만 원짜리 관수(灌水)시설을 설치했다. 나무뿌리가 성장해 지표면 아래에 있는 건물에 피해를 주는 것을 막기 위해 7억1,200만 원을 들여 3만7,100㎡에 달하는 공간에 방근(防根) 시트를 깔았다. 나무가 번성해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유적처럼 건물을 파손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문화전당에서 시선을 압도하는 풍경은 지하에 배치된 건물들의 표면이 자잘한 구멍이 뚫린 스테인리스판으로 뒤덮여 있다는 점이다. 이는 거울처럼 빛을 반사하는 스테인리스판을 통해 시시각각 변하는 빛의 스펙트럼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장치다.
문화전당에서는 국내에서 보기 드문 첨단 공법들이 도입됐다. 어린이 문화원에는 창틀이 없다. 국내에서는 최초로 창틀 없이 케이블에 유리를 고정하는 케이블 넷(Cable net) 방식이 도입됐기 때문이다. 가로 2.5m, 세로 1.6m 크기의 대형 유리판 300여 개가 케이블에 고정돼 360m에 달하는 외부 벽을 만들었다. 중앙 통제실에서 제어가 가능하며 케이블의 인장력을 조절할 수 있어 강풍에도 깨지지 않도록 고안됐다.
문화창조원 복합전시관의 공간 높이는 지상에서 천정까지 18m에 달해 대형 작품을 설치·전시할 수 있다. 문화정보원과 창조원 건물을 지탱하는 기둥과 기둥 간 거리는 무려 24m에 달한다. 건물을 지탱하는 기둥 개수를 줄이는 대신 하중을 횡으로 지탱하는 보에 철강선을 넣는 공법(Post Tension)을 채택한 덕분이다. 이 공법은 주로 대형 현수교를 만들 때 쓰는 기법으로, 문화전당의 개방감을 높이기 위해 채택됐다.

문화전당의 공연무대인 예술극장은 공연 무대를 야외까지 확장할 수 있도록 콘크리트 벽을 만들지 않고 접이식 대형 유리커튼(Big Door)을 설치했다. 폭 32.5m, 높이 14.65m에 달하는 유리커튼을 접으면 야외에서도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문화전당 내부를 걷다 보면 바닥이 텅 비어 있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바닥면 아래에 일정 공간을 확보해 실내·외 공기 순환시스템, 전기배선 등을 모두 집어넣었다. 이는 인텔리전트 건물에 쓰는 엑세스플로어(Access Floor) 공법이다.
무엇보다도 문화전당이 돋보이는 점은 ‘지금 현재’의 용도로만 건물이 지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장기적인 생명력을 갖도록 공간을 분할하고 구획 지은 부문들을 최소화한 것이다. 건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자유자재로 내부 공간을 변경, 배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우규승 건축가는 “문화전당이 리모델링 등을 거쳐 생명을 얻고 있는 19세기 산업구조물처럼 우리뿐 아니라 미래세대도 잘 활용될 수 있도록 고민했다”며 “문화전당이 50년, 100년 뒤에도 살아남는 건물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사진: 아시아문화개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