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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사람

옛 것에서 새로움을 길어 올리는
거문고 연주자 이재화

김산효 (국악평론가)
  • 이재화 명인
    이재화 명인


거문고 연주자 이재화는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도 발견되는 거문고의 유구한 역사성을 바탕으로, 악기에 담긴 철학적 의미와 음향학적 합리성에 대해 주목해 왔다. 특히 그는 전통음악계에 거문고 음악 전승과 발전에 대한 구체적 대안을 끊임없이 제시해 왔다. 다수의 거문고 창작음악 자작곡과 잊힌 옛 거문고 명인들의 음악을 복원한 작업들, 그리고 특허 받은 개량 거문고 ‘화현금(和玄琴)’ 등이 그 대안이다. 전통음악의 현대적 수용이라는 가능성을 실연자의 입장에서 입증해 온 그는 현재, 중요무형문화재 제16호 거문고 산조 예능보유자로서 전통의 가치와 맞닿은 이 시대 우리음악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음악 안에 녹여내고 있다.

서울대학교 국악과 및 동 대학원 석사, 한양대학교 국악과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지금은 추계예술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프랑스 ‘세계문화의 집’ 공연을 비롯해 지금까지 총 40여 회의 독주회를 개최했으며, 88분에 달하는 ‘한갑득류 거문고 산조’ 완주회와 북한의 김용실이 작곡한 북한산조, 그 외 7회에 걸친 거문고 협주곡 초연 등으로 거문고 음악의 지평을 넓혀왔다. 2013년에는 국내에서 녹음되어 프랑스에서 출시된 ‘한갑득류 거문고 산조’ 음반으로, 프랑스 ‘샤를 크로 아카데미’ 월드뮤직 음반상을 수상했다.

무대 위, 거문고 연주자 이재화의 모습은 그 어떤 공간적 크기도 스스로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압도적이다. 춤을 추듯 오른손에 쥔 술대를 내려치며, 거문고를 통해 묵직한 울림을 전하는 작은 거인. 평범한 일상의 공간에서 그가 들려준 평생의 반려자 거문고 이야기와 그간의 음악활동, 그리고 앞으로 있을 공연과 활동 계획을 함께 나눠본다.

Q. 작년, 전주세계소리축제 ‘산조의 밤’ 공연 때 뵙고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북한의 거문고 음악을 정리하고, 올해 하반기에 있을 프랑스와 일본 방문 공연 준비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좋은 음악은 건강한 몸과 마음에서 나옵니다. 요즘은 봄의 생생한 기운을 받으면서 몸과 마음을 평온하고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거문고 연주는 일종의 수양과도 같죠.

Q. 수양으로서의 거문고 연주. 어떤 의미인가요?

일단, 연주할 때 몸이 긴장하지 않도록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특히 거문고는 연주를 하다보면 체중을 실어야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몸에 힘이 들어가게 되고, 바로 이 때문에 역으로 몸과 마음이 긴장하게 됩니다. 하지만 자연스럽고 제대로 된 음을 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연주자의 움직임이 편안하고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결국 몸을 이완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숙제이며, 이것은 곧 마음의 수양으로 연결됩니다. 판소리 등에서 발림을 하는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Q. 수양을 비롯한 개인적인 감흥을 넘어, 다수의 관객과 거문고로 교감했던 사례를 소개해주세요.

2011년 프랑스 ‘세계문화의 집’ 공연장에서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한갑득류 거문고 산조’를 연주했는데, 객석에 앉은 프랑스 사람들의 집중하는 기운을 고스란히 전해 받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7번의 커튼콜과 2번의 앙코르 끝에, 겨우 무대에서 내려올 수 있었어요. 당시에는 예상치 못했던 열렬한 환호와 박수에 어리둥절한 기분이 들기도 했죠.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입니다.

Q. 그 외, 기억에 남는 해외 공연은 언제였나요?

2013년 5월, 남미와 프랑스 파리에서 있었던 김영기(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예능보유자) 선생과의 여창가곡 완창공연이 기억나네요. 전통 성악곡 가곡 중에서도 가장 속도가 느리며, 반주악기도 6중주 이상인 ‘이수대엽’을 노래와 거문고 단 둘만의 무대로 꾸몄던 공연이었습니다. 노래가 곡선처럼 선율을 이어가면, 거문고가 장단과 가락을 맺어주고 분할해주면서 음과 양의 조화를 의도했습니다. 객석에서 빛나던 사람들의 눈망울에서 뜨거운 공감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또 그해 10월 네덜란드 우트레흐트에서 가졌던 ‘산조 콘서트’도 인상적이었습니다. 80분 가까운 시간 동안, ‘한갑득류 거문고 산조’를 포함해서 가야금과 아쟁의 산조를 함께 선보였는데, 연주 시간이 너무 짧다며 관객들이 객석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산조에 열광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나 역시 감동 받았습니다.

Q. 해외 관객들의 반응은 국내 관객들의 경우와 비교해 어떤가요?

물론, 국내 무대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습니다. 산조에 대한 이해가 있는 분들이 추임새를 넣기도 하고, ‘귀명창’에 가까운 관객들이 흥을 더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해외 관객들의 ‘반응’은 정말 각별한 것 같습니다. 무대에 앉아 있으면, 연주하는 내내 그들의 기운을 전해 받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러다 연주가 끝나면 폭발적인 반응을 보여 주면서 연주자에게 뜨거운 격려를 아끼지 않습니다. 음 하나 하나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진지하게 몰입하는 태도도 내가 그동안 해외 관객들에게서 발견한 특징입니다.

Q. 전통음악. 그 중에서도 ‘거문고 산조’에 외국인들이 매료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거문고 산조를 접하는 관객들의 마음이 새하얀 백지와 같았습니다. 아무런 편견 없이 그저 순수하게 음악을 듣고 있는 그대로 느끼는 듯 했습니다. 저는 최근 들어, 스승 한갑득(1919∼1987) 명인의 ‘한갑득류 거문고 산조’의 정통을 계승하는 한편, 저 자신만의 거문고 산조 가락을 정리하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산조의 최종 완결은 어디까지나 ‘창작’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이 시대에 필요한 산조란 현대인의 감성을 노래하는 음악입니다. 예를 들어, 정교한 음악적 기교나 해석이 더해지는 가장 느린 박의 ‘진양조’는 전체 구성상에서 길이를 조금 줄이고 동살풀이나 휘모리 같은 2박 계열의 빠른 장단 삽입, 변박과 변청, 타악기적 특성, 저음역대 가락, 효과적인 개방현 활용 등으로 긴장과 이완의 묘미를 한껏 살리는 것이 이재화의 가락입니다. 제가 바로 현대인이기 때문에, 현대인들의 음악적 미감을 함께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Q. 전통곡 외에 그동안 선보인 창작곡들도 많은데요. 요즘은 어떤 작업을 하고 계신가요?

이미 1950년대와 60년대 작곡된 북한의 창작 거문고 음악 13곡을 한국과 미국 무대에서 선보인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그동안 꾸준히 작업해 온, 북한 거문고 음악 정리 작업에 더욱 더 집중하고 있는 중이에요. 특히, 북한의 천재 작곡가 김용실의 음악적 성과를 중심으로, 그가 남긴 거문고 산조와 편곡된 민요곡, 그 외 8곡에 달하는 거문고 창작곡의 악보까지 꼼꼼하게 점검하면서, 매일 시간을 정해 놓고 규칙적으로 연습하고 있습니다. 음악이 무르익는 대로 선보일 예정입니다.

Q. 북한의 거문고 연주곡을 발굴하고 연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거문고 창작음악의 영역에서 간과할 수 없는 결과물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우리나라 공연장과 방송에서도 김용실 작곡의 〈출강〉 같은 곡은 자주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고 순전히 음악적 해석만으로 살펴본 북한의 거문고 창작곡은 매우 치밀하고, 수준 높게 작곡된 곡이 많습니다. 앞으로도 우리음악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자료가 가진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싶어요.

Q. 그 외 창작 작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저의 창작 작업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결과로, 9현과 10현을 겸용한 저음보강 개량 거문고 ‘화현금(和玄琴)’을 들 수 있습니다. 화현금은 기존 6현의 거문고에 현의 수를 더해 음역과 음색을 확대하고, 조성의 변화를 매끄럽게 하기 위해 고안되었습니다. 지금까지 3개의 현 또는 4개의 현을 얹어, 9현 화현금과 10현 화현금을 개발했는데, 향후에는 9현 화현금으로 정착시킬 예정입니다. 저음역대를 강화했으므로, 독주는 물론 국악관현악에도 빠르게 보급될 거라고 봅니다. 이 외에 음양의 조화를 최대한 살린 창작곡들을 꾸준히 발표해 나갈 계획입니다.

Q. 한국문화예술위원회를 통한 해외 문화 교류에 대한 견해를 말씀해주세요.

올해는 한불 수교 130주년을 맞아, 양국 간 다양한 문화 교류가 있을 것입니다. 올해 10월경 프랑스 상상축제에 다시 초대돼, 파리 기메박물관 오디토리움에서 거문고 산조와 시나위를 연주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프랑스를 포함한 그 외 해외 문화예술 부문 교류 사업들은 대중문화로 특화된 한류의 기반을 다지는 것 외에 우리 문화 전반의 역량을 끌어올리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세심한 관심과 지원이 변함없이 이어지길 기대합니다.

Q. 그 외 문화사업들에 대한 생각은 어떠신가요?

공연예술 전반의 발전을 견인해 나갈, 각계각층의 인재 발굴이 절실한 상황입니다. 또, 발굴한 인재들을 지속적으로 지원, 육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마련하고 있는 ‘공연예술분야 전문인력 지원사업’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연예술 분야의 기획자나 전문 경영 인력을 육성하는 일에 더 많은 힘을 기울여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아울러 전통과 인문학의 만남을 주선하는 ‘예술가의집’ 기획 프로그램도 연주자의 입장에서 관심을 갖고 바라보고 있습니다. 전통 풍류방 음악문화를 오늘날에도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전통문화 저변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2015년 하반기 공연계획과 앞으로 포부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세요.

10월에는 프랑스 상상축제에 참여하고, 11월에는 고구려 유민들이 일본에 건립한 ‘고려신사 설립 1,300주년 기념’ 및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 공연에 함께 합니다. 특히 ‘고려신사 설립 1,300주년 기념’의 경우, 고구려의 악기인 거문고가 행사의 취지를 잘 드러낼 것입니다. 한갑득류 거문고 산조 외에 북한의 작곡가 김용실의 거문고 창작곡 〈염원〉과 이재화류 거문고 산조. 작곡과 초연을 맡은 거문고 연주곡 〈고구려의 혼을 찾아서(가제)〉도 현재 공연을 위해서 다듬고 있는 중이에요. 거문고 음악을 통해서 사람들이 연결되고, 마음을 모아갈 수 있음에 감사하고, 앞으로도 열심히 활동해 나갈 것입니다.

긴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 감사드립니다.

즐거운 대화였습니다. 거문고음악의 발전을 위해서 변함없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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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5.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