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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예술아카이브 사명과 역할
예술아카이브에 관한 몇 가지 딱딱한 이야기

박주석 (명지대학교 교수, 사진기록)


1. 아카이브와 예술

기록은 어떤 물체에 문자 또는 기호로 사실을 적는 행위, 또는 적어둔 매체를 뜻한다. 이러한 기록물(records)은 인간의 삶(life cycle)과 같이 수없이 생성되고 또 소멸해 버린다. 이렇게 명멸하는 기록물 중에는 단 한 번 사용으로 생명이 끝나는 것도 있고 필요와 가치에 따라 보존, 관리되는 자료도 있다. 그리고 이를 대상으로 조직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어 관리뿐만 아니라 생산, 수집, 평가, 분류배열, 목록기술, 참고봉사, 자동화업무, 이용, 전시홍보, 기록윤리, 기록관계법, 그리고 보존 등의 전반적인 원리와 운영기법을 연구하는 학문도 존재한다. 바로 아카이브이다.

일반적으로 아카이브는 (1)“공기록들이나 역사상 중요한 문서들(historic documents)이 보존되어 있는 장소, 그리고 (2)그 때문에 보존된 역사에 관한 기록(historical records)이나 문서”라고 정의한다. 기록학 용어사전에 아카이브(Archives)는 지속적 가치 때문에 단체나 조직들이 사용하지 않게 된 비현용기록물을 보존해 온 ‘장소’이자, ‘보존 기록’ 또는 ‘보존 자료’라는 의미로서 낱장 서류, 필름, 사진, 소리나 영상 기록테이프, 컴퓨터 디스켓 등과 같이 정보로 전환될 수 있는 물리적인 매체를 지칭한다. 따라서 아카이브는 보존 자료의 선별과 평가 그리고 보존하는 것을 책임지고, 보존 자료를 이용할 수 있도록 처리하는 행위나 작업 일정을 의미하며, 기록보존을 책임진 부서나 기록과 자료를 보존한 건물이나 장소를 지칭하기도 한다.

이처럼 다양하게 정의되는 아카이브에 대해 현대 기록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쉘렌버그(T. R. Schellenberg)는 “여러 나라의 아키비스트들이 아카이브라는 용어를 각각 다르게 정의했다는 점에서 볼 때, 누구도 변경할 수 없고 다른 모든 것에 우선하여 인정되어야 하는 아카이브라는 용어의 최종적이고 궁극적인 정의는 없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카이브 = 영구기록물’ 또는 ‘아카이브 = 영구기록물관리기관’이라는 정도는 모두 합의할 수 있는 개념이다. 이런 개념을 중심에 두고 나면, 요즘 디지털 시대의 아카이브에 대해서는 다양한 변주의 가능성을 모색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아카이브는 기본적으로 도구이며 다른 모든 도구들과 마찬가지로 이용하기 위해 관리한다’라는 주장도 있다. 즉 기록관리가 특정 개인이나 기관의 전유물에서 벗어나 공공이 활용(Public Use)하는 것을 지향하는 온라인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는 디지털 시대인 요즘, 결국 아카이브는 ‘영구적인 가치를 지닌 기록물이자, 그 기록물이 여러 가지 목적으로 지속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관리, 보존하는 기록관리기관’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 예술의 역사 또한 예술창작활동 전반과 맞물려 있기 때문에 어떤 한 지역의 예술 활동의 자취를 전체적으로 알기 위해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바로 예술 아카이브의 설립과 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각예술과 공연예술을 모두 포함하는 예술 아카이브란 ‘예술적 특정 활동을 통한 원형적 지식의 축적’인 것이다.

여기서 예술적 특정 활동이라 함은, 창작, 지원, 연구 활동을 포함하는 일반적인 모든 예술 활동을 의미하며 원형적 지식이란 재활용을 목표로 하는 예술적 가치가 검증된 지식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축적이라 함은 앞서 이야기한 원형적 지식을 수집, 평가, 보관하는 일련의 아카이브의 역할을 뜻한다. 예술아카이브란 ‘문화예술사 측면에서 정보적 가치와 사료적 가치를 인정받는 각종 예술 기록물을 매체에 구분 없이 수집, 평가, 분류, 보존하여 문화공공성의 차원에서 그것을 이용하려고 하는 시민과 연구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2. 아트아키비스트 (Art-archivist)

예술기록을 수집하고 연구하는 일은 개인의 차원에서 보면 작품의 컬렉션과 마찬가지로 취향의 문제이자 즐거움을 추구하는 취미 활동의 일환이다. 또 예술가의 경우에는 자기 삶의 흔적을 남기려는 기본적인 생존 욕망의 결과일 수 있다. 하지만 개인 차원의 컬렉션을 모아서 제도적 차원의 아카이브를 구축하면 그 의미가 달라진다. 단순한 차원의 개인 자료를 넘어서 사회적,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갖게 되고, 공공적 성격의 문화유산과 자원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개인 또는 기관이 실행하는 예술 행위의 결과와 흔적은 작품이란 형태로 완결되며, 대부분의 예술가와 관객은 작품 자체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관심의 초점을 맞춘다. 사실 공연예술이건 시각예술이건 작품을 감상하고 즐기는 일은 일회적인 행위이고, 이 행위들의 반복이 하나의 문화이다. 하지만 이런 문화가 집단적 감동과 반복으로 이어져 사회 전체의 유산으로 전환되면 역사가 되고, 역사가 되는 한 재현과 연구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또 작품 자체를 감상하는 일에서 한걸음 나아가 작품이 만들어진 전 과정 그리고 사후의 반응과 평가를 살펴서 더 깊은 이해와 감동에 다가가려고 한다.

아키비스트가 필요해지는 것은 이 부분에서부터이다. 예술 작품이 개인의 기억과 감동의 차원을 넘어 집단 혹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재현과 이해의 대상이 되면, 이 일이 가능하도록 작품의 생산 전 과정에서 파생된 정보를 수집하고 관리하고 활용하도록 만들어야 할 사회적 제도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효율적으로 중개하는 인력이 바로 예술기록관리 전문가 즉 아트아키비스트이다.

3. 예술아카이브의 기능과 역할

예술아카이브는 몇 가지의 중요한 기능과 역할을 정의할 수 있는데, 이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연구와 학술적 기능이다. 예술 아카이브는 창작과 연구를 위해 필요한 원천 자료를 제공할 수 있다. 예술의 역사나 이론 연구자에게는 작품의 역사와 과정의 자료를 제공해주고 예술가에게는 다른 작품의 정보를 제공해주는 기능을 한다. 또 일반 시민에게는 예술에 대한 이해의 수준을 고취시키고, 저변의 확대와 수용 문화를 확산시키는데 기여할 수 있다.

② 교육적 역할이다. 예술사적으로 가치 있는 자료를 수집, 관리하여 이용자에게 예술의 발전사를 알려주고 예술가의 사유 과정과 창작의 방법 등을 인지하도록 만들 수 있다. 최근에는 학교 교육과 사회 교육의 일환으로 예술을 교육하는 과정이 늘어나고 교육 기법이 늘고 있는 추세이다. 아카이브는 교육자와 수강생에게 다양한 교육 자료를 제공할 수 있다.

③ 문화유산의 보존과 계승의 역할이다. 한 세대의 예술적 성과와 문화를 동시대 또는 미래의 세대들에게 전수하여 과거와 현재가 소통할 수 있는 연결고리를 만들고, 예술의 새로운 창작의 단서를 제공해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④ 예술 관련 학문과 다른 영역에 파급되어 새로운 문화콘텐츠를 만드는 데 필요한 원천 재료를 제공하는 기능이다. 이는 문화콘텐츠의 개념에서 만들어진 O.S.M.U.(One-Source Multi-Use)의 기능으로, 하나의 작품이 출판콘텐츠, 영상콘텐츠 등으로 새롭게 탈바꿈되어 새로운 문화콘텐츠를 창조하는데 기여하는 것이다. 이 경우 작품 자체보다는 관련 기록물이 콘텐츠 소스로 더 적합하며, 예술 아카이브의 큰 기능이자 장점이기도 하다.

⑤ 예술 관련 기관 및 제도의 투명한 경영과 책임행정을 유도하는 기능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일반 기록 관리의 가장 큰 기능은 업무 과정의 책임성과 투명성의 제고이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또는 공공기관의 효율적, 개방적 운영의 기틀이 된다는 점이다. 소수에 의해 정보가 독점되는 폐단을 막을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왕성하고 다양한 업무와 연구를 촉진시켜 심도 있는 지식과 성과를 양산할 수 있을 것이다.1) 예술 관련 기관도 예외가 아니다.

⑥ 이러한 예술기록을 모은 아카이브는 공공성의 목적을 실현하는 기관으로 시민에게 예술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예술의 발전에 기여하는 기능을 한다. 예술문화의 토대가 되어 지적 자산의 역할을 하므로 지식 기반 경제 사회에서 국가경쟁력을 향상 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

4. 제언

사실 인류사에서 예술아카이브가 본격적으로 논의된 것은 20세기 이후의 일이며, 예술과 관련된 여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서구 각국이 일반 아카이브로부터 분리된 예술아카이브를 설립, 운영하면서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역사 연구의 목적이 가장 컸다고 볼 수 있다. 예술의 역사는 작품에 대한 비평적 접근과 함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증거를 토대로 기술해야 하기 때문에 예술아카이브는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디지털시대인 현재는 예술 관련 정보와 기록에 대한 수요가 일반 시민과 대중 사이에서도 폭발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현실이다. 공공의 차원에서 예술아카이브의 역할이 더욱 커져가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제는 예술 자료의 체계적인 수집과 보존을 위해서 정부나 공공부문의 개입과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는 논의가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국가와 지역의 예술 자료를 수집하고 관리하는 것은 그 시대의 예술적 성과와 경향을 집적하고 정리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광범위하게 수집한 자료를 여러 계층의 이용자에게 다양한 목적으로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제공하기 위한 작업이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국가적으로 축적되고 공유되는 기록물은 사회적 공공재로서 활용되어 미래의 예술을 이끌어 갈 수 있는 바탕이 되고 국민의 문화적 향유 기회 확대와 문화 역량을 성숙시키는 기반으로 작동할 수 있을 것이다. 


1) 황동열, 2007, 「예술아카이브의 현황과 도입 방안 연구」, 『한국무용기록학회지』제12권, 한국무용기록학회, p.183.

[기사입력 : 2015.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