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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통신

[일본] 아사리 게이타 대표 없는 극단 시키의 미래

장지영 (국민일보 기자)
  • 뮤지컬 <라이온킹> 한국 공연 100회 기념
    뮤지컬 〈라이온킹〉 한국 공연 100회 기념


일본 극단 시키(四季)는 한국에서 공연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이름을 알만한 대형 극단이다. 도호(東宝), 다카라즈카(宝塚)와 함께 일본 뮤지컬 시장의 3강으로 꼽히는 시키는 연간 공연 횟수 3,700여 회, 매출 200억 엔(약 2,000억 원)에 달하는 기업이다. 2015년 2월 현재 도쿄, 오사카, 삿포로, 나고야, 히로시마의 5개 도시에 전용극장 9개(히로시마 극장의 경우 장기대관)를 가지고 있으며 단원은 배우와 스태프, 사무직 직원을 합해 1,000명을 웃돈다. 한국과 관련해서는 1994년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와 2006년 〈라이온킹〉을 서울에서 공연했으며 김지현, 차지현, 최현주, 고영빈, 강태을, 김준현 등 적지 않은 수의 한국 배우들을 배출했다.

그런데 극단 창립 61년째이던 지난해 중순부터 시키가 삐걱거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절대적인 카리스마로 극단을 이끌어온 아사리 게이타(81·淺利慶太) 대표가 지난해 알츠하이머 투병 논란과 함께 대표직을 물러난 뒤 극단 출입마저 금지됐다는 보도까지 나온 것이다. 몇몇 매체에서는 ‘쿠데타’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극단 시키의 급격한 변화와 그에 따른 혼란을 전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 뮤지컬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시키가 아사리 대표 없이 어떤 미래를 만들어 나갈지 공연계 전체가 주목하고 있다.


  • 아사리 게이
    아사리 게이타
  • 주간신초에 실린 아사리 대표의 알츠하이머 투병 기사
    주간신초에 실린 아사리 대표의 알츠하이머 투병 기사

l 아사리 게이타 대표의 알츠하이머 논란과 은퇴

지난해 6월 25일 일본의 신문 및 방송사에 극단 시키의 운영 회사인 시키 주식회사 사장을 맡고 있는 아사리 대표가 사퇴했다는 보도자료가 도착했다. 2013년 극단 창립 60주년 이후 아사리 대표가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길 줄곧 원해 왔으며, 마침내 회사 이사회에서도 사표가 수리됐다는 내용이었다. 이와 함께 후임 사장으로 극단 홍보를 오랫동안 담당했던 요시다 치요키(50·吉田智譽樹)가 취임했으며, 경영을 그만둔 아사리 대표는 연출가로서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라는 내용도 덧붙여졌다.
아사리 대표가 워낙 일본 문화예술계에서 손꼽히는 거물이다 보니 퇴임 소식은 즉각 보도됐다. 일본 공연계에서는 극단 창립자가 세상을 뜰 때까지 대표를 맡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아사리 대표의 갑작스런 사퇴 소식은 문화예술계를 놀라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키가 극단이라고는 하지만 주식회사 형태의 기업이라는 점에서 고령의 아사리 대표가 경영권을 넘기는 것에 대해 납득하는 분위기였다. 게다가 아사리 대표는 과거에도 사장을 그만뒀다가 오래지 않아 복귀한 적도 있고, 설사 사장을 그만둔다고 해도 대주주인 그가 극단을 좌지우지할 것이라는 데는 변함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퇴임 이튿날 대중잡지 주간신초(週刊新潮)가 아사리 대표가 수년째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는 보도를 터뜨렸다. 이 기사는 일본의 유명 음악 평론가이자 아사리 대표의 오랜 친구인 아베 야스시(81·安倍寧) 에이벡스 라이브 크리에이티브 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어서 신빙성을 얻었다. 그리고 아사리 대표의 갑작스런 사장 사퇴가 잡지의 보도와 관련이 있음을 짐작하게 했다.
잡지에 따르면 아베 고문은 6~7년 전부터 친구의 변화를 눈치챘다. 아사리 대표는 같은 말을 반복하는가 하면 주변의 여러 가지 일들을 기억하지 못했다. 이후 아사리 대표와 같은 병원을 이용하던 아베 고문은 친구가 가벼운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아사리 대표의 부인인 배우 노무라 레이코와 상담한 후 회사 대표직을 그만두도록 권유해 왔다는 것이다.
특히 잡지는 최근 아사리 대표가 단원들에게 극단 창립 기념일에 보너스를 지급하겠다고 발표한 내용이 문제를 일으킨 것도 전했다. 아사리 대표는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은 채 극단에 들어온 지 11년 이상 된 배우 및 스태프, 사무직 직원들을 기여도에 따라 6등급으로 나눈 뒤 총 37억4천만 엔을 나눠 주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아무리 아사리 대표가 시키 주식회사의 대주주이자 경영자라고 해도 이런 결정을 내리는 것은 너무 독단적이라는 비판이 많았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회사의 자산을 멋대로 유용한다는 점에서 배임죄를 물을 수 있는 행위라는 지적도 나왔다. 게다가 단원 가운데 11년 차 이상은 전체 1,000명 가운데 25% 정도인 260여 명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보너스를 받지 못하는 측의 반발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보너스를 6등급으로 나눠 지급하는 것과 관련해 아사리 대표의 부인인 노무라 레이코가 1억 엔을 받는데 비해 임원은 1천만 엔에 불과해 기준의 형평성 논란도 이어졌다. 잡지는 아사리 대표의 이런 행동도 올바른 정신상태로 볼 수 없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아사리 대표 측은 잡지 측에 자신의 알츠하이머 투병을 부인했다.

아사리 대표의 알츠하이머 투병 논란과 사장 사퇴로 한차례 대소동을 겪었던 시키는 2개월 정도 지난 뒤 또다시 논란에 휘말렸다. 아사리 대표가 극단에 출입할 수 없는 상태라는 보도가 나왔기 때문이다. 일본의 인터넷 신문 J-CAST는 9월 11일 “아사리 대표가 문제 있는 행동을 해서 극단 연습실에도 나오지 못하게 됐다”는 소식을 전했다. 여기에 아사리 대표가 은퇴 이후 몇 개의 작품에서 연출을 맡을 예정이었지만 취소됐다는 것도 덧붙였다. 이후 또 다른 주간지 프라이데이 등도 이 같은 소식을 잇따라 전했다.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신임 대표인 요시다 사장이 아사리 대표에게 배우의 캐스팅과 고용 등 극단의 방침에 일절 관여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요구했고, 아사리 대표가 이를 거절하자 아예 극단 출입금지를 시켰다는 것이다. 아사리 대표는 극단 사무실에 들어가려다가 경비원에게 출입을 제지당해 돌아가야 하는 모욕을 당했고, 그의 아내 노무라 레이코가 출연할 예정이었던 연극 〈온디뉴〉는 이미 티켓 판매를 시작했음에도 취소되었다.
이에 대해 일본 언론은 신임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이 쿠데타를 일으켰으며, 극단 안에서 아사리와 밀접한 인물들의 숙청이 시작됐다고까지 선정적으로 보도했다. 시키 출신 배우에 따르면 최대 주주였던 아사리 대표가 자신의 주식을 단원들에게 나눠주면서 지분이 50%를 넘지 못하게 되자 경영진이 이 같은 행동을 취했다고 한다.

l 시키의 미래 그리고 한국과의 관계

지난해 하반기부터 불편한 보도가 잇따라 나오고 팬들 사이에서도 무수한 뒷말이 나왔지만 극단 시키의 표면적인 모습에 큰 변화는 없어 보인다. 9월 15일 개막할 예정이었던 〈온디뉴〉가 취소됐어도 워낙 수많은 레퍼토리와 단원을 가진 시키이기 때문에 뮤지컬 〈빨간 머리 앤〉으로 대체하는 등 문제없이 넘어갔다. 일각에서는 아사리 대표의 반격이 조만간 시작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지만 현재로선 잠잠하다.
오히려 홍보 출신 사장이 취임해서인지 지난해 12월 일본의 최대 동영상 사이트인 ‘니코니코 동화’에 전용 코너를 마련하는가 하면 홈페이지에 공연 상황 등 극단에 대한 정보를 구체적으로 게재하는 등 팬들에게 좀 더 친밀하게 다가서고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예전보다 소속 배우들을 미디어에 훨씬 자주 노출시켜 일반인들에게 시키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또 지난해 12월 20일부터 지난 2월 1일까지 갈라 공연인 〈극단 시키 페스티벌-문의 저편으로〉를 무대에 올려 주목을 모았다. 원래 시키는 〈송&댄스〉라는 타이틀로 수십 년간 갈라 공연을 올려왔는데, 새로운 사장 취임 이후 아예 타이틀을 바꿨다. “문을 열고 새로운 세계로 나가겠다”는 내용의 의미심장한 타이틀이 인상적이다.
아사리 대표 시절에 비해 좀 더 개방적으로 바뀌었다는 평가를 받는 시키는 올해 5월 디즈니의 신작 뮤지컬 〈알라딘〉을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지난해 3월 브로드웨이에 올라간 이 작품이 해외에서 라이선스 공연되는 것은 일본이 처음이다. 그리고 8월에는 시즈오카에서 〈미녀와 야수〉가 장기공연에 들어가는 등 시키는 최근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아사리 대표 은퇴 이후 시키의 급격한 변화가 한국에 끼칠 영향에 대해서도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시키가 한국 배우들의 양성소 역할을 일부 담당해 왔기 때문이다. 1997년 한국 출신으로는 처음 입단한 배우 김지현이 주연급으로 올라선 뒤 시키는 2001년부터 가창력이 좋고 일본어 습득이 빠른 한국 배우들을 뽑기 시작했다. 이후 지난해까지 거의 매년 한국 배우들의 오디션을 실시했는데, 트레이닝을 체계적으로 받을 수 있는 데다 무대에 설 기회가 많다는 이점 때문에 적지 않은 배우 지망생들이 참가했다. 시키는 모음을 강조하는 연기 메소드를 지향하기 때문에 한국 배우들이 다른 일본 무대에서와 달리 쉽게 동화될 수 있다.
이런 오디션을 거쳐 시키에서 활동하다 한국 뮤지컬계로 돌아온 배우들이 적지 않은데, 오나라, 고영빈, 김준현, 차지현, 강태을, 최현주 등이 대표적이다. 시키의 한국 배우들은 2007년 10월 서울에서 막을 내린 〈라이온킹〉 직후엔 70여 명이나 됐으나 점점 수가 줄어 지금은 30여 명 정도다. 시키 전체 단원(600여 명)의 5% 정도 밖에 되지 않지만 가창력 좋은 배우들이 많아 주역으로 자주 무대에 서고 있다.
그런데 아사리 대표가 물러나면서 앞으로 한국 배우들의 오디션이 계속 이루어질지는 미지수다. 그동안 한국 배우들의 오디션은 극단 안에서 제왕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던 아사리 대표가 전적으로 추진해 온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극단 경영면에서 한국 배우를 뽑는 것은 일본 배우를 뽑는 것보다 손해다. 한국 배우의 경우 일본어 교육까지 따로 시켜야 하는 등 손이 많이 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배우들의 가창력을 높이 샀던 아사리 대표는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오디션을 계속해 왔다. 뮤지컬 〈라이온킹〉의 서울 공연 역시 이런 오디션을 통해 극단 내에 한국 배우들의 수가 급증하면서 시작된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사리 대표가 ‘우익’으로 알려져 있고, 실제로 그는 일본의 보수적인 자민당 정치가들과 깊은 친분을 나눴던 사이다. 하지만 그는 지난 몇 년간 일본 우익의 비판을 받아 왔다. 바로 시키에서 활동하는 한국 배우들 때문이었다. 우익들은 지난 몇 년간 시키의 매출이 감소한 것에 대해 일본어를 제대로 못하는 한국 배우들을 캐스팅해서 완성도가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시키는 우익들의 항의가 이어지자 결국 한국 배우들에게 일본식 예명을 쓰도록 했다. 시키 관계자는 “아무래도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예년 같은 한국 배우들의 오디션이 쉽지 않아 보인다”면서 “앞으로는 일본어를 제대로 익힌 배우만이 오디션에 참가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갈 것 같다”고 예상했다.


  • <알라딘> 제작발표회-왼쪽이 신임 사장인 요시다 치요키
    〈알라딘〉 제작발표회-왼쪽이 신임 사장인 요시다 치요키
  • 극단 시키 페스티벌-문의 저편으로
    극단 시키 페스티벌-문의 저편으로

(사진: 시키씨어터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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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5.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