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호보기
  • 구독신청
  • 구독자의견
  • 아르코발간자료
  • 인쇄
  • 맨위로 이동

포커스

도시재생과 지역 커뮤니티센터로서 대안공간의 역할

1999년 이후 한국사회에서 예술마당을 이루는 중추적인 장소로서 신진작가들을 육성하고 배출하는 새로운 플랫폼이 되었던 대안공간의 현주소를 살펴보고,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한 수원의 ‘대안공간 눈’의 회고와 전망을 통해 도시재생과 지역 커뮤니티센터로서 대안공간의 역할과 방향성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하자.
'대안공간 눈' 한국적 도시재생의
한 모델로서의 '행궁동 예술마을 만들기'

김찬동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시각예술 전문위원)
  • 대안공간 눈 전경
    대안공간 눈 전경
  • 주민을 위한 예술 프로그램
    주민을 위한 예술 프로그램
  • 벽화골목 탐방
    벽화골목 탐방
한국의 대안공간은 15년의 역사를 가진다. 1960년대 후반 등장한 서구의 대안공간(alternative space)들처럼 기존의 미술 제도에 반기를 든 본격적인 성격의 공간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그간 일정 부분 미술계의 신선한 제도적 변화에 기여해왔다. IMF 이후 미술 시장의 위축과 신진작가들의 배출 루트가 제한적이던 상황에서 대안공간들은 실험성이 강한 신진작가들을 육성, 배출하는 새로운 플랫폼이 되었다. 이러한 공공적 역할을 근거로 정부와 공공기금은 2000년 이후 현재까지 오랜 기간 동안 대안공간들을 지원해 왔으며, 이로 인해 대안공간은 이미 미술계의 중요한 제도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최근 이들은 초기의 참신성이나 의욕이 약화된 채 관습화 되어가고 있으며, 대부분 재정여건의 불안으로 운영상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급격한 상업주의와 글로벌 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적절한 대안적 담론 생산이 미흡한 채 그 위상에 있어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현재도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 제도에 편승하여 대안공간을 표방하는 신생공간들이 우후죽순처럼 증가하고 있지만, 그들의 운영방식 역시 변별력을 확보하지 못한 채 1세대 공간들의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

이러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대안공간들마다 다양한 노력을 보이고 있다, 신진작가의 발굴 육성이라는 본래의 목표를 심화하거나, 해외 대안공간끼리의 네트워크를 강화하여, 융복합 예술의 연구와 구현을 통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공간들도 있다. 그러나 최근 공·사립미술관들이나 심지어 상업화랑조차도 그간 대안공간들의 전유물로 인식되던 영역에 관심을 가지고 전시나 프로그램들을 생산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대안공간들만의 차별화된 대안적 담론 생산이 그리 녹록한 편은 아닌 실정이다. 상대적으로 차별성을 확보하고 있는 곳들이 있다면, 예술을 통한 지역의 커뮤니티센터 역할을 표방하고 있는 대안공간들이 그것일 것이다. 커뮤니티센터를 표방하는 대표적인 공간들로는 인천의 ‘스페이스 빔’, 안양의 ‘스톤앤워터’, 안산의 ‘리트머스’, 수원의 ‘눈’ 등 수도권과 지역의 후발주자로 등장한 공간들을 들 수 있다. 적극적으로 지역의 근대문화를 지켜내려는 시민운동센터에서부터, 재래시장을 문화적 공간화한다거나 다문화 주민들의 거주 밀집 지역에 거점을 두고 지역 문화센터를 자임하는 곳도 있고, ‘대안공간 눈’과 같이 지역 커뮤니티 공간의 기능을 넘어 쇠락한 원도심의 문화재생 프로그램을 추구하는 공간들도 있다.

‘대안공간 눈’은 2005년 4월 수원의 원도심인 행궁동 소재의 운영자 개인주택을 개조하여 신진작가들을 위한 전시공간으로 문을 열었다. 원도심 주택 밀집 지역은 여타 도시의 원도심이 그렇듯 심각한 문화적 낙후와 공동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시기에 작은 문화공간이 조성되어 예술가들의 출입과 예술행사가 빈번해 짐에 따라 골목은 새로운 활력을 얻기 시작하였다. 특히 좁은 골목길을 벽화골목으로 조성하여 주민들과의 협업과 주민들을 위한 다양한 예술 프로그램을 통해 주민들과의 긴밀한 소통의 장을 만들었다. 이를 통해 ‘대안공간 눈’은 짧은 기간 동안 원도심의 중심 문화공간으로 자리를 잡았다. 아울러 지역의 빈 건물을 작가들을 위한 레지던시로 조성하여 국내외 젊은 작가들의 창작공간을 제공하고 입주한 작가들과 지역 주민들이 공동으로 마을을 위한 예술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됨으로써 ‘행궁동 벽화마을’은 지역을 넘어 전국적 명소가 되었다. 이러한 성과는 행궁 정문 일대와 행궁광장의 상가거리를 ‘공방거리’로 조성하는 기회를 통해 좀 더 확장되었다. 예술가들이 운영하는 다양한 공방과 기존 상점들에 예술적 아이디어를 개입시켜 수원의 문화적 명소를 만들었다. ‘대안공간 눈’이 소재한 작은 마을 골목길에 다양한 예술가들이 찾아들고 주택들은 예술적으로 개조되고 있다. ‘대안공간 눈’은 그간 ‘행궁동 예술마을 만들기’의 성과를 인정받아 2011년 정부가 수상하는 대한민국공간문화대상에서 대통령상과 한국관광공사  창조관광사업 공모 우수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이후 이러한 활동은 대표적인 도시재생 프로그램으로 인식되어 지자체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었다. 벽화마을과 공방마을은 월 10회 이상 공식적인 타지역 관계자들의 견학이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 행궁동 레지던시 건물(과거 목욕탕이었던 건물을 개조하여 작가들의 창작스튜디오로 활용한다
    행궁동 레지던시 건물(과거 목욕탕이었던 건물을 개조하여 작가들의 창작스튜디오로
    활용한다/건물 외벽은 나혜석의 자화상이 벽화로 장식되어있다)
  • 행궁동 레지던시에 입주한 멕시코 작가 에드가 데이비드 아르가즈의 벽화 제작
    행궁동 레지던시에 입주한 멕시코 작가 에드가 데이비드 아르가즈의 벽화 제작
'도시재생(urban regeneration)'은 1980년대 이후 서구에서 일기 시작한 후기산업도시(post-industry city)들을 활성화하기 위한 대표적인 문화 정책적 개념으로 국내에서는 2000년대부터 ‘창조도시’의 개념과 함께 소개되기 시작하였다. 2차 산업의 쇠퇴와 도심부의 침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서구의 사례들이 소개되기 시작하면서 최근 지자체마다 도시재생 프로젝트들을 경쟁적으로 개발, 수행하고 있다. 서구의 도시재생은 전반적으로 문화예술을 통한 재생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데, 이를 ‘문화 주도적 도시재생(culture-led regeneration)'이라 칭한다. 이들은 대개 대형 문화시설을 조성하거나 올림픽, 아트페어 등과 같은 메가 이벤트를 개최함으로써 도시 브랜드를 혁신하여 관광 수입을 증대하는 등 경제적 생산성을 높이는 방식의 선도적 프로젝트(flagship project)를 주조로 한다. 스페인의 빌바오나 영국의 게이츠헤드 등이 그 대표적 사례라 할 것이다. 과거 철강, 석탄, 선박 중심의 산업도시였던 빌바오나 게이츠헤드는 도시재생의 일환으로 세계적인 미술관이나 공연장, 공공미술을 건립하는 등 대형 프로젝트를 구현함으로써 방문객의 규모를 획기적으로 높이며 이를 통해 지역 경제를 크게 활성화시켰다. 특히 유럽에서는 문화수도(capital of culture) 계획에 따라 도시마다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통한 도시 브랜딩 구축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문화 주도형의 선도적 프로젝트는 그것이 유발하는 새로운 도시 양극화와 도시 고급화, 소비 중심의 도시 문화, 도시의 정체성 파괴 등과 같은 부작용에 대해 회의와 반성이 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도시재생을 통해 지역의 역사나 문화를 기반으로 한 ‘장소(place)’가 상실되고 있는 점은 매우 심각한 문제임이 틀림없다. 이러한 점을 착안하여 최근 서구에서는 ‘커뮤니티 주도형 도시재생(community-led regeneration)’의 담론이 형성되고 있다.

다행인지는 몰라도 국내의 경우 본격적인 문화 주도형 도시재생 프로그램이 그리 많지 않아 이러한 폐해는 크지 않다. 물론 서구의 문화 주도적 도시재생의 사례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는 엄청난 재원과 종합적인 도시정책을 필요로 하는 터라 서울의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나 세빛둥둥섬 조성 정도가 아닐까 한다. 하지만 조성된 사례도 종합적인 마스터플랜 아래 진행되기보다는 서구의 양태만을 단편적으로 수용한 수준에 머물고 있고 시민들의 공감대 확보가 미흡하여 조성과 운영에 있어 파행을 겪기도 하였다. 
이러한 점을 감안할 때, 수원의 원도심인 행궁동 도시재생은 매우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 도시는 유기체와 같아서 인위적인 개발이나 관 주도적 재생 프로그램보다는 지역의 장소성을 기반으로 한 건강한 도시의 생태계 복원이 중시되어야 한다. 행궁동은 화성의 안쪽 지역으로 과거의 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한 시간의 층위들이 보존되고 있는 지역이므로 그 역사를 딛고 사는 주민들의 삶을 기반으로 한 재생이 필요한 것이다. 
‘대안공간 눈’은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공간과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대안공간 눈’을 중심으로 한 도시재생의 중요성은 타지역의 관 주도적 활동과 달리 민간의 자생적 활동을 기반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곳에 위치한 골목의 벽화는 일정 기간을 주기로 전문예술가와 지역 주민들의 협업으로 조성되며, 골목에 위치한 상인들과 마을 주민들이 이 프로젝트에 매우 적극적으로 동참한다. ‘대안공간 눈’의 윈도우갤러리는 벽화골목 입구의 중요한 문화공간이며, 앞마당은 수시로 문화행사가 펼쳐지는 마을의 문화마당이기도 하다. 주변에는 외지에서 이주해온 작가들의 작업실이 늘어나고 있고, 최근 인근 주택을 매입하여 새로 오픈한 ‘공간 봄’은 좀 더 다양한 예술적 실험과 공유의 장으로 거듭날 계획이라 한다. 이렇듯 다소 시간은 걸리지만 민간 예술단체가 중심이 되어 지역 커뮤니티들과의 소통과 참여를 통해 지속적으로 지역을 기반으로 축조해가는 문화적 활동과 그 결과는 지역 재생의 든든한 초석이 되고 있다. 최근 서구의 의도된 재생, 특히 선도적 재생을 통해 유발되는 도시의 새로운 양극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도시 귀족층의 형성), 커뮤니티와 장소의 상실 등의 문제를 고려할 때 ‘대안공간 눈’의 재생 프로그램은 많은 대안적 의미를 가진다. 행궁동은 화성과 행궁이라는 문화유산과 도시를 축조한 영·정조 시기의 인문학과 과학, 근대 여성운동의 선각자인 화가 나혜석과 같은 중요한 원천 콘텐츠를 가진 곳이며, 이를 기반으로 하여 지역의 커뮤니티들과의 협업을 통해 행궁동 만의 문화를 구축해 감으로써 쇠락한 수원의 원도심을 재생하는 일은 한국적 도시재생의 한 모델로서 충분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 영국 동북부 게이츠헤드와 뉴캐슬 두도시를 접하여 흐르는 타인 강변 풍경
    영국 동북부 게이츠헤드와 뉴캐슬 두도시를 접하여 흐
    르는 타인 강변 풍경
    세이지뮤직센터, 발틱현대미술센터, 두 도시를 잇는 밀
    레니엄브리지 등을 조성함으로써 심각하게 낙후되었던
    지역 경제와 문화를 활성화시킨 타인 강변의 도시재생
    은 국제적 아이콘이 되었다 ⓒfreephoto.com

  • 게이츠헤드 언덕에 설치된 안토니 곰리의 〈북의 천사: the Angel of the north〉
    게이츠헤드 언덕에 설치된 안토니 곰리의
    〈북의 천사: the Angel of the north〉(1998)
    과거 탄광의 갱도였던 곳에 꿈과 희망의 상징인 20미
    터 높이의 조형물을 설치하여 지역의 랜드마크로 삼았
    고 매일 9만 명의 통행자들이 작품을 관람하는 등 성공
    적인 관광 효과를 얻고 있어 지역 경제의 활성화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freephoto.com

  • 스페인의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전경
    스페인의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전경
    과거 융성했던 철강산업과 조선산업의 중심지였던 빌
    바오는 2차 산업의 쇠퇴로 인한 심각한 도시경제의 낙
    후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세계적인 미술관인 구겐하임
    미술관 분관을 유치하여 지역 경제를 회생시킴으로 '빌
    바오 효과'라는 개념을 만들어 내었고, 문화주도형 도
    시재생 프로그램의 대표적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freephoto.com


아르코 로고

[기사입력 : 2014.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