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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사람

2014년 국제공연예술전문가시리즈 내한 전문가 인터뷰
영국 무대예술가 파멜라 하워드(Pamela Howard)


정지인 (아르코예술인력개발원)
  • 무대예술가 파멜라 하워드
    무대예술가 파멜라 하워드


2014년 11월, 영국 무대예술계의 대모로 불리는 무대예술가 파멜라 하워드(Pamela Howard)가 한국을 찾았다. 그녀는 연극부문공헌 대영제국 훈장(OBE, Officer of the Order of the British Empire)을 수여 받을 만큼 국가적 존경과 사랑을 받는 무대예술가이며 지난 60년간 〈Charlotte〉, 〈The Marriage〉 등 260여 개의 작품을 디자인해왔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인력개발원이 주최하는 ‘2014년도 국제공연예술전문가시리즈’ 두 번째 행사인 〈무대디자인 워크숍 및 초청강연〉을 정리하며 그녀와 무대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Q. 아르코예술인력개발원에서 3일간의 워크숍, 예술가의집에서 2시간의 초청강연을 마무리 지으셨습니다. 기분이 어떠신가요?

저에게 이번이 두 번째 한국 방문입니다. 첫 방문에서 느낀 한국에 대한 인상이 정말 좋았어요. 영국에 있는 동안에도 유능한 한국 학생들을 많이 만났었고요. 이번 한국 방문에도 기대가 많았습니다. 풍경은 어떻게 변했을까, 지금도 한국에는 멋진 학생들이 많을까 하고요. 여전히 한국은 아름답고, 사람들은 친절하고 예의 바르고, 학생들은 열정적이었습니다.

Q. 굉장한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고된 일정이었는데요. 4일 동안 앉아 계신 모습을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이번 내한에서 만난 한국 학생들에게 꼭 가르쳐주고자 했던 게 있었나요?

‘무대미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워크숍 주제처럼, 무대미술에 대한 기본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요즘 시대에는 디자인을 도와주는 수많은 컴퓨터 프로그램, 디지털 장비 등이 있습니다. 그런 최첨단 기술을 익히는 게 디자인을 하는 한 가지 방법이 될 수는 있겠죠. 하지만 그런 기술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워크숍 참가자들이 디자인 기술을 배우기 바랐다면 제 워크숍에서 그런 건 배울 수 없었을 겁니다. 제 드로잉과 작품을 보면 아시겠지만 저는 색칠을 하고,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입니다.

Q. 말씀하신 것처럼 그림을 그리고, 종이를 잘라 모양을 만드는 등 실습 위주로 워크숍이 진행되었는데요. 3일 만에 플롯을 이해하고 파노라마를 제작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되는데요?

제 워크숍에 ‘People in Space’라는 부제목을 붙인 이유는, 모든 예술은 인간에 대한 관찰에서 시작되고, 공연은 공간에서 움직이는 사람들로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짧은 문장을 읽게 했고, 그 문장 너머 있는 스토리를 상상해내고 인물을 그리도록 했습니다. 처음에는 어떻게 한 문장으로 무대 전체 공간을 채우는지 몰라 학생들이 난감해했습니다. “모든 걸 연출가가 설명하고 지시한 것처럼 무대를 만들라는 말이 아닙니다. 저 문장 속에는 모든 게 있습니다. 2명의 군사부터 시작해본다면, 텅 빈 풍경을 가로질러 오는 동안 그들의 옷이 찢어지진 않았는지, 변장을 하고 있는 모습인지, 어떤 군복을 입고 있는지를 상상할 수 있어야 합니다. ‘풍경을 가로지르는 동안’에도 무슨 일이 발생할 수 있죠. 하늘에 먹구름이 끼였을 수도 있고, 낙엽이 굴러 올 수도 있죠. 이 모든 게 제시문에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문장 너머에 있는 걸 만들어 내려고 노력하세요.” 라는 말로 혼란스러워하는 참가자를 다독이고 이끌어나가려고 했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모두가 작업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워크숍이 끝나고 한 학생이 저에게 “더 많은 실습과 배움이 필요함을 깨달았다.”고 말하더군요. 참가자들은 그들이 볼 수 있는 것, 할 수 있는 것에만 의지하는 것 같았습니다. 예술에 대한 기초인 상상력을 충분히 배우지 못한 것 같아서 안타까웠습니다. 무대예술가(Scenographer), 즉 창작자가 되려면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기본 교육을 반드시 받아야 합니다.

Q. 상상력은 예술가에게 목숨과도 같은 거겠죠. 요즈음은 컴퓨터로 무대 모형과 디자인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보니 워크숍에서 이루어진 수작업 또한 참가들에게는 새로운 도전이었을 것 같습니다.

저는 많은 한국 예술가들을 압니다. 한국은 아시아 나라에서도 특별한 예술적 관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오래전부터 예술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작품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미국 기술발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국도 많은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분명히 경제와 관련있는 현상이죠. 던킨도너츠, 게스(Guess), 브로드웨이 뮤지컬 등 미국에서 볼 수 있는 대부분의 것들이 한국에도 들어와있습니다.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저는 한국 예술가들에게 “나다운 내가 되세요. 미국인처럼 되지 마세요.”라는 말을 꼭 하고 싶습니다.

Q. 개성을 잃고 무비판적으로 주류를 따라가는 것은 예술가로서 대단히 경계해야 할 일인 것 같습니다. 예술가로서 정부에게 바라는 예술정책이 있다거나 이해해주길 바라는 예술 영역의 특성은 무엇이 있나요?

오! 정부는 절대 예술을 이해하지 못해요. 정부가 예술을 이해할 거라는 기대를 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이건 영국에서도 마찬가지예요. 다만, 예술가의 삶은 시위자로서의 삶이어야 합니다. 한번 사회 지배층의 일부가 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피카소는 한평생 시위자로 살았습니다. 이것은 사회에 받아들여지고 말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스스로 믿음이 있어야 하고, 사람들과 연결되어 그들에게 자신의 힘을 계속 주어야 합니다. 돈, 경제, 기술, 이익…. 모두 현재의 중요한 가치이지만, 이것들로 인해 자신이 하려는 궁극적인 것이 막혀서는 안 됩니다. 정부는 큰 그림만을 그릴 뿐이고, 예술가들이 그 경계를 오가는 것입니다. 정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사람들이 개성을 개발할 수 있도록 가능한 한 넓고 많은 범위를 허락해라.”는 것입니다.

Q. 60여 년간 작품 활동을 해오셨기 때문에 예전과 다른 예술계 흐름을 체감하실 텐데요. 21세기에 들어서 무대예술계에서 변화라고 할 만한 움직임이 있나요?

글쎄요. 제 생각에는 무대예술에서만의 변화라기보다 세계적인 정서에 변화가 있다고 봅니다. 예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탈출’을 원하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정치적, 경제적인 힘든 상황으로부터 벗어나서 게임, TV 같은 비현실 세계로 도피하기를 바라죠. 일탈과 도피에 대한 사람들의 욕구가 점점 더 커지는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엔 너무 많은 것들이 디지털화되고, 비정서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친구를 직접 만나러 가지 않고 SNS를 통해 안부를 나누고, 금융거래는 모두 전자화되었습니다. 저도 토론토, 슬로베니아, 체코, 한국처럼 동떨어진 나라를 하루 안에 오가다 보면 기분이 묘합니다. 기술이 발전하는 건 좋지만 이렇게까지 하는 게 맞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수천만 달러를 들여 만들고 공연이 끝나면 버려지는 무대가 많습니다. 우리가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지만, 그럴수록 더욱 도시재생, 지속 가능한 공간 창출에 관심을 가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그 자체가 메시지를 가진 바닥, 말을 걸어오는 벽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기술이 발전했고 휘황찬란한 무대효과들이 ‘탈출’을 꿈꾸는 사람들을 매혹하는 시대이지만, 진정한 예술가는 본질적인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일주일 간 한국에 머물면서 새로운 영감을 찾아 헤매는 많은 예술가들에게 단비 같은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언뜻 떠올려 보아도 ‘상상력, 자신만의 개성, 용기, 본질’ 같은 아름답고 소중한 이야기들이 기억나는데요. 마지막으로 한국 무대예술가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으신가요?

“자신 스스로의 특징(Signature)을 찾으라.”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무엇이 다른지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가는 길을 똑같이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용감해지세요. 제가 살아온 길에 대해 누군가가 “행운이었군요!”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이 궁금한 것이 있고, 가고자 하는 길이 있다면 기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항상 새로운 작품을 마주할 때는, 갓 태어난 아기처럼 모든 걸 새롭게 보고 다시 시작하는 열정과 호기심이 있어야 합니다.

Q.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는 말씀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국에 세 번째 방문하시는 날이 있길 바랍니다.

한국에 있는 모든 친구들, 학생들이 정말 그리울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무대디자인 워크숍과 초청강연을 진행하는 모습
    무대디자인 워크숍과 초청강연을 진행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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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5.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