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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사람

2015 국제공연예술전문가시리즈
프레드 멜러(Fred Meller)

두송희 (아르코예술인력개발원)
  • >프레드 멜러(Fred Meller)
    프레드 멜러(Fred Meller)

프레드 멜러(Fred Meller)는 현재 영국 런던예술대학(The University of the Arts London)의 교수로서, 무대올림픽이라 불리는 국제 무대미술대전인 《Prague Quadrennial》에 매회 전시를 하며 2003년에는 ‘Golden Triga’ 수상의 영예를 얻은 무대디자이너, 시노그래퍼(Scenographer)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예술인력개발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이번 국제공연예술전문가시리즈 무대디자인 워크숍에서는 ‘확장된 영역에서의 포스트드라마 무대디자인’을 주제로 희곡 〈보이첵〉을 드로잉, 레고, 모델 제작 등 여러 가지 방식으로 표현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녀의 성장 과정부터, 현재 런던예술대학에 몸담기까지 그의 인생 여정을 들어보았다.

Q. 어렸을 때 어떤 모습이셨나요?

저는 언제나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예술적 기질을 보였고 창의적, 반항적이기도 했습니다. 어른이 된 지금도 어렸을 때만큼은 아니지만, 선택적인 반항을 한다고 할까요? 어렸을 때 혼자 오페라 극본을 써보기도 했고 벽난로 속에 관객이 있다고 생각하며 나만의 상상 속 예능 프로그램을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어머니께서 아동 창의성을 연구할 때 사용하시던 오픈릴 테이프 녹음기를 쓸 수 있도록 허락해주셨는데 그때 얼마나 기뻤을지 상상이 가실 겁니다. 친구와 함께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놀이를 하기도 했는데 당시 우리가 하던 놀이를 폴리아트(Foley Art)라고 부른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단추통도 정말 좋아했습니다. 아마 저 말고도 단추통 이야기를 하는 무대디자이너가 많을 겁니다. 단추에 이름을 붙여주고 단추 가족을 만들어주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여든이 넘은 어머니 댁을 방문할 때마다 비록 한 번도 쓰이진 않았지만 저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단추들이 잘 있는지 확인해보곤 합니다.


레고©도 제 인생에 상당히 중요한 영향을 미쳤는데 이 당시의 레고©는 지금의 레고©와 많이 달랐습니다. 당시에는 한 세트가 기본 브릭, 창문, 지붕 조각으로만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전 레고©를 계속해서 사 모으면서 거대하고 복잡한 세계를 짓기도 하고 가장 작은 조각에 볼펜으로 얼굴을 그려 이름을 붙여주며 가족을 만들어주곤 하는 놀이를 즐겼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세트로도 멋진 세계와 가족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고 작은 조각에 얼굴을 그리며 놀곤 했습니다. 지금까지도 당시의 장난감들을 모두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볼 수 있듯이 전 사람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학교에서 만화도 그리고 선생님들의 캐리커처도 즐겨 그렸는데, 이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즐거웠던 것 같습니다. 제 다섯 살배기 딸도 학교에서 친구들을 위해 연극 극본을 쓰곤 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데, 그때마다 얼마나 기쁜지 모르실 겁니다!

Q. 구체적으로 ‘극장’, ‘무대’에 흥미를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운 좋게도 저희 어머니께서 연극에 관심이 많으셨고 아마추어 극단을 운영하기도 하셨습니다. 언제나 저를 이끌고 런던이나 집 근처의 콘서트, 리사이틀, 연극, 뮤지컬을 보러 다니곤 하셨습니다. 이때부터 좋은 작품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배우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전 항상 연극의 시각적인 면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공연은 저희 동네 체육관에서 봤던 ‘로열 셰익스피어 극단’의 지역 투어 공연이었습니다. 공연이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파멜라 하워드(Pamela Howard) 교수께서 디자인하신 공연을 관람한 기억도 있고 런던의 ‘바비칸 센터(The Barbican)’에서 셰익스피어의 연극을 관람하기도 했습니다. 한때는 사진을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아마도 일찍이 좋은 작품을 봤던 것이 깊은 인상을 남겨 연극에 빠지게 된 것 같습니다. 대학교에서는 연극을 전공했고 부모님께서는 먹고살기 힘들 거라며 말리셨지만, 졸업 후에도 이 방면에서 계속 일을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대학을 다니는 동안 전통 예술의 시각적, 창의적 요소들이 그리워져 전통 예술 학교에 가지 않은 것을 좀 후회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연극 제작에 더 깊게 파고들다가 무대디자인에 대해 배우게 되었습니다.
첫 직장은 상당히 역사가 깊은 지역 레퍼토리 극장이었습니다. 이런 극장에는 ‘인하우스(in-house)’ 극단이 있는데 공연이 많아 작업량도 상당했습니다. 3주마다 새로운 연극을 제작해야 할 수준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리허설과 공연을 수없이 반복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 후 런던에서 상당히 좋은 조건의 극단과 5년 동안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햄프스티드 극장(Hampstead Theatre)’에서 최고 무대디자이너들의 작업을 가까이에서 도울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때쯤에 지금껏 배운 기술로 극단을 떠나 저만의 디자인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Q. ‘무대디자인’에 대한 꿈이 어떤 계기를 통해 발전되고 실현되었나요?

제 인생의 가장 큰 행운 중 하나는 알맞은 때에 예술원 보조금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자체 제작을 하는 몇 안 되는 극장 중 하나인 입스위치의 ‘월시 극장(Wolsey Theatre)’에서 보조 디자이너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많은 작업을 했고 이후 에이전트의 도움을 받아 프리랜서로서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제 작업에 우연이 얼마나 큰 요소로 작용하는지에 대해서는 할 이야기가 정말 많습니다. 창의력이란 대체로 전혀 다른 두 가지 요소를 혼합해 완전히 새로운 요소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말합니다. 매우 어려운 일이죠. 저의 경우 어렸을 때 이 능력을 어떻게 써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배웠습니다. 남들과 비슷해지거나 발전하지 못할 것이라는 공포에 휩싸여 기존의 길을 걷기를 거부하는 일종의 저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위험도 많이 뒤따르는 길입니다. 영감이 오는 바로 그 순간, 그리고 우연을 잘 감지해서 잡아내야 하는 일입니다. 작품을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줄 운 좋은 ‘사고’를 작업 과정에 인위적으로 디자인해 넣는 것입니다. 작업을 하다 보면 작업에 대해 논리적으로 설명할 방법을 찾을 때가 많지만 이것이 오히려 제약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작품 전체의 기본 원칙을 아우르는 통일된 공간을 만들고 모든 일이 거기서부터 뻗어 나가도록 정리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거나 새로운 형식으로 바뀔 수 있도록 여유를 두곤 합니다.
가끔 저 자신에게 우연이란 어디에서 오는가를 묻곤 합니다. 물론 디자이너가 우연이 일어나도록 용인하는 용기에서 오기도 하지만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그들과의 대화에 깔려있는 맥락을 이해하는 데서 오기도 합니다. 이런 대화에서 영감을 얻을 가능성도 있는 것입니다.

Q. 런던예술대학 교수로서, 역할과 강의를 구성해나가는 과정이 궁금합니다.

런던예술대학, 특히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 칼리지에서 강의를 맡게 되어 매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무대디자인과 실습이라는 수업을 가르치는데, 현재 공연 분야의 새로운 추세들을 반영하는 수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통 무대디자인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곳에서 시작해야 연극이 추구하는 다양한 목표와 필요에 맞게 디자인하는 방법을 제대로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현시대에 필수적인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작업 방식도 수업 시간에 다룹니다. 여기서 협업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제 학생들에 의하면 이게 가장 어려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 칼리지에서 제가 맡은 역할은 다음 세대의 학생들을 위한 강의를 준비하는 것이고 또한 학생들이 학교에 다니면서 발견한 새로운 관심사를 바탕으로 어느 분야에 진출하든 독립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갖춘 사상가와 전문가가 되도록 도와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면에서 세상을 바꿀 멋진 칼리지에서 아주 멋진 팀과 함께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조명, 음향, 무대 등 다른 분야와 의견충돌이 있을 시, 어떻게 협업하시고 이견을 조율하시나요?

새로운 작업을 시작할 때마다 다양한 구상, 즉 ‘빅 아이디어’라는 것을 이용합니다. 빅 아이디어란 최종 결과물이 나오기 전에 제시되는 전반적인 디자인 아이디어를 말합니다. 전체 작업의 첫 번째 단계로 우선 어떤 접근이 좋을지에 대해 관계자들과 대화를 하곤 합니다. 사람마다 대화의 결론이 다르게 나기 때문에 이를 통해 작품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저는 일부 디자이너처럼 극의 방향을 우선 구상해 둔 후 주변 사람들의 능력을 추후에 고려해보는 방식은 쓰지 않습니다. 관계자들과 우선 대화를 하며 제가 가진 계획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면서도 극단 측과 협상할 여지는 남겨둡니다. 이때 협상 가능한 부분과 가능하지 않은 부분을 잘 설정해두어야 합니다. 디자이너 입장에서 반드시 필요한 아이디어와 스태프, 연기자의 능력과 잠재력을 십분 활용하는 아이디어를 적절히 포함시켜야 합니다. 가장 작업하기 좋은 팀은 모두 하나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중에 저는 그저 무대만을 책임지며 일하면 되는 팀입니다. 저는 새로운 극본 또는 기존 극본의 새로운 버전을 만들어내는 일이나 셰익스피어 등 각국의 고전을 현대화하는 일에 흥미가 많습니다. 융통성 있고 유연한 방식으로 일하는 것이 새로운 접근을 하는 데에 상당한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우연이라는 요소를 언제나 고려해야 합니다. 저는 누군가가 자신의 일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나 연출가와 함께 작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에 대해 일방적인 주장을 펼치게 되면 불만을 느낍니다. 어렵긴 하지만 모든 작업은 관객에게 좋은 작품을 제공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생각을 중심으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영국 웨스트엔드의 현재 제작환경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영국 내 제작 환경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관점에서만 이야기할 수 있을 듯합니다. 이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영국,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예술원 보조금과 같이 연극 제작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많다고 알고 있습니다. 현재 상황은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매우 어렵습니다.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d Brecht)가 말했듯이 시를 쓰기 좋은 시대는 아닙니다. 물론 이런 시대에 의미 있는 예술과, 연극과 공연을 제작하고 그 길에 놓인 장애물을 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소규모의 자금이 부족한 작품보다 대규모 작품들이 보조금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 생각에 10~15년 전에 쓰였던 방식으로 작업을 하는 지역 극장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연극과 같은 공연 제작은 이제 다양한 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고 또한 점점 다양화되고 있습니다. 제 경험상 디자인은 이제 극작법(dramaturgy)을 새로이 만들어가기 위한, 어쩌면 반 디자인적일 수도 있는, 장소나 장치 외의 다른 요소들을 부각시킬 디자인을 하는 ‘대화’의 일종이 되었습니다.
지속 가능성에 대해 영국이 가진 우려는 공연이 끝나고 난 뒤 무대 장치들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또 현재 추세로는 유난히 특징적인 장소가 아니라면 해석을 되도록 가미하지 않거나 현실을 철저히 배제하도록 합니다. 물리적인 공간은 현재 매우 부족한 상황에 있고 즉각적인 인터넷 시대의 도래로 단기적이고 페이스가 빠른 작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현시대의 제작이란 관객의 시간과 관심을 얻고자 하는 경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추세가 그렇듯이 그에 대한 반발이 존재하기 때문에 전통적인 방식과 애초의 존재 방식으로 돌아가려는 움직임도 있습니다. 페이스가 빠른 연극, 즉석 연극, 관객을 빠른 속도로 불리고 있는 신 체험경제, 더욱 다양화된 공연은 어쩌면 모두 가까운 미래에 좀 더 페이스가 느리고 특정 시간과 장소에서 관객과 조심스럽게 소통하기 위해 정교하게 제작된 작품들로 대체될지도 모릅니다.
이제 모든 예술 기관이 해결해야 할 과제는 점차 고령화되어가고 있는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양질의 공연을 보장할 방법을 찾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한국을 방문하여 강의하는 것에 대한 소감 한 말씀 해주세요.

지난 수년 동안 한국 출신 학생들을 가르칠 기회가 많았는데 한 분도 빠짐없이 모두 제가 본 학생들 중 가장 능력 있고, 호기심 많고, 용기 있고, 실력 있는 분들이었습니다. 한국을 정말 멋지게 대표하는 분들이었고 그 때문에 한국에 방문하게 되었고, 돌아가서 저의 방문에 대해 제 학생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어 매우 기쁘고 영광스럽습니다. 모든 행사가 원활하게 진행되기를 바라고 제 경험을 잘 전달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행사가 끝난 이후에도 한국에 다시 한 번 방문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정확히 알고 완벽한 계획을 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새로운 경험을 좋아하고 제 인생의 시나리오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을 것이란 사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제겐 두 명의 아이가 있습니다. 성장하면서 점점 덜하긴 하지만, 제 인생을 이 아이들이 계획해주고 이끌어준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예술 분야에 종사하는 부모들에게 가족의 의사를 고려하는 일은 매우 큰 과제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나이가 좀 더 어렸을 때 사용했던 작업 방식을 지금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습니다. 돌아보면 젊었을 때의 방식은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에 집중했기 때문에 생산적이지 못하고 비효율적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이런 경험을 현재의 작업에 적용시킬 때 진정으로 제가 더 현명하게 작업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인지 그저 이 경험 덕분에 주변 정리를 잘하게 되어 그렇게 느낄 뿐인 것인지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한결같이 지켜온 신념이 한 가지 있는데 바로 인생의 마지막까지 진실되게 살며 서로 사랑하자는 것입니다.

“중요한 일을 하세요. 의미 있는 일을 하세요. 진실된 일을 하세요.”라는 말과 함께, 각자 자신을 나타내는 레고와 워크숍을 마무리하였다.


  • 프레드 멜러(Fred Meller) 무대디자인 워크숍
    프레드 멜러(Fred Meller) 무대디자인 워크숍


아르코 로고

[기사입력 : 2015.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