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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통신

[네덜란드] 멜라니 길리건(Melanie Gilligan),
〈감각의 공유(The Common Sense)〉

오민 (작가)
  • 《감각의 공유 (The Common Sense)》 전 PhotoBy Cassander Eeftinck Schattenkerk
    《감각의 공유 (The Common Sense)》 전 Photo By Cassander Eeftinck Schattenkerk






암스테르담의 드 아펠 아트센터(De Appel Arts Centre)에서는 현재 캐나다의 비디오 작가 멜라니 길리건(Melanie Gilligan)의 《감각의 공유 (The Common Sense)》 전시가 진행 중이다. 이 전시는 드아펠 아트센터와 더불어 두 개의 다른 미술관, 카스코(Casco-Office of art, Design, and Theory)와 드 할렌 할렘(De Hallen Haarlem)에 의해 공동으로 기획되었으며, 이 세 미술관에서 살짝 엇갈린 일정으로 총 5개월여 동안 지속된다. 첫 전시는 작년 11월 14일에서 올해 1월 25일까지 카스코에서, 그리고 두 번째 전시는 작년 12월 13일부터 올해 3월 1일까지 드  할렌에서 진행되었으며, 지난 1월 24일 드 아펠 아트센터가 그 마지막 전시를 이어받았다. 드  아펠 아트센터 전시 개막일이자 세 미술관에서 동시에 전시가 진행되는 흔치 않은 기회인 이날, 흩어져 있는 작품들을 연속해서 감상할 수 있도록 암스테르담과 유트레히트, 그리고 할렘을 연결하는 셔틀버스 투어 이벤트도 준비되었다. 이번 길리건의 전시를 공동 주최한 세 개의 미술관은 나름의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드 아펠 아트센터는 다양한 전시뿐 아니라 현대 미술의 연구와 큐레이터 양성을 위한 큐레토리알 프로그램(Curatorial Programme)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이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최빛나가 이끌고 있는 카스코는 사회 참여적인 예술, 디자인, 이론을 포괄하는 전시, 리서치, 워크숍, 포럼, 출판 등 다양한 지식 축적을 위한 행사들을 활발하게 기획하고 있다. 암스테르담에 인접한 도시 할렘에 자리 잡은 드 할렌 할렘은 주로 사진과 비디오에 포커스를 두고 있으며 국제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네덜란드에 아직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멜라니 길리건은 토론토에서 태어나 현재는 주로 뉴욕과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영화, 공연, 글, 설치, 그리고 음악이 결합된 종합적 성격의 미디어를 다룬다. 아트포럼(Artforum)과 텍스테 주어 쿤스트(Texte zur Kunst) 등에 정치, 경제, 과학 및 예술에 관해 글을 기고하던 길리건의 과거 이력을 반영하듯, 그의 작업은 기술, 자본, 사회 심리, 집단행동 등이 주요한 골자를 이루며 주로 현재보다는 미래의 허구적 상황을 연출하는 공상과학물의 형태를 띠고 있다.

전시 제목과 동일한 제목을 가지는 길리건의 최신작 〈감각의 공유〉는 다른 사람의 감각과 감정을 직접적으로 공유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가상 기술 ‘패치(The Patch, 의학적 부착물)’를 소재로 한 실험적 드라마이다. 총 세 편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으며, 에피소드 1은 패치가 인간의 삶 속으로 파고드는 과정을 다루고, 나머지 두 에피소드는 패치의 네트워크가 갑작스럽게 차단되는 사고 후 재가동되는 상황을 설정하고 이때 예측할 수 있는 두 가지 종류의 다른 결론을 가정한다. 에피소드 2A는 패치를 거부하는 사회운동이 전개되면서 결국 패치의 영향력이 무너지는 상황으로 전개되고, 에피소드 2B는 패치의 재가동과 함께 사회가 다시 정상화되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감각의 공유〉에서 그려진 미래는 영화 〈매트릭스(Matrix)〉 속 미래와 같이 우리가 흔히 공상과학물에서 기대하는 미래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며, 오히려 현실의 모습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에서 기억을 삭제하는 첨단 기계가 그다지 미래적 형태를 하고 있지 않았던 것과 같이, 20년 전부터 존재했다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은 평범한 모양의 패치는 입천장에 붙이는 순간 텔레파시와 유사한 엄청난 기능을 발휘한다.
신비한 과학적 현상과 사회 비판적 시각을 결합한 픽션이라는 측면에서, 길리건의 〈감각의 공유〉는 현대인과 네안데르탈인이 만나서 나누는 허구적인 대화를 담고 있는 나타니엘 멜로스(Nathaniel Mellors)의 최근작 〈교양 있는 네안데르탈인과의 인터뷰(The Sophisticated Neanderthal Interview)〉와 유사한 맥락으로 다가왔다. 다만, 〈교양 있는 네안데르탈인과의 인터뷰〉가 좀 더 어두운 철학적 유머와 초현실적인 이미지가 강하다면, 길리건의 〈감각의 공유〉는 상대적으로 드라마가 강조되고 직설적 패러디의 경향이 두드러져 보인다. 가상의 상황임에도 결코 멀리 있는 이야기로 보이지 않는 것은 비단 〈감각의 공유〉가 인공적이고 이질적인 미래의 모습을 고안해 내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만큼 길리건이 관찰한 현실이 작품 속에 예민하게 반영되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패치의 사용이 일반화되면서 개개인의 삶뿐 아니라 산업 구조를 변화시키는 과정은, 마치 현시대 스마트폰이 현대인의 일상생활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는 듯하다. 그뿐 아니라 패치를 통해 고용인들의 감정이 중앙에서 감시되고 평가되고 통제되면서 감정의 자유가 박탈당하는 기형적 근로 환경은 서비스업 종사자의 감정노동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한국의 현실을 즉각적으로 떠올리게 한다.

작가로서 길리건이 흥미로운 점은 그가 다루는 소재와 주제, 구성, 구현 방식, 완성물을 대하는 태도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가 인간의 삶과 긴밀한 역학 관계에 있는 기술과 매체에 관심을 두는 만큼, 그의 작품은 TV 시리즈, 뉴스, 다큐멘터리, 3D 컴퓨터 게임, TV 광고, SNS 등 현재 현대인의 삶에 긴밀하게 관여하고 있는 매체를 작품 형식에 적극적으로 차용하며, 그와 직결되는 디지털 기술 및 네트워크 발달을 발판으로 한 DIY적 미감을 수용한다. 이렇게 완성된 비디오는 기계적인 장치를 그대로 노출한 설치 형식을 통해 물질화된 후, 점차 어떤 것도 사유하기 어려워지는 오늘날의 디지털 환경을 대변하듯 온라인에서 공유된다.
한편, 분절은 그의 작품 활동에서 중요한 형식적 모티브로 보인다. 세 개로 분리된 〈감각의 공유〉의 에피소드는 대략 4~5분 정도의 길이로 다시 나누어져 15개의 스크린에 배분된다. 물리적 분리뿐 아니라 이야기의 흐름 역시 여러 명의 개별적인 캐릭터의 이야기로 분산된 채 진행된다. 마치 영화 〈매그놀리아(Magnolia)〉 혹은 〈숏 커츠(Short Cuts)〉에서 무관해 보이던 캐릭터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그 관계를 드러내듯, 독립적으로 보이던 길리건의 캐릭터들 역시 서서히 관계를 엮어가며 이야기의 속도감을 높이고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관객들은 물리적으로 또 논리적으로 흩어져 있는 이야기 조각을 따라 자연스럽게 공간을 이동하면서, 나누어진 조각을 하나씩 맞추어 나가게 된다. 태생적으로 분절과 이동이 중요한 의미가 있는 작업인 만큼, 드 아펠 아트센터와 카스코, 드 할렌의 세 가지 다른 장소와 다른 시간으로 분리하여 작품을 배치한 《감각의 공유》 전시는 작품과 그 재현이 효과적으로 어우러진 전시였다고 생각된다. 세 개의 시리즈 전시 중 마지막을 담당한 드 아펠 아트센터의 전시는, 오는 5월 10일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 〈감각의 공유〉 드라마 장면
    〈감각의 공유〉 드라마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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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5.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