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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소환과 동시대적 재구성 ― 역사와 기억
과거 공간 사옥에서 행해졌던 다양한 예술 장르의 실험적 무대로서의 공간사랑을 재조명함으로써 현대무용의 현주소를 밝혀보고자 한국공연예술센터와 공동으로 주최한 국립현대무용단의 ‘공간사랑 컨템퍼러리 프로젝트’가 지난 7월 25~26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무대에 올려졌다. ‘역사와 기억’이라는 국립현대무용단의 2014년 프로젝트 주제에 가장 핵심적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보여진 한국 현대무용 1세대들의 렉처 퍼포먼스 〈우회공간〉을 통해 과거와 지금의 동시대적 무용에 대한 질문과 소극장 공간사랑이 갖는 의미를 생각해보자.

과거 ‘춤’과 현재 ‘몸’의 모자이크

이지현 (무용평론가)
  • 남정호
    남정호
  • 안신희
    안신희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무대에 ‘공간사랑’의 트레이드 컬러인 벽돌색이 도는, 그러나 그것이 이미 과거가 된 것을 의미하듯 녹슨 느낌의 흘러내림이 있는 뒷벽이 거의 전면을 덮고 있다. 하수 쪽에 긴 나무 벤치가 무대 안에 일부를 걸친 채 무대에 삐죽 나와 있는 상태에서 남정호가 용감한 걸음걸이로 튀어나온다. “하나, 둘, 셋...” 당시 공간사랑의 넓이를 가늠하기 위해 발걸음을 세는 간단한 동작을 마치며 “이 정도였을 거예요.”라고 말함으로써 관객을 아르코예술극장에서 30여 년 전 공간사랑으로 데리고 가는 데 성공한다. 이어 그 공간에서 공연되었던 〈대각선〉(1982) 등의 탄생 배경과 작품의 특징 등을 설명하고 잠시 재현을 통해 당시의 각 작품들을 상상할 수 있도록 관객에게 체험시킨다.
이렇게 시작된 〈우회공간〉(연출 방혜진)은 이정희, 남정호, 안신희 등 당시 공간사랑에서 의미 있는 공연을 하였던 3명의 무용가를 당시 공연작들과 함께 무대에 올리면서 공간사랑과 춤 공연과의 관계, 특히 1980년 3월부터 시작된 ‘현대무용의 밤’을 중심으로 조명하고 그 시선을 다시 동시대성까지 확장해보려는 야심찬 실험을 담고 있었다.

1977년 4월에 개관한 소극장 공간사랑은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현대무용의 밤’을 거의 빼놓지 않고 보러 다닌 나에게도 퍽이나 인상 깊은 곳이다. 〈우회공간〉에서 보여준 작품들 대부분을 나는 당시에 공간사랑에서 보았는데, 그래서인지 내가 느끼는 〈우회공간〉은 과거라는 ‘기억’과 ‘현재’의 공연이 그것을 바라보는 ‘나’를 중심으로 시공간이 중첩되는 현상을 일으켜 많은 감흥을 느끼게 했다.  
그러나 이 공연이 과거를 현재로 불러옴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당시 공간사랑에서 활동했던 현대무용가들의 회고 춤판으로 보이지 않았던 이유는 “공간사랑의 무대들이 발생했던 공간을 시간을 거슬러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오히려 재현 불가능함의 표면 위에서 시간의 지층을 드러내고자”하는 연출의 의도와 접근 방법의 차별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출연한 무용가들은 과거에 자신이 이 작품을 했을 때와는 이미 너무 달라져 버린 자신의 몸과 느낌의 변화를 토로하였는데, 남정호의 경우 30분을 췄던 체력이 3분에도 숨을 헐떡거리게 됨을 호흡 소리로 알게 해 응원의 박수를 받았는가 하면, 〈교감〉(1981)과 〈지열〉(1983)을 보여준 안신희는 “춤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몸이 기억하는 파편을 가지고 오겠다. 과거와 이미 달라진 내 몸이 거북함을 느낀다. 현재의 내 몸으로 하겠다.”고 말하면서 과거의 작품과 현재의 몸이 충돌하는 지점을 명확히 드러냈다. 또 이정희는 개관 직전 1976년 공연된 〈실내〉의 음악인 백병동 작곡의 원본을 구할 수 없어 이건용 작곡의 〈살푸리〉(1980) 곡을 발췌해 대신하였다는 것을 밝히면서 이미 재현 불가능함을 드러내는가 하면, 1970년대의 사회 상황에 대한 예술가로서의 고민의 결과로 〈실내〉란 작품의 의미를 설명하면서 시대를 담아나려고 했던 예술적 의지를 생생한 느낌으로 현재의 것으로 만들었다.


  • 이정희
    이정희


과거의 작품들은 해체되고 조각난 채 안무가 자신의 설명을 끼워 넣은 새로운 형태의 샌드위치가 되어 관객 앞에 먹기 좋게 놓여 있었는데, 중간에 건축가 김정후의 공간 사옥에 대한 강의와 마지막 장에서 안무가 3인이 모두 나와 연출가의 목소리와 함께 한국의 현대무용과 그 현재성에 대한 간략한 토론을 포함해서 지금은 사라진 공간사랑과 현대무용의 역사성에 대하여 ‘렉처 퍼포먼스’의 구색을 갖추려 했다고 볼 수 있다. 흔히 공연을 소재로 삼는 형식이 새로운 공연이 되는 ‘메타공연’으로서의 형식인 렉처 퍼포먼스는 창작자가 자신의 공연 과정에 대한 체계적 설명과 함께 공연으로 이어가는 형식이 되기도 하고 어떤 주제에 대한 지식의 전달과 더불어 공연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우회공간〉은 공간사랑에 대한 회고를 계기로 당시 현대무용 작품의 부분을 안무가들이 배경에 대한 설명과 함께 직접 춤으로 보여주고 그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동시대성과의 관련성을 언급하여 좀 더 진화된 담론으로 도약하고자 토론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는 ‘역사’를 추억이 아닌 기억으로 다루면서 보다 명징한 인식에 근거해 역사를 현재로 불러 들여오겠다는 국립현대무용단 2014 시즌 프로그램 주제인 ‘역사와 기억’에 충실한 지점이고, 영문 번역 개념으로 살펴보면 ‘과거의 것을 재고안 해서 지금의 춤이 어때야 하는지 밝혀보려는(Defining Contemporary Dance: Re-inventing the Past)’ 의지를 구체적으로 실현하려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역사를 다루는 포스트모더니즘적 태도 중에 가장 뚜렷하게 모더니즘과 다른 태도는 역사를 일직선, 하나의 방향으로 발전되어가는 것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굳이 과거가 현재의 발전에 바탕이 된다거나 현재가 과거보다 발전했다고 선형적인 연속선 속에서 보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렇기 때문에 선형적 사고에서 자유로워진 과거는 얼마든지 현재의 주제를 위하여 해체 가능하며 그래야만 다른 텍스트와 결합하여 새로운 현재적 의미를 창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우회공간〉에서 새롭게 역사를 다루는 방식은 어떻게 실현되었을까? 과거를 공유하고 있는 관객에게는 과거의 느낌과 기억을 자극하여 현재의 것으로 불러들여 죽어 있던 그것을 현재와 작용할 수 있게 깨우고, 역사적 작품들은 시간이 축적된 무용가들의 현재 몸속에서 시간의 벽을 뚫고 나오면서 만드는 돌파력으로 새로운 긴장감을 부여받고, 현대무용의 역사는 현재라는 시간 속에서 새롭게 조망되는 시간 역전(逆轉)의 궤를 통과하게 된다. 관객은 앉아서 기억의 소환에서 오는 신선한 환기(換氣)와 시간 충돌이 일어나는 작품의 파편에서 맛보는 긴장과 현대무용에서 동시대란 무엇인가에 대한 무거운 호기심을 자극받고 극장을 떠났을 것이다. 


물론 이 작품의 기획 의도는 완전히 실현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3명의 안무가를 출연시키고 작품의 단편을 설명을 곁들여 공연한 것만으로 시간의 충돌을 드러내기에는 안무가들은 시간의 화살을 피한 듯 변화가 크지 않았고, 그들이 당시를 회고할 때는 좀 더 긴장을 풀고 세심한 감각으로 시시콜콜하게 이야기하는 섬세함이 아쉬웠으며, 한국 현대무용과 컨템퍼러리에 대해 논하는 장면에서는 숙고되지 않은 개인적인 견해를 밝히는 정도로 끝나 개념적, 논리적 빈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과다한 의욕은 긴장을 낳고 긴장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여유를 주지 못한다. 동시대에서 살아나야 할 다양성의 근원은 여유와 세심함에서 나오는 색다른 시선이 아닐까 싶다.


  • 〈우회공간〉 공연 장면
    〈우회공간〉 공연 장면
  • 좌로부터 안신희, 이정희, 남정호
    좌로부터 안신희, 이정희, 남정호

‘공간사랑 컨템퍼러리 프로젝트’는 하반기에 〈여전히 안무다〉(8월 31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아카이브 전시 및 퍼포먼스 〈결정적 순간들〉(10월 17일~11월 30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자료원) 등의 프로그램을 전개하면서 다각적 관점과 입체적 조망을 형성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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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4.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