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올해 시범공연으로 소극장 11개 단체, 대극장 8개 단체의 작품이 7월 3일부터 8일까지 강동아트센터 소극장과 대극장에서 선보였다. 극장에서 진행되었기 때문에 조명과 소품 그리고 무대 장치를 활용할 수 있어 완성도 있는 공연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예년과 차별화 되었으며, 무엇보다도 현재 무용계의 창작 흐름을 점검할 수 있는 창구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였다.

l 현시대 사회현상에 대한 조명

작품 주제는 현재 사회현상을 화두로 꺼내어 풀어낸 작품들이 주를 이뤘다. 사회현상에 대한 같은 소재라도 긍정적으로 해석되는 작품이 있는 반면 의문을 제기하며 물음표를 던지게 하는 작품도 접할 수 있었는데, 이는 같은 소재라도 작품을 해석하는 안무가의 특징이 더해져 다양하게 표현된 결과라고 본다.

사회현상 중에서도 특히 디지털 기기와 개인 소셜네트워크(SNS)를 소재로 한 작품이 다수 공연되었다. 황환희 안무가의 〈Gefallt mir〉는 관객과 소통하기 위한 방법으로 SNS를 무대로 가져와 공연 중에 관객들이 자유롭게 공연 사진과 영상을 촬영하고 개인 SNS에 공유할 수 있도록 허락함으로써 관객이 수동적 작품 감상자가 아닌 작품을 이끄는 주요한 역할을 하도록 하여 SNS에 대한 중립적 시각을 가지고 해석하였다.
장선희 안무가의 〈What a Wonderful Smart World〉는 디지털 문명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동시에 바라보는 시각으로 작품을 접근하여 디지로그(디지털+아날로그)의 유토피아를 상상할 수 있도록 유도하였으며, 이와는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 이나현 안무가의 〈감각의 유희〉는 디지털 문명의 소통 부재라는 사회적 문제를 다루기 위해 역으로 돌아가 아날로그적, 더 나아가 원시적 소통이라 할 수 있는 온몸의 원초적 감각을 깨우며 소통하는 몸의 대화를 그려내도록 무용의 근원인 몸의 움직임과 감각에 초점을 맞춘 무대를 만들어냈다. 한편, 몸의 움직임에 초점을 맞춘 비슷한 갈래로 노경애 안무가의 〈웅성거리는 메커니즘〉은 기하학의 요소인 축, 기울기, 중심, 좌표, 방향 등을 신체움직임에 적용시켜 새롭고 독특한 움직임을 만들어내 작품화하고자 한 것도 볼 수 있었다.

l 무용과 다양한 장르의 네트워킹

최근 무용계에 가장 두드러진 경향인 ‘무용과 타 분야의 융합’이 이번 시범공연에서도 빈번하게 사용되었다. 이를테면 세부장르(발레, 한국무용, 현대무용)의 춤 경계를 넘나들기도 하고, 무용에다가 다른 영역의 움직임을 융해하기도 하였으며 미술, 음악, 연극, 영상 같은 타 예술분야를 융합해 놓기도 하였다.

이러한 경향을 반영한 류은율 안무가의 〈붉은 빛이 바래다〉는 영상과 교류하면서 면밀한 상호작용을 잘 이뤄냈다. 섬세한 움직임들을 강조하기 위해 움직임을 촬영한 영상 속 일상 공간과 극장 무대 공간을 영상의 편집 기능들을 이용하여 시공간적으로 다이내믹한 연출을 하였고, 타악기와 블라인드 소품을 활용한 안무도 적절히 어우러졌다. 노진환 안무가 또한 영상으로 무대를 채우며 영상, 창(구음), 무용의 경계를 허무는 컨버전스 퍼포먼스 형태를 띠는 이색적인 시도를 하였다.
무용과 영상의 융합코드 외에도 다른 영역의 움직임(춤)을 무용과 융합한 작품들도 접할 수 있었다. 이경옥 무용단의 작품 〈심청〉은 인당수에 빠지는 심청의 모습을 그려내기 위해 플라잉댄스를 안무하였는데 이는, 공중에 떠 있는 심청을 통해 공연장에서 실현할 수 없는 공간적 한계를 뛰어넘어 무대를 확장함과 동시에 표현의 범위도 확장하였다. 김희중 안무가의 작품 〈고도에게 뛰다〉 역시 탄성줄을 사용한 버티컬댄스를 안무하여 탄력 있고 힘 있는 다양한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그 외의 융합코드로 김경영 안무가는 대사를 하는 연기자와 무용수의 감성적인 호흡을 끌어내며 무용과 연극의 융합코드를 보여주었고, 온앤오프무용단은 라이브 페인팅의 융합코드를 보여주며 무용과 다양한 장르의 네트워킹은 색다른 움직임으로 재조합되어 시너지 효과를 내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여러 예술분야의 협업 작업 중에서도 특히, 시범공연에 주로 사용되었던 장르는 ‘음악(라이브 뮤지션)’을 꼽을 수 있겠다. 음악이 기존 공연에서는 무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공연의 한 요소로 사용되거나 무대에 모습을 드러내더라도 그 역할에만 충실한 모습이었다면, 이번 시범공연에서 보여줬던 음악과의 협업은 전통무용 공연에서 무용수와 악사 간의 주고받는 호흡처럼 무용수와 상호작용을 하고, 때로는 공연의 행위자가 되어 무대를 이끌기도 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정현진 안무가의 〈FATAL〉에서 그런 움직임을 찾아볼 수 있었는데, 음악이 즉흥적 라이브 디제잉으로 진행되어 DJ가 자연스럽게 작품에 개입하고, 연주하는 모습이 노출되어 작품에 풍성함을 더했고, 김설진 안무가의 〈안녕〉 또한 음악 연주자가 음향 장비와 세트를 구성하여 무대 구성의 일부분으로 자리를 잡고, 무용수와 같이 세트 이동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유머러스한 음악과 행동으로 웃음을 유발하기도 하였다.

l 다양한 오브제와 무대 미술을 활용한 무대 세트

무대 공간의 제약을 다양한 오브제들과 무대 미술을 활용하여 극복하고자한 무대 세트 역시 창작무용의 경향을 반영한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김남진 안무가의 〈에쿠우스〉는 큰 정육면체 박스 모양의 세트를 활용한 작품으로 육면체를 분리하거나 회전하며 여러 상황을 제시하고, 영상도 육면체에 투사되면서 안무자의 의도가 세트를 통해 잘 표현되었다. 소품이나 세트 활용이 두드러진 안무가 박나훈의 〈시저테일 서전트〉 역시 잔디가 깔린 시소 탁자의 무게중심을 이용해 사회의 균형과 불균형의 주제를 다양한 연출로 표현하여 인상적이었으며, 안영준 안무가의 〈한숨〉에서도 헬리캠을 활용하여 객석에서는 볼 수 없는 시선의 각도와 위치로 무용수를 촬영하여 관객들에게 시각적 관점을 새로 제시하고, 투사되는 영상의 스크린은 무용수들에 의해 이동되어 다양한 관점으로 표현되었다. 그 외에도 영산재의 혼을 불러오는 과정을 여러 개의 쇠사슬을 늘어뜨려 무대 효과를 보여준 김선미 무용단과 창문과 기차를 의미한 사각프레임, 기차, 종이새 등의 다양한 오브제를 활용해 작품의 의미를 극대화한 트러스트무용단, 무용 작품에서는 흔히 접할 수 없는 빨간 카펫을 활용한 신현지 안무가의 작품들은 무용 작품에 의미를 담은 오브제와 세트가 주요 구성 요소로 자리 잡아 이를 활용해 안무로 만들어내는 경향을 보였다.
이와는 반대로, 서울발레시어터의 〈RAGE〉는 소품과 세트를 최소화하는 경향을 보였는데, 옆 막을 없애고 무대 공간을 최대한 확장해서 사용하며 소품 대신 무대 장치인 조명 기기를 무용수 머리 높이까지 내려 긴장감을 더했다. 무대의 기본 장치인 막과 조명의 활용, 극적 연출까지 더해진 무대를 보여주어 분위기를 압도하였고, 세트와 오브제 없이도 그에 상응하는 효과를 만들어내었다.

현재 진행 중인 창작무용이 기존 무용의 경계와 고정관념을 부수는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작업을 펼치며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고 있기 때문에 범주화하기 쉽지 않지만, 이번 시범공연을 통해 본 대부분 작품들의 공통된 특징 즉, 창작무용의 흐름이라 할 수 있는 요소를 세 가지로 분류하자면 첫째, 현재 사회현상에 대한 주제와 소재, 둘째, 무용과 타 장르의 융합, 셋째, 다양한 오브제와 무대 세트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이는 국내 예술가들이 작품의 표현 방법을 무용에 국한하지 않고 여러 장르의 방법과 연출을 통해 전달하려고 하며, 사회현상을 주제로 한 작품으로의 접근이 곳곳에 영향을 끼친다고 말할 수 있겠다.

지금도 끊임없이 새로운 창조력과 상상력을 분출하고 있는 모든 예술가들에게 응원을 보내며, 시범공연을 통해 최종 선정된 10개 단체가 12월 공연에서는 또 어떤 새로운 반향을 일으키며 관객들에게 다가갈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