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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정책 이슈

이상한 나라의 뮤즈

김정수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
  • 이상한 나라의 뮤즈


영국의 작가 루이스 캐럴이 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에는 각종 희한한 캐릭터들이 요상한 장소에서 기묘한 일들을 벌이는 환상적인 에피소드가 가득하다. 거기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현실의 일상적인 규칙과 패턴은 무시되기 일쑤다. 그런데 사회과학도로서 문화정책을 연구하는 필자의 눈에는 문화예술의 세계 역시 대단히 ‘이상한 나라’로 보인다. 사회과학도는 사회 현상들에 대한 과학적 탐구를 통해 객관적 인과관계와 법칙을 발견하고 나아가 그러한 과학적 지식을 근거로 합리적인 정책제언을 제시하는 것이 주된 임무라고 배운다. 하지만 문화예술의 세계에는 “이렇게 하면 반드시 저렇게 된다.”는 식의 법칙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명색이 문화정책 전문가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막상 정책 현장에서 분석, 평가, 자문 등을 하다 보면 마치 ‘이상한 나라’에 떨어져 혼란스러워하는 앨리스와 같은 당혹감을 느낄 때가 많다.

l 이상한 문화예술의 나라

문화예술의 세계는 불규칙성과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경이로운 세상이다. 문화와 예술은 기본적으로 사람의 마음에 부딪혀 호소하는 것이며 감정의 공명이 발생할 때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된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변덕스럽기 이를 데 없고 언제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는, 그야말로 요지경 속이다. 남의 마음도 알기 어렵지만 내 마음이라고 늘 정확히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마음이 언제 어떤 이유로 감동을 받게 되는지 예측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루에도 열두 번 바뀌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며, 좋아서 죽을 것 같다가도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시들해지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무언가 일정한 법칙이 존재하고 예측이 가능하려면 반드시 논리성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인간의 감정은 논리적으로 설명될 수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불규칙성과 불확실성은 문화예술의 생산(창작)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새로운 예술작품이 창조되기 위해서는 먼저 오랜 시간 동안 많은 문화예술 작품을 소비(감상)하는 경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런데 도대체 얼마만큼 문화적 경험이 축적되어야 새로운 창작이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일반화된 법칙이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예상효과가 극히 불명확하다는 점에서 문화만큼 ‘모험적’인 것도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훌륭한 예술이 무엇인지 정의 내리기도 쉽지 않지만 어떻게 하면 훌륭한 예술이 탄생되는지에 대한 객관적 법칙이나 규칙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동서양의 예술사를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수학적 공식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의 탁월한 예술적 대가 혹은 역사에 길이 남을 불후의 명작을 탄생시킬 수 있는 특정한 공식 따위는 없다는 것이다. 이는 순수예술뿐만 아니라 대중문화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전 세계적으로 공전의 히트작이었던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어떻게 해서 그런 대성공을 거두게 되었는지 사후적인 분석은 어느 정도 가능하다. 그러나 그 길을 다시 그대로 밟는다고 해서 반드시 그와 똑같은 히트작이 다시 나온다는 보장은 없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이처럼 문화정책이 타깃으로 하는 세계는 논리와 이성이 아닌 감정과 마음이 지배하는, 불규칙성과 불확실성이 가득한 ‘이상한 나라’이다. 여기에는 어떤 정책을 어떤 조건 하에 실시하면 어떤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식의 멋진 인과관계 법칙은 전혀 통용되지 못한다. 문화정책은 기본적으로 기계나 자연이 아닌, 변화무쌍한 사람의 마음을 상대로 하기 때문이다. 문화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정책결정자들은 철저한 분석과 기획을 통해 세상을 통제할 수 있으리라는 기계론적 세계관은 포기하는 것이 좋다. 물론 정부가 문화융성과 창의성 제고를 위해 나름대로 각종 전략을 기획하고 제도를 수립할 수는 있다. 그리고 충분한 예산을 지원해주고 규정대로 잘 집행하면 성공적인 결과가 나올 수 있겠지라는 희망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정말 그렇게 믿는다면 이는 마치 성탄절에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을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한 기대가 아닐 수 없다. 문화정책의 세계에서는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전혀 예기치 못했던 당혹스럽고 희한한 일들이 언제라도 터져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l 벤처 투자로서의 문화정책

문화예술의 세계가 ‘이상한 나라’와 같다면 문화정책의 본질은 ‘벤처 투자’라고 할 수 있다. 문화정책의 씨앗이 언제 어디서 어떤 모양으로 싹을 틔울지 미리 예측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것은 물론 정책담당자의 능력상의 한계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문화예술의 본질적인 특성에 더 기인한다. 문화정책이라는 씨앗을 뿌린 후에는 싹이 트는 것을 그저 기다리며 지켜볼 도리밖에 없는 것이다. 정책 담당자의 책임은 거기까지로 제한된다. 문화예술의 세계와 같이 ‘이상한 나라’에서 정책의 효과에 대해 너무 많은 기대를 하는 것 자체가 어쩌면 이상한 일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문화발전을 위한 정책적 지원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정책의 미래 성과에 대해 지나친 기대를 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아무리 많은 문화예술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근사한 정책을 수립한다고 해도 그것이 장차 어떤 성과를 가져다줄지는 지극히 불확실하다. 기대했던 것을 얻지 못할 수도 있고 반대로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것을 거둘 수도 있다는 것이다.
벤처 투자가 대부분 그러하듯이 무수히 많은 정책시도들이 다 수포로 돌아갈 것까지도 각오해야 한다. 그렇다고 실패를 두려워해서 정책적 지원과 투자를 중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왜냐하면 숱하게 뿌려둔 씨앗 중에서 운 좋게 대박이 한번 터지게 되면 그동안의 그 수많은 헛발질로 인한 손실을 벌충하고도 남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대체 그 대박이 과연 무엇인지를 미리 알아내기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결국 여기저기에 많은 씨앗을 계속 뿌리는 것이 최선의 방책일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문화정책의 세계에서는 어쩌면 정책실패(policy failure)란 있을 수 없다고도 할 수 있다. 모든 문화정책 하나하나는, 그 단기적 효과가 무엇이든, 그 나름대로 다 의미 있는 ‘참 잘했어요(nice try).’로 이해될 수 있다. 비록 특정한 정책 혹은 지원이 어떤 구체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고 해도 그 자체가 문화·예술 세계에서는 나름 소중한 경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들은 예술가 개인 혹은 커뮤니티 속에 다른 방법으로는 얻을 수 없는 문화자본의 축적을 가능케 한다. 그리되면 언젠가 그 속에서 예전에는 감히 꿈도 꾸지 못했던 엄청난 대박이 터져 나올 수 있다. 최근 신한류 붐을 이끌고 있는 K-Pop이 그 생생한 증거이다. 거시적 시각으로 보면 K-Pop의 엄청난 성공은 결코 몇몇 대중음악가들이 잘나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오랜 세월 동안 우리나라 문화예술계가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며 쌓아왔던 각종 문화자본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문화자본의 축적 과정에서 정부의 문화정책이, 의도했든 안했든 혹은 좋든 나쁘든, 많은 영향을 끼쳤음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l 실망할 준비 그리고 놀랄 준비

그렇다면 문화예술이라는 ‘이상한 나라’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필자의 생각으로는 ‘실망할 준비 그리고 놀랄 준비’가 필요하다고 본다.
문화정책이라는 씨앗이 언제 어떻게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이런저런 정책적 시도를 통해 문화자본이 축적되는 것은 같은데 그렇다고 매번 괜찮은 성과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어떤 정책결정자도 결코 전지전능할 수는 없겠지만 문화정책의 세계에서는 그 능력이 더욱더 제약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문화정책에 관한 한 어쩔 수 없는 한계를 인정하고 우리의 기대수준도 낮출 필요가 있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 문화정책을 수립한다 해도 당초 목표로 했던 멋진 결과를 낳기는커녕 오히려 형편없이 망쳐버릴 수도 있음을 각오해야 한다. 아무리 그럴듯해 보이는 정책이라고 해도 늘 실망할 준비를 하고 살자는 것이다.
그런데 미래의 불확실성이란 결코 두려운 것만은 아니다. 미래가 확실하지 않다는 것은 곧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K-Pop으로 상징되는 한류 붐은 과거 그 누구도 기대하지 못했던 가운데 발생한 뜻밖의 성공이었다. 문화예술이라는 ‘이상한 나라’에서는 정부의 투자나 정책지원이 장차 어떠한 성과를 거둘지 아무도 미리 알 수 없다. 하지만 한류와 같이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설계되지 않은 성공’이 얼마든지 가능하기도 하다. 이 때문에 미래를 알 수 없다는 것은 두려운 일인 동시에 가슴 설레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어떤 정책을 시행하든 조급한 마음에 가시적이고 단기적인 성과에 연연하기보다는 여유를 가지고 기다려보는 것이 필요하다.

동화 속 앨리스가 흥미진진한 모험을 겪었던 그 ‘이상한 나라(Wonderland)’는 사실 알고 보면 흥미진진한 모험거리들로 가득한 ‘기막히게 멋진 나라(Wonderful Land)’였다. 문화예술이라는 세계는 과학적 법칙과 수학적 공식이 잘 통하지 않는 Wonderland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합리적 기대를 넘어 깜짝 놀랄 만큼 경이로운 일이 일어날 수 있는 Wonderful Land이다. 이상한 나라의 뮤즈들이 보여 줄 멋진 모험과 활약을 기대해본다.



김정수

고려대 법과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후 미국 Yale University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고려대 공공행정학부에 재직하였으며 현재는 한양대 정책과학대학 행정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문화정책학회 창립이사, 한국정책학회 편집위원장, 문화체육관광부 자체평가위원, 공공기관 경영평가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주요 관심분야는 문화정책과 정책이론이다. 주요 저서로는 〈문화행정론:이론적 기반과 정책적 과제〉(학술원 우수도서 선정), 〈스크린쿼터의 추억:한국영화 의무상영제도 변천사〉 등이 있으며, 주요 논문으로는 ‘스크린쿼터와 딴따라:대중문화에 대한 정부개입과 문화산업경쟁력에 관한 시론’, ‘미녀와 야수:문화행정의 새로운 패러다임 모색’, ‘불확실성, 결정오차, 그리고 제비뽑기의 역설:문예진흥기금 지원심의방식에 대한 역발상’, ‘문화생산의 글로벌화에 따른 새로운 문화정책 패러다임의 모색:우리나라 영화산업의 사례를 중심으로’, ‘(신)한류에서 배우는 문화정책의 교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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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5.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