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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사람

사람이 곧 보물인 공연 프로듀싱의 세계
한국뮤지컬협회 신임 이사장 박명성

서지영 (공연평론가, 드라마투르그)
  • 한국뮤지컬협회 신임 이사장 박명성
    한국뮤지컬협회 신임 이사장 박명성

한국 뮤지컬계의 마이더스로 불려온 박명성(전 신시뮤지컬 컴퍼니 대표)이 최근 한국뮤지컬협회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맘마미아〉, 〈시카고〉, 〈아이다〉 등으로 한국 뮤지컬이 세계무대에서도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으며 그의 성공신화가 굳어진 지 오래다. 공연 프로듀서가 전면에 나서는 것이 익숙지 않은 한국에서 그의 지난한 여정과 성과는 호기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제 또, 새로 맡겨진 중책에 대해 어떤 청사진을 그리고 있는지 그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모아질 법하다.

Q. 최근에 한국뮤지컬협회 이사장으로 취임하셨습니다. 새롭게 구상하고 있는 계획이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연극이나 오페라, 뮤지컬에 전문적인 프로듀서가 많지 않습니다. 뮤지컬이 이만큼 활성화된 것은 프로듀서의 역할이 중요함을 인식했기 때문이죠. 예술 경영을 할 수 있는 프로듀서들을 재교육하고 양성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일로 꼽겠습니다. 작품을 프로그래밍하고 운용하고 회사를 경영하는 프로듀서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그밖에는 회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힘쓰고, 뮤지컬계의 위상을 높일 수 있도록 애쓰겠습니다. 단순하면서도 소박한 일이지만 무척 중요한 일입니다. 협회는 회원을 위한 단체입니다. 협회들이 극단을 종속단체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협회와 극단이 주종관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좋지 않은 관행은 사라져야죠. 권위를 내세우는 협회가 아니라 소속된 극단이 좋은 작품을 올릴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뒷받침해주는 것이 협회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Q. 프로듀서뿐 아니라 뮤지컬 분야의 다른 역할도 전문 인력 양성이 필요할 텐데, 학교 밖에 있는 사설 아카데미 같은 양성기관이 더 필요할까요?

대 학 졸업장이 중요한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는 아카데미 수료는 장점이 없습니다. 외국의 경우처럼 대학 졸업에 준하는 학위를 인정해주는 아카데미가 있다면 모르지만 현재 있는 교육기관은 대학을 대신할 수 없기 때문에 그저 입시 준비가 주목적입니다. 뮤지컬은 사실 학교에서의 전공보다 타고난 재능만 있으면 짧은 기간에도 가능합니다. 뮤지컬의 전문가가 필요하지만 교육기관을 통해서라기보다는 극단에서의 현장 교육이 더 중요합니다.


Q. 학교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현장 교육을 어떤 방식으로 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소개해 주십시오.

전문교육 4년을 받고 졸업을 했어도 다시 현장에서 재교육이 필요한 게 현실입니다. 저는 그 시간을 좀 아끼고자 졸업 후 바로 프로 무대에 투입할 수 있는 교육을 합니다. 학생들을 현장으로 불러서 오디션하는 과정이나 리허설 하는 과정, 드레스 리허설을 보여줍니다. 작품마다 다양한 예술가들이 투입되는 신시의 작업에는 해외 팀이 자주 오는데 그들의 리허설을 보고 해외 팀과의 대화의 시간을 갖게 합니다. 세계 뮤지컬의 트렌드를 읽을 수 있게 하는 것이죠. 현장에 적응할 수 있는 교육입니다. 얼마나 빨리 현장에 적응하느냐의 여부가 예술가로서의 성장 과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줍니다. 외국은 실무 교육이 중심이 되는 사설 아카데미를 이수하므로 특히 러시아 같은 나라들은 기본기가 강하지만 우리는 대학을 나와야만 되기 때문에 젊은 예술가 양성에 지장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Q. 뮤지컬배우를 꿈꾸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뮤지컬배우는 무엇보다 노래를 잘해야 하겠지만 그밖에 중요한 조건을 꼽는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연극이 침체되어있고 뮤지컬이 너무 앞서 나가다 보니 연극배우보다 뮤지컬배우를 꿈꾸는 경우가 많은데 뮤지컬도 연극과 한 몸이지요. 감각이 있어야 하고 성실해야 합니다. 뮤지컬은 특히 타고난 재능이 중요합니다. 두 분야가 비슷하게 나가야 건강한 공연시장이 형성되는데 그 차이가 너무 큰 게 안타깝습니다.

Q. 뮤지컬이 활성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일반 관객들이 즐겨 보기에는 관람료가 많이 부담스럽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투자한 것에 비하면 비싸지 않습니다. 공연의 퀄리티에 비례해 정당한 가격입니다. 제작비에 맞는 가격을 책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비싼 제작비를 들이고 관람료를 저렴하게 받을 수는 없습니다. 저는 이런 논란 자체가 넌센스라고 봅니다. 물론 투자나 규모에 비해 과한 관람료를 받는 공연이 있다면 문제가 되겠지요.

Q. 한국 뮤지컬 시장의 그릇된 과열을 질타하며 한국 시장에서 뮤지컬의 질적 저하에 대해 염려를 보인 적이 있습니다.

뮤지컬 시장이 좀 활성화되니 너도나도 뮤지컬을 한다고 시작했습니다. 소극장 뮤지컬들을 한번 보세요. 대부분이 로맨틱 코미디입니다. 대중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한 선택인데, 그렇게 해서 성공한 경우를 거의 못 봤습니다. 그럴 바에는 재능을 쏟아서 젊은 예술가들답게 파격적인 도전과 실험을 해야 합니다. 소극장 뮤지컬은 그렇게 실험정신을 가지고 만들어져야 합니다. 돈을 벌기 위한 가벼운 전략들이 염려스럽다는 것이죠. 작은 무대에서의 실험 과정을 거친 후 중극장, 대극장으로 넓혀가는 것이 수순이라고 봅니다.

Q. 뮤지컬의 수입을 연극에 투자하고 있다는 사실은 연극계에서 반가운 일처럼 보이나 신시의 연극처럼 안정된 연극은 제작비 없이 만드는 대학로의 다른 연극들과 거리감이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대학로 스타일로 허름한 연극만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노력이 필요하고 자기희생이 필요합니다. 어떤 공연이든 허투루 만들지 않습니다. 연극은 나에 대한 수련입니다. 다음에 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훈련하는 과정이기도 하죠. 난 스스로 뼛속 깊은 연극인임을 자부하고, 그래서 나 자신에게 감사합니다. 연극은 연극 나름대로의 본질이 있습니다. 대학로에 하루에 150편의 연극이 올라가는데 과연 그중 연극다운 연극은 몇 편이나 될까요? 젊은 연극인들이 무모한 도전, 실험적인 도전을 해야 합니다. 모든 아이디어를 끝까지 시도해 봐야 합니다. 너무 쉽게 관객들의 입맛에 맞춰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로 가는 것을 보면 안타깝죠.

Q. “공연을 잘 만드는 일, 그것은 곧 사람을 잘 만나는 일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사람과 더불어 일하는 기술을 프로듀서의 입장에서 말씀해 주세요.

연극은 사람에서 시작해서 사람으로 끝납니다. 스태프이든 배우든 같이 일하는 앙상블을 통합하기 위해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을 보물처럼 생각해야 합니다. 특히 프로듀서한테는 각기 다른 정서 각기 다른 개성들을 하나의 앙상블로 통합하는 리더십이 가장 필요합니다. 젊은이들의 아이디어를 충분히 이해하고 존중해주고 그 사람들이, 그 아이디어가 발전해서 성취감을 느끼도록 해야 합니다. 그 조직 안에서 사람의 마음을 깊이 이해해주고 존중해 주고 그 사람들이 각자의 끼와 열정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사람을 아끼는 리더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나와 함께 작업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힘들죠. 많은 고민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일단 함께하기로 하면 끝까지 믿고 가야 합니다. 인연을 맺었으면 그 사람을 무조건 믿고 존중해야 한다는 게 저의 신조입니다.

Q. 창작 뮤지컬을 만들 때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원작이든 창작 작품이든 이 시대 관객이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가에 관심을 둡니다.
이야기가 가장 중요하죠. 이 시대에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지 수없이 고민합니다. 그 고민이 끝난 후에야 크리에이팀을 구성하고 배우 오디션도 합니다.

Q. 뮤지컬 공연의 실패는 경험으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거액의 손실이 뒤따릅니다. 그럼에도 이번에 또 대모험을 감행하려고 하시는데 어떤 각오로 진행하고 있습니까?

뮤지컬 〈아리랑〉과 연극 〈리진〉입니다. 〈리진〉은 대극장 연극이고요, 이해랑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공연으로 이해랑 선생과 인연이 있는 배우들이 중심이 되어 올리게 됩니다. 민간단체에서 대극장 연극을 만들기란 어려운 일인데 이번에도 또 큰 모험을 하게 됩니다. 도전 없이 어떻게 새로운 작품을 만들겠어요. 아리랑도 얼마나 망하느냐가 문제입니다(웃음). 이젠 숙달되었죠. 그러나 우리에겐 〈맘마미아〉, 〈시카고〉, 〈아이다〉 같은 레퍼토리가 있습니다. 만약 실패하면 레퍼토리가 빈 곳을 또 채우고 그러면서 발전해 가는 거죠.
   
Q. 무용을 전공하셨고, 배우로 무대에 섰고, 또 연출 경험도 있는데 그 모든 길을 쉽게 포기했습니다. 스스로 재능이 없다는 것을 인정했나요?

포기한 게 다행이죠. 하나님은 재능을 골고루 나눠 줍니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거쳐 왔기 때문에 다른 프로듀서보다 작품을 보는 안목이나 현장을 읽는 안목이 더 높았을 수 있죠. 그러나 막이 오르기 전까지 성공 여부는 장담할 수 없어요.

Q. 예술분야의 지원 정책 부분에서 지원 방식에 대해 논란이 큽니다. 집중지원과 분산지원에 관한 것인데요, 뮤지컬 분야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습니까?  

지원제도의 혁신이 필요합니다. 지금과 같은 지원 체제는 극단을 살릴 수도 없고 레퍼토리를 살릴 수도 없습니다. 레퍼토리화가 중요합니다. 레퍼토리화는 자생력을 갖추게 합니다. 거기서 수익을 창출해서 새로운 작품을 할 수 있는 겁니다. 선택과 집중지원으로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극단을 지원해주어야 합니다.

보통 사람들에겐 ‘목표이자 꿈’인 열정, 용기, 끈기, 재기가 그에게는 일상이었다. “연극은 삶에 지친 사람들을 위로해 주고 보듬어 주는 것, 삶의 윤활유 역할을 하는 것”이라며 그러하기에 사람을 존중하지 않고 배려하지 않고는 연극도 뮤지컬도 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신조다. 그의 의지가 새로운 역할에도 변함없이 이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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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5.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