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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사람

뮤지컬 〈빨래〉의 극작가 겸 연출가 추민주

장지영 (국민일보 기자, 공연 칼럼니스트)
  • 극작가 겸 연출가 추민주
    극작가 겸 연출가 추민주

뮤지컬 〈빨래〉가 올해 10주년을 맞았다.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졸업 작품으로 만들어져 2005년 4월 일반 대중에 처음 선보인 〈빨래〉는 소극장 창작 뮤지컬 붐을 일으킨 일등공신이다.
〈빨래〉는 서울의 달동네를 배경으로 서점 비정규직 직원 나영, 외국인 노동자 솔롱고, 반신불수 딸을 돌보는 주인할매, 동대문시장에서 장사하는 희정엄마 등 소시민의 일상과 사랑을 유쾌하면서도 감동적으로 그렸다. 초연 당시만 해도 뮤지컬 넘버가 7곡밖에 안 되는 등 아쉬움도 있었지만 여느 뮤지컬과 달리 사회성 짙은 내용으로 주목받았다. 덕분에 그해 한국뮤지컬대상 최우수작품상 후보에 올랐고 극본·가사상을 거머쥐는 기염을 토했다.
이후 〈빨래〉는 뮤지컬 넘버를 늘리고 스토리에 살을 붙이는 등 작품을 계속 업그레이드시켰다. 그리고 2009년 상반기 두산아트센터 공연부터 뮤지컬 넘버 18곡을 비롯해 지금과 같은 형태로 최종 완성했다. 이때 가수 임창정과 뮤지컬 배우 홍광호가 출연해 대중적 인지도를 높이는데도 성공했다. 덕분에 그동안 2~3개월 단위로 띄엄띄엄 공연되던 〈빨래〉는 2009년 7월 말부터 폐막일을 정하지 않은 오픈런 공연 중이다. 지금까지 50만을 넘는 관객이 다녀갔다.
〈빨래〉의 제작사 씨에이치 수박은 10주년을 기념해 지난 6월 10~14일 기념공연을 가졌다. 당시 출연 배우를 공지하지 않는 블라인드 캐스팅에도 불구하고 기념공연 6회분은 티켓 오픈 1시간 만에 전부 매진됐다. 그리고 기념공연에는 그동안 출연했던 배우 123명 가운데 49명이 참여했다. 〈빨래〉의 극작가 겸 연출가 추민주에게 10주년의 소회를 들어봤다.


Q. 올해 10주년을 맞은 소감은 어떻습니까?

우선 행복합니다. 솔직히 〈빨래〉가 10년 동안 공연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니까요. 그동안 이 작품을 거쳐 간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르네요. 특히 도움을 줬던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Q. 10주년을 맞기까지 어려움도 많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힘든 순간이야 많았죠. 특히 초반엔 〈빨래〉를 둘러싼 상황이 많이 열악했어요. 한예종을 졸업하고 몇 달 만에 국립극장에 나왔을 때 저와 동료들은 공연계로 나왔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했어요. 덕분에 작품을 수정하고 재공연하면서 대관, 홍보마케팅 등 수많은 현실적인 문제들과 부딪혔죠. 게다가 수박이 동인제 극단으로 시작된 탓에 경영 면에서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극단 멤버들 모두 자신의 일을 가지고 있다 보니 경영을 전담할 사람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극단 멤버로 영화계에서 의상감독으로 활약하는 최세연 씨가 2012년부터 경영을 맡고 수박을 법인으로 만들면서 안정이 됐습니다.

Q. 〈빨래〉는 처음 등장했을 때 사회성 짙은 내용으로 주목받았습니다. 당시 비정규직 및 외국인 노동자와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소재로 한 연극은 나왔었지만 뮤지컬은 〈빨래〉가 처음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야기는 제가 한예종 시절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던 것들을 토대로 썼는데요. 연극으로 만들면 너무 심각할 것 같았어요. 하지만 뮤지컬이라면 음악에 실린 가사를 통해 관객이 좀 더 정서적으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빨래〉에 앞서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보면서 가능성을 확인했어요.

Q. 〈빨래〉가 한예종 졸업 작품으로 처음 만들어졌을 때 참가했던 멤버들을 보면 추민주 씨 외에 작곡가 민찬홍, 무대디자인 여신동, 무대감독 김태형, 솔롱고 역의 민준호, 마이클 역의 이재준 등은 현재 대학로에서 내로라하는 창작자들입니다. 특히 지난 10년간 국내 공연계를 강타한 뮤지컬 열풍의 주역들인데, 어떻게 이렇게 모일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당시 한예종은 뮤지컬이 조만간 공연계에서 자리 잡을 것으로 예상하고 커리큘럼을 만들었습니다. 저를 포함해 〈빨래〉에 참가했던 동료들은 당시 커리큘럼을 이수한 첫 번째 학생들이었어요. 당시 한예종 교수님들께선 해외 배낭여행을 갔다가 뮤지컬을 보고 오는가 하면 1990년대 가요의 전성기를 경험한 세대가 뮤지컬에 관심이 많을 것이라고 판단하셨던 듯해요. 뮤지컬 창작 수업은 극작, 연출, 음악, 연기, 무대, 의상 등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모여 프로덕션을 꾸리는 실기 수업이었죠. 그때 자주 작업을 같이하면서 마음이 맞았던 친구들이 졸업 작품인 〈빨래〉에 참가했습니다.  

Q. 한예종 졸업 작품 〈빨래〉에서 같이 작업했던 동료들 가운데 작곡가 민찬홍은 지금까지 뮤지컬 〈두근두근 내 인생〉 등 여러 작품에서 계속 함께 했는데요. 뮤지컬에선 극작가-작곡가 콤비의 호흡이 중요한데, 그동안 작품을 만들면서 의견이 부딪히거나 한 적은 없나요?

서로 싸운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우선 작품의 음악 콘셉트에 대해 서로 상의를 한 뒤 세부적인 것은 의견을 교환하며 수정합니다. 기본적으로 가사가 나온 뒤에 음악이 나오는 형태인데요. 작품의 완결성을 위해 때로는 실컷 준비한 음악과 가사를 버려야 할 때가 있는데, 서로에게 오히려 미안해하죠.

Q. 〈빨래〉는 초연 이후 여러 차례 업그레이드 됐는데요. 배우들의 도움도 적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어떤 부분인가요?

2008년 대학로 원더스페이스 무대에 오를 때 그동안 생각만 하고 있던 아이디어를 많이 추가해 개작했어요. 2009년 두산아트센터 공연이 최종 완성본이긴 하지만 그 전에 에피소드와 넘버가 거의 틀을 갖춘 게 이때였습니다. 당시 연습하는 과정에서 배우들의 애드리브를 실제 대사로 한 것도 꽤 있었는데요. 〈빨래〉의 생활감이 두드러지게 된 게 이때부터라고 생각해요. 특히 주인할매 역의 이정은 배우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정은 배우를 포함해 당시 출연한 배우들과 치열하게 연습하면서 〈빨래〉가 완성되었던 것 같아요.

Q. 〈빨래〉가 최종 완성된 이후 내용 중에 바뀐 부분은 없나요?

대사 가운데 나오는 최저임금은 매년 바꾸고 있어요. 그 외에 배우들이 등퇴장 하면서 애드리브를 하는데, 그때그때 조금씩 달라요. 예를 들면 올 상반기에는 ‘땅콩 회항’을 애드리브에 녹였어요.

Q. 지난 몇 년간 일본에서 ‘한류 뮤지컬’ 붐이 있었는데, 작품마다 성패가 많이 엇갈렸어요. 〈빨래〉는 K-pop 스타에 의존하지 않고 작품성만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추민주 씨가 직접 연출까지 맡아 작품의 본질을 제대로 표현하는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일본의 퓨어메리라는 제작사에서 〈빨래〉의 라이선스를 구입했습니다. 2012년 도쿄와 오사카에서 공연됐는데요. 당시 한국 뮤지컬로는 처음 일본 요미우리신문에 리뷰가 실렸으며, 이듬해 일본 뮤지컬 전문잡지 ‘뮤지컬’이 선정한 ‘2012 뮤지컬 베스트 10’ 6위에 선정됐습니다. 올해 재공연 중인데요. 지난 2월 도쿄 공연 이후 교토 등 9개 도시 투어를 마쳤고, 올가을 나고야 등 8개 도시 투어가 예정돼 있습니다.

Q. 최근 10주년 기념공연에 맞춰 〈빨래〉의 중국 라이선스 계약 사실을 발표했습니다. 창작뮤지컬 가운데 일본과 중국에서 모두 라이선스 공연되는 경우는 극히 드문데요.

내년 1월 베이징과 상하이에서 한국 버전이 공연된 후 5월부터 베이징을 시작으로 중국 버전의 투어 공연이 예정돼 있습니다. 제가 이번에도 직접 연출을 맡았습니다. 원래 중국 제작사인 클리어씨 홀딩스 대표가 10주년 기념공연에 참석해 계약 사실을 공동으로 발표하려고 했는데, 메르스 때문에 영상으로 대신한 게 아쉬워요. 중국 버전은 일본 버전을 만들면서 겪었던 시행착오를 줄여서 더욱 잘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일본 버전의 경우 배우 캐스팅은 일본 제작사에서 했지만 중국 버전은 제가 직접 오디션에도 참여하는 만큼 기대가 큽니다.  

Q. 〈빨래〉가 10년째 장기공연 되는 것은 물론 해외에서도 잇따라 라이선스 공연되는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빨래〉 일본 버전에 출연했던 배우 노지마 나오토의 경우 〈빨래〉에 대한 애정 때문에 직접 한국 버전에까지 출연하기도 했고, 일본에서는 〈빨래〉의 넘버를 가지고 한국어를 배우도록 한 책까지 나왔다죠?

솔직히 3~4년 전만 해도 〈빨래〉를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개작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도 했었는데요. 〈빨래〉에서 다루고 있는 비정규직이나 외국인 노동자 문제 등이 지금은 물론 앞으로도 유효한 이야기여서 계속 이 이야기를 끌고 가려고 합니다. 실제로 관객 중에 작품 속 나영이가 자신의 이야기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가 한국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 역시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빨래〉를 좋아하는 것 같고, 〈빨래〉의 동시대성을 생각할 때 20주년 기념 공연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이 듭니다. 최근 10주년 기념공연을 마친 후 10년을 끌어온 힘에 대해 다시 생각했는데요. 역시 공연은 한 개인의 힘이 아니라 집단의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공연 제작사의 형태를 갖추고 있지만 그간 함께 한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있었기에 〈빨래〉가 있습니다. 특히 창작자인 저를 지지하고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는 저의 동반자 최세연 대표의 노력과 정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Q. 〈빨래〉는 극중 여러 장면과 넘버들이 중·고교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는데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아마 〈빨래〉가 교과서에 실린 것은 한국에서 다문화 사회에 대한 이슈가 점점 커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옥상에서 솔롱고와 나영이 함께 빨래를 넌 뒤 솔롱고가 나영의 손을 잡는 거에요.

Q. 〈빨래〉의 영화화 제안도 심심치 않게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난 10주년 기념공연 당시 최세연 대표는 추민주 씨가 앞으로 독립영화를 만들면서 영화기법을 익힌 뒤 5년쯤 후에 〈빨래〉를 직접 영화화 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또한 영화화에 앞서 올해 안에 〈빨래〉를 소설로 만드는 작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는데요.

우선 〈빨래〉의 소설화는 이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뮤지컬에는 넣지 못했지만 극중에 나오는 인물들 각각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구상했거든요. 예를 들어 외국인 노동자 솔롱고의 경우 나영과의 관계 외에도 공장을 중심으로 여러 이야기를 쓸 수 있으니까요. 영화는 늘 관심이 있는 장르여서 조만간 본격적으로 공부를 해보고 싶습니다.  

Q. 추민주 씨의 신작을 기대하는 팬들이 많은데요. 올해 준비하는 신작에 대해 미리 귀띔해 주세요.

지난 4월 한 달간 일본 치바에서 머물며 글을 썼는데, 그 글을 바탕으로 〈에덴 미용실〉이란 연극을 준비 중입니다. 미용실에 사는 중학교 2학년 소년이 주인공인데, 어머니를 도와 손님들의 머리를 감기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정서상 〈빨래〉와 가까운 이야기입니다. 의도치 않았지만 빨래에 이어 머리 감기기 등 무엇인가를 씻는 이야기가 됐습니다.


  • 뮤지컬 <빨래>
    뮤지컬 〈빨래〉


(사진: 씨에이치 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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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5.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