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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사람

아르코미술관 《시간의 기술》 전의 남화연 작가 인터뷰

차승주 (아르코미술관 큐레이터)
  • 남화연 작가
    남화연 작가

베를린과 서울을 기반으로 퍼포먼스적 특성에 기반을 둔 영상 및 사운드, 사진 작업을 하고 있는 작가 남화연은 2008년 광주비엔날레에 참여하고, 수년 간 ‘페스티벌 봄’을 통해 퍼포먼스와 무대공연 등을 선보였으며,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 Move: on the spot, 2013년 하이트컬렉션 드로잉을 위한 공간들 등 다수의 전시에 참여하였다. 2009년에는 에르메스 미술상 후보 중 한 명이었으며, 프랑스 FRAC Lorraine에 작품이 소장되는 등 이미 국내외에서 주요 작가로 관심을 받아왔다. 최근에는 나이지리아 출신의 오쿠이 엔위저 총감독이 기획한 2015 베니스비엔날레 미술전 모든 세계의 미래 국제전에 〈욕망의 식물학〉이라는 작품으로 참여하며, 또 한 번 국제적인 무대에서 그 성장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현재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미술관은 《시간의 기술(Time Mechanics)》이라는 타이틀로, 국내외에서 그 역량을 인정받고 있는 남화연의 국내 최초 개인전을 선보이고 있다. 《시간의 기술》은 남화연이 지난 1~2년간 발전시켜 온 관심사는 물론 퍼포먼스 영상, 사운드, 사진 작업을 신규 제작하여 작가의 작업세계를 심도 있게 살펴보는 전시로, 특히 사물, 공간, 시간의 실체와 실존, 사회 시스템의 구조를 인식해 가는 그만의 특유한 언어적 퍼포머티비티(Performativity)와 형식적 특이성을 엿볼 수 있는 전시이다. 이 전시에서는 역사적 자료나 이미지를 활용한 비디오 영상, 동물과 식물을 모방하는 인간의 소리와 움직임 등 인간의 강렬한 욕망에 대한 탐구를 바탕으로, 과거, 현재의 시간대를 오가며 경험하지 못했던 것의 실체에 접근하는 다양한 방식들을 선보인다.

국내외에서 굵직한 두 개의 전시를 열며 가장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에게 《시간의 기술》 전의 작품 및 전시 이야기, 베니스비엔날레 출품작을 비롯한 그의 독자적인 작업세계와 작품철학에 대해 질문하였다. 


Q. 아르코미술관의 《시간의 기술》 전에서 선보이고 있는 작품들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려요. 특히 영상과 사진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번 전시에서 서로 다른 매체의 특성을 살려 표현하고자 했던 바는 어떤 것인가요. 


전시는 영상작업 총 5점과 사진작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처음 전시장에 들어서서 접하는 작품 〈필드 레코딩〉은 새소리를 수집, 분류, 기록하기 위해 사용하는 필드 레코딩의 방식을 차용하여, 퍼포머가 다양한 새소리가 수집된 아카이브에서 작가가 선별한 소리를 헤드폰으로 들은 후 자신의 목소리를 통해 새소리를 흉내 내는 과정을 촬영하고 녹음한 작품입니다. 이 두 영상을 지나면 전시장 중앙의 왼쪽부터 〈코레앙 109〉, 〈유령 난초〉, 〈동방박사의 경배〉라는 영상작품을 만나게 되는데, 〈코레앙 109〉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코레앙 109라는 레이블로 분류되어 있는 직지심체요절의 열람요청이 거절되고 도서관측에서 실물 책 대신에 인터넷 아카이브 링크만을 제공하면서 전자책 형태로 열람할 수밖에 없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입니다. 이를 계기로 인터넷에 산재한 직지심체요절과 관련한 많은 데이터를 수집하면서 하나의 사물인 책이 겪은 소유의 경로를 추적해 나가며, 과연 다양한 시간대를 오가는 인터넷 데이터가 물질과 공간의 경험을 대체할 수 있는지 질문하고자 했던 작품입니다. 〈유령 난초〉라는 작품은 19세기 중반 영국과 벨기에 등의 식물 컬렉터나 식물 관련 사업자들이 남미, 아시아 등으로 난초 사냥꾼들을 보내 희귀하고 이국적인 난들을 유럽으로 들여왔는데, 이 난초 사냥꾼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작품은 빌렘 미콜츠라는 난초 사냥꾼이 자신의 의뢰인이었던 프레드릭 샌더에게 보낸 편지를 읽는 목소리 위에 베를린의 달렘 식물원에서 어떤 모양을 흉내 내며 춤추는 퍼포머의 움직임이 겹쳐지면서 희귀한 난초들의 모습과 이에 대한 인간의 괴이한 수집욕 등을 은유한 작업입니다. 〈동방박사의 경배〉는 1980년대 유럽 우주항공국이 지오토가 그린 드로잉을 핼리혜성에 대한 과학적 드로잉이라고 보고, 역사상 최초로 핼리혜성의 클로즈업 이미지를 촬영하는 미션에 지오토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이에 대한 풋티지 영상들을 통해 혜성이라는 자연 현상이 기독교 믿음의 체계에서 과학의 영역으로 유입되는 과정을 살피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전시장 가벽 뒷면의 회랑에 설치된 사진작업들  〈개미 시간〉은 개미의 동선을 따라 이동하며 90cm 길이의 실로 개미가 움직인 궤적을 남기고, 그 보이지 않는 작은 움직임의 시간을 측정한 퍼포먼스 기록 사진입니다. 이번 전시에서 비디오는 지속 시간을 통해 시간의 구조를 재편성하는 것이 중요해 활용한 매체이며, 사진 기록에서는 지속 시간을 하나의 이미지로 기록하려고 했습니다. 


Q. 《시간의 기술》은 특히 작품의 개별적인 의미 이외에 공간 전체에서 작품이 어우러지는 방식도 전시를 극화하고 그 효과를 배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서로 다른 작품들의 사운드가 개별적이라기보다 서로 유기적으로 얽혀있는 것 같은데요. 이번에 직접 공간 구성까지 하시면서 가장 중점을 두었던 부분은 무엇인가요.


이번에 전시한 영상 작업들은 다른 시간대의 사건들을 충돌시키면서 인공적인 시간을 발생시킨다고도 볼 수 있는데요. 이런 작업들로 전시 공간을 구성하면서 전시라는 또 다른 인공적인 시간의 프레임이, 그리고 특별히 전시 공간을 걷는 행위가 어떻게 시간의 구조를 다시 세울 수 있는지가 궁금했어요. 공간적 배치를 통해 선형적 시간 구조를 암시하되, 동시에 각각의 작업에 담긴 시간들이 서로 교차되면서 발생하는 시차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죠. 아마도 소리가 시차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큰 단서였겠지요. 


Q. 앞선 질문과 연장선인데요, 특히  〈개미 시간〉의 배치 방식이 작품내용과 어떤 연관성을 지니고 있을까요, 있다면 어떤 점을 염두에 두고 〈개미 시간〉을 배치했는지 궁금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제가 염두에 두었던 기본적인 시간 구조는 있었고, 〈개미 시간〉은 시간의 출구와 같다고 생각습니다. 물론 관람자의 동선이 각자의 시간 구조를 세우기 때문에, 이 작업이 시간의 출구여도, 혹은 한 시간에서 다른 시간으로 옮겨가는 터널이어도 좋다고 생각했어요. 〈개미 시간〉이 설치된 공간은 다소 좁게 느껴질 수도 있는 통로인데요. 그 공간을 걸어서 통과하는 동안 내 몸이 감지하는 시간을 다른 스케일의 시간과 함께 생각해보고 싶었습니다. 개미의 1분과 나의 1분은 어떻게 다른지, 1분 동안 나 혹은 개미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어떻게 다른지가 이 작업을 시작하게 한 질문 중의 하나였어요. 물론 1분이란 것 자체가 만들어진 개념이지만요.


Q. 《시간의 기술》이라는 전시명은 어떤 의미인가요. 


본래 영문 제목인 Time Mechanics을 먼저 정했어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저는 다른 시간대의 사건들이 충돌하면서 발생하는 상황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 전시에 적합한 제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Q. 작가님의 작업에서 흥미로웠던 요소가 굉장히 많은데요, 그 중에서 인간의 시간, 인간의 속도, 인간의 의식구조가 아니라, 개미의 시간, 새소리 흉내 내기 등 타자의 영역이 적극적으로 개입되어 하나의 작품으로 구현되었다는 점이었습니다. 평소 동식물에 대해 관심이 많으신가요? 


네. 저 스스로도 동물, 식물, 자연 현상 등등에 관심이 많지만, 외부 세계를 이해하고 번역하기 위해 인간이 들여온 시간에도 큰 호기심이 있어요. 이를테면 〈개미 시간〉이라는 작업을 할 때, 개미의 움직임에 의해서 제 시간이 운용되는 상황이 더 흥미로웠어요.

 

Q. 이번 전시가 국내 최초 개인전인데, 전시를 개최하면서 느끼신 점이 있었다면? 


전시를 열고나면 언제나 다시 보이는 부분들이 생기기 마련인 것 같아요. 개인전은 기획 전시와는 다른 즐거움이 있었는데, 각각의 작업들이 한데 모이면서 발생되는 드라마를 보는 것이 좋았습니다.


Q. 이번 전시가 기존의 작업(전시)들과 좀 ‘다른 시도를 해봤다’라는 게 있는지요. 또는 기존의 작업들과의 연장선상에서 볼 때 지속적으로 탐구하고 있는 공통된 화두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다른 시도라면 아마도 몇몇 작업에 스크립트가 전면적으로 등장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또 이미지도 굉장히 많이 등장했고요. 작업을 하면서 시각이 저에게 굉장히 중요한 감각이라는 생각을 다시 했습니다. 그리고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시간과 움직임 그리고 스케일입니다. 이번 전시를 하기 전에 〈가변 크기〉, 그리고 〈이태리의 정원〉이라는 퍼포먼스 작업을 했었는데, 두 작업이 시간, 움직임, 스케일이라는 지속적인 관심사에 큰 영향을 주었어요.  


Q. 시간이라는 요소를 말씀하셨는데, 평소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에 내재된 시간, 그리고 사회적 합의로써 도출된 시간 개념에 관심을 두고 작업해 오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작가님은 시간에 대한 특별한 철학, 혹은 시간을 사유하는 개인적 방식을 갖고 계신가요. 작업을 통해 구현하고 싶은 시간 개념이 지닌 독특한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시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는, 베를린에 갔던 초기에 “시간이 왜 이렇게 많을까. 혹은 느릴까?”라는 생각을 깊게 한 적이 있어요. 또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들의 시간 감각에 대한 질문도 많았어요. 시간에 대한 특별한 철학은 없습니다. 시간이라는 것 자체가 이해하기에는 너무 방대하기도 하고요. 다만 저는 시간이 제 일상에 어떻게 변화무쌍하게 침투하는지에 관심이 있어요. 


Q. 작가님의 작업공간이 베를린과 서울인데, 베를린에서는 얼마나 계셨나요. 각기 다른 장소적 환경이 작품에 주는 영향에는 분명 차이가 있을 것 같은데요?


베를린에서 지낸 것은 4년 반 정도 되었습니다. 일단 베를린에서는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요. 집 앞에 큰 공원이 있는데, 거기서 많은 시간을 보냈던 것이 〈필드 레코딩〉이나 〈개미 시간〉 같은 작업으로 연결된 것 같아요. 


Q. 현재 베를린에 머물며 퍼포먼스 관련 전공을 하고 계신데, 작가님께 퍼포먼스가 매체 선택적 측면에서 어떤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는지요?


퍼포먼스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막연히 움직이는 것이 좋아서였어요. 그렇지만 퍼포먼스가 꼭 신체의 움직임과 결부된다거나 제 작업의 필수적인 요소라고는 생각하지는 않아요. 시간을 다루는 여러 방식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Q. 이번에 베니스비엔날레에 출품한 작품 ‘욕망의 식물학’을 구상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는지요?  


‘욕망의 식물학’은 개인전을 염두에 두고 구상하고 있었는데요. 이 작업은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있었던 튤립마니아에 대한 책을 읽다가 영감을 얻었습니다. 간단히 설명하면 튤립마니아는 수입 식물이었던 튤립 구근의 가치가 폭등했다가 폭락했던 현상인데요. 일부에서는 최초의 경제 버블현상으로 보기도 합니다. 당시 사람들은 꽃이 피지도 않은 구근에 투자를 했다고 해요. 이 현상이 저를 흥미롭게 했던 것은 광적인 집착의 대상이 다름 아닌 튤립이었다는 것입니다. 여하튼 튤립의 이미지와 벌의 원무를 레퍼런스로 삼은 움직임, 주식 폭등을 암시하는 허구의 텍스트, 주식 폭락을 중계했던 브로드캐스터의 목소리 등을 가지고 이 작업을 만들었는데요. 저는 이 작업을 통해 역사적인 사실이나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는 욕망하는 상태를 암시하는 여러 요소들을 연결해가면서 일종의 생태계를 배양하고 그것을 하나의 현상으로 보고 싶었어요. 


Q. 마지막 질문으로,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하고 싶으신지요? 베니스비엔날레 이후 잠깐 달콤한 휴식을 취하고 계실 텐데, 구상하고 있거나 예정되어 있는 전시나 프로젝트가 있는지요?


아직 계획이 구체적이지 않아서, 일단 좀 쉬면서 생각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아르코미술관에서 6월 말까지 진행되는 《시간의 기술》전은 그 동안 퍼포먼스 기반 영상 및 사진, 사운드 작업을 통해 시간의 구조를 재편성하고, 움직임과 스케일을 탐색해 온 작가 남화연이 새롭게 선보이는 시간에 대한 그만의 독자적 서술 방법을 비롯하여, 이미지와 사운드가 공간속에서 유기적으로 어우러지는 독창적 작업세계를 심도 있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아르코 로고

[기사입력 : 2015.0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