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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사람

한국 피아니스트 최초로
베르비에 페스티벌에서 독주회 연 선우예권 인터뷰

김소민 (음악 칼럼니스트)
  • 피아니스트 선우예권 ⓒMusic Friends / Jun-Young Lee

콩쿠르가 아직 진가를 검증받지 못한 원석들의 시험대라면, 뮤직페스티벌은 공인 1등급 보석들의 눈부신 쇼다. 콩쿠르에는 과감히 도전장이라도 내밀어 볼 수 있지만, 뮤직페스티벌은 초청장을 받은 소수가 아니면 참가를 꿈꾸기조차 어렵다. 콩쿠르에 도전하는 많은 연주자들은 입상을 발판으로 저명한 뮤직페스티벌에 참가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쟁쟁한 별들 옆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기란 말 그대로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   
지난 7월 23일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이 별을 땄다. 한국인 피아니스트로서는 처음으로 스위스 베르비에 뮤직페스티벌에 초청돼 독주회를 열었다. 1년 전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방돔프라이즈(베르비에 콩쿠르)의 부상으로 주어진 기회였다.
베르비에 뮤직페스티벌은 유럽의 대표적인 음악축제 중 하나로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 등 거장 음악가들이 주축이 되어 젊은 유망주들과 함께 혁신적인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매년 4만 명에 이르는 인파가 몰릴 정도로 대중적인 인기도 높다.

26살의 선우예권이 오른 무대는 전날 밤에 거장 그리고리 소콜로프, 전전 날 밤에 안드라스 쉬프가 섰던 무대였다. 그는 슈베르트의 〈4개의 즉흥곡(D.935)〉 중 3번과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소나타 2번〉, 쇼팽의 〈24개의 전주곡(Op.28)〉을 연주해 청중으로부터 갈채를 받았다.
국내 청중에게는 신선한 이름이지만, 사실 선우예권은 진작부터 음악계에 입소문이 나 있었다. 참가하는 콩쿠르마다 우승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아 궁금증을 유발하는 인물이었다. 그가 얼마 전부터 국내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궁금증을 해소할 때가 온 셈이었다. 최근 연주차 입국한 선우예권을 만나 베르비에 뮤직페스티벌에서의 데뷔 소감과 음악 인생에 관해 대화를 나눴다.


l 콩쿠르 킬러, 꿈의 무대에 서기까지

 “제 독주회가 있기 전날 제가 연주할 바로 그 무대, 그 피아노에서 연주하는 소콜로프를 보러 갔어요. 현재 제가 살고 있는 뉴욕에서는 소콜로프의 실연을 들을 기회가 좀처럼 없었거든요. 저 역시 그 무대에 오른다고 생각하니 몹시 긴장되더군요. 신기한 건, 다음날 연주할 땐 오히려 담담했다는 거예요. 먼저 그 무대에 섰던 거장들의 좋은 기운이 전해져서인지 집중이 잘 됐어요. 청중도 좋아해주셨고요.”
지난해 7월 방돔 프라이즈 우승 덕에 베르비에 뮤직페스티벌 데뷔 리사이틀이라는 행운을 거머쥔 선우예권은, 올해 4월 동양인 최초로 우승한 인터내셔널 저먼 피아노 어워드의 부상으로 오는 11월 독일 에센, 프랑크푸르트, 라이프치히 등 6개 도시를 투어하며 리사이틀을 열게 됐다. 지난 2009년에는 플로리다 콩쿠르 우승자로서 카네기홀 와일 리사이틀홀에서 연주하기도 했다.
이렇듯 동양인 연주자가 서구 클래식 음악계의 높은 벽을 넘어 기회를 차지하려면 콩쿠르 우승 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는 게 현실이다. 그래도 그가 국제 콩쿠르에서만 일곱 번이나 1위에 오르며 ‘국제 콩쿠르 최다 우승’이라는 특별한 수식어를 갖게 된 데에는 남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는 솔직하고 인간적인 대답을 들려줬다. 10대 때부터 홀로 미국에서 유학하며 사실상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한 그에게는 ‘생계형 콩쿠르 출전’이 적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학비는 장학금으로 충당하더라도 미국 필라델피아(커티스 음악원)와 뉴욕(줄리어드 음악원, 메네스 음악원)의 비싼 집세를 감당하기가 버거웠다고 털어놓았다.
 “18살 때 처음 플로리다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해 상금으로 2만 달러를 받았어요. 그걸로 1년간 집세를 냈죠. 그 후로 거의 매년 콩쿠르에 나가 2만 달러에서 3만 달러씩 상금을 받아 생활했어요.”
그렇게 벌어들인 누적 상금이 총 2억 원이 넘는단다. 하지만 콩쿠르 출전이 만만한 일은 아니다. 예선과 본선을 거치는 동안 독주곡, 협주곡 등 연주시간만 3~4시간이 넘는 레퍼토리를 소화해야 하기 때문에 육체적·정신적 부담감이 매우 크다.
 “콩쿠르 자체를 즐기는 피아니스트는 없겠죠. 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집중 연습의 계기가 될 수 있겠더군요. 콩쿠르가 아니면 독주곡, 협주곡 등 레퍼토리를 균형 있게 확장해나가기가 쉽지 않거든요. 또한, 콩쿠르는 저를 단시간에 알릴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고요.”
그는 지금까지 콩쿠르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것에 감사하지만, 대회가 끝난 뒤에는 결과에 대해 잊으려 한다고 했다.
 “잊는 게 정신적으로 좋은 것 같아요. 우승하면 좋지만 그에 상응하는 실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이 커지거든요. 만약 콩쿠르 우승자의 연주가 별로라면, 기대감을 가졌던 청중이 훨씬 더 안 좋은 평가를 할 수도 있으니까요.”

l 이제야 진정한 시작

선우예권이 피아노를 시작한 건 9살 때 동네 피아노 학원에서였다. 전공자로서는 조금 늦은 편이었다. 부모님은 막내인 그가 놀이 삼아 피아노를 치는 걸로 만족했다. 그런데 이 꼬마의 재능이 범상치 않았다.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해에 지역 콩쿠르에 입상한 뒤 하루가 다르게 실력이 늘어 예원학교에 진학하고 서울예고에 수석 입학했다. 그는 예고 1학년 때 스승의 권유로 커티스 음악원 오디션에 응시했다가 합격해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전액 장학금으로 운영되는 커티스 음악원은 피아노과 전체 학생 수가 20명에 불과하다. 누군가가 졸업을 해야 결원만큼 신입생을 뽑는다. 한두 명을 뽑기 위한 오디션에 전 세계의 영재들이 지원하기 때문에 입학이 지극히 어렵다. 선우예권은 이곳에서 6년간 세이모어 립킨에게 배우고 줄리어드 음악원 석사 과정, 메네스 음악원 전문 연주자 과정을 거치며 로버트 맥도널드, 리처드 구드 등 최고의 스승을 사사했다.

그가 한국을 떠나 차근차근 실력을 쌓고 콩쿠르 입상 경력을 쌓아가는 동안, 한국 클래식계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국내 토종 교육시스템 하에서 성장한 연주자들의 활약상이 두드러졌다. 특히 피아노 독주 부문은 ‘레드 오션’이 됐다. 손열음, 김선욱, 김태형, 김준희, 김다솔 등 선우예권과 비슷한 또래의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 피아니스트들이 세계적인 콩쿠르 우승은 물론 굵직한 협연 기회까지 꿰차면서 국내 클래식 음악계에서 먼저 지분을 확보했다. 선우예권과 같은 줄리어드 음악원 출신 피아니스트 중에도 임동혁, 지용 등 한국을 오가며 인기를 누리는 이들이 있었다. 조바심이 든 적은 없었을까.
 “당연히 조바심이 났지요. 한국 무대에 대한 그리움도 컸어요. 하지만 주위에서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멀리 보며 가라’고 조언해주시더군요. 작년을 기점으로 서서히 국내 활동이 늘었어요.”
국내 매니지먼트사와 계약을 체결한 뒤 선우예권의 국내 연주는 눈에 띄게 많아졌다. 그는 인터뷰 이후 군포 프라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협연했다. 10월 하순에는 같은 악단과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다시 연주한다. 11월에는 창원시향과의 협연이 예정돼 있으며, 연말까지 피아노 앙상블 ‘8인의 피아니스트’, 서울시향 단원들과의 피아노 삼중주, 노부스콰르텟과의 피아노 오중주, 금호아시아나 솔로이스츠 연말 콘서트 등 실내악도 여러 차례 선보일 계획이다.  

l 그가 들려주고 싶은 음악

선우예권을 만나러 가기 전 필자는 유튜브에 공개된 그의 연주 음원을 반복해서 들었다. 무엇보다 두드러지는 것은 음색이었다. 섬세한 타건에서 나오는 투명하고 빛나는 음색이 음악에 풍부한 표정과 뉘앙스를 부여하고 있었다. 빈틈없는 왼손 테크닉에서는 치열한 훈련의 시간이 느껴졌다.
그는 “소리 자체에 매우 신경을 쓰는 편”이라고 했다.
 “현을 해머로 두드려 소리 내는 피아노는 기본적으로 타악기적인 성격을 지니는데, 저는 그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아요. 타악기적인 느낌을 최대한 억제하려고 애를 쓰죠. 하지만 소리를 만드는 데에 너무 몰두하다 보면 전체적인 곡의 흐름을 놓치기 때문에 큰 그림을 보되 순간순간의 음색 표현에 공을 들이려 합니다.”

유튜브를 통해 접할 수 있는 선우예권의 연주는 콩쿠르 출전 영상이 대부분이다. 긴장 상태로 주어진 과제를 소화해내는 모습인 셈이다. 그에게 가장 여유롭고 편안하게 연주할 수 있는 곡, 청중에게 들려주고 싶은 곡을 직접 선택하라면 어떤 곡을 고를까.
 “라벨의 〈라 발스〉와 리스트의 〈라 캄파넬라〉, 그륀펠트가 편곡한 〈오페라 ‘박쥐’ 서곡에 의한 패러프레이즈 ‘빈의 저녁’〉은 언제 연주 요청이 와도 자신 있게 연주할 수 있어요. 협주곡 중에서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을 비롯해 러시안 레퍼토리에 비교적 자신이 있고요. 개인적으로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슈베르트의 작품들이에요. 러시아 음악이 진한 감정을 대놓고 전달한다면, 슈베르트의 음악은 어딘가 아련한 여운을 남기죠. 간결한 선율 안에 복합적인 감정이 녹아들어 있는데, 정말이지 아프도록 아름다워요. 독주회를 통해 슈베르트의 소나타를 좀 더 연주하고 싶어요.”
그는 “치고 싶은 곡들 못지않게, 쳐야만 하는 곡들도 꾸준히 소화해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제가 연주할 수 있는 협주곡 레퍼토리가 20개 정도 돼요. 조만간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2번과 프로코피예프 협주곡 2번을 추가하려 해요. 레퍼토리는 젊었을 때 늘려 놓아야 한다고들 해요. 젊을 때의 감각으로 익혀둬야 몸이 오래 기억해 나중에 연주할 때 부담을 덜 수 있다는 거죠. 나이가 들어 새로운 것을 익히려면 흡수하는 속도도 느리고 체력적인 부담을 느낄 수도 있으니까요.”

선우예권에게 궁극적으로는 어떤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은지 물었다. 그는 자신의 스승 리처드 구드를 닮고 싶다고 했다. 연주력은 물론이고 음악가로서의 자세, 성품 등 여러 면을 아우르는 자신의 롤모델이라고 했다.
 “구드 선생님의 연주를 들으면 따뜻한 기운이 홀 안에 가득 퍼지는 걸 느낄 수 있어요. 피아노라는 매개체를 통해 청중에게 많은 이야기와 감정을 전해주고, 또 불러일으키는 그런 연주이지요. 저 역시 그런 연주를 하고 싶습니다.”
이 말을 남기고 그는 다시 연습실로 돌아갔다.

우리 곁에는 이미 많은 피아니스트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새로운 피아니스트를 발견하기 위해 눈과 귀를 활짝 열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제서야 만난 선우예권처럼, 아직 우리가 만나지 못한 보석 같은 연주자가 또 어딘가에서 반짝거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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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5.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