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호보기
  • 구독신청
  • 구독자의견
  • 아르코발간자료
  • 인쇄
  • 맨위로 이동

포커스

2014년 공연예술 추이와 특성
지난해 인터파크 장르별 공연수와 연간 티켓판매 순위를 통해 공연 장르별 특성과 공연산업 전반에 대해 알아보고 요즈음의 문화예술 트렌드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희곡 번역을 중심으로 한 연극 교류의 의의
제7회 한국현대희곡 낭독공연을 마치고

이시카와 쥬리 (한일연극교류협희회 전문위원, 희곡번역가)
  • 〈목란언니〉
    〈목란언니〉
    photo by Okuaki Kei
  • 〈알리바이 연대기〉
    〈알리바이 연대기〉
  • 〈오중주〉
    〈오중주〉


지난 1월 15일부터 18일까지 도쿄 세타가야퍼블릭씨어터 소극장 씨어터트럼에서 제7회 한국현대희곡 낭독공연이 개최되었다. 이 행사는 2002년 이래 한일연극교류협의회(한국)와 일한연극교류센터(일본)가 카운터파트로 공동 개최해 온 것으로, 한국에서는 작년 2월 명동예술극장에서 제6회 현대일본희곡 낭독공연이 열렸다. 이번 행사에서는 김윤미 작 〈오중주〉, 김재엽 작 〈알리바이 연대기〉, 김은성 작 〈목란언니〉 등 한국에서 최근에 화제가 된 비교적 젊은 작가의 작품들이 낭독공연을 통해 일본 관객을 직접 만나게 되었고, 이 세 편의 희곡과 윤조병 작가의 〈휘파람새〉, 김상열 작가의 〈등신과 머저리〉를 수록한 『한국현대희곡집 7』이 발간되었다.

희곡 번역을 중심으로 한 연극 교류는 한일연극교류협의회와 일한연극교류센터가 13년 동안 지속해 온 교류사업이다. 지금까지 35편의 한국 현대희곡이 일본어로, 30편의 일본 현대희곡이 한국어로 번역・출판되었다.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지금까지 특정한 나라의 현대희곡이 이렇게 많이, 지속적으로 소개된 예는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희곡 번역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한국이나 일본이나 셰익스피어, 체호프, 그리고 구미의 몇몇 유명 극작가를 제외하면 번역·출판되는 경우가 흔하지 않다. 희곡 번역은 보통 번역자의 몫이며 평소 좋은 작품을 눈여겨 봐뒀다가 국내 극단의 공연을 염두에 두고 개인적으로 번역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국내 공연을 염두에 두었을 때, 작품 선정에서부터 상당한 제약을 받게 된다. 우선 무대화하는 데 있어서 국내 정서에 잘 맞는지를 고려하게 되므로 관객들에게 생소한 역사나 사건, 독특한 문화 등이 짙게 반영된 작품은 번역 대상에서 제외되고, 보편적인 주제나 현대사회에 공통적인 문제를 다룬 작품이 번역 대상으로 선택되기 쉽다.
이렇게 선택된 희곡은 번역자에 의해 자국의 문화적 코드에 맞게 번역되고, 연출가나 제작자를 만나면서 보다 구체적으로 관객의 정서에 맞게 각색되거나 대사 삭제 등의 편집 과정을 거친다. 번역극을 무대에 올리는 연출가의 1차적인 목표는 그게 어느 나라 희곡이든 “지금 여기에 사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데에 있다. 만약 “남의 나라에 사는 남의 이야기”를 그대로 무대에 올리면 분명 번역자는 “어색하고 서툰 번역”, 연출가는 “왜 지금 여기서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지 모르겠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다시 말해 실제로 무대에 올려진 번역극은 일반적으로 그 희곡 자체를 소개하거나 그 희곡이 쓰인 나라의 역사나 문화를 알리기 위해 공연되는 것이 아니라, 그 희곡을 통해 ‘우리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용되는 하나의 매개체인 셈이다.
하지만 이 사업은 공연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희곡 번역 사업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제약에서 자유롭다. 어디까지나 순수하게 작품 소개가 목적이기 때문에 현지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희곡을 마음대로 소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번에 소개된 〈오중주〉, 〈알리바이 연대기〉, 〈목란언니〉는 일본에서의 공연을 염두에 두었다면 번역될 가능성이 많지 않은 희곡들이다. 가족 간의 갈등이라는 비교적 보편적인 소재를 다룬 〈오중주〉도 ‘가부장제’나 ‘남아선호’라는 일본인들에게는 조금 낯선 정서를 짙게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선뜻 번역하기가 어렵고, 〈목란언니〉는 ‘남북분단’과 ‘탈북자 문제’라는 한반도 고유의 문제를 다뤘기 때문에, 〈알리바이 연대기〉는 극 중에서 언급되는 한국 현대사의 수많은 실제 사건과 실재 인물들에 대한 배경 지식 없이는 공감대를 형성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번역 가능성이 희박하다. (한국 극단이 일본에서 공연한다면 자막용으로 번역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희곡들이 번역 소개된다는 것에 교류의 의의가 있고, 나아가서 이런 번역 희곡들이 한일 간 연극 교류의 재산으로 축적되는 것이야말로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행사의 준비 과정에서 번역자들은 일본 사람에게는 낯선 역사와 문제를 담은 희곡들을 최대한 원작의 맛을 살려서 번역하고, 연출가나 배우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은 주석으로 보완한다. (공연을 전제로 할 경우, 주석 대신 ‘대안’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연출자는 낭독공연이라는 형식 안에서 원작 희곡을 충실하게 재현하고, 관객의 이해를 돕는 방법을 애써 모색하게 된다. 이 낭독공연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한국 현대희곡을 통해 “한국에 사는 한국인 이야기”를 그대로 전달하고 한국의 문화와 사회를 알고 이해하는 것이지, “지금 여기에 사는 우리의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번역된 희곡들은 어떻게 무대에 올려졌을까?
〈오중주〉(기토 노리코 번역)는 왕좌를 연상케 하는 중앙 의자에 아버지를 앉히고, 거기서 뱀처럼 바닥을 기는 빨간 장미넝쿨로 연결된 의자에 네 자매와 아들을 낳지 못한 부인과 첩들의 귀신을 배치함으로써 핏줄 때문에 엉켜버린 이 가족의 복잡한 갈등을 아름답고도 잔인한 상징으로 시각화했다. 기본적으로 움직임이 적은 낭독 형식을 유지하면서도 개성 넘치는 배우들의 목소리와 표정 연기로 가족들의 처절한 갈등을 효과적으로 전달했으며, 한국 공연에서 리얼리즘적인 스타일로 연출돼 가부장제에 희생되는 여인들의 모습이 다소 진부하게 느껴졌다면 호키모토 게이코(保木本佳子)의 미니멀하고 상징적인 연출은 오히려 등장인물들 간의 심리적 갈등에 초점을 모아주는 효과를 주었다.
한국 현대사와 그 역사를 살아온 개인과 그 가족 이야기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구성한 〈알리바이 연대기〉(우키시마 와타루 번역)는 배경지식이 없는 일본 관객들을 대상으로 어떻게 형상화할 것인지가 가장 큰 고민이었을 것이다. 연출을 맡은 고케 요시노리(公家義德)는 무대 배경 스크린에 사진과 지도, 연표 등, 방대한 영상 자료를 투영해 한국 현대사에 대한 관객의 이해를 적극적으로 돕는 방법을 선택했는데, 이 많은 정보들로 인해 관객들은 시종일관 ‘역사를 학습하는 자세’로 공연을 지켜보게 되었다. 한편 주인공 김태용 선생과 그의 가족의 소소한 개인사는 기본적인 낭독 형식으로 진행되었는데, 영상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커져, 한 개인의 일상적인 희비를 통해 큰 역사를 반추하려 했던 작가의 의도와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표현된 느낌이었다. 그러나 최근 아베 정권하에 “정치와 권력의 알리바이 만들기”가 급속히 진행되어 가고 있는 일본에서 이 작품이 던져준 화두는 충분히 유효했다.
〈목란언니〉(이시카와 쥬리 번역) 역시 일본 관객에게는 낯선 남북분단과 탈북자의 현실을 다루고 있지만, 북에 돌아가고 싶어 하는 목란이의 애절한 심정과 그 순수한 욕망을 달성하기 위해 ‘돈’이라는 늪에 점점 빠져들게 되는 굵직한 구조를 이해하는 데에는 별 무리가 없었다. 이 공연은 의상과 소품, 배우들의 동선을 활용한 형태로 무대에 올려졌는데, 연출을 맡은 마쓰모토 유코(松本祐子)는 짧은 장면이 빠른 템포로 겹쳐지면서 난장판이 벌어지는 전반부에 도심 한복판의 스크램블 교차로를 연상케 하는 다이나믹한 동선을 사용했고, 무대 공간을 효율적으로 나누어준 연출로 극의 구조를 명확하게 시각화했다. 관객들은 빠른 템포로 진행되는 드라마를 잘 따라가며 웃기는 장면에서는 웃고, 목란 역을 맡은 Kiyoka의 뛰어난 가창력에 감탄하면서 공연 자체를 즐겼다.
 
이번 낭독공연에 참여한 연출자와 배우들은 사전에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스터디를 하면서, “한국에 사는 한국인 이야기”를 관객에게 전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사실 이런 행위 자체가 상대방을 알아가는 교류의 일부인 것이다. 낭독공연을 모두 마친 뒤풀이 자리에서도 한국 극작가들을 가운데 앉히고 연출가와 배우들의 뜨거운 질문 공세가 밤새도록 이어졌는데, 희곡 번역에서 출발한 교류가 한국 극작가와 일본 연출가, 배우로 확대되어 보다 직접적인 인적 교류로 나아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장이었다. 실제로 이 교류를 계기로 한국과 더 깊은 인연을 맺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번에 〈오중주〉로 본격적인 번역에 처음으로 도전한 기토 노리코 씨는 2009년에 이 희곡낭독공연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한국에 유학까지 오게 된 여배우이다.

지금까지 언급한 것처럼 공연을 전제로 하지 않는 희곡 번역 교류에는 큰 장점이 있으나, 그 한편으로는 우리가 번역 소개한 희곡들이 본 공연되어 보다 많은 관객들과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까지 한일연극교류센터가 번역·출간한 한국 희곡 중에서 〈길 떠나는 가족〉(김의경 작), 〈달집〉(노경식 작), 〈산불〉(차범석 작), 〈달이 물로 걸어오듯이〉(고연옥 작), 〈오장군의 발톱〉(박조열 작), 〈애비대왕〉(홍원기 작), 〈통일 익스프레스〉(오태영 작), 〈허탕〉(장진 작) 등이 공연되었고, 한일연극협의회가 번역·출판한 일본 희곡 중에서는 〈위대한 생활의 모험〉(마에다 시로 작),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하타사와 세이고 작), 〈억울한 여자〉(쓰치다 히데오 작), 〈다락방〉(사카테 요지 작), 〈엄마, 안녕〉(나가이 아이 작), 〈행인두부의 마음〉(정의신 작) 등이 여러 극단에 의해 공연되었고 대체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제 한국 연극판에서 일본 희곡을 선택하는 것은 평범한 일이 되었는데, 거기에 비해 한국 희곡이 일본에서 공연되는 케이스는 상당히 드물고 그 공연 규모도 작다. 그 이유는 대부분의 연출가가 극작을 겸하고 있고, 번역극의 주류가 구미 작품이라는 일본 연극계 사정과도 무관하지 않지만, 그보다 요즘 일본 희곡들은 한국에서도 “지금 여기에 사는 우리의 이야기”로 수용되기 쉬운 반면, 한국 희곡들은 일본에서 그렇게 수용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순수한 희곡 번역 소개와 더불어 공연을 염두에 둔 희곡 소개도 병행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연극을 매개로 상대방에 대해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방의 이야기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 보는 것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르코 로고

[기사입력 : 2015.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