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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사람

이야기 창작지원 소프트웨어 ‘스토리헬퍼’ 개발
베스트셀러 작가 이인화 

변인숙 (드라마터그) 
  • 이인화 작가
    이인화 작가

지난 해 높은 시청률로 신드롬을 일으킨 문화상품 ‘응사(응답하라 1994)’에서는 90년대 초중반 인기소설 ‘영원한 제국’이 주인공과 나란히 한 화면에 잡힌다. 1993년 발표돼 1995년 배우 안성기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졌고, 현재까지 밀리언셀러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영원한 제국’의 저자 이인화(본명 류철균)는 자신의 문화적 콘텐츠를 기술과 융합해 현재 이화여대 디지털미디어학과 교수와 디지털스토리텔링 전문가로 활발히 활동중이다. 그의 문화적 궤적을 보면 창작자로서의 면모도 있지만, 연구·개발자이자 교육자로서의 색도 강하다. 2013년 7월 첫 선을 보인 ‘스토리헬퍼’는 그가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좋은 스토리란 무엇인가?’에 천착했던 노력이 반영된 결과물이다. ‘스토리헬퍼’는 이화여자대학교 디지털스토리텔링연구소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엔씨소프트와 합작해 만든 소프트웨어로, 영화·애니메이션 1,406편을 토대로 1만 6천여 개 의 창작 데이터베이스를 추려서, 작가들이 뻔한 스토리를 쓰는 것을 방지하고 집필 시간을 줄이는 데 일조했다.


그는 오는 8월 21일 아르코예술인문콘서트에 출연해 스토리헬퍼 개발에 얽힌 얘기와 스토리텔링에 대한 내용을 강연할 예정이다. ‘Talk, Talk, Talk 글 쓰는 오늘’이라는 제목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갈 예정이다. 아르코예술인문콘서트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최로  왕성하게 작업 중인 예술가나 인문학자가 관객을 만나는 자리로, 지난 5월부터 격주로 목요일마다 ‘예술가의집’에서 열리고 있다. 아르코예술인문콘서트를 앞둔 지난 7월 30일 이화여대 SK텔레콤관에서 이인화 작가를 만났다. 그는 방학 중에는 수요일에만 학교에 나와 업무를 처리하고 목동 작업실에서 다음 소설의 막바지 작업에 매진 중이라고 했다. 이 인터뷰 후에도 곧장 다른 인터뷰 일정을 소화해야 할 정도로, 바쁜 스케줄도 계속되고 있었다. 


Q. 8월 21일, 예술가의집에서 열리는 아르코예술인문콘서트에 강연을 맡으셨는데, 어떤 내용을 주로 들려주실 건가요?

제가 연구한 ‘스토리텔링’에 관한 것들이죠. 인간의 고유하고 본질적인 창조 작업이 스토리텔링이지만, 디지털미디어 시대가 되면서 점점 인간과 기계의 융합이 일어나고 있잖아요? 사람들이 모든 업무에서 컴퓨터의 도움을 받고 있어요. 그런 것들을 스토리텔링에도 적용한 게 ‘스토리헬퍼 프로그램’입니다. 창작스토리에 컴퓨터의 추천기능, 참조기능 등을 더해 일보를 내디딘 것인데, 어떻게 계속 연구해서 개선해 나갈지 얘기할 예정입니다. 

Q. 스토리헬퍼 소프트웨어에 대해 제자들이나 이용자들의 찬반 논란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반응은 어땠나요?

주변 반응이 뜨겁고요. 드라마 작가, 시나리오 작가 포함해서 스토리텔링 일을 하는 사람은 다 보는 것 같습니다. 작가가 2만 명이 안 되는데, 2만 명 정도 이용자가 사용하니까요. 무료이기도 해서 다들 한 번씩 이용하는 것 같습니다. 

Q. 일반인이나 학생들의 이용 후기도 유튜브나 블로그 등에서 쉽게 볼 수 있는데요. 스토리텔링 관련 학과 재학생들이 창작수업에서 스토리헬퍼를 이용하는 영상을 봤습니다. 현재 소프트웨어에서 극복해야 할 사안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요?

한 번 영상을 봐야겠네요. 스토리헬퍼는 전체 이야기의 패턴, 플롯이 어떻게 짜일지, 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인데, 앞으로 개발할 스토리헬퍼는 한 장면 안에 어떤 내용이 채워질 것인지, 쇼트라고 할 때 어떤 그림을 배치해서 이야기를 만들어갈 것인지, 그림 데이터베이스를 보면서 이용자가 선택하게 할 거예요. 더 자세하게는 캐릭터나 소품 같은 것들을 끌어다놓고 그림을 만들 수 있게 하는 거죠. 
실제 현존하는 스토리헬퍼 보다 점차적으로 시각적 자료가 될 것 같아요. 창작이라고 하는 게 글로 쓰는 거잖아요? 글이 가장 정확하게 전달되는 도구죠. 그런데 인간의 상상체계라고 하는 게, 어떤 기억을 떠올릴 때 단어로 떠올리지 못하거든요. ‘옛날에 이런 일이 있었는데…’ 하면서 뭔가 어렴풋한 그림이 떠올라요. 존 R. 헤이스 카네기멜론 대학 교수의 글쓰기 과정 이론에도 나오는데, 표상으로 어떤 그림이 떠오르는지를 보는 것과 못 보는 것은 굉장히 다르거든요. 스토리헬퍼는 그림을 제시하고 ‘아니라면 바꿔보세요.’라고 하죠. 바꿔보면 쓰려는 게 뭔지 정확히 나와요.
스토리헬퍼는 글쓰기 작업의 편리한 도구로 지금까지는 전문적인 작가들이 쓸 수 있는 도구였어요. 일반인들에게까지 가지는 못 했거든요. 더 많은 사람들이 잠재적 창작 능력을 발휘하도록 개선해가야죠. 

Q. 그림 단계까지 간다면, 그림을 선택할 때 개인의 취향이나 호불호가 더 개입될 것 같은데요. 일러스트는 게임 개발회사인 엔씨소프트가 맡나요?

개발은 전적으로 이화여대가 하고 있고, 엔씨소프트는 기술 지원을 해요. 개인의 호부에 좌우되는 것은 맞습니다. 저희 그림은 디테일한 그림이 아니고, 초기 표상의 그림이에요. 여섯 가지 요소가 중심이 됩니다. 로케이션, 캐릭터, 시츄에이션, 테마, 오브젝트, 액션 등의 여섯 가지 요소를 보여줄 수 있는 장면이거든요. 호부가 작용하기보단 아이데이션(ideation) 기획을 할 수 있는 도구죠. (스토리헬퍼는 크게 아이데이션 툴과 라이팅 툴로 나뉘는데, 이는 기획 단계와 집필 단계를 지원한다.)

Q.  2010년 5월부터 2013년 4월까지, 개발 기간이 3년 정도 걸렸다고 들었습니다. 데이터로 산출하는 과학적인 방식을 썼는데 이과 학생이 많이 참여했나요? 어떤 식으로 협업이 진행됐는지요?

이화여대 디지털 미디어학부는 문·이과가 융합된 곳인데요. 구체적으로 말하면 공학과 디자인, 인문학이 함께 갑니다. 디지털 콘텐츠를 만들기 위한 세 가지 기술이죠. 기획, 디자인, 프로그래밍을 해야 합니다. 그런 학부로 특화됐어요. 공학 전공, 디자인 전공, 인문학 전공이 같이 일해요. 데이터베이스를 인문학에서 맡으면 웹사이트를 디자인에서 그리고 공학에서 프로그램화 하는 거죠. 그런 과제들을 계속 해왔어요. 학생들은 수업을 함께 듣는 것도 있지만 이런 프로젝트를 하면서 특정 역할들을 맡게 됩니다. 이 역할을 통해서 어떻게 다른 사람과 상호 작용하는지를 배우는 거죠. 실제 기업체에서 일하는 방식이거든요. 그래서 단일 학부보다 취업률이나 학문적인 성과가 우수합니다.

Q. 스토리헬퍼는 새로운 이야기는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견해가 깔려 있나요?
 
스토리헬퍼는 작품을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205개의 모티브의 변형으로 봅니다. 〈타이타닉〉,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얘기나 에드워드 6세의 〈왕자와 거지〉, 〈광해〉가 계속 반복되는 이유도 모티브를 논리적·역사적·수사적으로 변형하면서 새로운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인 거죠. 그래서 그 패턴이 익숙하면서도 낯설어야 한다는 것이죠. 봤던 게 나와도 사람들이 싫어하고, 너무 새로워도 화내요. ‘내가 원하는 이야기가 아니야‘라고 합니다. 스토리헬퍼에서는 다른 이야기와의 유사성이 87%와 55% 사이일 때, 비슷한 옛날 패턴에서 벗어나게 되고, 55% 이하면 낯선 얘기라고 하고, 87% 이상이면 봤던 거라고 하죠.
이정범 감독이 〈우는 남자〉로 새로 시나리오를 쓰고 찍었는데, ’꽃미남‘ 킬러가 등장하고 총격전이 나와요. 인물이 아기를 구하러 가고 아기 엄마를 만나는 등 이전 작품과 너무 유사도가 높아요. 관객들은 ’옛날 거 베끼느냐?’라고 말합니다. 그 비슷한 예로 강제규 감독이 〈태극기 휘날리며〉 이후에 〈마이웨이〉를 했는데, 남자 둘이 나오고 어디론가 인물이 달리고, 전쟁에서 쫓고 쫓기는 장면들이 계속 나와요. 관객들은 두 작품이 똑같다고 느낍니다. 감독들은 그렇게 안 느끼겠죠. 유사도가 높으면 관객들은 분노합니다. 모티브를 어떻게 변형하는가, 전체 패턴을 얼마만큼 낯설게 만드는가가 섬세한 일이거든요. 0.1%를 조율하는 것입니다.
제가 스토리헬퍼를 만든 이유이기도 합니다. 스토리를 0%부터 100%로 끌어가는 게 너무너무 힘이 듭니다. 초고에서 완벽한 작품을 만들지는 못해요. 텍스트 1, 2, 3 … N에 이르러야 완성이 되는데, 조금만 줄여보자는 거죠. 95에서 100까지 가는 데 2년 걸리니까 0에서 100 까지 가려면 성공 확률이 떨어지잖아요? 자기성취를 하면 모르겠지만, 많은 스토리가 현재는 산업에 들어와 있어요. 그 프로세스에서 예산도 고려해야 하고, 창작 일정을 무작정 기다릴 수가 없는 거죠.

Q. 그럼 본인이 기존에 시나리오를 쓰면서 겪은 애로사항이 반영되었나요? 향후 스토리헬퍼의 큰 그림은 무엇인가요?

현재 스토리헬퍼는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모델로 했는데, 영화와 애니메이션이 표준화에 적합합니다. 100분에 20장면, 1,500개 문장 등으로 계층 구조가 있어서죠. 스토리헬퍼는 각 샘플 시놉시스를 3막 8장으로 분절했고, 하나의 트리트먼트를 16개의 시퀀스, 36개 에피소드, 110개 장면으로 분절했어요. 이 안에서 돌아가기 때문에 표준화가 쉽죠. 이것을 샘플로 해서 소설·게임으로 확장해나가는 것입니다.
시나리오를 쓸 때의 애로사항도 많지만, 기본적으로 제가 스토리를 연구하는 사람이라 영화가 연구하기 좋았어요. 뤼미에르 형제가 1895년 영화를 발명한 후 첫 영화에서 호스로 정원에 물을 뿌리는 장면부터 2010년에 이르기까지 영화는 2만 4천 편 밖에 안 나왔어요. 인도영화는 춤과 노래가 너무 많이 나오고 정상적인 영화문법에서 벗어나니 빼고, 중국은 프로파간다니 빼고..., 그럼 2만 1천 편 정도 되는데 그중 대표성 있는 영화라는 게 뻔해요. 아카데미 작품상, 각본상 받은 영화라든가 한국 800만 이상 관객 든 영화 뽑으면 1,406편 정도 나오는 거죠. 이 1,406편을 연구한 게 스토리헬퍼입니다.
스토리헬퍼를 만든 건 제가 시나리오를 만들 때 애로사항이 반영됐다기보다 〈디워〉 같은 작품이 더 이상 나오면 안 되겠다 싶어서였죠. 스토리를 전혀 납득할 수 없어요. 스토리헬퍼가 무료로 나오면 작가가 이용해보고 한 번 반성하지 않겠느냐고 생각 했던 거죠.

Q. 과거 국문학 교수에서 지금은 디지털미디어학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신데, 어떻게 다른지요?
 
일단 가르치는 게 전혀 다릅니다. 매학기 수업할 때마다 느끼지만, 다음 학기 트렌드 변화가 굉장히 빠릅니다. 그래서 실제로 잘 가르치고 있나 못 가르치고 있나 불안할 때도 많고요. 국문학은 안정되고 오래된 학문이라서 교과 목표가 분명합니다. 그런데 디지털미디어학은 트렌드와 연구하는 내용을 잘 맞추지 않으면 쓸데없는 얘기를 하고 있는 강의가 돼요. 다른 교수님들도 마찬가지죠. 서울대나 카이스트에서 디자인으로 학위를 받으신 분들도 강의를 하고 계세요. 디지털미디어학과가 2002년에 생겨서 현재 12년밖에 안 된 학부인데, 처음에 IT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시작을 한 거라서 학생들이 초기에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아무도 안 해본 것을 개척한 거죠. 뭘 해도 처음 쓰는 논문이라 사명감도 생겼어요. 취업률은 다른 학부 보다 나아서 안정감은 있습니다. 취업을 못 하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IT 트렌드가 빨리 변해서 모바일 혁명 이후 어디로 가야 할 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는 잘 하고 있어요. 

Q. 트렌드 변화를 잡아내기 위해 노력하는 부분이 무엇인지요? 또 여러 장르의 일을 하면서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된 부분은 무엇인지요?

저는 기본적으로 세상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보려고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부정적으로 보게 되거든요. ‘야! 희한한 게 나왔네’ 하면서 자기 암시를 줘야 합니다. 사람은 관습의 노예라서, 익숙해진 데에 그대로 살고 싶어하니까요. 제가 게임을 해서 참 좋았던 게, 막내딸보다 어린 애들이 저 보고 형님이라고 합니다. 그 아이들의 용어로 채팅을 하다보면 언어의 선택에서 그들의 의식이 보입니다. ‘어떻게 저런 걸 저렇게 표현하나? 훌륭하다’ 싶습니다. ‘인실좃 당하다’는 용어가 있는데, 실존철학의 용어 같기도 하고, 그런 말 안에는 새로운 시대 인식이 보이잖아요. 인터넷 안에서 아무리 영웅주의를 보여도 인터넷과 현실 사이에서의 격차가 있고 균형 잡힌 시각이 있어요. 많이 배우죠.
사람이 그렇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은 많이 해도 피곤하지 않고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싫어하는 일은 한 시간도 할 수 없거든요. 자기가 자기를 속일 때가 많아요. 마흔 이전에는 누구나 그럴 수 있죠. 자기가 의사결정을 하는 위치가 아니라서 시키는 일을 하고, 싫지만 억지로 좋다고 하기도 해요. 마흔이 넘으면 자기가 의사결정을 합니다.
냉정하게 자신을 들여다봐야 돼요. 의식적으로 ‘이게 재미있을까? 정말 무의식에까지 끌리는가? 실존적으로 내가 여기에서 이걸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가?’ 물어야 합니다. 생각이 맞아서 들어가면 배신하지 않습니다.

이인화 작가는 자신의 프로필이 ‘서울대 졸업, 이대 교수’ 두 개로 끝이라고 말한다. “오프라인의 삶이 심플하기 때문에 온라인이나 정신적 작업에 여러 군데 손을 대는 것”이라고. 그는 항상 자신이 재미있는 것을 했고, 더 재미있는 게 생기면 그것에 미칠 것이라고 한다.
스토리헬퍼 개발자인 그는 여러 차례 게임 스토리 작업이나 개발에도 참여했다. 2012년 발표한 장편소설 〈지옥설계도〉의 작품 내용을 토대로 인페르노 나인 게임을 만들기도 했다. 그는 내로라하는 게임 마니아이기도 하다. 2002년 리니지를 처음 접한 후 게임이야말로 ‘수십만 명이 함께 쓰는 소설’이라고 여겼고, 학문적 관심으로 논문도 발표했다. 인페르노 나인은 미국에서 업데이트 중이며, 여전히 그는 “좋은 소설을 좋은 게임으로 옮기겠다.”는 이상을 품고 있다.
소설가로서는 다음 장편소설을 마무리해야 한다. 70년대 밀수하는 인물이 등장하는 내용으로, 〈악으로 번영한 가문의 비극〉을 쓰는 중이다. 선의가 무엇인지, 역설적으로 악의 비극을 통해 드러내는 작품으로 가을쯤 독자들에게 선보일 예정이다.
이인화 작가의 더 상세한 스토리텔링에 대한 의견과 소프트웨어의 내용은 오는 8월 21일 아르코예술인문콘서트와 스토리헬퍼(www.storyhelper.co.kr)를 통해 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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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4.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