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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정책 이슈

문화예술의 공적가치와 공적지원의 새 패러다임

정홍익 (한국문화정책학회장,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문예진흥기금이 고갈될 상황에 처해 있다. 한때 2조 원에 달했던 적립금이 이대로 가면 금년 말에는 992억 원, 내년에는 87억 원, 내후년에는 적자가 될 전망이다. 물론 상업문화의 범람 속에서 문화예술의 버팀목이 되어 왔던 문예기금이 고사하도록 정부가 방치하지는 않겠지만, 향후 문예기금의 안정적 확보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서 필자는 현시점에서 문예기금의 의의와 관리 방안을 재조명해 보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이를 위해서 고찰할 문제는 기본적으로 세 가지다. ①문화예술은 왜 문예기금과 같은 정부 지원을 받아야 하는가? ②문예기금은 어떤 문화예술을 지원해야 하는가? ③문예기금은 어떻게 문화예술을 지원해야 하는가?

Baumol과 Bowen은 생산성 격차론(productivity gap)을 통해 문화예술에 대한 공적지원의 필요성을 처음으로 객관적으로 입증하려고 하였다. 생산성 격차론의 요지는 기계화나 규모 경제의 이점을 활용할 수 없는 공연예술은 일반 산업과 경쟁할 수 없기에 시장에 방치하면 고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이들 주장은 상당히 객관적 근거가 있을 뿐만 아니라 문학, 미술, 음악 등 비공연예술에도 적용되는 면이 인정되고 있다. 그러나 생산성 격차만으로는 정부가 공연예술이나 문화예술 일반에 대해서 문예기금 같은 공적자금으로 지원을 해야 한다는 당위성은 없다. 만약에 그렇다면 경쟁력이 없는 모든 산업이나 장사를 정부는 지원해야 할 것이다.

보다 명확한 근거는 일차적으로 문화예술이 가지고 있는 공적가치나 혜택(public value or benefits)에서 찾을 수 있다. 공적가치나 혜택은 상품이나 서비스가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외부효과(external effects)에서 발생한다. 교육의 가치나 혜택을 통해서 설명하자. 학생이 교육을 통해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고 원하는 직장에 취업하면 그것은 본인에게 돌아가는 사적 혜택이다. 더불어 의도하지 않았던 혜택도 추가로 발생한다(external effects). 교육을 통해서 학생이 모범시민으로 성장하고 사회가 필요로 하는 생산적인 일꾼이 되면,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 결과로 사회 전체가 혜택을 입게 되는 공적가치가 발생한다.   
문화예술도 교육처럼 공적가치가 있을까? 있다면 어떤 가치가 어느 정도 있을까? 학계에서 아직도 논란이 있는 의문이다. 그러나 근자에 올수록 대세는 공적가치가 있고, 그 가치가 커지고 있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장기적 경기 침체 때문에 재정 감소를 겪고 있는 유럽에서는 1990년대부터 문화예술의 공적가치를 확인하는 여러 연구들이 발표되고 있고,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다양한 공적 가치를 확인할 수 있는 문화예술 프로그램들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이중 정책적 측면에서 가장 주목받는 문화예술의 공적효과는 역시 경제적 효과다. 문화산업의 등장으로 종래에는 부가적으로만 평가되었던 문화예술의 경제적 가치가 산업성장의 핵심 동력으로 인정받기에 이르고 있다. 문화산업은 세계 경제의 장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지난 10년 동안 연평균 5.6%라는 놀라운 속도로 성장하여 그 규모가 1조 9천 불(2013년)에 달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문화산업은 이보다 높은 연평균 8.2%의 고속성장(2008-2012)을 통해 세계 7위(세계 시장 2.8% 점유)이며, 수출은 연평균 18.5% 증가라는 초고속 성장을 하여 46억 불에 달하고 있다. 문화산업은 특히 노동집약적 산업으로 다른 산업보다 2배 이상 고용 효과가 높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나아가 문화예술은 미래 산업을 선도할 창조경제의 핵심 동력인 창의력의 원천으로 인정되고 있다. 문화예술 특히 예술은 인간만이 가진 상징적 능력(symbolic capacity)과 상상력(imagination)에 기반을 둔 창조성이 핵심인 활동으로, 문화예술의 육성과 보급은 창조력 증진의 효과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문화예술을 이용한 도시개발과 재개발은 유럽과 미국 등에서 이미 1980년대부터 시작하여 지금은 세계 각국에서 추진하고 있는 정책이다. 동독 제일의 부유 도시였던 라이프치히(Leipzig)는 통독 후 공업기반이 급격히 쇠퇴하여 1990년부터 1993년까지 3년 동안 2백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인구가 71만 명에서 53만 명으로 감속하였다. 이에 시정부는 퇴락한 공업지대를 예술문화복합단지로 재단장하여 낡은 도심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기로 결정하고 한때 유럽 최대였던 면직 공장(Spinnerei) 터를 2001년에 구입하여 문화복합단지인 할레 14(Halle 14)로 꾸며 예술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각종 문화상품을 개발, 전시, 판매하는 성공적인 문화공간을 조성하였다. 또한 도심 주거지 및 상업지구의 낡은 건물들을 보수하여 매력 있는 도시로 꾸미고, 고(古)건축물 및 도심 건축물에 대한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지정하는 한편 공동화된 주택이나 공장을 아틀리에, 로프트 주택, 갤러리 등의 새 문화공간으로 만들어 이를 관광 상품화하였다. 이러한 결과 2011년 라이프치히는 뉴욕타임스에 의해서 세계에서 가볼 만한 도시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서울 같은 대도시의 문화지구 설정을 비롯해서, 최근에는 특히 전국의 소도시나 도시 내 단위 마을에서 문화예술을 활용하여 도시재활에 많은 성과를 보고 있다. 부산의 감천마을, 통영의 동피랑 마을, 인천의 우각로 문화마을 등은 손꼽는 성공사례들이다.

문화예술의 공적가치는 사회적, 정신적 가치로도 나타나고 있다. 그중 하나는 교육 효과 특히 청소년에 대한 교육 효과다. 예술교육은 학습능력 향상과 같은 지적 면에서부터 정서적 안정과 사회적응력의 향상에 모두 효과가 있다는 연구들이 국내외에서 속속 발표되고 있다. 그 좋은 예가 2012년부터 전국 16개 지역에서 시행되고 있는 토요문화학교의 성과다. 미술, 음악, 무용뿐만 아니라 영상, 만화,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문화교육에 참가한 초등학교 고학년을 대상으로 프로그램 참가 전후를 비교한 결과 창의성과 같은 개인적 능력, 가족관계, 학교 적응력과 같은 사회적 능력 모두 향상된 것으로 파악되었다.

또한 요즈음은 다수의 대형병원에서 예술치유실을 운영하고 있을 정도로 빠른 회복, 질병 예방, 재발 방지의 수단으로 연극, 음악(music therapy), 회화, 독서(bibliotherapy) 등이 활용되고 있다. Elderkin 등은 소설을 중심으로 시행한 독서치료의 효능을 분석하고 월요병, 우울증, 조울증에 뚜렷한 효과가 있다고 평가하였다. 국내에서는 박정숙 등이 우울증을 겪고 있는 중년을 대상으로 경상남도에서 주 2회씩 총 20회 음악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한 결과 우울증을 앓고 있는 중년 여성들의 증상이 완화되었고, 자아존중감이 증가되었음을 확인하였고,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노인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한 노인들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실험 집단에게서 스트레스와 관련이 있는 호르몬 코티졸(Cortisol)이 감소하였다고 보고하였다.

정부지원의 딜레마는 문화예술의 국민적 수요는 날로 늘어가고 정보화, 세계화의 결과로 문화예술이 전통적 기능을 넘어 국가 경쟁력의 핵심적 요소로 등장하고 있으나 이를 지원할 재원은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일차적 과제는 명백하다. 문예기금 같은 공적지원 대상을 축소하고 선별하는 것이 첫째로 할 일이다. 지원대상을 선정하는 기준은, 문화예술에 대한 정부지원의 근거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위해서 논의한 공적가치가 가장 높은 프로그램부터 지원되어야 한다. 대표적인 분야가 공공예술(public art)이다. 정부가 주체인 공공재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문화정책에서 가장 지원을 받지 못한 분야가 공공예술이라는 점은 놀라운 정책 실패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공공예술의 지원은 그저 건축물 미술작품제도 정도로 그칠 과제가 아니다. 공적 가치와 함께 이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공공재(public good), 가치재(merit good)도 지원대상 선정의 기준에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기준에서 볼 때 도시 세계화, 경제와 고용, 공동체 강화, 청소년 교육, 건강, 창조성 진작, 창조도시 건설 효과가 큰 프로그램 등이 우선 지원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공적지원을 제공하고 나면 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것도 앞으로 문예기금 운영에서 유의해야 할 일이다. 이는 국민의 세금관리에 대한 책임(public accountability)을 수행하는 일이다. 지원 프로그램의 성과관리는 공적 혜택을 최대로 창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한 사업평가 모형은 종래의 고정 객관적 모형(Fixed Objective Model) 대신 역동적 상호작용 모형 (Dynamic Interactive Model)을 적용해야 할 것이다. 아직 국내에 공적혜택 확대를 위한 연구가 없고 역동적 상호작용 모형을 적용한 평가사례도 없기 때문에, 지원대상 프로그램의 공적혜택을 확대하기 위한 체계적인 연구가 먼저 시행되어야 한다. 이런 기초연구가 마련되면, 이를 토대로 공적혜택을 확대할 수 있는 새로운 평가관리 모형을 개발하고 적용해야 할 것이다.



정홍익

미국 미네소타대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로 30년간 재직하였다. 현재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제3대 이사장 및 한국문화정책학회 초대회장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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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5.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