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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사람

2014년 국제공연예술전문가시리즈 내한 전문가 인터뷰
영국 무대조명디자이너 겸 프로그래머
랍 홀리데이(Rob Halliday)


정지인 (아르코예술인력개발원)
  • 무대조명디자이너 겸 프로그래머 랍 홀리데이
    무대조명디자이너 겸 프로그래머 랍 홀리데이


2014년 12월, 영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조명디자이너 겸 프로그래머인 랍 홀리데이(Rob Halliday)가 한국을 찾았다. 그는 서울을 필두로 미국, 호주, 일본, 독일, 벨기에, 레바논 등 세계 각 곳의 공연에 참여하며 직접 조명디자인을 하거나 저명한 디자이너와 프로그래밍 작업을 하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레드(Red)〉, 〈에비타(Evita)〉,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 〈빌리 엘리어트(BIlly Elliot)〉 등이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인력개발원이 주최하는 ‘2014년도 국제공연예술전문가시리즈’ 세 번째 행사인 〈무대조명디자인 워크숍 및 초청강연〉을 끝마친 그를 만나 조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Q.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독자들을 위해 조명디자이너와 조명프로그래머의 차이점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간단히 말해서, 조명디자이너는 공연 작품에 맞는 조명의 효과(색감, 모양, 리듬 등)를 디자인해서 작품에 어떻게 적용할지 결정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조명은 모두 컴퓨터로 조정되기 때문에, 디자이너 혼자서 아이디어를 구현하고 통제까지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조명프로그래머가 조명디자이너의 예술적인 아이디어를 무대 위에 기술적으로 구현해내는 역할을 합니다. 즉, 두 사람은 한 팀을 이룹니다. 예술과 기술의 묘한 경계를 공유하는 팀이죠.

Q. 둘의 역할이 생각보다 더 명확하게 나눠지는군요. 그럼에도 본인은 조명프로그래머뿐만 아니라 디자이너로서도 성공적인 경력을 쌓아가고 계신데, 조명을 시작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우스운 이야기 일 수도 있는데, 어릴 적에 과외활동으로 학교 연극반에 참여했습니다. 저는 연극반에서 교사와 저의 관계가 교실에서의 그 관계와는 사뭇 다르다는 걸 느꼈습니다. 어느 날, 공연준비 중 문제가 발생했는데, 제 잘못이 아니었음에도 지도교사가 저에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때 저는 뭐가 잘못이었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제 잘못이 아니라는 생각이었기 때문에 부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선생님에게 소리를 쳤습니다. 그렇게 선생님께 소리를 질러본 건 처음이었고 ‘내가 지금 뭐한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에는 지도 교사가 저의 의견을 수용하면서 문제는 해결되었고 공연은 무사히 올라갔습니다. 그 사건으로 조명에 매료된 건 아니지만 연극에 빠진 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여러 사람이 모여서 공동의 목표를 위해 협력을 해서 이뤄 내는 결과물이 공연이라는 걸 배운 거죠. 그때 배웠던 것 중에 또 다른 하나는 ‘사람들에게 소리를 지르면 안 된다’는 겁니다(웃음). 침착하게 자신의 생각을 상대방에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언성을 높여서 해결되는 건 없으니까요. 요즘에는 제가 싸우는 사람들을 진정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웃음).

Q. 교사와의 말다툼이 어린 마음에 상처가 되었을 수도 있는데 ‘협력’이라는 배움을 얻으셨군요. 현재 조명디자인의 범위가 빌딩, 콘서트, 도시 조경 같은 것으로 확장되어 있는데, 굳이 연극 작업을 하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의도적으로 공연을 선택한 건 아니었습니다. 단지 제가 연극에서 출발했고 이름이 알려지면서 연극 일을 계속 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쪽에서 조명 작업을 안 해 본 건 아닙니다. 다만, 조명의 규모가 커지다 보니 일종의 ‘전공 분야’가 생겨나고, ‘일을 잘 한다’고 이 분야에서 알려지게 되면서 모두들 각자의 영역에서 일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패트릭 우드러프(Patric Woodroffe) 같은 경우에는, 콘서트 쪽에서 이름을 알리게 되면서 주로 콘서트 조명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연극을 좋아하지 않는 건 아니거든요. 그도 연극 일을 해보고 싶은데 콘서트 관련 의뢰가 많이 들어와서 계속 그쪽에서 일을 한다고 합니다. 저도 시드니올림픽 당시 시드니에 있었고 런던올림픽 당시에는 런던에 있었는데 아무도 저에게 일해 달라고 하지 않았어요(웃음). 세계적인 축제의 개/폐막식 조명 작업도 꼭 해보고 싶은데 말이에요(웃음). 제가 무대에서 일하는 것에 만족하고 있기에, 다른 분야에 가서 굳이 “저 여기서 일 할래요!”라고 홍보할 필요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 다른 분야에도 관심 많아요. 연락기다립니다(웃음).”

Q. 한국에서도 2014년도를 기점으로 백열전구 생산 및 수입이 금지되는 법이 제정되었습니다. 이를 대체할 조명장비들이 충분히 있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는 큰 문제가 아닌데요. LED와 형광등, 백열전구 등에서 느껴지는 느낌을 미세하게 받아들이는 조명디자이너에게는 백열전구 생산 중단은 예민한 문제일 것 같습니다. 초청강연 중에 기술이 예술을 받쳐줄 만큼 발전해야 한다는 말을 했었는데, 이는 어떤 의미에서 하신 말씀인가요?

기술이 발전하지 못했다는 의미라기보다 예술적 관점에서는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디자인을 하다 보면 그런 게 눈에 들어오죠. 특히 공연장에서는 관객들이 암전 상태에서 밝아지는 걸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천천히 조금씩 밝아지는 효과가 필요합니다. 연극에서는 배우의 작은 숨소리처럼 미묘한 순간을 조명으로 연출할 수 있어야 하거든요. 전구에서는 이게 가능했는데, 가장 신기술인 LED가 그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게 아쉽습니다. 에너지 절약을 위해 가로등, 실내등을 포함한 모든 조명을 LED로 바꾸는 추세입니다. 전구 생산이 중단되면 조명디자이너로서는 조명도구 하나를 잃게 되는 것입니다. 조명업체에서는 우리의 니즈에 관심이 없습니다. 여긴 너무 작은 시장이기 때문이죠. 최신 조명기구, 특히 무빙라이트는 엔터테인먼트 공연의 필요에 의해 연구되고 개발됩니다. 무빙라이트는 보다 다양한 조명효과를 만들어내는 장점이 있지만 쿨링팬 소음이 발생됩니다. 콘서트에서는 그 소음이 음악에 묻히기 때문에 큰 상관이 없습니다. 하지만 연극에서는 침묵에서부터 광기 어린 외침까지 배우가 내는 소리의 폭이 넓기 때문에 쿨링팬이 돌아가는 조명장치 사용에 어려움이 있죠. 결국 최신 기술인 무빙라이트가 엔터테인먼트 공연에서는 환영을 받지만, 연극 분야에서 사용하기에는 아직까지 그 섬세함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Q. 조명디자이너라면 모두들 공감할 사안인 것 같습니다. 워크숍을 진행하시면서 로열블루를 좋아한다고 말씀하신 게 기억납니다. 조명디자이너 겸 프로그래머로서 가장 좋아하는 색깔, 조명의 순간, 작품을 하나씩만 꼽아주세요.

가장 좋아하는 색깔로 두 개 말해도 될까요? 로스코 385(Royal Blue) 그리고 노란색과 주황색 사이에 있는 풍부하고 따뜻한 색을 가진 로스코 318(Mayan Sun)입니다. 가장 좋아하는 조명은 펑펑 울게 만드는 게 아니라 ‘눈에 눈물이 맺히는 순간’의 조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빌리 엘리어트(Billy Elliot)에서 이런 순간이 있었습니다. 소년이 와이어에 매달려서 이륙하는 순간, 소년에게만 포커스가 가도록 타이밍을 정확하게 맞춰야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타이밍이 0.5초만 달라도 어긋날 수 있고, 와이어가 보이면 그 환상은 쉽게 없어지기 때문에 섬세한 작업이 필요했는데요. 타이밍을 딱 맞춰서 소년이 날아오는 느낌을 이끌어 냈을 때 제 눈에 눈물이 맺혔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제가 18살일 때, 내셔널 유스 극장에서 했던 작품으로 T.S Eliot의 〈성당에서의 살인사건(Murder in the Cathedral)〉입니다. 어린 나이에 좋은 사람들과 좋은 작품을 올리면서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했고, 그때 만난 사람들과 지금까지 작업을 할 만큼 저에게 특별한 작품입니다. 제 인생을 바꿔놓은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Q. 공연을 볼 때 선택된 사람들에게만 조명이 보인다고 하셨습니다. 혹시 관객들이 조명을 이해하면서 공연을 보면 더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오히려 반대입니다. 조명에 대한 관전 포인트는 없습니다. 저도 공연을 보러 가면 동료 조명디자이너가 어떻게 작업했는지 둘러보느라 정작 공연을 제대로 보지 못합니다. 조명에 대해 모르고 편견 없이 보는 게 공연을 가장 잘 보는 방법인 것 같습니다. 한 가지 논쟁적인 부분은, 어떤 사람들은 공연 제작에 대해 모두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영국에 있는 ‘Curve’라는 극장은 연극이 만들어지는 과정의 백스테이지 작업을 다 노출시키는 걸 취지로 만들어진 극장입니다. 객석이 무대 한가운데 있고, 건물 외벽은 유리로 되어 있어서 공연이 없는 기간 동안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공연이 준비되는 과정을 다 볼 수 있죠. 개인적으로 이런 방식은 관객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마술에서도 마술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다 보여주면 재미나 놀라움이 사라지는 것처럼 말이죠. 강연에서도 말했는데, 〈빌리 엘리어트〉에서 광부의 모자만 조명을 받으며 리프트를 타고 탄광으로 내려가는 마지막 장면이 있습니다. 이 장면만을 위해 무대에 승강기가 설치되어 있었고, 2시간 30분 동안 단 한 번도 쓰지 않던 승강기가 이 장면에서 움직이며, 모든 관객들은 감탄하게 됩니다. 저는 관객에게 숨겨야 되는 게 있다고 생각하고 마술을 다 드러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Q. 신비로움과 놀라움이 있는 공연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말씀이시네요. 드디어 3일간의 워크숍, 초청강연이 끝났습니다. 한국에서 얻은 새로운 영감 같은 게 있나요?

워크숍에서 과제를 제시했는데, 모두가 과제에 대한 수행 방법을 가지고 논쟁을 하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열띤 토론만큼이나 새롭게 제안한 방법들도 굉장히 참신했습니다. ‘조명디자인에는 규칙(rule)이 없다’는 제 생각이 다시 한 번 증명된 느낌이었습니다. 또한, 프로그래밍과 디자인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는 참가자들이 많았다고 알고 있습니다. 저는 과학과 예술, 디자인과 기술 사이에 경계를 두는 것에 반대합니다. 디자이너도 기술을 배우려고 노력하고, 프로그래머도 디자인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아야, 좋은 공연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떤 분야든 ‘조화와 균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학과 예술, 디자인과 기술’같은 대칭점 사이의 조화. 환경보호를 위해 백열전구는 사라졌지만, 따뜻함이 감도는 그 불빛이 그리워질 수도 있다는…….


  • 무대조명디자인 워크숍과 초청강연을 진행하는 모습
    무대조명디자인 워크숍과 초청강연을 진행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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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5.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