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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사람

연출가 고선웅의 전성시대

장지영 (국민일보 기자, 공연 칼럼니스트)
  • 연출가 고선웅
    연출가 고선웅

바야흐로 고선웅(47) 전성시대다. 고선웅은 현재 한국 공연계가 가장 사랑하는 극작가 겸 연출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만 보더라도 그가 쓰고 연출한 작품이 서울에서만 무려 6편 올라간다. 신작이 2편이고, 재공연되는 것은 4편이나 된다.
지난봄에는 남산예술센터의 연극 〈푸르른 날에〉(4월 29일~5월 31일 남산예술센터)와 국립창극단의 〈변강쇠 점 찍고 옹녀〉(5월 4~22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가 각각 재공연됐다. 또 이번 여름엔 신시컴퍼니의 신작 뮤지컬 〈아리랑〉(7월 11일~9월 5일 LG아트센터)을 선보이고 있으며, 그가 이끄는 극단 극공작소 마방진이 10주년을 맞이해 인기 레퍼토리인 연극 〈홍도〉(8월 5~23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와 〈강철왕〉(8월 14~30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을 준비했다. 가을엔 국립극단에서 연극 〈조씨고아〉(11월 4~22일 명동극장)를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광고회사에 다니던 그는 1999년 〈우울한 풍경 속의 여자〉라는 희곡으로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연극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같은 해 〈락희맨쇼〉를 통해 극작가로 데뷔한 그는 〈떠도는 자, 정여립〉, 〈이발사 박봉구〉 등을 잇따라 발표하며 금세 주목받았다. 촌철살인의 재기와 입담은 그의 장기였다. 또한 창작뮤지컬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던 뮤지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통해 뛰어난 각색 및 작사 실력을 뽐내기도 했다.


틈틈이 연출도 하던 그는 2005년 자신이 추구하는 ‘마술적 사실주의’를 무대 위에 직접 구현하기 위해 극단 마방진을 만들었다. 이듬해 창단작 〈모래 여자〉를 시작으로 〈마리화나〉, 〈강철왕〉 등 화제작을 잇따라 발표했다. 빠르지만 리듬감 있는 화술, 생기 넘치는 에너지, 다소 과장된 움직임 등 그의 연극 메소드는 극단에서 만개했다. 창단 5년째인 2010년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각색한 〈칼로 막베스〉로 온갖 연극상을 휩쓴 그는 2011년 〈푸르른 날에〉로 더욱 커다란 찬사를 받았다. 이후 장르를 가리지 않고 손을 대는 작품마다 폭발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그에게 지난 소회와 향후 계획을 들어봤다. 


Q. 올해 공연이 무려 6편이나 올라갑니다. 게다가 이번 여름에 〈아리랑〉, 〈홍도〉, 〈강철왕〉 3편이 동시다발적으로 공연되는데요.

주변 사람들에게 건방지게 보일까 봐 걱정입니다. 올해 작품 수가 많은 편이지만 신작은 〈아리랑〉과 〈조씨고아〉 2편이고, 나머지 4편은 꾸준히 공연되는 레퍼토리라 가능했습니다.

Q. 현재 공연 중인 뮤지컬 〈아리랑〉이 세간의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한국적 정서를 담은 작품인 만큼 LEC 스크린을 활용한 모던한 무대에 대해 호불호가 다소 갈립니다만 대체로 호평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창작뮤지컬 대작을 무대에 올린 소감은 어떤가요?

3년 전부터 이 작품을 준비했습니다. 조정래 선생의 원작소설이 워낙 대작이라 어떻게 압축해서 뮤지컬로 보여줄 수 있을지 많이 고민했습니다. 막상 무대에 올려놓으니 내 앞에 있던 커다란 산을 넘은 것 같아서 후련합니다. 어려웠던 작업을 끝낸 만큼 이제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LEC 스크린 사용과 관련해선 제작비 절감 때문이었다는 이야기도 나오던데, 사실적인 무대세트로는 20여 회의 장면 전환을 빠르게 할 수 없어서 결정한 것입니다. 굳이 무대세트를 아날로그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Q. 뮤지컬 〈아리랑〉이 고통스러운 일제 강점기를 다루고 있지만 ‘애이불비(哀而不悲)’, 즉 슬프지만 슬프지 않게 작품을 만들겠다고 했는데요. 〈푸르른 날에〉 등 전작들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수법으로 감정이 고양되는 순간 코믹한 요소를 넣어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전개를 이번에도 볼 수 있었습니다. 다만 기존의 뮤지컬 어법에 익숙한 관객들의 경우 이번 작품을 보면서 약간 낯설어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슬픈 내용이니까 슬프게만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 잘 이해가 안 돼요. 인간은 슬픈 상황에서도 자연스럽게 웃기도 합니다. 무대에서 심각하고 고통스러운 장면을 반복해서 이어가는 게 불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작품의 경우 기존 뮤지컬 팬에겐 정교하지 않은 뮤지컬로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서양 문법으로 만들어진 뮤지컬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연극이 다양한 형식을 가지고 있듯 뮤지컬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요?

Q. 〈아리랑〉에 이어서 극단 마방진의 10주년 공연으로 〈홍도〉와 〈강철왕〉이 잇따라 무대에 올라가는데요. 극단이 10주년을 맞은 소감은 어떤가요?

마방진이 현재 구리아트홀의 상주단체인데요. 〈홍도〉는 지난해 구리아트홀과 처음으로 공동제작한 작품입니다. 극단으로서는 단원인 양영미가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받아서 정말 기뻤던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강철왕〉은 극단 초기작으로 제가 패기만만할 때 썼던 작품입니다. 어설프고 민망한 부분을 정리해서 다시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극단의 초기작과 최근작인 두 작품을 통해 지난 10년을 회고하는 셈입니다.

Q. 연극계에 데뷔한 이후 먼저 극작가로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연출가로도 종종 활약하던 상황에서 극단을 만든 이유가 궁금합니다.

솔직히 제가 속이 좁아서 극단을 만들었어요. 3년 정도 희곡을 쓰면서 프로듀서나 연출가에게 제 요구사항을 다 전할 수 없어서 지쳤던 것 같아요. 작품에 대해 작가인 저와 프로듀서, 연출가가 생각이 다를 수 있잖아요. 한마디로 제가 원하는 연극을 만들고 싶어서 극단을 창단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저는 연극이 동일한 연극 철학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따라서 연극적 접근 방식에 참가자 모두 동의하는 게 우선인데요. 프로듀서 시스템에서는 배우들을 캐스팅할 때마다 그 접근 방식을 설득시켜야 해요. 제가 배우들에게 그것을 계속 말하기 싫은 것도 극단을 만든 또 다른 이유입니다. 저희 극단 단원이 현재 5기까지 뽑아서 40명 정도 있는데, 1~2기는 이제 설명이 따로 필요 없죠.

Q. 극단 창단작은 일본 전후파 작가 아베 고보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모래 여자〉였습니다. 극작가로서 높은 평가를 받던 당시 창작이 아닌 외국 소설을 각색해서 의외였습니다.

〈모래 여자〉는 제겐 인생 같은 작품입니다. 모래 구덩이에 갇힌 주인공이 계속 모래를 파는 게 ‘시지프스의 신화’를 연상시키는데요. 이런 실존의 문제가 우리 인생과 똑같지 않나요? 이 작품을 꼭 연극으로 만들고 싶어서 사재 털어서 저작권을 샀는데요. 손해도 컸고 미련도 많이 남았지만 제겐 가장 잊을 수 없는 작품입니다.

Q. 마방진이 추구하는 연극적 접근 내지 메소드는 ‘마술적 사실주의’라고 할 수 있는데요. 마술적 사실주의를 내건 이유는 무엇입니까?

저는 사실주의에 관심 없어요. 마술적 사실주의야말로 연극이란 장르를 연극답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연극에선 관객이 많은 것을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있잖아요. 연극의 확장성이야말로 가장 재밌는 요소죠. 따라서 연극이 영화나 TV 드라마에 나오는 스타일과 같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연극이 그렇게 따라 하는 것은 위선적으로 보여요. 마술적 사실주의는 답답한 논리적 잣대와 편협한 이성적 분별을 벗어나게 해주는 장치입니다. 또한 제게 연극은 놀이와 같은 것입니다. 놀이성이야말로 연극의 원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서사극에도 관심이 많은 편입니다. 아마도 제 작품의 에너지가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배우들이 연극을 놀이로 인식하고 편하게 연기하기 때문입니다.

Q. 극단과 외부 작업에서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또 극작가로서 각색과 창작, 어느 쪽 작업을 선호하시나요?

제가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단순합니다. 심장이 움직이면 무조건 합니다. 돈이나 명예 때문이라면 움직여선 안 되죠. 예를 들어 〈칼로 막베스〉는 우리 극단의 메소드로 훈련된 단원들과 함께 이제는 셰익스피어를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결정했어요. 물론 ‘액션활극’이라는 우리만의 스타일로 바꿨지만요. 최근에 각색 작업을 많이 했는데, 각색이나 창작이나 어렵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창작은 새로운 작품을 쓰는 고통이 만만치 않고, 각색은 원작자의 의도를 존중하면서 대본을 손봐야 하니까요.

Q. 요즘 마방진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배우들이 많다고 들었는데요. 단원을 새로 뽑을 때 기존 단원들이 만장일치 해야만 입단이 허락된다고 들었습니다.

극단은 한솥밥을 먹으면서 연극을 만드는 곳입니다. 1차 집단이 아니면서도 1차 집단 같은 곳이죠. 그래서 누구 한 명이라도 극단 내에서 소외되면 안 된다는 게 제 철칙입니다. 단원들 서로 사이가 좋아야 분란이 안 생기거든요. 단원 선발만이 아니라 극단의 여러 문제에 대해 늘 회의를 열고 토론을 통해 모두가 동의하는 결론을 내려고 합니다. 저는 단원들에게 미리 ‘너희들의 청춘은 책임지지 못 한다. 대신 행복하게 연극을 만들 수는 있다. 충분히 고려해서 입단을 결정해라. 또 퇴단은 말리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단원들에게 외부에서 다른 작품 오디션 있으면 열심히 보라고 합니다. 요즘 이명행을 비롯해 저희 단원들이 외부 작품을 통해서도 평단과 대중의 좋은 평가를 받고 있어서 너무 기쁩니다.  

Q. 올해 10주년을 맞은 마방진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극단의 자립입니다. 지원금에 의존하지 않고 연극을 하고 싶어요. 아르바이트로 생활비 대부분을 충당하는 배우들에게 지금보다 나은 대우도 해주고 싶어요. 그러려면 장기 공연할 수 있는 레퍼토리 극단으로 가야 한다고 봅니다. 제 꿈은 평소엔 좋은 레퍼토리를 오픈런 공연하면서 여름과 겨울에는 불교의 하안거, 동안거처럼 단원들이 모여 신작을 함께 만드는 거에요. 물론 이렇게 되려면 아직 갈 길이 멀긴 합니다. 5주년을 앞두고 저희 단원들이랑 “우리도 다른 극단들처럼 외국 공연도 가보자”고 얘기했었어요. 그리고 5주년이던 2010년 공연한 〈칼로 막베스〉가 이듬해 중국을 시작으로 터키와 벨라루스에서 초청공연을 했습니다. 원래 해외 공연은 국내에서 처음 만들어진 뒤 적어도 3년쯤 걸린다고 하던데, 마방진은 그 이듬해 바로 됐어요. 진짜 감격스럽더라고요. 5주년 때 제가 처음 바랐던 게 모두 이루어져서 그런지 10주년을 맞아 세운 자립의 꿈도 머지않은 시기에 꼭 이뤄질 것 같아요. 믿는 대로 이뤄진다고 하잖아요.

Q. 마방진 5주년이었던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경기도립극단의 예술감독을 맡았었는데요.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관록 있는 단원들로 이뤄진 도립극단과의 작업은 쉽지 않았을 듯합니다.

당시 제가 〈들소의 달〉과 〈칼로 막베스〉로 한참 기고만장해 있었을 때였는데요. 도립극단의 나이 드신 선배님들을 만나면서 차분해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물론 도립극단 선배님들은 처음엔 제가 추구하는 공동창작이나 즉흥을 어색해하셨어요. 하지만 나중에는 매우 즐거워하시면서 적극적으로 참가하셨어요. 이곳 작업을 하면서 내가 추구하는 연극의 색깔이나 호흡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어요.  

Q. 앞으로 하고 싶은 작품은 무엇입니까?

〈홍도〉 같은 대중적인 작품을 더 만들고 싶습니다. 제가 도립극단에 있을 때 경기도민들을 찾아가는 공연을 종종 했었는데요. 서울과 그리 멀지 않은 수도권이지만 의외로 연극을 한 번도 안 보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런 분들이 연극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고민하다가 나온 작품이 〈홍도〉였어요. 쉬운 언어를 사용하면서 연극의 에너지를 느끼게 해줄 수 있는 작품을 만들려고 합니다.


  • 〈아리랑〉
    〈아리랑〉
  • 〈푸르른 날에〉
    〈푸르른 날에〉
  • 〈칼로 막베스〉
    〈칼로 막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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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5.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