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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움'과 '다름'이 큰 힘이 되기를
연극계, 신진예술가 지원제도에 거는 기대

이경미 (연극평론가)
  •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AYAF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AYAF
  • 서울연극센터의 뉴스테이지
    서울연극센터의 뉴스테이지
  • 두산아트센터의 두산 아트랩
    두산아트센터의 두산 아트랩


모든 것이 과잉인 시대, 그런데 다른 것, 뭔가 특별한 것, 새로운 것을 갈망하는 주기가 점점 짧아진다. 인간의 욕망이, 물질이 차서 흘러넘치는 것보다 훨씬 앞서 가기 때문이다. 도무지 만족이 없다는 것, 그것이 21세기 현재의 삶을 힘들게 한다. 예술도 그렇다. 지난 100년이 넘는 시간을 지내오면서 예술은 소위 다른 것, 새로운 것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시도를 했었다. 전통을 조롱했고, 형식을 흩뜨려 놓았으며, 관객을 흔들어놓았고, 그래서 예술이 무엇인가에 대한 화두도 새로 고쳐 쓰고자 했다. 예술 간의 경계를 넘고 현실과의 선을 허물고, 과학기술에까지 문을 연 예술은 이제 그 차원이 삼차원이 아닌 n차원으로 확장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상은 현실이 되는가 싶게 그 이상의 또 다른 상상의 동기가 되곤 한다. 그런데 그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예술(가)의 갈증은 더 커졌다. 예술을 보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때그때 무대는 관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지만, 돌아서면 여전히 허전하다. 이 또한 과잉 속 결핍이라면 결핍일지도 모른다. 대체 이유가 뭘까. 연극으로 말하면 결국 극장 밖의 현실 때문이다. 연극이 무대로 소환해 오던 현실이 점점 이해 불가능, 제어 불가능의 지경이 되더니, 급기야 어떤 연극의 언어로도 대응하기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방향이 크게 몇 개로 나뉜다. 그중 하나는 그럴수록 현실에 대응하기를 단념하고 무대 안쪽으로 움츠러들어 관습적인 언어로 예술가 자신의 욕망을 현시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식으로 건 현실을 향한 언어를 새로 만들고 적극 확장하려는 것. 물론 우리에게 필요한 건 후자다.

그래서인지, 한 해가 마무리되고 새해가 시작되는 지난 12월에서 올해 2월까지 젊은 예술가들의 무대를 찾아가 만나는 것은 색다른 즐거움이었다. 이들의 언어는 때로는 미숙하고 추상적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거침없고 열정적이었다. 한 해 동안 공연장을 찾아다니며 느낀 식상함에 심드렁해질 무렵, 극과 현실이 만날 수 있는 새로운 지점들을 발견하는 일, 그리고 이들의 무대를 통해 다음 해가 되었건, 그다음 해가 되었건 언젠가는 다양한 모습으로 꿈틀댈 새로운 연극의 기운들로 향후 연극의 지형을 가늠해보는 것은 관객의 한 사람으로 꽤나 의미가 있었다.

얼추 잡아 작년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신진’, ‘차세대’, ‘영(young)’, ‘랩(Lab)’의 이름을 빌려 젊은 연극인들을 지원해준 프로그램은 대충 다음과 같다. 첫 번째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AYAF(ARKO Young Art Frontier)’다. 연극에서부터 무용, 전통, 다원에 이르기까지 만 35세 이하 작가, 연출가, 극작가, 안무가, 작곡가, 기획자 등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1차 서류심사, 2차 프레젠테이션 심사를 거쳐 작년 4월 총 20명의 창작자들이 선정되었다. 이중 연극 부분 선정자는 김명환(〈개똥벌레〉), 이은서(〈바냐삼촌〉), 임지민(〈타이니슈퍼펜션〉), 윤혜숙(〈작은문공장〉), 전성현(〈174517〉) 총 다섯 사람이었다. 둘째, 서울연극센터의 유망예술지원 사업인 ‘뉴스테이지(NewStage)’다. 경력 10년 미만의 창작자를 대상으로 하는데, 작년 3월 공모를 통해 이래은(〈날개, 돋다〉), 김수정(〈안전가족〉), 구자혜(〈디스 디스토피아〉 등 총 세 명의 연출가가 선정되어 공연을 마쳤다. 셋째, 두산아트센터의 ‘두산 아트랩(Doosan Art Lab)’이다. 2010년도부터 운영된 이 프로그램은 만 40세 이하 젊은 예술가들의 잠재력 있는 프로그램을 실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지원기간이 따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상시 접수가 가능하며, 별도로 구성된 심사위원 없이 서류심사 및 개별 인터뷰를 통해 극장이 직접 창작자를 선정한다. 이 역시 AYAF처럼, 연극뿐 아니라 다원, 무용 등 다양한 장르를 지원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문화예술위원회의 ‘AYAF’나 서울연극센터의 ‘NewStage’가 응모기간이 따로 정해져있고, 대상 역시 신진예술가들의 새 작품으로 한정한다면, ‘두산 아트랩’은 응모기간이 별도로 없으며, 기존에 공연되었던 작품까지도 대상에 포함시킨다는 점이다. 두산 아트랩의 지원을 받아 이번 1, 2월에 공연된 작품은 총 6편으로, 이중 연극은 〈치킨게임〉(극단 파랑곰), 〈다페르튜토 스튜디오〉(다페르튜토 스튜디오), 〈여자는 울지 않는다〉(이보람), 〈브레인 컨트롤〉(정진새) 등 네 작품이었다.  
이번 세 사업을 통해 연말, 연초 무대에 오른 작품은 연극만 추려보아도 12편이니, 결코 적은 숫자라고는 할 수 없다. 앞서 말했듯 이들 작품의 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도 편차는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젊은 창작자답게 극장 밖 현실에 대한 그들의 연극언어는 대체적으로 매우 구체적이고 직접적이었다. 전통적인 글쓰기 방식으로부터 의도적으로 벗어난 과감한 해체적 언어로 재난과 절망의 참극을 감각적으로 표현한 희곡이 있었는가 하면(전성현 〈174517〉), 정치와 연극, 게임의 기묘한 삼각구도 안으로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정치, 언론의 자화상을 가져와 냉소적으로 비틀어버린 공연이 있었다(극단 파랑곰 〈치킨게임〉). 연극이 무엇인가에 대해 연극 스스로 과감하고도 도전적인 질문을 시도하고 그런 질문 자체를 공연으로 만드는가 하면(다페르튜토 스튜디오 〈다페르튜토 스튜디오〉), 영화의 언어를 연극 특유의, 그것도 지극히 물질적인 언어로 변화시켜 현대의 우울한 기형적 자화상을 그로테스크하게 표현한 공연도 있었다(김수정 〈안전가족〉). 정치, 사회, 심지어 연극 자체에 대한 냉소와 조롱, 절망과 우울, 그러면서 그 안에서 스스로 새로운 대안들을 찾아내려는 그 실험들은, 확실히 중대형극장의 커다란 무대, 중견 연출가의 세련되고 안정된 수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새로움을 선사했다.   

이들 신진 예술가 지원프로그램의 세부 내용이나 운영방식은 다소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극계는 물론이고 지원제도 안에서도 상대적으로 소외될 수밖에 없었던 젊은 연극인, 새로운 언어를 적극 발굴, 지원하겠다는 의지는 이들의 공통된 화두다. 여기에 한 가지 주목할 만한 미덕이라면, 선정 대상에 지원금을 적당히 배분해 주는 것이 전부인 다른 지원제도와 달리, 하나의 작품이 ‘제대로’ 무대에 오를 수 있도록 여러 가지 과정적 장치들까지 다양하게 마련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선정된 창작자들에게 연습공간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이고, 워크숍이나 낭독회, 전문가 멘토링, 선정된 예술가들 간의 네트워킹 등 무대화에 필요한 다양한 과정적 지원을 한다. 이는 유난히 인적, 물적 자원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젊은 창작자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환경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이들 사업은 선정된 예술가뿐 아니라 이들을 지원하는 주체가 함께 하나의 작품, 하나의 구상이 구체적으로 실현될 수 있게 함께 ‘실험’하고 함께 ‘모색’을 하는 공동 프로그램으로서의 성격이 짙다. 또 한 가지, 연극은 다른 어느 예술보다도 관객과 구체적으로 만남으로써 비로소 완성되는 예술이다. 젊은 창작자들에게 그들의 언어를 공간화할 여러 제도적 장치들을 마련해주었다면, 마찬가지로 관객들에게도 이들 작품을 극장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 또한 적극 마련해주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들 신진 지원프로그램은 해당 공연에 대한 홍보에도 매우 적극적으로 나서주었다.   
하지만 이 사업들 가운데 어떤 사업이 과연 젊은 예술가들에게 이상적인 환경을 제공해주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단언적으로 말할 단계는 아니다. 선정에서 공연까지의 과정 전체가 매우 다양하고 입체적인 단계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과정과정들이 실제로 예술가에게 얼마나 생산적 장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시간을 두고 기다려보아야 할 것 같다. 아울러 이 사업들이 단순히 일회성 지원에서 끝날 것이 아니라, 무대에서 어떤 식으로 건 한번 자신의 목소리를 낸 창작자들이 계속해서 작품을 만들 수 있는 또 다른 의미의 후속적 환경들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일회적 공연을 올리는 신진은 많은데, 제대로 연극계를 향해 새로운 흐름을 조성하고 이끌어가는 신진들은 정작 없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여하간 공공기관을 비롯해 민간극장이 신진예술가들이 무대에 오를 기회를, 그것도 거기까지 도달하는 모든 과정을 보다 체계적이고 입체적으로 보완해 제공하고 있고, 그것이 하나 둘 결실을 맺고 있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새로움이, 다름이 혼란의 시대, 연극의 역할에 대한 자기 성찰과 모색이 필요한 시대에 미래적 답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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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5.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