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호보기
  • 구독신청
  • 구독자의견
  • 아르코발간자료
  • 인쇄
  • 맨위로 이동

포커스

유럽 페스티벌의 현주소와 시사점
소수의 예술을 공유하기 위한 노력
뮌헨 오페라 페스티벌

송현민 (음악평론가)
  • 독일 뮌헨에 위치한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독일 뮌헨에 위치한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 바이에른 슈타츠오퍼의 오케스트라 피트
    바이에른 슈타츠오퍼의 오케스트라 피트
  • 극장 내부
    극장 내부


독일 뮌헨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순간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지는 풍경과 그 역학 작용에 몸이 부르르 떨린다. 뮌헨 중앙역에서 숙소로 가는 길에는 수백 년 전 양식을 입은 건축물과 현대식 건물이 공존하고 있었다. 현대식 건물들은 일제히 제 키를 낮춰 고성당의 높이와 시간을 떠받들고 있는 듯 보였다.

| 뮌헨 오페라 페스티벌

뮌헨 오페라 페스티벌(Münchner Opernfestspiele, 6월 24일~7월 31일)이 열리는 바이에른 슈타츠오퍼로 가기 위해 트램(노면전차)에 올라탔다. ‘슈타츠오퍼(Staatsoper)’란 국내에서 오페라좌(座), 가(歌)극장, 주립극장, 오페라극장 등으로 번역되고 있다. 현재는 그냥 ‘슈타츠오퍼’로 통용될 정도로 한국 클래식계도 유럽과 동시성을 형성하고 있다. 트램 매표원이 승차권을 검사한다. 공연 입장권을 보여주니 ‘OK!’ 하고 지나간다. 공연 관람객은 몇 시간 전부터 극장으로 향하는 대중교통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정책 덕분이다.  
뮌헨은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는 음악도시이다. 작년에 서거한 마젤이 마지막까지 지휘봉을 잡았던 뮌헨 필하모닉, 얀손스와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그리고 키릴 페트렌코가 음악감독으로 있는 바이에른 슈타츠오퍼가 있는 곳이다(며칠 전, 베를린 필하모닉의 새로운 수장으로 페트렌코가 임명되어 2018년부터 베를린 필을 이끈다).
그리고 또 다른 자랑거리가 뮌헨 오페라 페스티벌이다. 작곡가 진은숙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2007년 이 페스티벌의 개막작으로 올라 이 페스티벌은 좀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뮌헨 오페라 페스티벌은 1875년 이래로 140년간 매년 수준 높은 오페라를 선보이고 있다. 페스티벌 기간에는 지난 시즌의 오페라와 발레 공연 중 가치 있고 인기를 끌었던 프로덕션을 선별하여 한 달 동안 선보인다. 즉, 극장의 한 시즌을 총정리 하는 시간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 전통=뼈, 혁신=살, 관객=심장

푸치니 〈마농 레스코〉(7월 28일)를 시작으로 차이콥스키 〈오네긴〉(29일), 베르디 〈돈 카를로〉(30일)를 관람했다. 연출가가 새로운 해석의 옷을 입힌, ‘연출가 중심주의’라 불리는 레지 테아터(Regie-Theater) 류의 작품들이었다.
〈마농 레스코〉를 앞두고 남은 시간은 5분. 부리나케 극장으로 뛰어 들어갔고, 들어선 순간 숨이 턱하고 막혔다. 막이 오르기 전의 긴장감, 하얗게 센 은발의 노인들, 고급 드레스, 가득 메워진 객석. 객석의 중간으로 난 통로도 없다보니 정중앙에 위치한 나의 좌석은 아득히 멀어 보였다. 앞좌석과 무릎의 간격도 좁아 십 수 명, 아니 수십 명의 관람객이 차례로 자리에서 일어나 길을 내준다. 나는 그곳에서 외양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이질적인 얼룩처럼 느껴졌다. 자막도 오로지 독일어로만 표기했다. 국·영문을 병기하는 고향 생각이 나기도 했다.
〈마농 레스코〉에는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있는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이 데 그리외 역을, 소프라노 크리스틴 오폴라이스가 마농 레스코 역을 맡았다. 한스 노이엔펠스(1941~)의 연출은 19세기 작품을 21세기적 감수성으로 몰아갔다. 하지만 4막은 텅 빈 무대일 뿐이었다. 원작 속 황량한 사막의 느낌을 상징하는 듯한 화이트 큐브 같은 무대. 그 위에서 카우프만과 오폴라이스는 오로지 노래와 연기로만 관객을 압도했다. 그리고 박수와 환호. 난리가 났다. 무대에 커튼이 내려온 후, 카우프만과 오폴라이스는 수도 없이 커튼 사이를 오가며 인사를 했다.
29일 〈오네긴〉에는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가 타티아나 역을 맡았다. 연출가는 크리스토프 발리코프스키(1962~). 그의 작품들 중에 ‘잔혹 미학극’이라고도 불리는 ‘정화된 자들’은 2006년 서울국제공연예술제 개막작으로 오르기도 했다. 원작에서는 밤새워 오네긴에게 편지를 쓰며 아리아를 부르던 시골 소녀 타티아나는 발리코프스키의 연출에 따라 녹음기에 연결된 마이크를 잡고 목소리를 카세트테이프에 담는다. 텔레비전 화면의 정규방송이 끝나 밤이 깊었음을 알리고, 다시 정규방송이 시작되면서 그녀가 밤을 지새웠다는 것을 알려주는 연출도 흥미로웠다.
30일에 선보인 〈돈 카를로〉의 연출, 무대미술, 조명, 의상을 모두 맡은 위르겐 로즈(1937~)는 중세회화처럼 연출했다. 관객은 필리포 2세역을 맡은 베이스 르네 파페에 열광했다. 4막에서 그가 부른 아리아 ‘그녀는 나를 사랑한 적이 없다’는 자막이 독일어뿐이라서 어떤 내용인지 가물가물했지만, 소리의 묵직한 존재만으로도 권력자의 외로움과 내면적 고통을 느끼게 했다.
〈돈 카를로〉는 며칠 전 취소통보를 해온 라몬 바르가스를 대신하여 무대에 오른 테너 김재형의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데뷔 무대이기도 했다. 그는 타이틀 롤인 돈 카를로 역을 맡았다. 1막을 여는 김재형의 열연을 지켜보며 같은 한국인으로서 박수와 응원을 보낸다. 하지만 눈동자와 머리카락의 색깔이 다른 뮌헨 관객들의 반응은 미지근하거나 서늘했다. 박수에도 뜨거움이 없었다. ‘오네긴’에서도 연출가 발리코프스키가 렌스키와 오네긴의 우정을 동성애로 그렸을 때 그들은 어디선가 공연을 보고 있을 연출가를 향하여 거침없이 야유를 보내는 것 같았다. 그들의 즉각적인 반응은 그 자리에서 즉각적으로 행해지는 솔직한 비평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그간 수없이 보아서 입력한 〈마농 레스코〉, 〈오네긴〉, 〈돈 카를로〉의 상(像)이 있는 것 같았고, 그와 다른 새로운 장면이 나오면 열렬히 환호했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 푸치니의 <마농 레스코> ©Wilfried Hösl
    푸치니의 〈마농 레스코〉 ©Wilfried Hösl
  • 차이콥스키의 <오네긴> ©Wilfried Hösl
    차이콥스키의 〈오네긴〉 ©Wilfried Hösl
  • 베르디의 <돈 카를로>에서 돈 카를로 역을 맡은 테너 김재형 ©Wilfried Hösl
    베르디의 〈돈 카를로〉에서 돈 카를로 역을 맡은
    테너 김재형 ©Wilfried Hösl


| 소수의 ‘소유’가 아닌 다중의 ‘공유’를 위하여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앞에 위치한 막스 요제프 광장에는 거대한 스크린을 설치할 준비를 마친 듯 했다. 이는 극장 내에 오르는 공연을 동시 상연하기 위한 것으로 ‘모두를 위한 오페라(Oper für alle)’라고 적힌 현수막이 보였다. 뮌헨 오페라 페스티벌의 티켓 구하기는 현지인들 사이에서도 ‘하늘의 별 따기’로 통한다. 실제로 정통 턱시도를 말쑥하게 입고 ‘Suche Karte(티켓 구함)’이라고 적힌 종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들고 기다리는 나이든 관객들을 극장의 계단에서 수없이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라도 공연 콘텐츠를 ‘향유’하고 ‘공유’하는 장이 있다는 점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1948년 명동 시공관에 베르디의 〈춘희〉가 오른 이후, 한국의 성악가들은 오페라 공연에 끊임없이 열과 정성을 쏟았다. 극장을 비롯한 제반 부대시설, 연출가, 성악가, 관련 스태프 등 오페라를 할 수 있는 인프라가 형성되지 못한 상태에서도 오페라가 무대에 오른 것은 그것이 유럽 예술의 대표적인 장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수요자보다는 공급자 중심이었고, ‘공유’보다는 ‘소유’의 개념이 더 짙은 문화적 산물이었다. 2012년 전면 백지화된 서울 노들섬 오페라하우스 건립 백지화는, 오페라를 ‘공유’할 정책적 인프라나 시민들의 마인드가 갖춰지지 못한 상황에서 오페라하우스란 소수의 ‘소유물’로 전락할 것이 훤히 보였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싶다.

서울오페라페스티벌이 1998년에 첫선을 보였지만 지금은 사라졌고, 현재는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2010년~), 대구국제오페라페스티벌(2003년~)이 있다. 하지만 활성화의 길은 여전히 멀어 보인다. 문제는 점진적 과정을 통한 시민·관객과의 접근보다는 여전히 페스티벌이나 눈길을 단번에 끌 수 있는 초호화 공연으로 오페라 문화를 활성화시키고자 하는 생각들이 팽배하다는 것이다.
나는 바이에른 슈타츠오퍼에서 관람을 하고 나올 때마다 ‘이들은 언제부터 이렇게 오페라를 보기 시작했을까’라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젊은 층을 찾아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술을 ‘생필품’으로 보급하고자 하는 현지의 모습을 접하다보니 이 의문이 풀렸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1천 명의 어린 수혜자들은 성장하는 동안 각자의 상황과 취향에 따라 5백 명으로, 1백 명으로, 10명으로 그리고 2~3명으로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그 나이든 최종의 후예들이 극장에 모여 오페라라는 유산을 지키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무대에 오르는 ‘명품(작품)’을 동시에 보여줄 막스 요제프 광장의 스크린은 앞서 말한 1천 명, 혹은 익명적 다수를 위한 것이었다.
놀고 있는 성악가와 오페라 생산 인력을 위한 공급의 장(場)을 창출하는 것보다 오페라 수용자 육성과 시민의식의 창출이 더 중요할 것이다. 바이에른 슈타츠오퍼는 2차대전 당시 폭격으로 전소된 적이 있었다. 이후 복원 시 재정부족으로 현대식 극장으로 재건하려 했다. 하지만 뮌헨 시민들이 옛 모습 그대로 복원할 것을 요청했고, 심지어 건립에 필요한 모금운동까지 벌였다고 한다.
국내의 오페라 생산은 ‘일회적’이고 수요는 ‘일시적’이다. 세금으로 빚어 올린 몇 억짜리 무대와  소품들은 3~4일이 지나면 보관이 용이하지 않다는 이유로 폐기처분된다. 이를 지역과 연계하여 ‘재활용’하는 방안도 생각해봐야 한다.
또한 동경을 자아내는 초대형 무대와 성악가의 수입보다는, 일상의 ‘생필품’처럼 다가갈 수 있도록 소규모이되 작품의 진수와 연출가의 노력이 담긴 프로덕션을 많이 지원할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자세를 일관하며 소극장에서 매달 한편씩 ‘집밥’ 같은 오페라를 제공하는 서울시오페라단의 ‘오페라 마티네’ 같은 시리즈가 매뉴얼화 되어 오페라 정책의 선례가 되었으면 한다. 소수의 예술을 공유하고자 고민하는 자세. 우리가 해외 사례로부터 배워야 할 것은 이러한 자세들이 아닐까 싶다.


  •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앞의 막스 요제프 광장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앞의 막스 요제프 광장
  • 스크린 설치 작업 중인 모습. ‘Oper für alle’라고 적힌 현수막이 보인다.
    스크린 설치 작업 중인 모습.
    ‘Oper für alle’라고 적힌 현수막이 보인다.
  • ‘Oper für alle’ 관람 모습 ©Wilfried Hösl
    ‘Oper für alle’ 관람 모습 ©Wilfried Hösl


아르코 로고

[기사입력 : 2015.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