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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2014년 문화예술계의 성과와 한계
문화융성의 토대가 되기를 기대했던 2014년 문화예술계는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의 비극적인 사고로 그 어느 때보다 힘든 고통과 극한의 위기를 경험하면서 전 분야의 활동과 흐름에 악영향을 미쳤다. 이와 같은 기조 속에서 이루어진 다양한 활동 중에서 뚜렷한 경향성을 보인 2014년 문화예술계의 활동을 간추려 살펴보면서 2015년을 내다본다.
2014년의 연극을 돌아보며

김미도 (연극평론가, 서울과기대 교수)
  • 역사의 속살을 드러낸 한 여인의 기록 혜경궁 홍씨 이윤택 작/연출 창작희곡 페퍼토리 2014.12.16-12.28 국림극단 백성회장인호극장, 2014.3.15.sat~3.30.sun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여극의 연습-극장편 남산 도큐멘타, 앵콜 만주전선 소극장시월, 환도열차

2014년을 결산하는 연극계 뉴스들이 속속 전해지고 있다. 한국연극평론가협회는 2014 연극 ‘베스트 3’로 이윤택 작·연출 〈혜경궁 홍씨〉, 크리에이티브 VaQi 공동창작·이경성 연출 〈남산 도큐멘타: 연극의 연습-극장편〉, 이양구 작·연출 〈복도에서〉를 선정했다. 한편, 월간 「한국연극」은 2014 공연 베스트 7에서 초연작으로 극단 골목길의 〈만주전선〉, 국립극단의 〈혜경궁 홍씨〉, 예술의전당의 〈환도열차〉, 구리아트홀&극공작소 마방진의 〈홍도〉를 선정했다. 재공연작 중에서는 극단 인어의 〈변태〉, 아동청소년극 부분에서는 극단 하땅세의 〈붓바람〉, 해외 공연으로는 LG아트센터&일본 호리프로의 〈무사시〉가 선정되었다. 곧 발표가 이어질 동아연극상과 대한민국연극대상에는 어떤 작품들이 선정될지 기대가 크다.
한 해 연극의 결실은 결국 좋은 작품들에 달려있다. ‘베스트 3’와 ‘베스트 7’에 공통으로 선정된 〈혜경궁 홍씨〉는 이윤택이 거장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 가운데 배우 김소희가 절정의 연기를 보여주었다. 박근형이 〈만주전선〉을 통해 오랜만에 수작을 생산했고, 〈남산 도큐멘타〉를 연출한 이경성, 〈환도열차〉를 쓰고 연출한 장우재, 〈홍도〉를 연출한 고선웅 등이 우리 연극의 총아로 부상하고 있다.

연극평론가협회의 ‘베스트 3’ 심사에 참여하면서 올해는 제작 극장들의 위력이 점점 더 커지고 있음을 절감했다. 베스트로 거론되는 작품들이 명동예술극장, 남산예술센터, 예술의전당, 국립극장, 국립극단, LG아트센터, 두산아트센터 등에서 주로 생산되었기 때문이다. 제작 극장 중심의 프로듀서 시스템은 안정적인 제작 여건 하에서 중극장 규모의 번듯한 작품들을 양산한다는 미덕이 있다. 그러나 중극장의 객석 규모를 먼저 고려하다 보니 흥행성을 강하게 의식하지 않을 수 없고, 이는 레퍼토리 선정에서 대중성을 우선하는 경향을 낳고 있다. LG아트센터와 명동예술극장이 고급스런 대중극으로 입지를 굳혔고, 예술의전당도 그러한 경향을 강하게 내비친다. 잘 만들어진 대중극의 양산은 연극 관객의 확산에 크게 기여하고 있으며 최근 들어 특히 장년층과 노년층 관객들이 현저히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미덕의 이면에 제작 극장들에서는 실험적인 프로덕션을 찾아보기 어렵고, 심지어 제작 극장들의 위세에 짓눌려 대학로 연극이 점차 왜소해지고 있음을 목도한다.

중극장 규모의 연극이 확대되면서 나타난 또 하나의 부작용은 주요 연출가들을 제작 극장에서 분주히 모셔감에 따라 역시 대학로 연극을 위축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연출가 중심으로 독특한 칼라를 유지하던 몇몇 극단마저도 대학로에서의 공연 실적이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 연출가들은 중극장에 불려가 극장 측의 요구와 대중성을 의식하다 보니 자신만의 개성적 스타일을 구축해가기에 어려움이 많다. 연출가 중심으로 재편된 연극판에서 이미 작가들은 실종 상태인데 연출가들의 무대적 글쓰기마저 독창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한국 연극의 미래는 밝지 않다.
제작 극장들이 실험적인 프로덕션을 많이 꾸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올해에 실험성 강한 수작들은 또 결국 제작 극장들을 통해 생산되었다. ‘베스트 3’에 들어간 〈남산 도큐멘타: 연극의 연습-극장편〉이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제작 극장들 중에서 실험성이 가장 강한 곳은 여전히 두산아트센터이다. 두산아트센터는 해마다 매우 특색 있는 기획 시리즈를 만들어왔는데 올해는 ‘불신시대’를 주제로 〈베키쇼〉, 〈엔론〉, 〈배수의 고도〉와 같은 문제작들을 올렸다. 11월에 ‘판소리 단편선’으로 올린 〈추물/살인〉도 매우 참신한 기획이었다.

명동예술극장이 제작한 〈한때 사랑했던 여자에게 보내는 구소련 우주비행사의 마지막 메시지〉와 〈반신〉, 예술의전당이 제작한 〈별무리〉를 올해 가장 실험적이면서도 신선했던 작품들로 꼽고 싶다. 세 작품은 자연과학의 영역으로 인식의 지평을 넓히면서도 저마다 새로운 형식의 글쓰기 방법론을 개성적으로 보여주었다. 창작극이 아니라서 유감이지만 바로 우리 극작가들에게 매우 귀감이 될 만한 작품들이었다. 한편, LG아트센터가 제작한 입센의 〈사회의 기둥들〉은 1877년 작 임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우리 정치 사회 현실을 은유하는 강력한 메시지로 잘 쓰여진 희곡의 위력을 과시했고 공연의 앙상블도 좋았다.
〈사회의 기둥들〉을 연출한 김광보를 올해 최고의 연출가로 꼽고 싶다. 그는 올해 가장 다작을 연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작품 하나하나를 매우 수준 높게 일구어냈다. 〈스테디 레인〉, 〈줄리어스 시저〉,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도 김광보 연출의 정교한 손길을 거쳤다.
소극장 공연에서는 박근형의 〈만주전선〉과 김현탁 연출의 〈자전거〉(오태석 작)가 평론가들 사이에 많이 회자되었다. 두 작품은 제각기 연출의 독보적인 스타일이 빛나는 작품들임에도 불구하고 기존에 보여준 수준에서 좀 더 높은 단계로 비약하진 못했다. 소극장들 중에서는 선돌극장을 가장 자주 찾은 듯한데 그만큼 의미 있는 작품들이 많이 공연되었다는 얘기다.

창작희곡의 성과가 부진했던 것은 가장 큰 아쉬움이다. ‘창작산실’ 프로그램을 통해 발표된 작품들의 공연 성과가 썩 만족스럽지 못했던 것이 창작극 부진의 주요 요인 중 하나이다. 이미경 작, 문삼화 연출의 〈맘모스 해동〉과 장우재 작·연출의 〈미국아버지〉가 그중 주목을 끌었다. 장우재는 상반기에 공연한 〈환도열차〉와 함께 최근 가장 중요한 극작가로 급부상 중이다. ‘2014 서울연극제’에서 대상, 연출상, 희곡상을 수상한 〈만리향〉(정범철 연출)의 작가 김원을 기억해 둘 만하다.
대부분의 연극에서 연출가가 극작을 겸하는 형태가 보편화되면서 내용은 빈약하고 형식주의에 치중한 공연들이 넘쳐나고 있다. 연출가 중심의 연극들은 대개 어떤 강력한 콘셉트에서 출발하며 그 콘셉트들은 대부분 기발하다. 그러나 장면화 과정에서 플롯을 구성하는 능력이나 글쓰기의 치밀함이 부족한 경우가 허다하다. 콘셉트가 채 무르익지 않은 장면들, 맥락을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들의 배치, 어설픈 구성을 난해함으로 위장하고 그에 자조하는 관객들, 현란한 장면들의 전시 끝에 남는 공허함 등은 연출가 중심의 연극이 해결해야 할 숙제들이다.

올해 공연의 경향 중에서 가장 고무적인 일은 ‘창극의 현대화’이다. 국립창극단이 김성녀 예술감독 주도로 박차를 가해 온 창극의 혁신 작업이 올해에 놀라운 성과들을 낳았다. 특히 고선웅 연출의 〈변강쇠 점 찍고 옹녀〉와 안드레이 서반 연출의 〈다른 춘향〉은 창극의 본질을 지키면서도 혁명적인 변화를 통해 젊은 관객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이끌어냈다. 〈다른 춘향〉은 너무 파격적이고 일부 거친 구석이 있으나 창극이 어디까지 진화할 수 있는지, 그 미래적 지향점을 밝혀주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청소년극에서도 상당한 발전이 보인다. 청소년극의 범주인 이양구의 〈복도에서〉가 ‘베스트 3’ 사상 처음 포함되었고, 국립아동청소년극단의 작업들이 매우 고무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가운데 〈타조에서〉가 연일 매진 사례를 기록하며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청소년극이 단순히 교훈적인 메시지를 주려는 것에서 벗어나 우리 청소년들의 현실을 심층적으로 그려내며 청소년 관객층을 꾸준히 확대해 나가고 있다.

2014년 연극계는 연초부터 매우 시끄럽게 출발했었다. 연극평론가인 김윤철 교수가 국립극단 예술감독으로 선임된 데 대한 일부 연극인들의 거센 반발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연출가가 맡아오던 자리를 평론가가 맡게 된 것, 대학에서 정년까지 1년을 비상근으로 근무해야 한다는 점이 가장 큰 이슈였다. 대학로에서 궐기대회가 열리고 국립극단 앞에서 1인 시위가 전개되는 등, 상당히 불화의 기운이 있었으나 김윤철 예술감독은 올 한 해 동안 매우 의욕적으로 작품 제작에 전념해왔다.
국립극단은 올해 엄청나게 많은 작품들을 올렸다. 그러나 공연 성과 면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은 거의 없다. 레퍼토리의 선정이 전임 예술감독 하에서 이미 이루어진 일이라 해도 현 예술감독이 공연의 질은 적극적으로 보장해주어야 한다. 연극 공장도 아니고 왜 그렇게 많은 공연 물량을 쏟아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심각한 반성이 요구된다. 국립극단이 태작을 양산하고 있는 것은 국립극단 자체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많은 프로덕션 때문에 역시 대학로 연극을 위축시킨다. 수많은 연출, 배우, 스태프들이 국립극단에 종사하느라 대학로를 비우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 국립극단의 ‘삼국유사 프로젝트’는 다섯 작품이나 올라갔지만 철저히 실패했다. ‘삼국유사’를 동시대성으로 연결시키라는 주문이 있었는지 작가들은 대체로 오늘의 현실과 뭔가 접점을 만들어내느라 안간힘을 썼지만 한결같이 억지스러웠다. 젊은 작가들이 과연 ‘삼국유사’를 얼마나 이해하고 고민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결과들이었다. 그러나 젊은 작가들을 탓하기에 앞서 충분한 작업시간이 주어졌는지, 프로젝트의 지향점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나누었는지 묻고 싶다. 애초부터 그렇게 주문제작형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프로젝트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두 번에 걸쳐 똑같은 실패를 반복하고 있는 이유를 참 납득하기 어렵다. 왜 공모제도를 운영하지 않는지, 더 훌륭한 기존의 삼국유사 소재 작품들은 왜 고려하지 않는지 의문투성이다. 여론의 질타에 밀려 또 이 프로젝트를 성급히 걷어치울까도 걱정된다. 삼국유사를 토대로 우리의 훌륭한 창작극을 제작해보겠다는 의도 자체는 얼마나 소중한가. 방법이 틀렸으면 방법을 고쳐야지 목적 자체를 폐기처분할 일은 아니다.
국립극단은 올해 신임 예술감독 하에서 새로운 시리즈들을 시작했다. ‘근대극 재조명 시리즈’로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가 공연되었고, ‘세계명작 클로즈업’의 첫 무대로 〈우리는 영원한 챔피언〉이 올라갔다. 근대극 시리즈에 올라 있는 작품들은 그 의미에 대한 충분한 설명과 함께 한국 연극의 명작으로 재탄생하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세계명작 첫 무대는 레퍼토리 선정에 대해서 또 말들이 많았다. 국립극단의 방향성에 대한 공적인 논의들이 좀 활성화되면 좋겠다. 국립극단은 무엇보다도 우리의 명작 레퍼토리들을 내실 있게 축적해가야 하다.  

연말에 접어들면서 연극계는 다시 뜨거운 논쟁에 휩싸여 있다. 서울연극제가 2015년도 아르코 예술극장과 대학로 예술극장의 대관심의에서 탈락한 때문이다. 대관 심의 기관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고, 탈락 사유는 서울연극제의 부실한 운영 탓으로 알려지고 있다. 35년이나 지속되어온 연극계의 가장 크고 중요한 행사가 난관에 부딪치게 된 상황을 서울연극제 주최 측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워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서울연극제의 부실 운영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서울연극제를 사수하고 정상적으로 치러질 수 있도록 지혜를 모으면서 행사의 구조적 모순을 개선해 나가는 것이 2015년의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서울연극제뿐 아니라 사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의 운영도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 올해 SPAF의 해외 초청작들은 명확한 콘셉트 없이 무분별하게 초청되었고, 일부 작품들은 공연의 질이 검증되었는지가 의심스러운 수준도 있었다. 해외 페스티벌에 프린지로 참가했던 작품을 공식 초청작으로 불러놓고 고가의 관람료를 매기기도 했다. 국내 초청작들 중에도 초청 기준에 의구심을 갖게 만드는 작품들이 있었다. SPAF를 책임감 있게 이끌어갈 예술감독이 부재중인 부작용으로 볼 수 있다.
표류하고 있는 ‘서울연극제’와 ‘서울국제공연예술제’가 어떻게 제대로 방향타를 잡을 수 있을 것인가. 축제의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는 이 난국이 언제나 극복될지 모르겠다. 연말을 맞아 공연 물량은 또 엄청나게 쏟아지고, 외양으로는 축제 분위기지만 연극계의 산적한 고민거리들은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개인적인 작업에만 몰두하지 말고 공론의 장을 활성화시켜 서로 머리를 맞대고 이 난제들을 현명하게 풀어나가야 한다. 연극인 모두에게 한국연극의 역사와 전통에 대한 책임 있는 의식이 필요하다.


[기사입력 : 2014.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