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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동규의 이심전심
“고추와 와사비”

이동규 (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
  • “고추와 와사비”


최근 벌어지고 있는 롯데 그룹의 내분을 두고 여러 가지 해석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제기되고 있는 문제의 핵심은 과연 롯데 경영의 정체성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롯데란 작명은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여주인공 샤롯데에서 따왔다고 한다. 작은 풍선껌을 팔던 롯데가 이룬 업적은 놀라운 것이 아닐 수 없다. 흥미로운 것은 일본에서 시작한 사업이 한국에서 훨씬 크게 성공했다는 사실이다. 더불어 일본식 경영방식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세계의 경영방식은 크게 미국식 경영과 일본식 경영으로 나눌 수 있다. 미국식 경영은 한마디로 야구다. 포디즘(Fordism)으로 상징되는 GM식 경영이다. 예전에는 “GM에 좋은 것은 미국에도 좋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이에 반해 일본식 경영은 럭비다. 팀워크는 훌륭한데 개인기는 떨어진다는 거다. 따라서 경쟁에 익숙한 미국인의 개인기와 일본식 단결력을 접목하려 노력해온 것이 조직혁신의 역사다.

예전에 『일본인에 이기고 일본제에 지는 이유』라는 책을 보고 제조업 세계 최강국에서 교훈을 얻고자 했던 기억이 있다. 지난 70년대 이래 한국의 경제발전 화두는 한마디로 세계 2위의 부자나라인 ‘일본 따라잡기(Catch-up Japan)’였다. 당시에는 학일(學日), 모일(模日), 극일(克日)이라고 하는 3단계 처방도 널리 유행하였다. 국내 최고 삼성그룹의 경우도 일본식 단어인 ‘관리(管理)’의 삼성이라 불려 왔다. 그러나 삼성은 2000년대 중반을 계기로 전자산업의 거인 소니(Sony)를 뉴욕 증권거래소(SEC)에서 시가총액으로 누르고 기적을 만들어냈다. 포니-엑셀로 시작한 현대차도 10년 이상의 지독한 품질과의 전쟁(Quality Journey)을 통해 글로벌 5대 메이커에 올랐다. 기타 반도체, 조선을 필두로 과거 디스플레이 황제였던 샤프(Sharp)를 제압한 지 오래이며, 모바일 폰에서도 마찬가지다.

바야흐로 내년에는 구매력평가(PPP) 기준 1인당 소득이 일본을 추월한다고 하니 참으로 격세지감이 든다. 참고로 세계은행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전 세계 GDP 총 108조 달러 중 명목상 GDP 순위 1위 미국(17.4조 달러)이 여전히 중국(10.3조 달러)을 큰 차이로 앞서고 있으며, 3위는 인도(7.4조 달러), 4위는 일본(4.6조 달러)이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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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일본이란 나라는 실용을 숭상하는 전통을 가진 나라로서 현장기술에 뛰어난 특성을 보여 왔다. ‘이(理)보다 공(工), 공보다 술(術)’이란 말은 이러한 일본 기업의 특성을 잘 드러내는 말이다. 서구에서 개념이 만들어지면 이를 응용하여 전혀 다른 물건으로 개량해내는 점에 있어선 독보적인 위상을 차지해왔다. 원래 방송용 카메라를 가정용 캠코더로 만들어낸 것이나, 인공위성에 쓴 안테나 소재였던 형상기억합금(SMA)을 여성용 브래지어에 적용하여 공전의 히트를 친 것도 일본기업이었다. 따라서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엔지니어를 보유한 세계적 엔지니어링 강국이 되었다. 또한 일본은 ‘모노쯔꾸리’라 하여 물건을 만드는 데 있어선 혼을 바쳐 세계 최고로 만든다는 비장함이 들어가 있다. 과거 일본 제품의 상징인 오토바이, VTR, 워크맨 등은 바로 이러한 장인정신의 대표 산물이다. 혼다 소이치로의 창업철학인 ‘3 기쁨론’, 즉 ‘만들어 기쁘고, 팔아서 기쁘고, 사서 기쁘다’라는 것도 이러한 정신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세계 최강 일본 제조업의 기함이 바로 도요타(Toyota)이다. 도요타의 창업은 194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도요타 생산방식(TPS)은 자동차뿐 아니라 일본 산업 전체에 퍼져 강력한 경쟁력의 원천이 되어 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연산 1천만 대를 돌파하며 드디어 GM을 제치고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의 자동차 회사로 등극한 도요타는 몇 년 전 미국 리콜사태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역대 최고의 성과를 내고 있다. 이외에도 일본 제조업을 떠받치는 힘은 수많은 핵심 부품업체의 존재다. 더욱이 일본은 엄청난 석유 위기, 엔고 등 수많은 역경을 거치고도 더욱 강한 모습을 보여 온 저력 있는 나라다.

한편 ‘일본인은 과연 누구인가?’라는 근본 명제에 대해 인류학자인 루스 베네딕트 여사의 명저 『국화와 칼』을 보면, 일본인의 민족 특성을 빗대어 'But Also 민족'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예컨대, 친절하지만 동시에 잔인한 민족이라는 극단의 양면을 다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속(혼네)과 겉(다떼마에)이 다르다고 알려진 것과 상통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일본에 관한 우리의 태도 역시 극단적이다. 일본이 국제적으로 존경받기는 어려운 나라지만, 일본인 중에는 상당히 훌륭한 사람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국토의 크기만 해도 통일 독일보다 큰 나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일본은 없다’, ‘가깝고도 먼 이웃’ 등등 의도적인 무시를 이어오고 있다.

한동안 욘사마식 한류가 일본열도를 뒤흔든 때가 있었다. 그러나 현재 그 열기는 시들어지고 대신에 혐한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반면 국내 길거리에 나가보면 어느새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주점이나 식당은 온통 왜색 이자까야와 로바다야키 판이다. 더욱이 아베노믹스의 영향으로 엔저를 등에 업은 일본 기업의 경쟁력은 어느덧 전성기를 회복하고 있다.

최근 한·일간 인스턴트 라면의 교류사를 흥미롭게 풀어낸 『라면이 바다를 건넌 날』의 저자, 무라야마 도시오 씨는 인터뷰에서 “한국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화끈하게 야단치지만 시간이 흐르면 싹 잊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대해준다.”고 했다. 겉과 속이 다른 일본인들에 비해 정직하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순진하다고 느껴지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지난날 우리가 처절히 당한 과거는 절대 잊을 수도, 잊어서도 안 되겠으나 평생 한 맺힌 트라우마를 움켜잡고 살 수도 없다. 기성세대 중엔 일본에 대해 밉지만 부러운 상대라고 생각한 사람들도 많았겠지만, G20 의장국이자 UN 사무총장을 배출한 지금 신세대들은 전혀 다르다. 오히려 원전사고 터진 일본에 안 태어난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 스시에 와사비가 없으면 제 맛이 아닌 것처럼, 고추가 없으면 김치가 아니다. 와사비는 코를 찌르지만 고추는 뇌를 찌른다.

이제는 우리가 선진 G7국과 어깨를 견주는 경제 대국이 된 시점이다. 원래 국가 간 이웃치고 사이가 좋은 경우는 별로 없다. 좁은 해협 하나를 두고 100년 전쟁을 해온 영국과 프랑스를 보라. 우리가 이사를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보면 이제 일본과 우리의 관계는 달라져야 한다. 과거 역사를 부정하고 위안부 문제에 오리발로 일관하는 그들의 행동을 보면 피가 거꾸로 솟을 이야기지만 외국과의 관계, 즉 외교는 그런 기분으로만 할 순 없는 일이다. 외교와 협상을 가리켜 마음에 안 드는 여자와 춤추는 방법이라고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이제 경술국치 1세기이자 본격적인 태평양 시대를 맞고 있다. 보다 거시적 안목에서 한·중·일 3국의 새로운 역할 분담, 경제와 안보의 동아시아 지역협력의 장이 절실한 시점이다. 한·일 관계의 명제도 과거의 극일을 넘어 공진화를 바라보며 한·일 관계 3.0 시대를 열어나가야 할 것이다.


이동규
이동규

국내 대기업과 공공기관의 경영·정책 자문 교수, 행자부 정부혁신관리위원(대통령 표창), 대통령직속 지역발전위원회 평가위원을 거쳐 기획재정부 공공기관 정부경영평가단 팀장을 역임하였다. 현재 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국생산관리학회 부회장, 품질경영학회, 서비스경영학회, 문화예술경영학회 이사를 맡고 있다. 기타 행정자치부 정책자문위원, 한국철도공사(KR) 경영자문단 CS위원장, LG 그룹 경영 자문 교수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인의 경영코드』(21세기북스) 외 품질경영과 서비스 분야에 관한 10여 권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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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5.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