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정책 이슈

정부는 정권 초기부터 창조경제의 기치를 내걸고 경제 살리기에 매진하고 있다. 창조경제(creative economy), 또는 창조산업(creative industries)이란 본래 영국의 경영전략가 존 호킨스(John Howkins)가 주창한 개념으로 지식과 정보를 이용하는 창조적인 경제활동을 일컫는 말이었지만, 국내에서는 첨단기술과 과학의 융합을 바탕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여 경제를 성장시킨다는 의미로 통용되고 있다. 존 호킨스의 창조경제 개념은 예술, 엔터테인먼트와 같은 문화산업을 기반으로 하지만, 우리 정부의 창조경제 개념에는 문화예술의 비중이 매우 낮고 문화콘텐츠산업 정도가 고려되고 있다. 하지만 영국을 위시한 구미선진국들은 문화콘텐츠산업은 물론, 공연예술 그리고 출판, 디자인, 건축, 미술 등 시각예술의 다양한 창조산업을 전략화하고 있다. 창조경제의 영역에서 문화예술, 특히 기초예술 분야를 소홀히 다루고 있음은 큰 오류이다. 게다가 문화융성을 또 다른 국정 지표로 제시하고 있는 마당에 이는 정책적 자기모순을 드러내는 일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뮤지엄은 창조산업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주체 중 하나이다. 1980년대 이후 중요 도시들은 창조도시의 기치를 내걸고 도시 브랜딩을 위한 문화 주도적 도시재생(culture-led regeneration)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들의 핵심전략으로 스타 건축가들의 건축물들이 앞다투어 건립되고 있다. 근자에 건립된 미술관들 역시 이러한 추세에 부응하여 도시재생과 관광산업을 통한 도시경제 활성화를 꾀하는 대형 프로젝트들이 대세이다. 빌바오 구겐하임(Bilbao Guggenheim), 테이트 모던(Tate Modern), 발틱현대미술센터(BALTIC Centre for Contemporary Art ) 등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미술관들은 대부분 문화 주도적 도시재생의 선도적 프로젝트(flagship project)의 대표적 사례들이며 창조경제의 중요한 모델들이다.
정부의 창조경제 전략은 대부분 과학과 기술, 디지털 기반의 문화콘텐츠산업에 치중되어 있지만, 기실 미술관이나 공연장의 건립과 운영은 가장 중요한 창조산업 중 하나이다. 〈모나리자〉 한 점의 가치나 뉴욕, 런던의 뮤지컬 시장의 문화산업적 가치를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80년대 영국의 대처정부가 IMF 체제를 타개하기 위한 수단으로 미술관이나 공연장을 ‘굴뚝 없는 산업’으로 발전시킨 정책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유명 미술관들은 저마다 우수기획전을 개발하여 소장품의 가치를 재생산한다. 좀 더 적극적으로는 구겐하임미술관이나 루브르의 예에서 보듯 해외 브랜치를 만들어 다국적 기업의 경영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떠한가? 국내 뮤지엄은 각각 박물관이 809개, 미술관이 202개로 총 1,011개 관에 이르고 있다(문화체육관광부 통계, 2015.1.1 현재). 하지만 1,000개가 넘는 뮤지엄들 가운데 위에서 언급한 창조경제적 맥락의 사고와 경쟁력을 가진 뮤지엄은 얼마나 될까? 숫자는 많지만 국립중앙박물관이나 국립현대미술관, 리움미술관 정도가 그나마 경쟁력을 갖춘 정도로 뮤지엄과 본격적인 창조경제를 운위하기에는 갈 길이 멀다. IT와 기술을 접목한 창조경제 역시 기초학문과 연구개발에 많은 재원을 선 투자해야 하듯 뮤지엄의 창조경제 역시 기초를 튼튼히 할 수 있는 기본투자가 선행되어야 한다. 뮤지엄 기초영역에의 투자는 우선 소장품의 양과 질, 그리고 뮤지엄의 전문성을 통한 경쟁력이 기초가 되어야한다. 루브르의 경쟁력은 단연 〈모나리자〉이다. 이 명작을 보기 위해 전 세계의 관광객이 파리로 몰려든다. 한국의 뮤지엄들엔 어떤 명작이 있을까? 박물관은 몰라도 미술관의 경우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중국 관광객들이 몰려오고 있다지만 그들에게 보여줄 작품들이 무엇이 있을까?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의 경우, 프랑크 게리의 티타늄 건물 자체만을 보기 위한 관광객의 숫자가 전체 관광객의 60% 이상에 달한다고 한다. 우리의 뮤지엄은 어떤가? 건축적 가치를 가지고 건축 자체만으로 관객 유발 효과를 거둘 수 있을까?

뮤지엄의 전문성은 창조경제의 또 다른 핵심이다. 전문성은 전문인력들의 연구능력과 경영능력을 통해 소장품의 가치를 높이고 마케팅 효과를 높이는 능력이다. 전문적 담론 생산을 통해 소장품의 가치를 높이는 일은 큐레이터들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다. 능력 있는 관장과 큐레이터들이 작품을 새롭게 해석하여 작품의 가치를 높인다. 〈모나리자〉를 루브르의 대표상품으로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평론가나 큐레이터들이 참여했는가? MoMA의 초대 관장인 알프레드 바(Barr Alfred Jr.)는 현대미술사가 이해하는 추상미술의 계보를 탐구하고 정의한 인물로, MoMA를 세계제일의 위상으로 자리매김하게 한 장본인이다.

이러한 바탕 위에 전문 경영방식이 도입되어 뮤지엄의 창조경제적 위상을 공고히 하고 있는 것이다. 구겐하임의 토마스 크랜스 관장의 경우, 뮤지엄에 다국적기업의 운영방식을 도입하여 세계 도처에 브랜치를 신설하고 미술관 내에서 BMW 모터사이클이나 아르마니와 같은 패션상품을 전시하는 등 새로운 뮤지엄 운영의 모델을 제시하였다. 테이트의 니콜라스 세로타 관장의 경우, 화력 발전소를 개조하여 현대 미술관을 조성하고 레스토랑과 아트숍 등 기업형 자회사를 통해 경영을 극대화하고 있다. 하나의 거대한 기업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기본적인 운영방식의 하나이다. 뮤지엄을 새로운 시각문화의 가치를 생산하는 하나의 ‘팩토리’로 이해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도 서구 뮤지엄들의 경영전략 사례를 속속 벤치마킹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법인화도 이런 맥락의 시도이지만, 몇 년째 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에 따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경우, 큐레이터들은 모두 1년 계약직의 신분으로 연구나 기획에 안정적으로 매진할 수 없는 상황이며, 8개월 이상 관장도 없이 운영되고 있다. 창조경제의 주체로서 한 기업이 경영주 없이 1년 가까이 운영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정황을 그리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정부의 처사는 다소 실망스럽기까지 하다. 하나뿐인 국립미술관의 정황이 이럴진대 공립이나 사립뮤지엄의 경우는 어떠하겠는가? 지자체가 운영하는 공립뮤지엄의 경우, 소장품 예산을 확보하지 못하거나 구입비 5억 미만의 예산으로 운영되는 곳이 허다하다. 학예직의 확보도 심각하게 미흡한 수준이다. 공립 관장들의 경우 몇몇 군데를 제외하면 대부분 전문성과 경영능력을 갖추지 못했지만 지자체장의 선거캠프에서 활동하던 미술인들이 계약직 신분으로 임명되어 단기간 시간을 보내다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립의 경우는 심각한 운영난으로 더더욱 열악한 실정이다.   
현재의 이러한 정황의 근본적 원인은 국가의 미술관 정책역량의 미흡으로부터 기인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뮤지엄 정책의 근간을 재설정함과 아울러 문화산업적 가치에 대한 인식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 뮤지엄에 대한 우리의 문화정책은 아직까지 미술관을 문화산업적 차원의 이해에 미치지 못하고 있으며 부족한 문화시설의 건립수준에 머물고 있다. 아직도 시민들의 문화향유 기회를 높이는 문화공간 또는 시각예술 분야의 평생교육기관 수준에 머물러 있다. 법제의 경우도 「박물관·미술관진흥법」의 적용을 받고 있지만, 박물관과 미술관의 정책이 뮤지엄이라는 통합적 체계 하에서 구현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 박물관의 경우, 문화체육관광부의 박물관정책과라는 전담부서가 있지만 미술관정책은 전담부서 없이 시각·디자인과 업무 중 하나로 관리 운영되고 있다. 시각·디자인과의 주된 업무는 국립현대미술관 운영 관리인데, 이 영역 속에 미술관정책 영역이 포괄적으로 포함되어 있다. 박물관·미술관의 법적 체계와 정책 체계가 정합성을 가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과거 도서관박물관과를 두어 관련 정책을 전담했듯이 박물관과에서 미술관의 정책을 전담하든지 아니면 미술관정책과를 신설하여 뮤지엄의 창조경제적 가치를 제대로 구현해 낼 수 있는 고차원의 정책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의 파행적 운영은 우리의 뮤지엄 정책의 현재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창조경제를 위해 정부는 각시도마다 창조경제혁신센터를 건립하고 IT와 기술을 접목한 클러스터 조성과 벤처기업들의 육성에 몰두하고 있다. 그러나 새롭게 조성되고 있는 클러스터들의 경우 대체로 문화예술적 요소가 빠져있다. 창조경제는 창의성을 기반으로 한다. 문화와 예술이 빠져있는 창의성을 상상할 수 있는가? 지식정보나 문화예술 분야의 우수한 인재들을 창조계층(creative class)이라 한다. 창조계층이 자연스럽게 모여들고 그들이 서로 사고를 교류하며, 그들의 상상력을 무한히 발휘토록 용인함으로써 새로운 융합적 사유의 결과물이 산업적 소산으로 생산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창조경제의 기본이나, 실제로는 이질적 사고를 융합시킬 수 있는 문화와 예술이 빠져있는 것이다. 지난번 판교 대형참사의 사례는 이를 웅변한다. 창조산업벨리들은 밤이 되면 암흑도시로 변한다. 창조계층들이 상주할 수 있는 문화적 요소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단지를 조성하고 벤처기업에 지원금을 지원하면 창조경제가 일어나지 않는다. 단지는 목표와 다르게 어느새 대기업들의 부동산 투기의 장으로 전락하고 말 수도 있기 때문이다

뮤지엄의 창조경제적 가치와 의미를 살려내기 위해서는 기업 경영기법의 도입과 경영마인드를 갖추는 일이 중요하다. 뮤지엄의 수장으로 경영마인드를 갖춘 인물을 필요로 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이다. 하지만 경영마인드보다 선결되어야 할 것은 뮤지엄 본래의 기능에 충실할 수 있는 여건을 먼저 갖추는 일이 급선무이다. 대규모의 뮤지엄 건물을 짓는 것이 전부가 아니며 이를 관리 운영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와 휴먼웨어를 갖추는 일이 더 중요하다. 뮤지엄 마다 수준 높은 소장품을 소장할 수 있는 재원확충이 필요하고, 작품소장을 도울 수 있는 기업의 기부문화나 세제혜택 등 법적 제도적 차원의 정책개발이 필요하다. 또한 소장품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연구와 담론생산을 위한 전문인력의 확충과 이들의 안정적 근무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전문인력들로 하여금 박물관이 소장한 우수한 유물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거나 우리 미술사의 중요한 작품들을 세계미술사의 가치로 재해석해 내도록 함으로써 시각예술 분야의 새로운 한류상품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수한 경영마인드와 창의력을 갖춘 인재들이 이 영역에 모여들 수 있는 문화산업적 환경을 조성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산적한 과제들을 위해 정책전담 부서의 신설을 시급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뮤지엄의 문화산업적 전략수립을 위해 전문가들로 구성된 국가뮤지엄위원회와 같은 기구의 신설도 필요하다. 가까운 장래에 빌바오 구겐하임이나 테이트모던과 같은 국제경쟁력을 가진 한국적 뮤지엄의 탄생을 고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