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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과거의 소환과 동시대적 재구성 ― 역사와 기억
과거 공간 사옥에서 행해졌던 다양한 예술 장르의 실험적 무대로서의 공간사랑을 재조명함으로써 현대무용의 현주소를 밝혀보고자 한국공연예술센터와 공동으로 주최한 국립현대무용단의 ‘공간사랑 컨템퍼러리 프로젝트’가 지난 7월 25~26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무대에 올려졌다. ‘역사와 기억’이라는 국립현대무용단의 2014년 프로젝트 주제에 가장 핵심적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보여진 한국 현대무용 1세대들의 렉처 퍼포먼스 〈우회공간〉을 통해 과거와 지금의 동시대적 무용에 대한 질문과 소극장 공간사랑이 갖는 의미를 생각해보자.
김수근, 공간, 그리고 공간사랑의 추억

정재숙 (중앙일보 논설위원, 문화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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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근’ 하면 대형 포스터 두 장이 떠오른다. 한 장은 주황색 전지에 2000년도까지 숫자만 빼곡하게 인쇄한 달력이다. 1980년대 중반, 김수근 선생 생전에 제작된 그 낱장 달력은 사람들이 미처 21세기를 내다보기도 전에 미래를 가슴에 얹는 희한한 경험을 하게 했다. 또 한 장은 2009년 7월 『공간』 통권 500호를 맞아 그간 간행한 ‘SPACE’를 몽땅 모아놓고 찍은 사진이다. 서울 원서동 공간사(空間社) 붉은색 벽돌을 배경으로 나란히 선 500권 잡지 모습은 장쾌하고 우람하다. 김수근 선생의 얼굴이 그 위에 겹쳐진다.
건축가 김수근(1931~1986)은 큰 인물이었다. 거인이었다. 건축이란 개념도 없던 1961년 이 땅에 돌연변이처럼 나타나 한국 현대건축의 틀을 세운 시대의 건축가였다. 건축가가 집장사 정도로 치부되던 1980년, 건축가 김원 씨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선생에게 재판장이 “증인이 유명한 건축가 김수근입니까?”라고 물었다는 일화가 있다. 그런 선생조차도 푸대접받았던 게 건축을 대하는 한국 풍토였다. 1979년 서울 대학로 옛 서울대학교 자리에 선 문예진흥원 미술회관(현 아르코미술관) 신축 준공식장에 설계자로 참석한 그는 주빈석이 아닌 일반석에 앉는 홀대를 당했다.

l 김수근 건축은 사라지고 있다

그로부터 40년 가까이가 흘렀다. ‘이럴 수가.’ 문자 그대로 기가 막혔다. 세워진 지 반백 년이 안 된 건물이 원형을 많이 훼손당한 채 구슬프게 쭈그리고 서 있었다. 사람으로 치면 장애인이랄까. 지난 7월 26일 오후, 서울 장충동 2가 산 5의 19번지. 지금은 결혼식 홀과 대형 음식점으로 바뀐 자유센터 본관 앞에서 ‘김수근 건축 작품 투어’팀은 잠시 말을 잊었다. 국립현대무용단이 2014년 시즌 프로그램 ‘역사와 기억’의 일환으로 기획한 〈우회공간〉의 부대 프로그램 ‘김수근 건축 다시보기’는 우리가 얼마나 오랫동안 중요한 것들을 망각하고 허겁지겁 살아왔는지를 반성하게 했다.
자유센터는 1963년 건립 당시, 당대의 세계적 건축 개념과 기술에 뒤지지 않는 혁신적 건물이었다. 이제 그 걸작은 졸작이 돼버렸다. 노출 콘크리트 열주의 당당함은 덧대진 빗물 홈통들과 촌스러운 페인트칠 등으로 옹색해졌다. 역동적으로 하늘을 받치던 지붕의 율동성 역시 건물을 가려버린 자동차 극장용 대형 스크린 탓에 죽어버렸다. 해설을 진행하던 이범재 단국대 명예교수는 “50년밖에 안 됐는데 이걸 지키지도 못하니…” 말을 잇지 못했다. 건축을 부동산쯤으로 치부하는 우리 사회는 예술품을 부수는 데 대한 개념조차 없다. 그래서 한국일보 구사옥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우석대학병원 정문도 아무도 모르는 새 없어졌다. 제대로 남은 것보다 없어지고 망가진 것이 더 많다.
7월 25~26일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무대에 오른 〈우회공간〉은 과거 소극장 공간사랑에서 진행된 컨템퍼러리 무용 1세대의 추억을 현재로 불러와 동시대적 춤을 생각해보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당연히 판을 벌였던 소극장 공간사랑을 같이 불러와야 했고, 그러자면 그 설계자이자 소유주였던 김수근 선생을 회상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건축가 김수근에 대한 평가는 아직 현재진행형이라고 볼 수 있다. 그의 건축세계와 별개로 시대와 맞물린 선생의 행적을 우리는 아직 왈가왈부 단언할 수 없는 시점에 머물러있다. 다만, 2013년 11월 김수근 건축의 원형이라 할 서울 원서동 공간(空間) 사옥이 모기업인 공간종합건축사사무소의 부도 탓에 매각되고, 새 주인인 천안 아라리오 갤러리가 그 건물을 다른 용도로 변경하며 새삼 한국 문화지평에서 그가 남긴 것들을 되새김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얼마 전 돌아가신 춤 평론가 조동화 선생 말씀대로다. “그(김수근)는 가지고 온 것 다 쓰고 너무 많은 것을 남긴 사람이다. 모두 써버렸는데 더 많은 것이 남았다면 얼마나 잘한 장사인가. 멋진 일이다.”
이번 건축 작품 투어 준비 팀은 원래 공간 사옥에서 투어를 시작하려 했다. 당연하고도 합리적 선택이었다. 하지만 9월 1일 개관전을 준비하고 있는 아라리오 갤러리 측의 협조를 얻어내는데 실패했다. 그래서 자유센터, 경동교회, 샘터사옥, 아르코예술극장과 아르코미술관을 일별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다만, 투어를 마친 뒤 든 생각은 다음 달 모습을 드러낼 공간이 제발 그다지 많이 망가지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었다. 부디, 기도하는 심정이 됐다.

l ‘김수근의 정신’이나마 길이 살아남기를

한마디로 ‘원형은 사라졌다.’ 김수근 선생 밑에서 제자이자 협력자로 일했던 이범재 교수는 설계 변경이든, 건물 구조 개조든 도대체 원 설계자 측에 연락하는 일이 없는 이런 몰상식이 어디 있느냐고 허탈해했다. 경동교회를 빛나게 하던 옥상 노천 교회는 지붕을 덮은 실내 강당으로 변했다. 순례의 명상 길을 만들어주던 붉은 벽돌담은 증축 과정에서 헐려나갔다. 아르코예술극장 꼭대기 뒤편엔 어울리지 않는 회색 건물이 덧대졌다. 그나마 아르코미술관 뒤쪽을 막고 있던 담을 헐어내 제 모습을 살린 점이 위안이 되었다.
투어가 끝나고 이어진 무대는 격한 사이렌 소리로 시작됐다. 남정호, 안신희, 이정희 씨의 춤은 우리를 30여 년 세월 저 너머로 데려갔다. 몸이 기억하는 우리의 1970년대와 80년대는 징글징글하면서도 애틋하고 저릿저릿하면서도 오달졌다. ‘저들 몸짓 속에 김수근의 정신이 숨 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김수근 다시보기’가 필요한 까닭이다.
1966년 11월 창간된 문화예술 종합월간지 『공간』은 전통문화의 가치를 알아채고 현대적 예술 흐름과 동행할 수 있는 이론적 바탕을 담아냈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오광수 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등 오늘 한국 문화계의 핵심 인물로 일하는 많은 인사가 『공간』의 실무자였다는 건 그 한 방증이다. 그건 잡지라기보다는 하나의 시대정신이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일에 이로운 전통문화의 얼을 우리에게 전해준 메신저였다. 한국미, 한국문화의 원형을 탐구했던 수많은 논문들, 자료와 사진들이 생물처럼 살아 숨 쉬던 문화재급 잡지 『공간』은 막막하고 답답했던 한 시절을 견디게 한 통풍구였다.
소극장 공간사랑은 또 어떤가. 이제는 한국을 대표하는 공연 양식인 사물놀이가 태어난 곳, 우리 문화 판에 ‘전위’의 개념을 날것으로 전파했던 홍신자의 춤이 선보인 곳, 현실에 침을 뱉던 극단 76단의 〈관객모독〉이 객석을 흥분시켰던 곳이다. 그 핵심 동력이었던 김수근 선생을 미국 잡지 『타임』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후원자였던 로렌초 데 메디치에 빗대 ‘한국의 로렌초’라 소개하기도 했다.
나무상자 680개가 수천수만 가지 무대를 창조하던 공간사랑은 신축성이 뛰어난 만물상 극장이었다. 우리 옛 사랑채의 정신을 이어받아 ‘공동체 의식’이 피어났고, 한옥 마당이 품었던 환경친화적 가변극장의 힘을 뽐냈다. 어머니의 자궁을 연상시키는 어둑하고 편안한 실내에 들어서면 사람들은 모든 걸 내려놓고 태초 저편으로 쉽게 편입되곤 했다.
 
l 다시 울리는 저 사이렌 소리…  

춤 공연은 시작과 마찬가지로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지며 끝났다. 그것은 하나의 경고이자 상징이다. 오랜만에 나를 돌아보게 됐다는 남정호, 객석과 나누는 에너지의 교감이 되살아난다는 안신희, 그로테스크한 검고 긴 머리로 한국적인 것에 대한 서늘한 질문을 던지는 이정희 씨가 몸으로 물었다. 과거 소극장 운동의 전위였던 공간사랑은 우리에게 무엇이었을까. 사이렌 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쟁쟁하다.
김수근 선생은 한국 건축에 개념을 불어넣은 점으로 평가받는다. 학교는 이렇게, 단독주택은 저렇게, 오피스빌딩은 그런 모양새로 짓는다는 진부한 얼개 정도만 있던 한국 건축계는 그의 등장으로 철학의 틀을 잡고 이론의 뼈대를 세웠다. 하지만 그가 맹렬하게 일한 시기는 박정희 정권이 국토를 다잡았던 1970년대다. 선생은 ‘한국적’인 것에 매달려야 했고, 유신 정권의 모토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멋, 모태 공간, 전통 등에 집착한 뒤에는 어쩔 수 없는 시대 배경의 멍에가 있다.
선생이 막 그 강박관념에서 벗어나려던 때 신은 그를 데려가 버렸다. 100세 넘게 장수하는 이가 유독 많은 건축계에서 그는 불과 55세에 서두르듯 세상을 떠났다. 2000년까지 할 일을 세워놓고, 2000년까지 인쇄된 달력을 만들었던 ‘유명한 건축가 김수근’, ‘한국의 로렌초 데 메디치’를 여기 추모한다.


  • 샘터사옥
    샘터사옥

    (사진: 김수근문화재단)
  • 아르코예술극장
    아르코예술극장
  • 타워호텔
    타워호텔


‘공간사랑 컨템퍼러리 프로젝트’는 하반기에 〈여전히 안무다〉(8월 31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아카이브 전시 및 퍼포먼스 〈결정적 순간들〉(10월 17일~11월 30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자료원) 등의 프로그램을 전개하면서 다각적 관점과 입체적 조망을 형성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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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4.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