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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위해
동화의 나라 스웨덴을 가다

원유순 (동화작가)
  • 고틀란드 섬의 Writer's Center에 머물며 그 근처의 풍경 사진
    고틀란드 섬 근처의 풍경 사진
  • 말뫼도서관
    말뫼도서관

몇 년 전 북유럽을 여행할 때 스톡홀름에서 하룻밤을 머문 적이 있다. 슬쩍 지나치기에는 너무나 아름다운 도시였고, 무엇보다 스웨덴이 동화의 나라였기에 진한 아쉬움이 남았는데, 레지던시 작가로 선정이 되었다는 통보를 받고는 밤잠을 설칠 정도로 마음이 달떴다. 더욱이 좀처럼 얻기 힘든 북구의 겨울을 체험할 수 있어서 신비감과 더불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한편으로 ‘한국문학세계화’라는 거창한 타이틀이 붙은 사업의 사명을 띠고 떠난다는 중압감으로 마냥 즐겁지는 않았다.
하지만 역시 낯선 땅으로의 떠남은 기쁨과 설렘이다. 또한 언제든지 도와줄 준비가 되어 있는 현지 대사관과 언니 같은 최정례 시인과 함께인데 무엇이 두려우랴.
스톡홀름의 시월은 우리의 늦가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딜 가나 곱게 물든 단풍과 아름다운 호수를 마주할 수 있어 탄성이 절로 나왔다. 낮이 더 짧아지기 전에 우선 발품을 팔아 최대한 여러 곳을 돌아보리라 마음먹었다. 작가 레지던시라는 게 들어앉아 글만 쓰는 게 아닐 터. 더 많은 경험과 식견을 넓혀 앞으로 좋은 글을 쓰라는 뜻일 게다. 그래서 아침만 먹으면 배낭 하나 달랑 메고, 무작정 숙소를 나왔다.

3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있으니 박물관과 갤러리 등 실내관람은 뒤로 미루고, 우선 야외를 돌아보기로 했다. 그중에서도 스웨덴의 국민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홈타운, 빔메르비를 방문한 것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일이다. 린드그렌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삐삐 롱스타킹’ 외에 ‘미오 나의 미오’, ‘라스무스와 방랑자’ ‘지붕 위의 칼손’ 등 백여 권에 달하는 작품을 썼는데, 어린 시절과 노년의 전반을 보낸 빔메르비가 작품의 산실이 되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아침 일찍 스톡홀름에서 기차를 타고 그녀의 이름을 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역’에 도착했을 때는 정오가 막 지날 무렵이었다.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월드’의 드넓은 주차장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초겨울의 쌀쌀한 날씨임에도 우리나라 에버랜드 주차장만한 공간에 빈틈없이 빼곡하게 들어찬 자동차를 보고는 그만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다. 일개 동화작가의 이름을 딴 놀이공원에 이렇게 많은 인파가 몰리다니. 작가의 입지가 약한 한국의 동화작가인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놀랄 일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묵을 베스트웨스턴호텔에는 온통 린드그렌의 책 표지화로 장식되어 있었고, 거리곳곳에는 그녀를 기리는 현수막과 안내판으로 도배되어 있었고, 어마어마한 부지에 자연경관을 그대로 살린 놀이공원을 꽉 메운 수많은 꼬마손님들이라니…. 작품의 배경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테마공원 또한 매우 인상 깊었다. 산적의 딸 로냐가 뛰어놀던 숲속, 삐삐의 집, 라스무스와 오스카가 거닐던 마을 등등.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어린이공원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부러움으로 가슴이 시렸는데, 야외공연장을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하게 메운 꼬마관객 앞에서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아침까지 내린 차가운 비로 야외좌석은 축축하고 으스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여섯 살밖에 안 돼 보이는 꼬마손님들은 연방 까르르 깔깔 웃고, 박수치느라 여념이 없었다. 어느 누구 하나 칭얼대거나 시끄럽게 떠들지 않았다. 대체 이게 가능해? 나는 믿기지 않아 어린 관객들의 반응을 살피느라 공연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린드그렌의 생가는 고즈넉하고 아담했다. 그녀가 어린 시절 뛰어놀았던 정원과 벤치, 흔들거리는 그네에서는 짝짝이 긴 양말을 신고 주근깨가 가득한 삐삐가 돌아와 뛰놀고 있었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살아생전에 독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고, 95세까지 장수를 누린, 복 많은 작가이다. 사후에도 그녀를 기리는 문학상(ALMA)이 제정되어 세계의 동화작가들을 유혹한다. 자그마치 우리나라 돈으로 6억에 가까운 상금과 명예의 왕관을 우리나라의 어느 작가가 최초로 거머쥐게 될지 자못 기대가 된다.

11월이 되자 무척 바빠졌다. 매주 토요일 재 스웨덴 한국학교를 방문하여 동화를 들려주기로 하였기 때문이다. 재 스웨덴 한국학교는 스톡홀름에 있는 현지 중학교 건물을 토요일만 임대하여 사용하고 있었으며, 한국 어린이보다는 스웨덴 혼혈아나 입양아가 많았다. 또한 성인들은 최근 K-pop의 영향으로 한국에 관심 있는 청소년들과 한국인과 결혼한 스웨덴인, 입양아 부모인 스웨덴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여건으로 다양한 연령층과 한국어 수준을 고려하여 수준별로 동화를 들려주어야 했기에 번역해간 자료로는 부족하였다. 그래서 그림동화와 저학년 동화를 현지에서 급히 번역하여 한국어가 매우 부족한 초급반 수준의 어린이와 성인들에게 그림자료와 함께 번역한 동화를 들려주었다. 또한 수준이 높은 고급반과 성인에게는 우리말로 된 그림동화와 저학년 동화를 들려주었더니 퍽 재미있게 들으면서 호감을 보였다.
한국학교 학생들은 잠재되어 있는 우리의 번역 일꾼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한국의 아동문학이 재미있고 수준이 높다는 것을 알리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11월 26일은 스톡홀름 대학교 동양어문학과 강당에서 우리 아동문학을 소개하고 동화 리딩을 하게 되었다. 스웨덴의 11월은 이미 겨울이었고, 오전 8시에 동이 터서 오후 2시면 벌써 어두워진다. 그러므로 내가 강연하게 될 오후 4시는 캄캄한 한밤중이었다. 게다가 이들은 추운 겨울이면 외출을 많이 하지 않는다고 하니 강연장이 쓸쓸할 것 같아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강연포스터를 만들어 지역 어린이도서관과 스톡홀름 국제도서관에 게시하여 홍보를 하였다. 그 덕분인지 강연 당일에는 거의 빈자리 없이 청중이 자리를 메웠고 그 열기 또한 뜨거웠다. 나의 작품 소개와 더불어 우리나라 어린이도서관 활동, 우리 어린이들의 활발한 독후활동 등을 영상자료로 소개하였고, 내 동화로 어린 독자가 작곡 작사하여 MP3파일로 제작한 동요를 함께 부르면서 재미있는 시간을 가졌다. 강연 후 여러 모로 도움을 주신 소냐 허슬러 교수님도 유익하고 재미있었다며 격려의 말씀을 아끼지 않았다.
또 하나 특별한 경험은 현지 초등학교 어린이들과의 만남이었다. Lugnets Skola는 스톡홀름 코뮨이 운영하는 공립학교로서 몇 년 전 우리나라 이명박 대통령도 방문하였던 곳이라고 한다. 8~9세 대상으로 4개 학급 어린이에게 동화를 들려주는 것이어서 짧은 그림동화를 선택하였다. 먼저 한국어로 낭독한 다음 선생님이 스웨덴어로 낭독하는 방식으로 진행하였는데 낯선 문화와 이질적인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어린이들이 흥미롭게 들어주었다. 특히 작은 아이들이 어찌나 질서를 잘 지키는지, 놀랍고 신기할 정도였다. 후에 담당교사로부터 머나먼 동양의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알게 해주어 감사하다는 메일을 받았으며, 학부모들에게도 그러한 내용으로 안내장도 내보냈다고 하니 마음이 뿌듯해졌다.
나는 짬이 날 때마다 시립도서관에서 어린이 책을 살펴보았는데, 그러던 중 뜻밖에도 열람실에서 동화작가 ‘안나 예링’을 만나게 되었다. 대학에서 창작법을 강의하고 있는 안나가 학생들을 이끌고 도서관을 찾아왔을 때, 나는 그녀가 동화작가임을 한눈에 알아보고 먼저 말을 건넸던 것이다. 그 인연으로 안나와 나는 친한 친구가 되었다. ‘마틴 위드마크’와 ‘오사 린드’와의 만남 또한 잊지 못할 인연이었다. 마틴의 작품은 도서관이나 시내 서점에서 한쪽 서가를 점령할 정도로, 어린 독자에게 엄청난 인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마틴은 나를 이끌고 Bonnier Carlsen 출판사를 돌아보게 해주었고, 편집자를 소개해 주었다. 우리는 그의 작품이 한국에서, 내 작품이 스웨덴에서 출판되기를 기약하며 헤어졌다. 『자카리나 시리즈』를 우리나라에서 출간한 오사 린드는 스톡홀름에서 기차로 약 한 시간 정도 떨어진 소도시에 살고 있는데, 나를 만나기 위해 바쁜 일정에도 기꺼이 달려와 주었다. 그녀와 함께 어린이도서관을 돌아보며, 작가로서의 애환과 즐거움에 대하여 담소를 나누었다. 동병상련이랄까. 미디어의 인기로 점차 감소하는 종이책의 운명을 염려하며 과연 미래 시대에 우리 같은 작가가 존재할까라는, 다소 암울한 얘기도 나누었다.

12월이 되어 나는 예쁘고 따뜻한 부츠를 구입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눈 구경하기가 어려웠다. 반면 한국에서는 연일 폭설 소식이 들렸다. 북유럽의 겨울과 동아시아의 겨울을 뒤바꿔 놓은 범인은 바로 지구온난화였다.
햇살 구경하기가 어려워지면서 나도 모르게 울적한 기분에 빠져들 무렵, 스톡홀름에는 온통 촛불의 향연이 펼쳐졌다. 약한 바람에도 꺼질 듯 일렁이는 은밀한 욕망의 불꽃들이 펼치는 몽환적인 분위기에 가라앉았던 마음이 다시 달뜨기 시작했다. 이들이 왜 빛의 여신을 만들고 축제를 벌이는지 이해가 되었다. 눈처럼 흰 원피스에 치렁한 빨간 허리띠, 여러 개의 촛불을 밝힌, 화관을 쓴 긴 머리의 루시아(Lucia)를 이들은 얼마나 간절히 기다렸을까. 12월 13일 루시아데이가 지나면 낮이 노루꼬리만큼씩 길어진다고 한다. 겨우 3개월 남짓 스치듯 머물다 가는 나도 빛이 그리운데, 매년 수개월 동안 암흑의 세상에서 사는 그들의 간절함은 어떨까. 어쩌면 그래서 수많은 신화를 빚어내고, 영롱한 별빛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노하우를 터득하고, 현란한 오로라의 향연을 즐길 수 있는 특권을 갖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돌아갈 날을 보름 정도 앞두고, 나는 중세의 유적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고틀란드 섬을 방문하였다. 여객선을 타고 겨울의 발틱해를 유람하듯 떠나는 호사를 누린 것은 BCW(Baltic Center for Writers and Translators)에 레지던시 신청을 한 최정례 시인 덕분이었다. 2주간 고틀란드의 주도 비스비에 머물면서 한자동맹의 여파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린 역사의 흔적을 돌아보았다. 한때는 찬란했으나, 지금은 해변을 두드리는 파도소리와 더불어 순박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의 삶이 거기에 있었다. 비록 겨울이라 고즈넉하지만, 여름이면 최대 휴양지로 떠들썩하리라. 좁은 골목마다 핏빛처럼 붉은 장미넝쿨이 우거지고, 태양이 작열하는 바다 위로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의 피둥피둥한 낭만이 부유물처럼 떠돌리라.
나는 겨울 해변 모래 위에 발자국을 남겼다. 오래도록 나의 흔적이 남아있기를 바라면서. 그러나 언제나 삶이 그렇듯이 흔적은 곧 사라져버렸다. 아쉬움과 추억을 간직한 채 어서 떠날 사람은 떠나라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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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5.0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