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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통신

[포르투갈] 어반 아티스트, 비힐스(Vhils)

전수현 (포르투 건축대학 석사과정)
  • Vhils의 작업 모습
    Vhils의 작업 모습
  • 리스본 전기 박물관과 빌보드 작업
    리스본 전기 박물관과 빌보드 작업

미국 경제지 포브스(Forbes)는 해마다 ‘30 under 30’라는 이름으로 세계를 움직이는 젊은 리더를 선정하여 발표해왔다. 경제만이 아니라 스포츠, 과학, 음악 등 20개 분야를 망라하여 각 분야별로 앞으로의 행보를 주목할 만한 서른 살 이하의 신진 기대주들 30명을 선정하여 리스트에 올리는 것이다.
올해 발표된 ‘30 under 30, 2015’에서는 비힐스(Vhils)라는 예명으로 더 알려진 포르투갈 예술가 알레샨드르 파르투(Alexandre Farto, 1987~)의 이름을 ‘예술과 스타일(Art & Style)’ 분야에서 찾아볼 수 있다.

더러는 작년 연말 아일랜드 록그룹 U2의 13번째 앨범 ‘천진함의 노래(Songs Of Innocence)’가 발표되었을 때 관련 기사를 통해 Vhils의 이름을 들어봤을 수도 있다. 앨범 제목과 짝을 이룬 ‘Films Of Innocence’라는 제목으로 영상 작업들이 함께 발표되었는데, 여기에는 Robin Rhode, Mode 2와 같은 세계적인 스트리트 아티스트 11명이 참여하고 있다. 지나치게 거창하다는 비평을 듣기도 했으나 기획의도에서 밝힌 대로 ‘어반 아트의 고유한 민주적인 힘(unique democratic power of urban art)’을 새로운 방식으로 만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임은 분명하다. Vhils의 작업은 ‘Raised by Wolves’ 곡에서 만날 수 있다.

l 도시와 작업

도시에 대한 Vhils의 관심은 십대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리스본의 몇몇 장소는 지금도 그의 작업에 영감을 주는 각별한 뮤즈와 같은 각별한 장소로 남아있다고 한다.
리스본에서 태어나 자란 그는 어린 호기심으로 그 구석구석을 탐험하는 시간이 많았다고 한다. 그 탐험에서 다른 거리 예술가들이 남긴 흔적들을 만나면서 그도 점차 벽에 그림을 그리고 글자를 남기는 것에 익숙해지고 이것이 도시 예술가의 길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그가 종종 언급한 떼주(Tejo) 강의 남쪽 강변은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건축물이 밀도 있게 들어찬 구도심과는 달리 근대기에 만들어진 산업시설들로 인해 조금 황량한 모습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상상력이 발동하기에 좋아서 건축가나 예술가들에 의해 지금도 여러 작업들이 시도되고 있는데, 특히 기찻길을 따라 길게 이어진 담벼락은 그래피티(graffiti) 예술가들에게 최적의 장소가 되고 있다.

도시에 대한 그의 관심은 그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확장을 거듭하는데, 단순히 커다란 캔버스를 대체하는, 그림을 그릴 곳으로의 벽을 찾아다닌 것은 아니라는 지점이 흥미롭다.
이를테면 Vhils가 몇 년 전부터 시작한 작업 방식으로 거리의 포스터를 이용한 작업이 있다. 여느 서유럽 문화권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포르투갈에서도 공연 포스터들은 B0크기(1000x1414mm)가 넘는 전지 크기로 출력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포스터가 부착되는 장소는 시청의 주관으로 지정, 허가, 관리가 이루어진다. 그곳을 지나다니다 보면 그간의 포스터들이 겹쳐 붙어있고, 어느 시기가 지나 그 포스터들이 딱딱하고 두꺼운 껍질처럼 될 즈음에 제거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 과정을 흥미롭게 주목해온 Vhils는 이런 겹겹의 포스터들을 부분부분 뜯어내어 아래에 드러난 다른 포스터와 그 켜켜가 이미지를 형상하도록 하는 작업을 선보였다. 기존의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이용해서 스프레이 페인트와 스텐실로 그림을 그리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도시의 이미지를 더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작업은 기존 그래피티의 종이붙이기 기법(wheatpasting)이 더해져서, 즉 기존의 것을 덜어내기만 한 것이 아니라 필요하다면 자유롭게 덧붙이기를 하여 빌보드(billboard) 작업 연작을 만들었다.  

또 다른 초기 작업으로는 그래피티 작업의 시간성에 주목하는 영상 작업도 있다. 하나의 그림이 벽에 그려진 후 그 위에 다른 작업이 더해질 때 앞선 그림은 다시 배경이 되면서 변형이 가해진다. 그런데 새로 그려지는 그림도 아무것도 없는 흰 배경에 그릴 때와는 다른 상황이다. 먼저 그려진 그림을 완전히 밀어버릴 배경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서 그 영향을 받게 되는데 어찌 보면 그 과정은 그림 사이에서 대화를 시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모두의 것이면서 누구의 것도 아닌 그림, 완성되어 고정되지 않는, 끊임없이 달라지는 그래피티의 특성을 영상으로 보여주고 있다.

2010년 리스본 교통부(CARRIS)가 기획했던 전시 ‘까히스, 움직임 속의 예술(CARRIS, Arte em Movimento)’에 Vhils가 내놓은 작업은 또 다른 도시 이야기를 보여주었다. 일곱 개의 언덕 위에 세워진 도시인 리스본은 급경사에서의 이동을 돕기 위해 19세기 후반부터 독특한 대중교통수단을 운행하고 있다. 하나의 도시 엘리베이터와 세 개의 ‘아센소르(Ascensor)’라는 경사 리프트이다. 아센소르는 트램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언덕만 오르내리는 교통수단으로 노란색 아센소르는 트램과 함께 리스본의 도시적 표상이기도 하다. 리스본 대중교통부는 이제는 국가기념물로 지정된 이 네 곳에 네 명의 예술가를 초대하여 전시를 열었다.
Vhils는 그 중 ‘비카의 아센소르(Ascensor da Bica)’를 맡아 그 겉에 거울을 입혔다. 좁고 긴 골목을 오르내리는 이 리프트 표면으로 그 골목 풍광이, 심지어 벽에 그려진 그래피티까지, 상으로 맺혀 움직였다. ‘스펙트럼’이라는 제목 그대로, 그야말로 빛의 띠로 도시를 담은 작업이었다.

사실 Vhils는 런던 예술 대학교(UAL) 칼리지의 하나인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Central Saint Martins College of Art and Design)에서 정규과정을 공부한 아티스트이다. 벌써 50개가 넘는 도시에서 그가 작업을 이어나가며 크고 작은 전시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에는 십대 시설부터 시작한 거리 예술가로의 경험에 본격적인 훈련과정이 더해진 결과라고 볼 수도 있다.


  • 개인전 《절단》의 아트 포스터
    개인전 《절단》의 아트 포스터

l 개인전 《절단(Dissecação/Dissection)》

작년 후반기에 열렸던 Vhils의 개인전 《절단(Dissecação/Dissection)》은 2014년에 리스본 전기 박물관(Museu Da Eletricidade)에서 이루어진 전시 중 가장 많은 방문객을 기록하고 있기도 하다.

리스본 전기 박물관은 포르투갈의 에너지 회사 EDP(Energias de Portugal, 전기와 가스를 담당하는 공사였으나 지금은 민영화되었다.)에서 설립한 문화재단에 속해있다. 이 재단은 과학과 산업, 그 역사만이 아니라 건축과 예술분야까지 널리 지원하고 있는, 포르투갈의 주요 문화재단 중 하나이다. EDP문화재단에서 예술분야는 예술사학자이자 비평가인 주앙 피냐란다(João Pinharanda, 1957~)가 프로그램을 맡고 있는데 피냐란다가 부임한 이후 EDP문화재단은 더욱 활발하게 신인 예술가 발굴에 힘을 쓰면서, 해마다 EDP 신진작가를 선정하고 상을 수여하고 있다.

이 개인전에서도 볼 수 있듯이 Vhils는 근래에 건축물의 외부, 회벽으로 처리된 마감부를 파내어 안에 숨겨진 벽돌을 노출시키면서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하고 있다. 도시의 기존 요소를 응용하는 방식이 좀 더 적극적인 형식으로 나아갔다. 주앙 피냐란다는 이런 구절로 Vhils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Vhils는 도시를 사랑합니다. 그 부지런함과 게으름 모두 포함해서요…. Vhils는 집과 길을 바라보면서 누가 그 도시에 살고 있는지 잊은 적이 없습니다. 그는 집과 담벼락들에 남은 기억 속에서 도시에 살고 있는 삶들을 찾아내어서, 마치 연인들이 정원의 나무에 이름을 남기듯 벽에 새기는 것입니다.”

벽을 파서 이미지가 일단 완성되면 여기에 다시 소량의 폭약을 심고 메꾸었다가 터뜨려서 순간적으로 이미지를 노출시키기는 과정을 더해서 영상작업으로 만들기도 한다. 다시 시간적 요소를 덧붙여 변화의 순간도 표현하는 것인데, 발파 순간 화면을 뿌옇게 흐리는 파편들과 먼지 사이로 차츰 이미지가 드러나는 매우 극적인 영상작업으로 이 전시에서도 큰 호응을 이끌어내었다.


정부나 공공의 권위에 저항하는 반달리즘(vandalism)에서 시작한 도시의 낙서가 예술인가 아닌가의 논쟁은 긴 시간 이어져 왔다. 이와 또 반대로 그래피티가 본래의 의미를 버리고 제도권으로 들어가 쉽게 상업화되는 것에 대한 의문도 여전히 존재한다. 하나의 답은 없다. 그러나 거리 그림을 불법행위로 간주하고, 무관용 정책으로 이를 엄격하게 제한하던 세계 여러 도시들이 최근에는 장소를 지정해주고 관리하는 방식으로 양성화시키는 정책으로 방향을 수정하고 있는 데에는 예술과의 연결 지점이 분명히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면에서만 생각하더라도 도시와 미술관을 넘나드는 어반 아트는 앞으로도 당분간 더 주목받을 영역으로 보인다.

[관련 링크]
Vhils 홈페이지 http://www.alexandrefarto.com/
포브스 ‘30 under 30’ http://www.forbes.com/30under30/#/
U2 ‘Films Of Innocence’ http://www.u2.com/news/title/films-of-innocence-premiere
EDP문화재단 http://www.fundacaoedp.pt/


  • 벽 시리즈
    벽 시리즈
  • 스펙트럼(2010, 까히스, 움직임 속의 예술 전시)
    스펙트럼(2010, 까히스, 움직임 속의 예술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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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5.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