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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사람

국립발레단 강수진 단장 인터뷰

장지영 (국민일보 기자, 공연 칼럼니스트)

  • 국립발레단 강수진 단장
    국립발레단 강수진 단장



강수진 국립발레단 단장 겸 예술감독이 지난 2월 4일 취임 1주년을 맞았다. 세계적인 발레리나에서 예술행정가로 변신한 강 단장에 대해 발레계는 임명 직후 국립발레단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행정 경험이 없는 것에 대한 우려를 동시에 가졌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강 단장은 국립발레단을 비교적 안정적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정통 클래식 발레에 치중돼 있던 국립발레단 레퍼토리에 모던발레와 컨템포러리발레를 도입해 변화를 가져온 것이 호평을 얻고 있다. 취임 1주년이 된 강 단장을 만나 지난 소회와 향후 계획을 들어봤다.

Q. 우선 취임 1주년을 맞이한 소감은 어떠신가요? 그동안 무대 위에서 무용수로 활동하다가 행정가로서 일을 한 것은 큰 차이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지난 1년간은 국립발레단의 단원들, 지도위원들, 스태프들, 직원들이 모두 열심히 해준 덕분에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습니다. 제가 발레단에 오면서 ‘팀워크’를 강조했는데, 발레단 구성원 모두가 하나가 된 덕분입니다. 저로서는 최선의 결과를 얻었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무용수이던 시절은 24시간을 온전히 저 자신에게만 집중할 수 있었는데, 단장이 된 이후엔 저 자신은 가장 마지막 순서가 됐어요. 그만큼 일의 집중도가 높아진 것 같습니다. 같은 시간이라도 100%가 아니라 150% 효과를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Q. 국립발레단 수장으로 임명됐을 때 기대도 컸지만 우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현재로서는 무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스스로는 어떻게 평가하고 있습니까?

제가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으로 임명됐을 때 주변의 모든 분들이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저 역시도 제안을 받았을 때 많이 고민했으니까요. 그래도 발레단이 50여 년의 역사를 가진 만큼 단원과 레퍼토리 등 시스템화된 부분이 많아서 제가 무난히 일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물론 매일 춤만 추던 사람이 수많은 미팅과 서류 업무를 해낸다는 게 처음엔 쉽지 않았지만 하나둘 배우다 보니 어느새 많이 익숙해졌습니다. 특히 모르는 것에 대해 망설이지 않고 주변에 물어본 게 큰 도움이 됐습니다. 저는 예술감독으로 취임하면서 발레단의 성장을 과제로 삼았고, 실제로 지난 1년간 꾸준히 성장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Q. 국립발레단 단장이 된 이후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제 앞에 여섯 분의 단장님이 계셨습니다. 그분들이 지난 50여 년 동안 최선을 다해 발레단을 성장시키셨습니다. 특히 클래식 발레의 토대를 굳건히 마련하셨는데요. 여기에 저는 한발 더 나아가 21세기에 맞게 좀 더 다양한 스타일을 소화할 수 있는 발레단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기존의 레퍼토리 외에 네오클래식(신고전), 모던발레, 스토리발레 등 발레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맛볼 수 있도록 레퍼토리를 구성했습니다. 지난해 〈교향곡 7번〉, 〈봄의 제전〉이나 올해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그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Q. 솔직히 그동안 국립발레단의 레퍼토리는 상당히 보수적인 편이었습니다. 지난해 우베 숄츠의 〈교향곡 7번〉과 글렌 테틀리의 〈봄의 제전〉을 무대에 올린 것은 국립발레단으로서는 새로운 시도였다고 보여집니다. 물론 해외 발레단과 비교하면 그렇게 파격적인 것은 아니었지만요. 게다가 발레단이 이런 네오클래식과 모던발레에 익숙지 않은 탓에 완성도가 높았다고 보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아무래도 이런 스타일의 작품을 한 적이 별로 없어서 단원들도 처음엔 힘들어했습니다. 하지만 연습을 거듭할수록 재미있어했고, 자신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물론 관객들 보시기에 조금은 아쉬운 부분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공연을 반복하면 단원들도 이런 스타일에 익숙해져서 완성도가 높아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우선 올해 재공연이 있는데, 아마도 지난해보다 훨씬 좋아진 것을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결국 시간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이런 작품에서는 재능 있는 무용수라면 군무라도 주역으로 발탁하는 등 기회를 공평하게 주고 싶어요. 이외에 지난해부터 선보이는 갈라 공연인 ‘KNB 스타즈’에서도 다양한 발레 소품들을 선보이고 있는데요. 단원들이 이런 공연을 통해 계속 발전하고 있는 만큼 응원을 좀 더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만약 비판할 게 있다면 단장인 제게 해주세요.

Q. 지난 1년간 파격적인 캐스팅과 함께 파격적인 승급이 화제가 됐습니다. 단장 취임 후 두 달쯤 지나 〈백조의 호수〉 공연에서 솔리스트 이재우를 수석 무용수로 승급시켰습니다. 당시 관객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발표를 했는데, 워낙 파격적인 인사여서 이재우 본인은 물론 극장에 있던 모든 사람이 놀랐습니다. 해외 발레단에서 이런 깜짝 승급이 종종 있긴 하지만 국내에서는 처음이었습니다.   

이재우 단원이 재능 있고 가능성이 큰 발레리노라는 것은 팬들이라면 다 아실 겁니다. 〈백조의 호수〉에서 마법사 로트바르트와 지그프리트 왕자를 번갈아 가며 너무나 잘해줬어요. 기량이 눈에 띄게 발전하는 게 보여서 당시 공연을 보다가 승급시켜야겠다고 결정했습니다. 다행히 이재우 씨가 그 후에도 너무 잘 하고 있어서 제 결정에 후회가 없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잘 살린 것에 대해 고맙게 생각합니다.  

Q. 30년 가까이 활약한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은 존 노이마이어나 이리 킬리안 등 뛰어난 안무가들을 많이 배출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특히 발레단의 후원자들이 만든 노베르협회와 함께 젊은 안무가를 육성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혹시 국립발레단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 계획은 없으신가요?

그렇지 않아도 올해부터 국립발레단 내에서 안무에 관심 있는 단원들에게 기회를 주려고 합니다. 안무를 해보면 무용수도 작품을 이해하는 능력이 좋아집니다. 다만 이제 시작 단계라서 외부 안무가와 작업하는 것까진 어려울 것 같고요. 발레단 내에서 안무 외에도 여러 재능을 가진 단원들을 발굴하고 싶습니다.

Q. 독일과 한국의 발레단 환경을 비교하면 어떻게 다른가요?

발레단마다 각각의 색깔이 있고 각 나라마다 시스템이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한국의 경우 모든 게 빠른 편입니다. 유럽 발레단이 몇백 년에 걸쳐 만들어온 것을 국립발레단은 훨씬 짧은 시간에 압축해서 성장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라마다 특유의 문화나 분위기가 있는데, 제가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에서 활동하다 보니 한국적 정서를 잘 모르고 있었는데 요즘 새롭게 느끼는 부분이 많습니다.

Q. 지난해 예술감독이 된 이후 겪었던 가장 큰 어려움은 발레 〈나비부인〉과 관련된 논란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 작품은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발레단의 엔리케 가사 발가 예술감독이 처음부터 강수진 단장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서 화제를 모았는데요. 한국 공연 당시 무대 위의 발레리나 강수진은 빛났지만 작품의 완성도 면에서는 아쉬웠다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더구나 한일관계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왜색 논란’까지 일었고, 올해 국립발레단 레퍼토리로 하겠다고 발표했다가 얼마 뒤 취소했는데요. 〈나비부인〉 논란은 한국적 정서를 잘 몰랐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솔직히 〈나비부인〉에 대해 더 이상 구구절절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벌써 지난해의 일이고 국립발레단에서 공연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으니까요. 저로서는 후회 없는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에 묶여 있으면 다른 것을 할 수 없으니까요. 굳이 질문에 답하자면 저는 한일관계를 떠나 한 인간의 이야기로서 〈나비부인〉이 와 닿았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분들도 분명히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결과적으로 그 작품이 현시점에선 국립발레단 공연으로 맞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공연 취소를 결정한 겁니다. 당시 제가 비판받는 것은 괜찮았는데 국립발레단이 피해를 받을 것 같아 많이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열린 마음으로 모든 상황을 고려해 빠르게 결정했습니다.  

Q. 현재 국립발레단 단장이지만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소속된 현역 무용수이기도 합니다. 이미 예고한 것처럼 내년 7월 은퇴하기까지 무용수로서 종종 무대에 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래서인지 평소 국립발레단 단원들과 함께 클래스(기본 훈련)를 한다고 들었습니다. 덕분에 단원들이 클래스에 올 때 이전보다 훨씬 긴장한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국립발레단에 오면서 이미 예정돼 있던 공연 스케줄을 대부분 취소했지만 아직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소속으로서 꼭 해야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지난 1년간 2회 정도 국립발레단 휴가 기간에 맞춰 독일에서 공연을 하고 왔습니다. 무대에서 제대로 춤을 추려면 평소 클래스가 중요하기 때문에 저도 단원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제가 직접 클래스에 참가하다 보니 단원들의 움직임을 보고 지도할 수 있어서 좋은 면도 있습니다. 이와 함께 유럽에서 제가 친분이 있는 트레이너 등을 초청해 단원들의 기본기를 향상시키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Q. 한동안 언론에서 ‘현역 최고령 발레리나’라는 타이틀이 따라다녔는데요. 프랑스의 실비 기엠이 전막 발레는 아니지만 여전히 무대에 서고 있고, 일본의 모리시타 요코는 현재 60대인데도 전막 발레에 출연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저에 대해 참 많은 수식어가 있고, 그렇게 불리고 있는데요. 해외에 있었던 저는 몰랐거나 다소 오류가 있는 수식어도 있습니다. '현역 최고령'이라는 수식어 역시 그런 수식어 가운데 하나인 것 같습니다. 제가 한국인이고 저를 사랑해주시는 분들이 많은 한국이기에 그런 것이라 생각합니다. 관심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지만 제게 최초나 최고 같은 수식어는 그저 수식어일 뿐 중요하지 않습니다.

Q.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입단한 지 30년째인 내년, 남편이신 툰치 소크멘 씨의 생일인 7월 22일 〈오네긴〉 공연으로 은퇴하겠다고 못 박았는데요. 사실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종신 단원이기 때문에 굳이 은퇴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고 생각되는데, 은퇴한 이후엔 아예 무대에 서지 않겠다는 뜻인가요? 해외의 유명 무용수들을 보면 발레단을 은퇴한 이후에도 게스트 댄서로서 종종 무대에 섭니다.

사람 일은 모르기 때문에 내년이 되어서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춤을 출 수도 있고 안 출 수도 있습니다. 다만 내년이면 저도 50살이 되는데, 그동안 춤은 충분히 췄다고 생각해요. 무용수마다 은퇴에 대한 생각이 다르므로 춤을 출 수 있는 한 무대에 오르겠다는 의지를 가진 사람도 많습니다. 이런 분들을 정말 존경합니다. 제 경우는 자기 자신과 관객들에 대한 ‘리스펙트(respect)’를 가진 채 작별하고 싶습니다.  

Q. 예술감독으로서 앞으로 구상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실 한국에서 국립 예술단체의 예술감독은 임기가 3년인데다 외국과 달리 미리 임명하지 않기 때문에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기 어려운 편입니다만 그래도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해외 발레단의 경우 보통 예술감독 임기가 5년입니다. 예술감독으로서 기반을 다지고 발레단을 자신만의 색깔로 이끌고 나아가는데 그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거죠. 물론 나라마다 시스템이 다르고 각각의 장단점이 있어요. 한국은 지금과 같은 시스템 안에서 발전을 해왔고, 전임 단장님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최선을 다하셨다고 생각해요. 다만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서라면 시스템을 바꾸는 것도 고려할 사항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현재 제게 주어진 시간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찾고 있습니다. 구상하는 것은 많지만 무슨 일이든지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우선 발레단의 레퍼토리를 꾸준히 다양화하는 것과 함께 재능 있는 단원들을 해외에도 알리고 싶어요. 현재 해외에서 활약하는 좋은 한국 무용수들이 많고, 이들이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에 비해 국립발레단을 비롯해 국내에서 활동하는 무용수들이 재능에 비해 해외에 알려져 있지 않아서 아쉬워요. 유럽에서 활동하는 동안 제가 얻었던 네트워크를 활용해서 이들을 알릴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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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5.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