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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사람

연극 인생 60년, 산울림과 〈고도를 기다리며〉
임영웅 연출가 인터뷰

서지영 (공연평론가, 드라마투르그)
  • 예술자료원 고도를 기다리며 아카이브 展을 둘러보고 있는 임영웅 연출가
    예술자료원 고도를 기다리며 아카이브 展을 둘러보고 있는 임영웅 연출가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이하 〈고도〉)를 이야기하자면 작가의 이름보다 ‘산울림’과 연출가 임영웅의 이름을 먼저 떠올릴지 모른다. 〈고도〉를 본토인 아일랜드에서보다 더 유명하게 만든 산울림의 〈고도〉가 지난해 12월 17일, 초연 45주년을 맞았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자료원은 임영웅 선생의 소장 자료와 자료원 기록물을 정리하여 〈고도〉의 공연사와 선생의 연극 인생 60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아카이브 전시실을 마련했다. 필자는 2009년 예술자료원(당시 아르코예술정보관)의 구술채록사업 연구원으로 선생의 생애사 채록을 수행한 적이 있어서 이번 전시회를 보는 감회가 남다르다. 이번 행사에 대한 소회를 나누고자 5년 만에 임영웅 선생과 마주 앉았다.

Q. 전시를 보신 소감부터 여쭙겠습니다.

감사하죠. 내 전시회는 처음이에요. 우리나라가 연극뿐 아니라 다른 분야도 기록이 취약한데, 내가 소장한 자료들이 많긴 하지만 그래도 자료원에서 이렇게 관련 자료들을 모아서 정리해 주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죠. 과거 내가 방송 출연했던 영상도 준비해서 보여주는데 옛날에 출연한 것을 다시 보는 게, 내 것이지만 감회가 깊었어요(웃음). 45년 동안 한 작품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에요. 아비뇽도 갔었고, 베케트 고향도 두 번이나 갔었어요. 두 번째 갔을 때는 더블린 대학에 새로 생긴 베케트 극장에서 공연했어요. 외국 극단으로서는 처음이래요. 어떤 의미에서는 아일랜드보다 한국에서 〈고도〉가 더 유명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Q.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1969년 초연 당시의 의상을 볼 수 있었어요. 45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산울림의 〈고도〉는 얼마나 변했을까요?

초연 기억이 아주 생생해요. 그런데 나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작품 해석이나 작품을 보는 눈이 그때나 지금이나 같아요. 아마 변한 게 있다면 보는 사람들의 감각이 달라졌을 거예요. 지금은 낯설지 않은 연극 형식이지만 당시에는 신기하고 황당한 연극이었죠. 그런데 노벨문학상을 받는 바람에, 뭔지 몰라도 좋을 것으로 생각하고 다들 본 거죠. 그러나 45년이 지난 지금은 관객들이 〈고도〉에 익숙해지지 않았을까요. 〈고도〉 공연은 한국 관객에게 현대연극이라는 것을 알게 해준 계기가 된 거죠.

Q. 연출을 할 때마다 달라지는 부분은 있을 텐데요?

나는 〈고도〉를 연출할 때마다 새로운 작품인 것 같아요. 재공연이라는 생각이 안 들고, 생각 못 했던 것들을 매번 발견하고 새로운 걸 깨닫게 돼요. 연출의 기본이 원작에 충실 하자이기 때문에 연극이 달라지는 것은 없어요. 단순한 재공연이 아니라 매번 새롭게 발견하는 재공연이 되는 거죠. 다음 공연 때 배우들에게 내가 느낀 것을 설명합니다. 공연의 외연은 변하지 않지만, 배우들이 새롭게 이해하며 공연을 하는 거죠.

Q. 고도의 인물들을 다소 희극적으로 그리셨는데요.

그 사람들 좀 이상하지만 사랑스럽죠. 철없어 보이는데, 역으로 생각하면 인생의 달인이라고 할까? 여러 가지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서운한 것도 아쉬운 것도 없는 그런 인물들이 아니겠는가 생각해요.
 
Q. 45년 동안 매년 올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데 〈고도〉와 관련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그게 뭐든 그때는 물론 심각했겠죠. 그런데 난 그런 건 별로 기억에 담아두지 않아요. 막은 올랐으니까. 막이 올랐으면 된 거죠.

Q. 이번에 〈고도〉를 특별 공연으로 기획하신다고 들었습니다.

2월 중순쯤 시작해서 두 달 간 공연할 계획입니다. 얼마 전 그동안 출연한 배우들 18명이 한자리에 모였어요. 모두 출연하는 것은 아니고 두 팀이 구성되었어요. 지방 공연 가능성도 있고요. 그리고 〈고도〉는 매년 할 수밖에 없어요. 〈고도〉라는 작품이 연극영화과의 필수 과목이고. 강의를 듣기 위해서는 이것을 꼭 관극해야 해서 관객과의 대화도 진행합니다.

Q. 연극은 인간을 그리는 예술이라고 늘 말씀하셨듯이 〈고도〉 외에도 선생님의 공연들을 보면 인간의 마음을 따뜻하게 표현하는 연극들이 많습니다. 가족 이야기, 여성의 이야기 등 특히 여성의 이야기를 자주 다루시는데, 얼마 전에 〈가을소나타〉도 그렇고요.  

남자의 삶은 재미가 없어요, 단순해. 여성의 삶은 다양하거든요. 여성으로서 어머니로서 자식으로서, 특히 어머니, 모성의 위대함, 어머니의 얘기는 여러 가지가 있죠. 남자가 주인공인 작품은 출세하고 권력 잡는 것밖에 없잖아요. 연극에서 평범한 삶의 애환을 다루려고 할 때, 평범한 남자를 다루는 연극이 재밌겠어요?(웃음)

Q. 다시 태어나도 연극을 할 것이라고 항상 말씀하셨는데, 연극 인생 60년 동안 힘든 일도 후회되는 일도 많으셨겠죠?  

후회한들 소용없으니 후회는 하지 않아요. 굶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평생 했다는 것은 행운이죠. 주위에서 뭐라고 하거나 말거나 80평생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 왔다는 것은 정말 잘한 일이에요. 그런데 무엇보다도 주변에 방해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주변에 좋은 선배, 동료, 후배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죠. 신문사랑 방송국에 근무하면서 연극을 했는데, 선배들이 묵인해 주고 후배들도 도와주고, 그래서 직장에 다니면서도 연극을 할 수 있었죠.

Q. 그렇게 좋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사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난 내 맘에 안 드는 사람하고는 차 한 잔도 마시지 않아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 만나죠. 내가 좋아하면 상대방도 나를 좋아하더라고요.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오래도록 만나는 거예요. 그러나 노력은 필요하죠. 방송국에 근무할 때 내가 연극을 하러 가면 뒷말도 있었겠죠. 하지만 내가 만들어야 하는 프로그램을 확실하게 만드니까, 평균이상으로 만들어 내니까 나에게 나쁜 말 못하죠. 오히려 격려해줬어요. 내가 돈 벌러 가는 것도 아니고 연극이 좋아서, 어렵고 힘든 연극을 계속하겠다는 것인데, 그것도 내 책임을 다하면서 하는 일인데 누가 나무라겠어요. 내가 미처 못 한 것에 대해서는 이를 악물고 회복시켜 놓는 것이 인간관계 유지의 비결이라면 비결이겠죠. 그러나 결국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운명입니다. 인간관계가 잘 되지 않았을 때, 난 내가 잘못 선택했으니 내 잘못이라고 해요.

Q. 지금 이 시대에 연극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큰 기대는 하지 않아요. 그럼에도 좋은 연극은 관객의 인생을 좋은 방향으로 이끄는 건 분명하죠. 그런 것이 조금씩 쌓여 갈 것을 기대해요. 좋은 연극을 많이 만드는 나라가 사람답게 사는 사회가 아닌가요.

Q. 연극인의 삶이 너무 힘들어요. 지원금이 넉넉한 것도 아니고요.

연극 자체를 선택한 것이 문제죠. 연극을 안 하면 삶의 보람이 없으니까 힘들어도 배고파도 해야 하는 게 연극입니다. “연극을 하려면 목숨을 걸고 해라, 겉멋으로 해서는 안 된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그래도 될까 말까 한 게 연극이다.” 난 그렇게 말합니다. 예술가는 노동자가 아닙니다. 노동은 정해진 시간만 하지만 예술은 시도 때도 없이 해야죠. 아무리 힘들어도 연극할 사람은 합니다. 배고파도 연극을 해야 살아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그런 사람만 살아남아요. 연극을 해서 어렵다고? 누가 하랬어? 다만 바라건대 사회에서 연극을 대접하는 풍토가 생겼으면 하는 거죠. 난 극장이 있었지만 극장 없는 사람들은 대관료가 비싸서 너무 힘들죠.

Q. 자녀들이 연극을 하는 아버지를 이해 못 해주는 것이 서운했던 시절도 있으셨잖아요? 그런데 어느덧 그들이 든든하게 선생님의 뒤를 잇고 있습니다. 지금 따님(임수진 산울림 극장장)이 극장 업무를 맡고 있고 아드님(임수현 교수)은 기획, 가끔 연출도 하는데요.

우리 딸이 미술 전공이라 원래 무대 작업을 도와주길 원했으나 예전에는 도와주지 않았어요. 그런데 미국에서 살 때 한국 사람들이 신촌의 산울림을 모르는 사람이 없더래요. 그래서 아버지가 맹탕은 아니구나(웃음). 이젠 든든하죠. 그런데 나중에 내가 없는 산울림이 과연 지금처럼 유지될까? 우리 아이들이 잘할 수 있을지…. 아마 어려울 겁니다.

Q. 앞으로 산울림극장과 극단은 어떤 방향으로 갈까요?

좋은 연극을 올리는 것이 목표니까 지금 올리는 고전 작품들 계속할 것이고, 산울림이 있는 한 〈고도〉는 해마다 올라가는 거죠. 그러나 극장은 돌아간다고 해도 연출을 할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연극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학구적인 분위기가 없어요. 연극연구소 같은 것을 만들 생각도 해 봤는데, 여건이 힘들어요. 이젠 각자 알아서 공부해야지요.

Q.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세요?

게을러서 운동은 잘 안하고, 이제 술은 거의 안 마셔요. 2시는 되어야 잠자리에 들죠.

Q. 앞으로 다른 방향의 연출도 생각하시는지요? 요즘 새로운 연극들, 새로운 경향의 공연 작업들이 많잖아요.

물론 기회가 주어지면 기꺼이. 내가 그 시절에 〈고도〉를 한 사람이잖아요(웃음). 새롭다는 게 알고 보면 새로운 것이 아닐 수 있어요. 그리고 지금 새롭다는 게 조금 지나면 낡은 것이 되겠고. 그런데 기본을 익히고 새로운 형식을 해야 하는데, 무조건 새로운 연극을 한다고 나서는 게 안타깝죠. 그리고 새로운 것이 나이와는 무관해요. 어떤 정신을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죠.


연출가 임영웅과 고도를 기다리며 아카이브 展a

연출가 임영웅과 고도를 기다리며 아카이브 展

ㅇ 전시 기간 : 2014년 12월 5일(금) ~ 2015년 5월 30일(토)
ㅇ 관람 시간 : 월요일 ~ 토요일 10:00~19:00
ㅇ 전시 장소 : 대학로 예술가의집 2F 예술자료원 內 아카이브 전시실
ㅇ 관람료 : 무료
ㅇ 주최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자료원, 극단 소극장 산울림
ㅇ 협력 : 김용주, 김유나, 박동우
ㅇ 전시 문의 : 예술자료원 담당자 02-524-9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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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5.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