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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서 예술을 꽃피우다
호주 원주민 미술과 공동체 문화의 위상

이영주 (아르코미술관 큐레이터)
  • 데블스 마블
    데블스 마블


2008년 당시 호주 수상인 케빈 러드(Kevin Rudd)는 정부와 의회를 대표하는 첫 연방국회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류역사의 가장 오랜 문화를 영위하고 있는 이 땅의 원주민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우리는 호주 역사의 가장 어두운 장이었던 잃어버린 세대(Stolen Generations)1) 에게 사죄한다.” 이는 200여 년에 걸쳐 원주민들을 대상으로 행해진 무자비한 인종차별에 대해 호주 정부가 원주민 사회에 전달한 공식적인 사과문이다. 러드는 당시 야당 대표 말콤 턴불(Malcom Turnbull)과 함께 한 텔레비전 인터뷰에서도 원주민들과의 관계 회복을 다시 한 번 약속했다.

l 호주 원주민(Aborigine)의 역사와 문화

1788년 영국의 식민화 이래 백인들에 의한 착취와 수난의 세월을 겪어야만 했던 원주민들에게는 6만여 년이라는 유구한 역사와 그것을 지탱해온 강력한 신념과 의식이 있다. 오늘날 원주민 문화는 현대 호주의 사회, 정치,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자 호주 특유의 국가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주요 배경이다. 호주 문화정책 '창의 호주(Creative Australia)'에 따라 국가가 목표하는 5가지 핵심 정책은 ‘원주민 문화’를 강조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민족인 호주 원주민은 지역에 따라 다양한 언어와 역사를 갖고 있지만, 원주민 문화를 형성하는 공통의 특성은 ‘츄쿠파(Tjukurpa)’, 즉 ‘조상신이 자연과 인간을 창조한 후 모든 생명체가 서로 살아가는 방법과 그림, 춤 등을 가르쳐주고 영원 속으로 사라졌다’는 '꿈의 시대(Dreamtime)'의 전설을 정체성으로 가진다는 것이다.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여러 그룹으로 나뉘는 호주 원주민 사회는 파생된 방언 그룹별로 각각 다른 영적 조상의 기원을 유지해오고 있으며, 혈연으로 결속된 동질적 문화와 관습을 바탕으로 공동체를 형성한다. 세대를 거쳐 내려오는 창조이야기는 원주민 문화를 결속시키는 강력한 정신세계이자 신념이다. 원주민들은 바위, 나무, 돌, 바닥 등에 그림을 그리고 조각과 문신을 새김으로써 자신들의 의식 행위를 자연스럽게 실천해왔다. 이것이 바로 호주 원주민 미술의 뿌리가 된다. 미술 행위는 곧 그들에게 약속이자 체계이며 규율이자 언어이다. 그렇기에 원주민은 궁극적으로 모두가 예술가이며, 이들의 삶은 예술 행위 그 자체이다.

l 원주민 미술과 공동체 문화

이민자들이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강제로 쫓겨난 원주민들이 정착한 땅, 중앙호주 지역은 광활한 아웃백의 사막이 끝없이 펼쳐진 거친 자연 그대로를 품고 있다. 자연의 경이로움이 선사한 예술품과도 같은 중앙호주 곳곳은 이제 국립공원과 문화유적으로 지정되어 관광객들을 맞이한다. 특히 테넌트 크릭(Tennent Creek)에서 남쪽으로 100km 정도 떨어져 있는 데블스 마블(Devil’s Marbles)은 용암이 밀려 나오면서 결이 거친 화강암이 오랜 시간 풍화작용을 거치면서 깨진 바위와, 고무나무들이 풍경을 자아낸다. 긴 세월 원주민들은 이곳을 무지개 뱀(Rainbow Serpent)의 영역으로 신성한 장소로 여겨왔다. 원주민들은 이곳의 거대한 둥근 돌들을 카루카루(Karlu Karlu, ‘무지개 뱀의 알’이란 뜻)라 불렀다. 열매나 약초, 씨앗 등 부시터커(원주민의 음식)의 재료 또한 자연을 재생시키고 나라를 번성하게 해주는 신성한 의미를 가진다. 이렇게 주술적 체험과 신화에서 비롯된 진실은 원주민 미술 양식에서 강력한 색을 띤 점이나 선 등 단순한 표상으로 나타난다. 야생의 사고와 질박한 원시의 생명이 담겨져 있는 그들의 예술은 선조들이 창조해온 인류의 오랜 유산임과 동시에 원주민들을 지탱하게 하는 정신적 존재 그 자체이다.

백인들과의 오랜 격리로 전통을 이어올 수 있었던 중앙호주 원주민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생활방식과 문화를 고수하며, 각 부족의 츄쿠파와 연결되는 신화적 정신세계와 체계를 보존하고 있다. 중앙호주의 대표적 도시 앨리스스프링스(Alice Springs)를 중심으로 사방에 걸쳐 넓게 분포되어 있는 크고 작은 원주민 미술 집단인 '아트센터'는 공동체 문화에 기반하는 예술가들의 사회적 결합과 다름 아니다. 원주민 예술가들은 각각의 아트센터에 소속되어 활동하고 있으며, 이 아트센터들은 나름의 규범과 규칙에 의해 운영된다. 아트센터는 지역사회를 대표하는 하나의 커뮤니티로 오랜 시간 인류가 경험한 모든 보편성이 축적되고 기록되는 역사의 장이자, 오늘날 호주의 문화적 다양성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플랫폼으로써 작용한다. 현재 아트센터에 소속되어 미술과 공예 분야에서 활동하는 원주민들의 비율은 전체의 60% 이상이며, 이러한 아트센터 수는 80여개가 넘는다고 한다.

이제 원주민 예술가들은 세상과 교류하며 새로운 매체를 접목하고 대화와 협력으로 원주민 미술을 세계에 알리며, 그들 스스로의 지위와 가치를 향상시켰다. 이는 오늘날 호주 현대미술의 다양한 변주를 그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예술 활동을 통해 펼치는 문화적 행위와 역사적 표현은 원주민들의 생계수단이기도 하지만, 호주 사회의 변화와 발전을 이끄는 공동체 프로젝트이자 사회 구성원으로서 평등한 권리를 지키기 위한 효과적인 사회운동인 셈이다.

l 차이(Difference)와 다양성(Diversity)

호주 원주민 미술이 세상 밖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초반이다. 그 시기는 인종 차별법과 백호주의2) 정책의 폐지와 맞물린다. 인종문제는 호주뿐 아니라 미국, 유럽, 아시아 등 전 지역이 고민하는 미완의 과제이다. 서로 다른 인종과 민족 사이에서 발견되는 차이의 균열을 해소하기 위한 가장 훌륭한 매개체는 예술이다. 예술의 행위와 실천은 사고의 변화를 이끌고 사회와의 친밀한 접속 기술(Skills)을 향상시킨다. 태도와 가치를 향상시키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다양성은 발견되고 생산될 것이다. 그리고 예술은 그 다양성에 대한 이해와 공감, 학습을 수반하는 해결책이 될 수 있다. 문화예술에는 인류가 함께 경험한 인간의 모든 활동이 맞닿아 있다.
결국 서로 다른 공동체 문화에서 생산된 다양성은 오늘날 호주의 사회, 문화, 정치, 경제를 새롭게 창의할 수 있는 훌륭한 자양분이 되고 있다. 이것은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를 표방하는 호주 정부가 창조해 나갈 또 다른 국가적 과제의 동력이기도 하다.


  • Tangentryere artists gallery
    Tangentryere artists gallery
  • Araluen arts center
    Araluen arts center
  • Ngurratjuta Iltja Ntjarra(Many hands art centre)
    Ngurratjuta Iltja Ntjarra(Many hands art centre)



1) 호주 정부가 원주민과 백인 사이에 출생한 혼혈 아이들을 부모로부터 강제로 떼어내고 백인가정이나 국가보육시설에 입양시켜 백인으로 양육된 아이들을 일컬어 ‘잃어버린 세대’, 혹은 ‘도둑맞은 세대’라고 부른다.
2) White Australia Policy: 호주에서 백인 이외의 인종, 특히 황색인종의 이민을 배척하고 정치·경제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적·문화적으로도 백인사회의 동질성을 유지하여야 한다는 주장과 운동으로 1901년부터 약 80년간 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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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5.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