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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동규의 이심전심
지겨운 회의, 즐거운 회식

이동규 (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


자식 농사를 한 번에 망치는 헛똑똑 부모가 의외로 많다. “이제부터 엄마랑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하자. 놀 땐 놀고 공부할 땐 확실히 공부하는 거야 알겠지?” 이렇게 되면 아이들은 공부와 놀이가 서로 완전히 반대적인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그 아이의 일생을 통해 공부는 어느덧 지겨운 것이 되고 노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것이 된다. 공부(工夫)란 원래 불교에서 나온 용어인데, 특히 불가 선어록(禪語錄)에 보면 참선에 진력함을 의미한다. 자연과 인생을 배우고 익힘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자신이 이를 기꺼이 즐겁게 행하게 하는 것이다. 어릴 땐 분명히 수학놀이였는데 어느 날부터 슬그머니 놀이는 빠지고 수학만 남게 된다. 그때부터 골치가 지끈거리기 시작한다. 전 세계 수학경시대회에서 10년이 넘게 1등을 독차지해온 탁월한 우리 아이들인데 세계적 수학자가 나왔다는 이야기는 귀에 들려오지 않는다. 그 이유는 과연 뭘까?

국내 수없이 많은 조직에서도 이 문제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현대 직장인들은 대부분 그 어떤 활동보다 직장에서 일을 하며 보내는 시간이 많지만, 삶의 의미와 보람을 자기의 일에서 찾는 경우는 매우 드물어 보인다. 반복되는 일상과제, 따분한 일, 근엄한 상사 등등 조직에서의 생활은 한마디로 재미있는 것과는 매우 동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에게 있어 가장 지겨운 것은 우선 회의시간이다. 회의실에 들어가면 누구나 회의적이 되고 만다. 이후 회식 시간이 되면 전부 웅변가로 변한다. 아! 회의를 이 회식장소에서 할 걸…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그러나 사실은 장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미국에서 30년을 살다 국내 기업과의 비즈니스를 위해 한국에 와있는 경영컨설턴트 한 명을 만났다. 그는 미국의 세계적인 컨설팅사에서 오랫동안 일해 온 소프트웨어 전문가다.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았다. 한국 기업과 일하면서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 그에게서 나온 답변은 충격이었다. 일을 하면서 수많은 난해한 문제가 제기되는 컨설팅 현장에서의 극단적 분위기 차이란 거다. 요컨대 미국 직원들은 문제가 나오면 자기의 내공을 발휘하기 위해 벌떼같이 일어나 각자 의견을 표현하는 반면, 한국 기업의 직원들은 개인적으로 매우 우수한 인재들임에도 너무나 조용하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시키지 않는 건 나서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거나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등등이 그들의 마음 한구석에 똬리를 틀고 앉아있는 것이다. 간혹 누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의견을 개진하여 채택된다고 하면 “아이디어 낸 사람이 책임지고 추진하면 되겠네”하는 시니컬한 분위기가 되고 만다는 거다. 거기에 한국 고유의 질병인 상사병이 결합하면 결과는 뻔한 일이다. 청운의 푸른 꿈을 안고 그 어려운 취직 관문을 뚫고 들어온 인재들이 이런 광경을 몇 번 겪으면 그들도 역시 ‘침묵은 금이다’라는 생존의 명제를 배우게 된다. 이런 식으로 10년 정도 지나면 아무리 뛰어난 인재도 둔재로 변하는 법이다. 세계 최고의 창의성을 지닌 한국인들이 이런 식으로 대량 우민화되어가는 것을 보면 진정 분개하게 된다. 도대체 조직이란 게 뭔가? 이럴 거라면 뭐 하러 인생을 낭비하며 사는가? 하는 강한 회의감이 드는 것은 오늘날 직장인들의 공통 심리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이 매년 선정하는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의 특성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제 재미(fun)는 현대경영의 핵심 키워드가 되고 있다. 911 테러 시에도 고객이 줄지 않았다고 하는 미국 사우스웨스트 항공(Southwest Airline)은 철저한 저가전략과 탁월한 운항시스템으로 100%에 가까운 정시도착률과 고객서비스 만족도를 실현하고 있다. 이 회사의 인재발굴과 채용 기준은 단연 '재미'다. 인생에서 즐거움을 모르면 일도 즐길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 회사는 인재채용 시 이력서를 보지 않는 데다가 입사 최고 기준을 얼마나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는 자세와 능력을 갖고 있는가에 두고 있다. 엘비스 프레슬리 복장으로 출근하기도 했던 허브 켈러(Herb Kelleher) 회장은 일찍이 “즐겁지 않은 회사는 당장 때려치워라”고 한 바 있다. 해고가 없는 회사로 대표되는 인간존중의 경영철학 위에 서비스 DNA로 충만한 직원들이 결합한 결과는 실로 경이적인 성과로 되돌아오고 있다. 1971년 창립 이래 연속 흑자경영, 전체 항공사 시장가치의 80% 차지, 미국 직장인들이 가장 일하고 싶어하는 기업 1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항공사 1위 등등….

특히 이런 경향은 감정노동 위주의 서비스업에서 더욱 현저하다. 삼성에버랜드는 지난 90년대 『펄떡이는 물고기처럼』이란 책에서 동기를 받아 임직원들에게 ‘즐겁게 일하면 고객도 늘어난다’는 원리를 깨닫게 하였다. 결국 억압적인 성과지상주의의 한계를 뛰어넘어 자발적인 에너지로 업무를 주도하면 보다 큰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정부나 공공부문, 민간부문을 막론하고 국내 대부분의 경영 현장에서 재미는 가출해버린 지 오래다. 『펀 워크(Fun Work)』의 저자인 레슬리 여키스(Lesli Yerkes)에 따르면 산업화 이후 일의 강도가 높아지고 전문성이 강조되자 노동과 재미는 서로 다른 분야로 여겨져 왔는데, 강제로 헤어진 이 두 요소를 재혼시켜 다시 일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해결의 실마리는 인간 존중, 그중에서도 출발점은 직원 존중에 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 1위는 “일 안하고 놀기만 했냐”라는 말이라고 한다. 재미있게 즐겁게 일하자는 것과 판판이 노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공무원들 또한 인간일진대 이러한 원리는 마찬가지다. ‘정부 3.0’이라는 아젠다를 들고 나온 박근혜 정부는 ‘척척 정부, 착착 일처리’라는 구호를 내걸고 있다. 그러나 즐거움이 사라진 곳에서 창조는커녕 생산성이 오를 리 없다. 우리들 직장에서 어느 날 갑자기 가출해버린 재미를 되찾아오는 일이야말로 창조경제의 핵심이 아닐 수 없다.

이번에 교육부가 모처럼 신선한 정책을 내놓았다. 이번 종합계획은 그동안 수학 교육 개선방안이 계속 나왔지만 학생들 가운데 이른바 ‘수포자(수학 포기자)’가 여전히 많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핵심은 흥미와 실생활 위주 수업으로의 개편이다. 구체적으로는 기존의 선다형 혹은 단답형 위주의 문제풀이형 평가 방식에서 벗어나 서술·논술형 평가, 관찰 평가 등 과정 중심 평가로 확대된다. 예를 들어 타율, 방어율 등 야구 경기의 각종 통계데이터를 주제로 한 수업을 하는 식이다. 평가방식이 바뀌려면 수업방식도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에 따라 ‘스토리텔링’, ‘프로젝트 학습’ 등의 수업 방식도 확대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피터팬에 나오는 네버랜드 지도에서 해골바위, 인어마을 등의 위치를 찾아보며 좌표에서 점의 위치를 나타내는 방법을 배우는 식이다.

원래 일(work)이란 단어의 정의는 ‘힘든 재미’다. 재미만 있고 힘은 안 들면 오락이지 일은 아니다. 반면에 힘만 들고 재미가 없으면 노역이지 일은 아니다. 우리들 짧은 인생의 두 가지 축은 바로 의미와 재미다. 학교 공부나 직장 생활이나 공히 의미는 있는데 재미가 없다. 이것은 우리 인간의 본성과도 역행하는 것이며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역시 가장 좋은 공부는 노는 것이요, 화엄경 불이사상(不二思想)의 개념처럼 공부와 놀이가 둘이 아니요 일과 재미가 둘이 아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의 근저를 지배해온 생각의 핵심은 ‘우리는 어떤 일이든지 할 수 있다’는 의지를 중시하는 캔(can) 경영이었다. 이제 시대는 감성과 창의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무엇을 할 수 있는 능력도 편한 마음과 즐거운 일터에서 비롯된다고 믿는 것이다.

우리에게 과연 즐거운 회의, 지겨운 회식은 언제나 올 것인가?


이동규
이동규

국내 대기업과 공공기관의 경영·정책 자문 교수, 행자부 정부혁신관리위원(대통령 표창), 대통령직속 지역발전위원회 평가위원을 거쳐 기획재정부 공공기관 정부경영평가단 팀장을 역임하였다. 현재 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국생산관리학회 부회장, 품질경영학회, 서비스경영학회, 문화예술경영학회 이사를 맡고 있다. 기타 행정자치부 정책자문위원, 한국철도공사(KR) 경영자문단 CS위원장, LG 그룹 경영 자문 교수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인의 경영코드』(21세기북스) 외 품질경영과 서비스 분야에 관한 10여 권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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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5.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