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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사람

2014년 국제공연예술전문가시리즈 내한 전문가 인터뷰
영국 음향디자이너 캐롤린 다우닝(Carolyn Downing)


정지인 (아르코예술인력개발원)
  • 음향디자이너 캐롤린 다우닝
    음향디자이너 캐롤린 다우닝


2014년 12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인력개발원이 주최하는 ‘2014년도 국제공연예술전문가시리즈’ 네 번째 행사인 〈무대음향디자인 워크숍 및 초청강연〉을 위해 영국 무대음향디자이너 캐롤린 다우닝(Carolyn Downing)이 한국을 찾았다. 그녀는 연극 〈Chimerica〉로 2014년도 로렌스 올리비에 최고음향디자인상을 수상하여 현재 영국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음향디자이너이다. 연극 〈Chimerica〉는 중국 베이징을 배경으로 거대한 정치·경제적 이슈를 개인의 일상으로 들여다 본 작품으로 2014년 올리비에상 여덟 개 부문(최우수 연극, 연출, 조명, 음향, 무대디자인)을 석권하였다. 무대음향과 스토리텔링, 음향심리학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와 음향디자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Q. 작품의 완성도를 말할 때 빠트릴 수 없는 게 바로 ‘무대음향’ 부문인데요. 보이지 않는 ‘소리’라서 그런지, 음향디자이너를 작곡가 내지 그 비슷한 전문가라고 오해하는 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공연에서 음향디자이너의 역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혼동할 수 있는 부분이 충분히 있습니다. 소리와 악기에 대한 접근이 작곡가와 유사하기 때문인데요. 음악 효과를 얼마나 리듬감 있게 조성할지, 큐는 어떻게 만들지, 배우의 대사가 끝났을 때 바로 음악이 들어가면 어떤 효과가 날지, 비트는 얼마나 넣을지, 장면별로는 어떻게 음향을 움직일지, 라이브 공연일 경우 배우와 오케스트라의 사운드 밸런스는 어떤지 고려해야 할 게 많습니다. 음향디자이너는 장면에 필요한 음악적 요소에 단순히 번호를 매기는 사람이 아닙니다. 한마디로 말해 ‘공연 제작에 필요한 모든 음향 요건을 챙기고, 연극의 음악적 요소를 고려하는 사람’인 거죠.

Q. 언제부터 무대음향이라는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원래는 여배우가 되고 싶었어요(웃음). 제가 태어나고 자랐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열린 한 극단의 ‘오픈데이’를 간 적이 있습니다. 굉장히 아름다운 건물에서 열린 파티였는데, TV나 라디오 분야와 다르게 굉장히 환영해주는 분위기여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때 ‘무대’라는 분야에 처음으로 마음을 열게 되지 않았나 싶어요. 제 학부 전공은 물리학이었습니다. 과학에 대한 호기심이 굉장했죠. 물론 연극도 오래전부터 좋아했습니다. 학위를 딸 수 있는 학교가 음향, 엔지니어링 쪽으로 많아서 드라마 스쿨에 들어가 공부를 더 하게 되었고, 졸업하고 ‘웨스턴 뮤지컬’에 들어가 레코딩, 믹싱 등 음악과 관련된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풀타임 믹서로 일하면서 EA1이라는 사운드믹서가 되었는데 점점 다른 분야에 대한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생계를 위해 사운드믹싱은 계속하면서 휴일에는 극장 기술 리허설에 참가했습니다. 커리어를 쌓다가 궁극적으로 제 자신이 하고 싶은 게 예술, 디자인이라는 걸 깨달으면서 음향디자인 프리랜서가 되었습니다.

Q. 생업을 바꾼다는 건 삶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문제인데 스스로가 원하는 걸 믿는 대단히 주체적인 사고와 결정을 하신 것 같습니다. 음향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필수적인 자질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예민한 청각이나 악기를 다룰 수 있는 능력 같은 것 말이에요.

민감한 귀를 갖는 것도 당연히 중요합니다. 하지만 민감하게 듣는 능력은 훈련을 통해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잘 듣는 것보다 중요한 게 더 많습니다. 그건 집중력, 상상력, 실험정신입니다. 먼저 듣고 있는 것을 제대로 듣고 분석하고 발전의 여지가 있는지 파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디자인 작업을 할 때, 경험하지 못했던 상황이나 장소·이야기에 대해서 상상해봐야 할 때가 많기 때문에 상상력은 디자이너에게 매우 중요한 자질이죠. 뿐만 아니라 주변의 상황을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음향은 배우와 스태프, 장비와 공간과 어우러지는 게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아이디어를 실현해보고자 하는 실험정신이 필요합니다. 이건 모든 공연계 사람들에게 필요한 부분이겠죠.

Q. 음향디자인은 보이지 않는 소리를 만지고 다듬는 일인 만큼 섬세한 예술적 기질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영국에서의 최근 음향디자인 경향이나 디자이너들이 선호하는 작업 방식은 무엇인가요?

몇 년 전에 시작해서 주류가 된 경향인데요. 폴리사운드(Foly Sound)와 라이브 사운드 테크닉(Live Sound Technique)입니다. 폴리 사운드는 잭 폴리의 이름을 따서 만든 건데 한 음향디자인 팀에서 이 기술을 공연에 적용하게 되면서 공연 음향에서도 주로 쓰이는 작업 방식이 되었습니다. 폴리 사운드를 이용한 여러 작품 중에서 〈Snow man〉을 쓴 작가 Raymond Briggs의 〈Father Christmas〉가 가장 기억에 남네요. 요정이 나와서 산타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공연입니다. 라이브사운드 테크닉은 콘서트나 뮤지컬에서 관객들에게 최적의 음향을 전달하는 일입니다. 모든 장소는 다른 형태를 갖고 있기 때문에 적절한 음향 전달 상태를 만든다는 건 항상 어렵습니다. 어떤 곳은 카펫이 소리를 흡수하고, 어떤 곳은 모서리가 소리를 튕겨내기도 하거든요.

Q. 항상 예민하게 소리를 들으며 작업하다 보면 소리에서 벗어나거나, 반대로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휴식을 취하고 싶기도 할 것 같은데, 평소에 좋아하는 음향이 있는지요?

제가 좋아하는 소리는 빈 복도의 울림입니다. 사람이 없는, 비어 있는 복도의 멀리서 들려오는 에코를 좋아합니다. 가끔씩 복도에 앉아서 멀리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 등을 녹음하곤 했습니다. 기본적으로 깊은 울림이 있는 소리를 좋아합니다. 오래된 라디에이터를 보면 돌아갈 때 쩡쩡 울리는 소리가 나는데 그런 소리도 좋아하죠. 강한 바람에 창문이 흔들리는 소리, 건조한 마룻바닥이 갈라지는 소리처럼 날씨 변화로 생기는 소리도 좋아합니다.

Q. 일상적이면서도 상상력을 발동시키는 음향을 좋아하시는 것 같네요. 워크숍 첫날 참가자들과 30분간 사운드 워킹(Sound Walking)을 했습니다. 저도 들려오는 작은 소리에 집중하면서 함께 걸어보았는데요. 음향디자인 작업 전에 그런 활동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소리는 많은 걸 내포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훌륭한 리듬감, 절대음감을 가졌다고 해서 좋은 음향디자이너가 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헬리콥터가 날아가는 소리도 멀리서 들려올 때와 내 머리 위를 지나갈 때, 그리고 나를 이미 지나쳐갔을 때 들려오는 소리가 다릅니다. 또, 뉴욕 거리에서 들리는 소리와 한국 시장에서 들리는 소리가 다릅니다. 이처럼 작은 소리에도 장소성과 문화가 담기죠. 저는 사운드워킹(Sound Walking)을 통해서 참가자들이 주변 환경과 지역성, 공간성, 다양한 요소들을 인식하면서 소리를 받아들이길 바랐습니다.

Q. 워크숍에서 음향심리학과 관련하여 언급하신 맥커크 효과(Mcgurk Effect)가 굉장히 흥미로웠는데요. 실제로 무대음향에서 맥커크 효과를 이용한 디자인을 하기도 하나요?

맥커크 효과는 사용하겠다는 계획이 없어도 자연스럽게 음향디자인에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Night watchman〉에서 관객들은 소리만 듣고도 하키공이 날아갔다라고 생각하죠. 보이는 게 들리는 것과 일치한다고 생각하는 걸 이용한 셈입니다. 이것처럼 어딘가를 걷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눈 위를 걷고 있구나!’라는 느낌을 음향효과를 통해 ‘물 위를 걷고 있구나!’로 바꿀 수도 있겠죠. 이런 게 모두 음향심리학과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 맥커크 효과(Mcgurk Effect) : 말을 들을 때, 소리와 영상 간의 상호작용으로 일어나는 인지 현상을 뜻한다. ‘가’를 발음하는 모습을 보면서 ‘파’ 발음 소리를 들으면, ‘타’로 들린다. (참고 동영상 보기)


Q. 마지막으로 본인에게 ‘소리(Sound)’란 어떤 의미인가요?

아. 이건 말로 표현하기 너무 어려운데요. 삶 속에 맞닥뜨리는 소음들, 멋진 풍경(wind chime) 소리, 복도의 울림처럼 삶 속에서 소리를 발견할 때 가장 기쁜 것 같습니다. 아직까지는 무대/의상/조명디자이너와 같은 시각예술가들에 비해 음향디자이너가 과소평가 되는 경향이 있고, 그 역할에 대한 인식이 명확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앞으로도 경청하는 것, 소리가 가진 숭고함에 대해 탐구하고 찾아가는 길을 걸을 생각입니다.

Q. 감사합니다. 음향디자인에 대해 많은 걸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한국이 처음이라고 하셨는데 머지않아 또 뵙는 날이 있기를 바랍니다.

네. 정말 고마워요.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한국어가 만들어 내는 음향적 매력(acoustic attraction), 주변 자연 환경의 아름다움 등으로 정말 즐거웠어요. 다시 올 수 있기를 저도 바랄게요. 감사합니다!

낙엽이 구르는 마로니에 공원, 빈대떡 굽는 냄새가 고소했던 광장시장, 어린이들이 뛰어놀던 학교 주변 등 평범한 장소를 지날 때 그녀가 녹음기를 꺼내 녹음하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았다. ‘새로운 장소에서 그곳만의 소리를 채집하는 것’이 자신의 취미라고 하는 캐롤린 다우닝. 생활의 소음에서조차 리듬감과 기쁨을 발견하는 모습에서, 아기처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세상을 관찰하는 모습에서, 이러한 것들이 예술가의 공통점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한국만의 소리’를 담아 영국으로 돌아갔고, 현재 2015년 영국 국립극장에서 이루어질 〈Dara〉라는 공연을 준비 중이다.


  • 무대음향디자인 워크숍과 초청강연을 진행하는 모습
    무대음향디자인 워크숍과 초청강연을 진행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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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5.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