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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사람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 김민 음악감독 인터뷰

김소민 (음악 칼럼니스트)
  •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 김민 음악감독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 김민 음악감독

올해 창단 50주년을 맞아 세계 무대로의 본격 진출을 선언한 국내 최고(最古)의 실내악단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이하 KCO·구 바로크합주단)가 총 네 차례로 예정된 월드 투어의 절반을 성공리에 마쳤다. KCO는 먼저 지난 2월 23일부터 3월 1일까지 영국 런던 사우스뱅크센터 퀸엘리자베스홀, 독일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러시아 모스크바콘서바토리 그레이트홀, 오스트리아 비엔나 무지크페라인 황금홀 등 클래식 음악의 본고장에서 ‘꿈의 무대’들을 순회했다. 이어 3월 25, 27일 베토벤 부활절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열린 폴란드 바르샤바 필하모닉홀 연주, 자브제 돔 무지크 탄카홀에서의 연주를 마쳤다.
‘한국의 챔버 오케스트라가 유럽 청중을 만족시킬 수 있을까’하는 우려는 이제 필요 없을 듯하다. KCO는 유럽의 명문 악단들과 나란히 어깨를 견주며 초대권 없이도 가는 곳마다 유료 관객으로 객석을 가득 채웠다. 현지 언론의 호평과 음악계의 관심이 쏟아졌다. 특히 이들이 지난 1월 서울에서 세계 초연한 뒤 런던과 베를린에서 잇달아 선보인 슈니트케의 ‘피아노와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은 연주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KCO는 오는 5월 21일 중국 베이징 국제음악제에 참가해 베이징 예술센터에서 한 차례 연주하고, 10월에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카네기홀(아이작스턴홀)을 비롯해 보스턴, 워싱턴, 필라델피아, 로스앤젤레스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한국의 챔버 오케스트라로 유일하게 국제적 인지도를 확보한 KCO는 이제 더 멀고 높은 곳을 향하고 있다. 지난해 스위스 공연 매니지먼트 회사인 가르트(Gart)사와 계약을 맺었으며, 차차 객원 수석 지휘자를 영입하고, 2관 편성 오케스트라로 재편하는 한편, 상근단원제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궁극적으로는 해외의 명문 챔버 오케스트라들처럼 상시로 해외 연주를 소화해내는 글로벌 악단으로 도약하고자 한다.
지난 4월 중순, KCO의 김민 음악감독을 서울 서초동 스튜디오에서 만나 50주년 기념 월드 투어의 뒷이야기와 앞으로의 비전에 관해 들어봤다.

Q. 창단 50주년 기념 투어 공연의 반응이 매우 좋았다고 들었습니다.

서는 무대마다 굉장한 환대를 받았습니다. 이번 투어는 우리 실내악의 세계화에 자신감을 실어줬습니다. 긴 세월을 함께 한 단원들과 클래식 음악계의 본고장에서 최고의 무대에 올라 기립박수를 받을 때 가슴 벅찼습니다. 물론 앞으로의 과제가 명확해지면서 걱정이 10배 더 많아지긴 했어요. (스크랩된 기사를 보여주며) 언론 리뷰들도 기대 이상으로 잘 나왔습니다. 아직 중국과 미국으로 두 차례의 투어가 더 남았지만 현재까지는 성공적이라 보고 있습니다. 어느 도시보다 런던과 베를린에서 좋은 리뷰를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런던은 평이 짜고 베를린은 청중의 음악적 수준이 굉장히 높기로 유명한데, 여기서 인정을 받아야 유럽 활동의 추진력을 얻게 됩니다. 런던 리뷰의 경우 호평과 더불어 맨 마지막에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가 앞으로 월드 투어 때 런던을 더욱 자주 방문해주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고 썼더라고요. 그 한 줄이 우리를 고무시켰습니다. 우리 연주를 자주 듣고 싶다는 것보다 의미 있는 호평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Q. 어떤 곡이 특히 호평 받았나요?

런던과 베를린에서는 예상대로 배우 존 말코비치가 내레이터로 참여한 슈니트케의 〈피아노와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피아노 크세니아 코간)이 화제가 됐습니다. 연주와 내레이션을 함께 한다는 것이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고, 자칫 ‘할리우드 스타를 데려다가 쇼를 한다’는 오해를 살 수도 있어 걱정했었는데요. 다행히 청중, 평론가, 음악가들 모두 흥미로워하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연주는 한국에서의 세계초연보다 한결 숙성되었습니다. 말코비치는 암보로 내레이션을 했어요. 악보 없이 피아노, 챔버 오케스트라와의 타이밍을 맞추기가 쉽지 않은데 예술가답게 완벽하게 해냈습니다. 런던과 베를린 연주 후 이 곡의 연주 요청만 50회가 넘게 들어왔습니다.
폴란드에서는 현악오케스트라 버전으로 연주한 베토벤의 현악사중주 작품번호 59, 3번 〈라주모프스키〉가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냈습니다. 베토벤 페스티벌의 일환이라 주최 측에서 베토벤의 작품을 선곡해달라고 했는데, 베토벤 작품 중에는 우리 악단에 맞는 챔버 오케스트라 곡이 없어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바르샤바 공연은 전석 매진되어서 관계자용 좌석조차 못 구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자브제의 돔 무지카 탄카홀은 2,000석 규모로 폴란드에서 가장 큰 콘서트홀 중 하나인데 객석을 꽉 채운 청중이 일제히 기립박수로 호응해 주었습니다. 현악사중주곡을 현악오케스트라로 연주한다는 것은 단순히 연주자 수만 늘리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인원이 4성부처럼 똑같이 움직이는 동시에 챔버 오케스트라로서의 풍부한 음향도 들려줘야 합니다. 그래서 많은 연습량을 필요로 하는데요. 그걸 아는 평론가들이 “왜 그렇게 어려운 곡을 택했냐”고 물었습니다. 자브제 공연 다음 날 아침에는 자브제 필하모니 수석지휘자인 슬라보미르 크자놉스키가 흥분된 어조로 이메일을 보내 우리 연주를 극찬하기도 했습니다. 폴란드 투어를 마친 뒤 가트사의 매니저는 “KCO라는 이름으로 세계 공연장에서 충분히 승산 있다. 비즈니스적으로도 긍정적이다”라고 총평했습니다.

Q. 무엇보다 투어 이후 연주 요청이 쇄도한다는 소식이 반갑습니다.

투어를 통해 좋은 평판을 획득하고 새로운 연주 기회를 얻는 것이 바로 우리가 기대한 투어의 성과입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모든 연주 요청을 수용하기가 쉽지 않아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연주 요청이 밀려드는 슈니트케의 곡은 내레이터 존 말코비치가 필요한 데, 그의 본업은 음악이 아닌 연기입니다. 그가 영화 촬영에 들어가면 우리 연주 스케줄에 맞춰 초빙하기가 몹시 어려워집니다. 또, 할리우드 배우로서의 개런티 기준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맞춰 주려면 제작비가 대폭 상승하게 됩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부담이죠. 지난 1월 서울에서 말코비치와 공연할 때도 개런티 부담이 컸지만 50주년의 오프닝 세리모니이고 세계 초연이라는 기록을 가지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보고 결정했습니다.

Q. 저명 챔버 오케스트라가 많은 유럽에서 KCO의 연주가 기립박수를 받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유럽의 청중은 한국은 물론 한국 악단에 대해서도 별로 정보가 없습니다. 선입견이 없는 상태라고 볼 수 있죠. 기대 없이 들었다가 자기네 음악을 이질감 없이 잘 연주한다는 데에 깜짝 놀라고 깊은 인상을 받는 것 같습니다. 또한, 한국인에게는 뜨거운 열정, 일시에 기를 모아 뭔가를 해내는 집중력이 있지요. 우리는 한 번 하면 될 때까지 하니까요(웃음). 그 기운이 청중에게도, 외국 음악가들한테도 강하게 느껴지는 듯합니다. 모스크바와 비엔나 공연이 끝난 뒤 협연자였던 바이올리니스트 핀커스 주커만이 “앞으로 자주 공연하자”고 하더라고요. 지난 50년간 숙성시켜 온 우리 음악을 대가가 알아봐 준 것 같습니다. 주커만과는 5월 10일 서울에서도 다시 한 번 같은 프로그램으로 연주할 예정입니다.

Q. 구체적으로 어떤 과제들이 남아있는지 이야기해주세요.

KCO에 대한 국제무대에서의 평판과 기대가 생기면 그만큼 업그레이드된 연주를 보여줘야 하고, 그들의 연주 요청에 따라 국제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기동성도 갖춰야 합니다. 음악뿐 아니라 악단의 경영, 단원 시스템 등 포괄적인 업그레이드가 필요합니다. 지금까지는 월급을 주고 상근단원을 둘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았고, 연주 수당제로 운영해왔습니다. 오케스트라 단원, 교수 등 각자 직업이 따로 있는 상태에서 KCO활동을 병행했습니다. 주말에 리허설, 퇴근 후 연주회, 휴가 때 해외 투어를 해왔습니다. 이런 상황이니 해외에서 초청이 와도 곧바로 수락하지 못했습니다. 바이어가 “너희 물건을 전부 다 사겠다”하는데 생산 설비 등 인프라가 부족해서 주문량을 못 맞추는 식인 거죠. 전반적인 체제 개편에 3~5년이 소요될 것 같습니다.
KCO는 서양음악을 하는 단체이기 때문에 국내로 활동 범위를 국한하지 않고 유럽 등 본고장에서 인정받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동양의 챔버 오케스트라로서 여기 오기까지 50년이 걸렸습니다. 민간단체로서 정말 힘에 부치는 순간이 많았습니다. 이번 투어 때 받은 한 해외 리뷰에 한국 악단으로서 유럽에 알려진 것은 오로지 서울시향과 KCO뿐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앞으로 훌륭한 국내 단체들이 해외에 나가 인정받고 이름을 알리면 좋겠습니다. 그 전에 최소한의 존립과 활동이 가능하도록, 일회성이 아닌 정부 지원책이 필요합니다.
 
Q. KCO의 해외 공연 역사는 30년에 가까운데요. 그동안 세운 원칙 같은 것이 있나요?

우리의 원칙은 공연 시장에서 해외 연주 단체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겠다는 것입니다. 해외 오케스트라의 내한 공연처럼 우리도 다른 나라의 무대에 가서 KCO라는 이름을 걸고, 티켓을 팔고 당당히 개런티를 받는 것을 말합니다. 지난 2월 1차 투어 당시 런던, 베를린, 모스크바의 모든 청중은 유료 티켓을 들고 입장했습니다. 현지인들이 130유로(한화 약 15만 원)씩을 기꺼이 지불하고 우리 연주를 들으러 온 것입니다. 모든 홍보와 마케팅은 매니지먼트사가 진행했고 우리는 개런티를 받고 연주에만 충실했습니다. 이것이 정상적이죠.
 
Q. KCO는 언제부터 해외 무대에서 제대로 개런티를 받았나요?

1987년 미국에서의 첫 해외 연주는 현대자동차가 미국에 포니 첫 수출을 기념해,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한국 유물전시 기금을 내면서 기념 콘서트 연주자로 초청한 것이었습니다. 현대자동차의 미국법인이 개런티를 낸 셈이죠. 이후 두 번의 동남아 연주는 당시 해외공보처에서 문화 사절 자격으로 보냈습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개런티는 1991년 중국 신천 투어 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액수가 적든 많든 단 한 번도 개런티를 받지 않고 공연한 적이 없습니다. 자신의 능력에 합당한 대가를 받아야 프로라고 생각합니다. 자선음악회나 세계 평화를 위한 특별 음악회라면 개런티를 기부하거나 무료로도 연주하겠지만 그 밖의 경우에는 확고합니다. 초창기에는 해외 시장 개척이 급선무라 단돈 500달러를 받고 연주한 적도 있지만, 이제는 해외 연주 횟수가 130회를 넘어서고 인지도가 올라 개런티가 회당 2~3만 달러 정도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상근단원이 없기 때문에 장기 투어를 통해 개런티 수익을 올리기는 어려운 구조입니다.

Q. 1차 투어의 경우 1주일 동안 유럽 4개 도시에서 연주하느라 굉장한 강행군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여러 나라의 대도시를 매일 항공편으로 옮겨 다니려니 어쩔 수 없었습니다. 영국 런던 사우스뱅크 센터에서의 첫 연주 때 집중하느라 많이 지친 상태였습니다. 연주 후 리셉션까지 끝나니 새벽 1시였어요. 그런데 새벽 3시 반에 기상해서 4시 반에 호텔 체크아웃하고 공항에 도착해 수속하고 오전 8시 비행기를 탔습니다. 악기를 싣고 내리고 하는 데에는 일반 출국 수속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리니 서둘러야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베를린에 도착하니 오후 2시경, 호텔에 짐을 풀고 식사하고 리허설 잠깐 하고 나니 공연 시간이었습니다. 피로를 풀지 못한 채 다음날 똑같이 모스크바로 옮겨 갔습니다. 그나마 모스크바 공연 뒤에는 비엔나 공연까지 사흘의 여유가 있어서 겨우 숨을 돌렸습니다. 중간에 하루씩 쉬면 좋겠지만, 공연장 대관 일정이 맞아떨어지지 않을 수 있고 투어 기간이 길어지면 비용이 크게 증가하기 때문에 기획사 입장에서 다소 무리한 일정을 짤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Q. 단원은 상근제로 갈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비상근 단원제로 여기까지 왔다는 것이 대단하고 자랑스럽지만, 이제는 변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객관적으로 좋은 평가가 나올 때 글로벌 악단으로 완전히 도약해야 합니다. 세계 정상급 음악제나 공연장에서 연주할 기회가 생기면 언제든 해외로 연주 여행을 나갈 수 있어야 하는데 비상근 단원들로는 불가능합니다. 또한 상근제로 운영돼야 리허설을 충분히 함으로써 연주의 질을 높일 수 있습니다. 어차피 객원 수석 지휘자를 영입하고 2관 편성 오케스트라로 확장할 계획이 있었으니 더불어 단원체제도 개편할 계획입니다. 나는 이제 나이가 있어(73세) 한없이 악단을 이끌 수는 없습니다. 누가 대신해도 잘 굴러갈 수 있게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Q. 수석 객원 지휘자 영입계획을 밝혔는데, 염두에 두고 있는 인물이 있나요?

우리 재정으로 감당할 수 있는 외국 지휘자 영입, 국내의 유능한 지휘자 영입, 세계적인 대가와의 제휴. 이렇게 세 가지 안 중에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사회의 이사진들과 상의하고 있습니다.  
    
Q. 만나 뵐 때마다 묻고 싶었던 것이 있는데요. 어떻게 체력을 유지하시나요? 군살 없이 꼿꼿하고 걸음걸이에는 활력이 넘치십니다.

불필요한 일들을 쳐내고 내가 할 일, 내가 좋아하는 일에만 집중하면서 가능한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가지려 한다는 것, 그게 비결이라면 비결입니다. 특별히 운동을 한다거나 몸을 위해 신경 쓰는 것은 없어요.

Q. “버킷 리스트에는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 하나뿐”이라는 생각에 여전히 변함이 없으신가요?

10년쯤 전부터 생각이 굳어져서, 다 정리하고 KCO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내 남은 생은 KCO와 함께 할 일로 꽉 차 있습니다. 한국 챔버 오케스트라의 수준을 어느 정도는 올려놓고 가야 하지 않겠나 싶어요. 만약에 버킷 리스트에 꼭 하나만 더 올리라면, 아메리카 대륙 최북단의 알래스카에서부터 최남단의 칠레 파타고니아까지 서쪽 해안선을 따라 내려가며 여행해보고 싶습니다. 지독하게 험난한 데다가 6개월 이상 소요된다고 하는데, KCO때문에 바빠서 아무래도 못 가지 싶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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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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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5.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