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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동규의 이심전심
“중요한 것은 변하지 않는다”

이동규 (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
  • “중요한 것은 변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변하지 않는 것은 이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라는 말 뿐이다.” 이것은 현재 지구촌 문제아로 급부상한 그리스 고대 철학자의 말이다. 모름지기 역사(history)란 바로 그 사람의 이야기다. 저 아름다운 에게해와 찬란한 헬레니즘 문명의 수도인 그리스 아테네가 처한 국가부도 위기를 보며 다시 한 번 역사의 아이러니를 깊이 되새기게 된다. 2천 년 전 미개하기만 하던 갈리아족의 독일이 이젠 정신적 지주이자 스승인 그리스인들의 명줄을 쥐고 있는 형국이니 무덤 속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이 울고 갈 일이다.

빚더미 위의 그리스가 채권단의 협상안에 대한 국민투표에서 반대를 선택했다. 1940년 무솔리니 정권이 침공해왔을 때 굴복하는 대신 ‘오히(Oxi: 반대)’를 선언, 이탈리아군을 막아낸 바 있던 그리스 국민은 예상 밖의 개표 결과가 나오자 마치 월드컵 경기에서 승리나 한 듯이 길거리로 몰려나와 환호했다. 아테네 의회 앞 신타그마 광장을 뒤덮은 인파는 ‘오히!’와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의 이름을 연호했다. 이번 투표 결과는 그동안 긴축으로 인한 고실업과 경제난에 가장 큰 고통을 받아온 청년층과 저소득층이 유로존 탈퇴(Grexit)도 불사한다며 몰표를 던진 덕분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과거 유로존 편입 이래 선진국이 되었다는 착시 현상에 빠져 흥청망청해온 그리스가 허리띠 졸라매기를 거부하는 간덩이 부은 채무자가 되었건, 무책임한 정치인들이 내민 동반자살 유서에 집단 서명하였건 간에 그들은 낭떠러지 끝에 섰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지나간 90년대 말 IMF 구제금융 당시 우리나라 사정이 영화장면처럼 오버랩 되면서 다가오는 것은 비단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당시 우리 국민은 현재 그리스처럼 배 째라 식은 아니더라도, 미셸 깡드쉬 IMF 총재의 협박에 저항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순진하게 바로 꼬리를 내린 건 아니었나 하는 대목이다. 물론 구제금융 역사상 최고로 빠른 시간 내에 졸업한 우수학생이었다고 하지만 그 대가는 너무나 아프고 쓰렸다. 같은 처지에 있던 말레이시아는 한마디로 “니 맘대로 하세요”라고 버티고, 인도네시아는 아예 “그럼 우리는 밀림에 들어가 바나나만 먹고 살겠다”라고 억지를 부린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유격대에 갓 들어온 신임 훈련병처럼 국제금융 교관의 지시에 따라 뒤도 한번 안 돌아보고 바로 절벽에서 뛰어내린 꼴이라고나 할까. 그 후 30%가 넘는 살인적인 고금리 수준에다 돈이 될 만한 우량기업의 주식과 보유 알짜 부동산들이 무더기로 외국인들의 손아귀에 넘어간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물론 그 후 강력한 제조 기반시설과 정신력으로 놀라운 회복력을 보인 한국은 과감한 구조조정과 IT 투자 등을 통해 경제를 빨리 회복시켰다. 특히 전 국민이 동참한 ‘금 모으기 운동’은 세계적으로 찬탄과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신혼부부의 돌반지 부터 장롱 속에 꼬불쳐 둔 할머니 쌍가락지까지도 들쳐 나왔다. 그때 모은 금 총합계가 23억 달러어치였다는데 유일한 호황이 금을 다는 저울 판매였다는 웃지 못 할 이야기도 함께 전해져오고 있다. 이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진 많은 외국인들이 도저히 이해 못할 일은 무능한 정치가와 관료들이 잘못한 걸 가지고 왜 애꿎은 내 반지를 빼내야 하는가 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 이후 불과 수년 전 세계를 강타한 글로벌 금융위기 때에도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이를 극복한 국가로 자리매김했다. 주요 외신들은 한국의 경이로운 오뚜기 회복력을 평가하며 ‘교과서 사례(Textbook Recovery)’라는 제목을 달았다. 역시 한국인들의 위기극복 능력은 가히 세계 최강 수준임이 틀림없다.

한편, 전국이 홍역을 치른 메르스 사태도 깊이 들여다보면 반드시 잃은 것만 있는 건 아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시스템을 구축하고 지독했던 사스도 완벽히 막은 한국이 뚫린 건 분명 수치임이 틀림없다. 일부 언론의 호들갑도 한몫했지만 가장 큰 원인은 역시 관료주의에 있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엔 숨도 쉬기 힘든 방호복을 입고 사투를 벌인 의사, 간호사, 그리고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있다. 그것은 마치 임진왜란 당시 세계사에 유례없는 의병, 승병운동을 방불케 하는 감동의 명장면들이었다. 그동안 이념 갈등 등으로 찢겨져온 우리 내부의 속살이 드러나는 민망함도 적지 않았지만, 모처럼 전 국민이 한마음으로 단결하여 위기를 돌파해나가는 강인한 민족 원형질을 발현시킨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될 것으로 믿는다.
     
# 또 하나의 장면. 최근 극장가를 강타하고 있는 〈연평해전〉이다. 연일 신기록을 쏟아내고 있는 관람객 행진은 지난 10여 년간 조국을 위해 싸우다가 죽어간 그들을 잊고 지낸 부끄러움과 진실의 무지에 대한 반성이 화학적으로 결합하며 정서적 감동을 이끌어낸 것이라 볼 수 있다. 특히 2030세대가 가장 감동하는 걸 보면, 기성세대가 목숨을 걸고 지켜온 조국의 가치를 어려움 없이 자란 우리 아이들이 제대로 알기나 하는 건지 의심했던 것이 기우였음을 느끼게 해준다. 역시 면면히 이어져온 역사의식은 할머니의 된장국처럼 우리 민족 내에 고스란히 유전되어 왔음이다. 나아가 중요한 것은 과거 미국 군대를 소재로 한 영화 〈A few good man〉의 주인공처럼 깊은 조국애를 품은 이들은 우리 사회에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이다.

‘사필귀정’이라 했던가. 우리들 인생에서 많은 일들이 여러 가지로 꼬이고 뒤틀리곤 하지만 결국 시간이 가면 모두들 제자리에 찾아 앉게 되는 역사의 자정작용을 믿게 된다. 결국 그리스 정치가들의 포퓰리즘과 국민들의 착각의 대가는 혹독할 것이다. 그리고 메르스를 겪은 국민들의 안전과 보건의식, 방역시스템은 분명 몇 단계 업그레이드될 것이며, 전쟁이 나면 우리 젊은이들은 선배들보다 더 치열하고 영리하게 조국을 지켜낼 것이다.  

진심은 언젠가 통하고. 진실은 거짓을 이기게 되며, 밝음은 어둠을 물리친다는
단순하지만 깊은 진리….

모처럼 그걸 보게 되었다.
역시 중요한 것은 변하지 않는 법이다.


이동규
이동규

국내 대기업과 공공기관의 경영·정책 자문 교수, 행자부 정부혁신관리위원(대통령 표창), 대통령직속 지역발전위원회 평가위원을 거쳐 기획재정부 공공기관 정부경영평가단 팀장을 역임하였다. 현재 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국생산관리학회 부회장, 품질경영학회, 서비스경영학회, 문화예술경영학회 이사를 맡고 있다. 기타 행정자치부 정책자문위원, 한국철도공사(KR) 경영자문단 CS위원장, LG 그룹 경영 자문 교수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인의 경영코드』(21세기북스) 외 품질경영과 서비스 분야에 관한 10여 권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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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5.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