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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전통 공연을 통한 치유와 화해
살아남은 자를 위무하며,
평화와 공존을 노래한 〈기원과 덕담〉

김선국 (저스트뮤직 대표)
  • 센다이 공연 모습
    센다이 공연 모습
  • 도쿄 공연 모습
    도쿄 공연 모습

삶과 죽음의 경계는 생각보다 멀리 있지 않았다. 공연에 앞서 답사차 방문했던 센다이를 좀 더 알고자 나선 길이었다. 겨울바람이 매서웠지만, 센다이 해안으로 가는 길은 망자(亡者) 생전의 일상처럼 평범한 듯했다. 하지만, 시내를 벗어나자마자 아스팔트 포장따라 마을이 송두리째 사라진 풍광이 차창 밖으로 한참 동안 이어졌다. 쓰나미에 휩쓸렸던 집터의 흔적과 건물의 잔해들이 간간이 보였다. 해안과 상당한 거리에 위치한 곳에서도 무너진 건물에 갇히는 사고가 있었고, 센다이 시내에 위치한 총영사관의 새 건물도 벽에 금이 갔다고 했다. 공식 기록으로 27,000명이 넘는 실종자가 발생했다는 재해의 피해규모를 몸서리치게 느낄 수 있었다.
기원과 덕담(祈願과 德談)... 한일 양국의 복잡한 관계를 문화예술로 풀어내고자 기획된 공연이지만, 살아남은 자들을 위무(慰撫)할 수 있어야 했다. 제목 자체만 놓고 보면 한자문화권인 일본에서도 덕담(德談)은 낯선 단어였다. 일본 학자들도 대체할 일본어를 찾지 못했지만, 유추(類推)한 의미에 이끌리며 공연의 취지를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있는 아기는 수명장수(壽命長壽), 없는 아기는 탄생발원(誕生發願),
건위곤명(乾位坤命) 이 댁전(宅前)에 아들을 낳시면 효자(孝子) 낳고,
딸을 낳이면 열녀(烈女)를 낳아 여러 자손(子孫)을 곱게 길러 백대천손(百代千孫) 만대유전(萬代流傳) 자손창성(子孫蒼生)에 부귀영화(富貴榮華) 누리소서.
명복(冥福)이요 에헤- 살더라도 말씀드린 대로 살게 하소서

이보다 더 큰 축원이 있을까? 유지숙 명창의 〈반메기 비나리〉, 〈축원경〉은 오늘 센다이에 가장 어울리는 곡이었다. 당초 공연의 제목은 〈비나리와 화청〉, 〈고사소리〉를 묶어 유지숙 명창이 출시한 동명의 음반에서 빌려온 것이었다. 유지숙 명창의 〈반메기 비나리〉와 〈축원경〉, 이춘희 명창의 〈회심곡〉, 그리고 김영길 아쟁 명인의 작곡에 양성옥 명무가 춤사위를 얹은 창작무용 〈비나리〉를 중심으로 센다이 공연 프로그램이 확정되었다.

공연 당일에는 센다이에서 신칸센으로 2시간이 넘게 걸리는 아키타의 시골 마을에서까지 관객들이 찾아와 줄을 섰다. 3,000명이 넘는 신청자들 중에 선정된 1,300명의 관객들이 공연장을 가득 메웠다. 최경만 명인의 〈호적풍류〉로 막을 올린 공연 중에는 쉼 없이 박수가 터져 나왔고,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는 관객들이 곳곳에 있었다. 재일교포들은 회심곡, 아리랑이 시작되자 뜨거워진 눈시울을 감추지 못했고, 대지진 희생자 가족들은 양성옥 명무의 〈비나리〉부터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공연이라는 것을 느낀 듯했다.  
프로그램에는 나와 있지 않았지만, 센다이 시민들을 위한 선물로 마련했던 곡은 〈Flowers will bloom(花は咲く, 꽃은 피어나)〉라는 NHK의 동일본 대지진 복구 캠페인에 사용된 노래였다. 송강호 주연의 영화 ‘우아한 세계’의 음악 외에도 수많은 애니메이션 음악을 맡았던 센다이 출신의 칸노 요코가 작곡했으며, 역시 센다이 출신인 영화 ‘러브레터’의 이와이 슌지 감독이 작사했다. 쓰나미로 유명을 달리한 망자의 시각에서 소소한 일상의 그리움을 담았다. 자신이 살았던 마을에서 누렸던 행복했던 시간을 기억하지만, 누군가 노래할 때 여전히 들을 수 있으며, 누군가 울고 있을 때 느낄 수 있다는…. 비통한 슬픔을 더 이상 기억하지 않고 더 이상 추모할 이유가 없어질 때까지 꽃은 계속 피어날 것이라는 서정적인 곡이었다.   
센다이와 도쿄의 관객들은 이 곡이 연주될 때 전율을 느꼈다고 했다. 이지혜(국립국악원 창작악단 가야금수석)의 깔끔한 화성 편곡에 김영길 명인이 아쟁을, 유경화 서울시청소년국악단 단장이 절묘한 철현금 연주를 얹으며 완성했다. 전주부터 박수갈채가 쏟아졌고 결국은 일본 관객들의 눈물샘을 터지게 만들었다. 공연의 마지막까지 그 여운은 식지 않았다.
1973년 완공되었다는 센다이 시민회관은 외관과 무대바닥을 제외하고는 거의 교체하지 않은 상태였다. 아날로그 바튼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조명 콘솔은 1973년형 그대로를 사용하고 있었고, 그 옛날의 알텍렌싱 스피커 역시 교체하지 않고 사용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현지 스태프들의 적극적인 지원과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적인 참여로 공연은 성공적으로 막을 올렸고, 뜨거운 박수로 막을 내렸다.

도쿄에서는 일본 에도시대(江戸時代)를 상징하는 사찰, 고코쿠지(護國寺)에서 두차례 공연이 열렸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가문이 17세기에 도쿄 시내에 건립했으며, 현재는 국가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곳이다. 전국에 80개가 넘는 말사들을 거느리고 있는 대본산(大本山)으로 일본 불교계에서 그 영향력이 상당한 곳이었다. 일본의 민요경연대회가 지속적으로 열렸던 곳이기도 했으며, 본당 천정에 그려진 금(琴)과 적(笛), 비파 등의 벽화가 인상적인 곳이었다.
프로그램의 구성에 변화가 필요했다. 이춘희 명창, 최경만 명인, 양성옥 명무가 센다이 공연을 마치고 귀국했지만, 가야금 명인인 김해숙 국립국악원 원장의 특별 공연이 포함되어 있었다.
명인들의 연주는 관객의 숨소리가 무대에까지 들리는 150석의 작은 공간을 순도 높은 전통음악으로 가득 채웠다. 철현금, 아쟁의 독주에 이어 가야금산조, 유지숙 명창의 기원소리에서 마지막 곡 아리랑까지 전통음악의 선율이 이어졌다. 관객들의 반응은 센다이보다 한층 더 강렬했다. 작은 악기 소리와 서도민요의 밀도있는 농음이 그대로 전해진 탓일까? 한일관계의 냉랭한 의제들을 미뤄둔 채 일본 관객들은 환호했고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일본의 언론계, 학계, 문화계와 주요 기관의 인사들이 참석했으며 고코쿠지의 성실한 지원도 성황리에 공연을 마치는데 중요한 부분이었다. 두 번의 공연을 모두 관람했던 관객들은 연주자들에게 전해줄 선물을 준비했으며, 마지막 인사를 나선 연주자들에게 사인을 받고, 사진을 찍는 시간이 길어졌다. 고코쿠지의 53번대 오카모토 관수(貫首)는 90세의 나이에도 이틀간의 공연을 모두 관람한 후 공연단의 서연호 단장과 김해숙 명인에게 기쁜 마음을 숨기지 않고 여러 번 감사의 뜻을 표했고, 공연이 끝난 후에도 쉽게 공연장을 떠나지 않은 관객들의 인사도 계속 이어졌다.
센다이와 도쿄 공연에 참여한 이춘희 명창, 최경만 명인, 양성옥 명무, 김영길 명인, 유지숙 명창, 유경화 단장, 이지혜 국악원 수석단원 그리고 김해숙 국립국악원장과 공연단을 이끌었던 서연호 단장까지…. 이번 공연단이 보여준 화합과 배려, 철저한 준비로 만들어진 무대는 일본 4개 도시 투어를 제안받았다.
과거사에 대한 사죄문제와 독도 문제로 쉽게 풀리지 않는 한일관계의 정치적 의제를 뛰어넘어 우리의 전통음악과 무용으로 일본 관객들에게 감동을 선사하며 많은 갈채를 받은 무대였다. 잊지 못할 무대를 만들어주신 공연단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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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5.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