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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사람

파리를 열광시킨 안무가 안은미

장지영 (국민일보 기자, 공연칼럼니스트)
  • <신(新)춘향>
    〈신(新)춘향〉
  • <조상님께 바치는 땐스>
    〈조상님께 바치는 땐스〉

안무가 안은미에 대한 파리지앵들의 관심은 기대를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그는 올해 44회째인 프랑스 파리가을축제(9월 9일~12월 31일 파리 및 인근 주요 문화시설)에서 〈사심없는 땐스〉 3회, 〈조상님께 바치는 땐스〉 3회, 〈아저씨를 위한 무책임한 땐쓰〉 2회 등 ‘땐스 3부작’을 8회 공연하며 프랑스 평단과 대중의 주목을 한몸에 받았다. 이후 〈조상님께 바치는 땐스〉를 릴 등 프랑스 북부 3개 도시에서 7회 선보인 그는 내년 1~4월 클레몽 등 프랑스 남부 7개 도시에서 11회를 공연할 예정이다.
4월 스위스 4개 도시 8회 공연을 빼더라도 프랑스에서 안은미 컴퍼니가 ‘땐스 3부작’을 26회 선보이는 것은 한국 예술단체로는 역대 최고의 성과다. 게다가 그는 내년 7~8월 파리여름축제의 초청을 받아 프랑스 아마추어 예술가들과 〈1분59초〉를 만들 예정이다.  
2006년 네덜란드에 본부를 둔 세계음악극축제의 초청으로 〈신(新)춘향〉을 유럽 4개국 7개 도시에서 순회공연한 그는 이후 10년간 거의 매년 해외 페스티벌 또는 극장의 초청을 받고 있다. 해외에서 한국 현대무용의 전령사로서 그의 행보는 앞으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 안무가 안은미
    안무가 안은미

Q. 파리가을축제에서 ‘땐스 3부작’에 대한 반응이 대단했습니다. 일찍 매진되는 바람에 공연 당일 극장 앞에 ‘티켓 구함’이라는 종이를 든 사람들도 여럿 있더군요. 이런 인기를 예상했었나요?

우리들의 몸은 시간의 층위를 가집니다. 세대마다 서로 다른 경험을 했으니까요. 아이돌 춤을 따라 하는 청소년과 고된 노동을 막춤으로 해소하던 할머니의 몸이 보여주는 움직임은 다를 수밖에 없죠. ‘땐스 3부작’은 바로 인간의 몸에 기록된 흔적들을 뚜렷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프랑스에서도 공감을 얻은 것 같습니다. 특히 할머니들이 추는 〈조상님께 바치는 땐스〉는 춤의 인류학적 보고서라는 평가와 함께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해 파리여름축제에서 이미 소개돼 호평받았기 때문에 올해 파리가을축제에서 ‘땐스 3부작’을 모두 공연하는 것은 물론 프랑스와 스위스의 여러 도시에서 공연을 가지게 됐습니다.

Q. ‘땐스 3부작’의 파리 공연 당시 안은미 컴퍼니를 프랑스에 처음 소개한 파리여름축제의 캐롤 피에르츠 예술감독을 인터뷰했는데요. 파리가을축제에서 ‘땐스 3부작’ 8회 공연이 객석 수로는 약 8,000석 정도 되는데, 일찌감치 매진된 것은 지난 2년간 안은미 컴퍼니가 꾸준히 프랑스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강조했습니다.  


피에르츠 감독이 2011년 뒤셀도르프 페스티벌에서 제 작품 〈심포카 바리-이승편〉을 보고 바로 연락해 왔습니다. 지금까지 자신이 봐왔던 종류의 춤이 아니라서 큰 임팩트를 받았다면서요. 이후 서울에 와서 1주일간 머무르면서 제 작업을 지켜봤죠. 그리고 2013년 파리여름축제에 ‘코리아 포커스’ 프로그램을 기획해 안은미 컴퍼니(5회), 장영규의 비빙(1회), 김주홍의 노름마치(6회), 판소리 정은혜 등 한국단체 4개를 초청했습니다. 안은미 컴퍼니는 해외 공연팀으로는 유일하게 축제 공식 오프닝에 초청됐고요. 당시 공연된 〈심포카 바리-이승편〉에 대해 르몽드 등 프랑스 신문들이 매우 호의적인 평가를 실었습니다. 덕분에 이듬해 초청된 〈조상님께 바치는 땐스〉는 티켓이 바로 매진됐고 리뷰가 10여 개 언론에 실릴 정도로 더 좋은 성과를 거뒀습니다.

Q. ‘땐스 3부작’ 가운데 〈조상님께 바치는 땐스〉가 한국에서나 프랑스에서나 가장 반응이 좋은데요.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동양이나 서양이나 노인은 사회 안에서 타자이자 약자입니다. 하지만 제 작품 속에서 할머니들은 활력이 넘치죠. 정제되지 않은 막춤을 추는 할머니들의 모습에는 뜨거운 생명력과 신명나는 삶의 에너지가 있어요. 제 작품에 출연하는 할머니들의 경우 처음에는 무대 위에서 움직이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다가 나중에는 스스로 즐깁니다. 공연이 끝난 뒤 제게 인생이 바뀌었다며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합니다. 관객들 역시 공연을 보거나 무대 위로 올라와 함께 추면서 동서양의 경계를 넘어 ‘춤’이라는 단순명료한 언어로 서로 만날 수 있기 때문에 이 작품을 특히 좋아하는 것 같아요. 여기에 고령화가 급격한 현대사회에서 노인의 몸과 나이 듦에 대해 다시 한 번 성찰하게 만드는 것도 관심을 끄는 이유죠.

Q. ‘땐스 3부작’을 만들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늘 파격적인 작품을 선보여 왔지만 ‘땐스 3부작’은 기존의 작품들과 많이 다릅니다. 일반인들과 함께 춤을 만든다는 점에서 커뮤니티 댄스와 맥락이 닿아 있는 것 같습니다.

3부작 가운데 첫 작품으로 2011년 2월 두산아트센터에서 초연된 〈조상님께 바치는 땐스〉는 할머니들의 몸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됐습니다. 커뮤니티 댄스와는 사실 관련이 없었어요. 우리 몸이 춤의 중심 텍스트이기 때문에 몸의 역사성을 기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무용단 단원들과 함께 전국을 돌며 할머니들을 만났어요. 그리고 할머니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분들의 춤을 영상에 담았습니다. 할머니들의 춤은 교육된 것은 아니지만 전통을 기억하는 움직임이었어요. 흔히 말하는 막춤이었지만 진실된 감동이 있었어요. 그래서 이분들의 몸과 춤을 아카이빙으로 남기는 것만이 아니라 직접 무대에 모셔야겠다고 생각한 겁니다. 이후 자연스럽게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사심없는 땐스〉와 중년 남성들을 대상으로 한 〈아저씨를 위한 무책임한 땐스〉까지 이어지게 됐죠.

Q. 작품과 관련해 무대에 서는 할머니들 또는 청소년들, 중년 아저씨들에게 춤을 가르치기도 합니까?

특별히 춤을 가르치거나 하진 않습니다. 각자 마음대로 춤을 추라고 합니다. ‘땐스 3부작’의 일반인 출연자가 초연 이후 여러 차례 바뀌었는데, 처음 출연할 때와 익숙해졌을 때의 모습이 확실히 달라요. 각각의 재미가 있는 것 같아요.

Q. ‘땐스 3부작’만이 아니라 그동안 〈춘향〉, 〈심포카 바리-이승편〉, 〈렛 미 체인지 유어 네임〉, 〈레츠 고〉 등 여러 작품이 해외에서 공연됐는데요. 독일의 피나 바우쉬 페스티벌과 영국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 등에 초청된 한국 무용단은 안은미 컴퍼니가 처음이었습니다. 일각에서는 20세기 전반 최승희 이후 해외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안무가라고 평가하더군요. 어떤 부분이 유럽 페스티벌이나 극장 관계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고 생각하세요?

유럽 관계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독창성이에요. 누군가 했던 스타일과 비슷하면 작업으로 인정하지 않거든요. 안무가로서 사물이나 몸을 바라보는 관점이 어떤지가 정말 중요하다는 거죠. 그래서 유니크한 제 작품을 재밌어하는 것 같아요. 특히 〈조상님께 바치는 땐스〉는 유럽 무용계가 그동안 몸을 바라보던 시각과 너무 달라서 좋아하는 것 같아요. 자신들은 생각도 못 했던 ‘춤의 인류학적 관점’을 보여주는 기록으로서의 춤이잖아요. 여기에 예술가 자신의 존재감은 물론 작품이 일반 관객에게도 어필하는 매력 등을 무시할 수 없죠. 그리고 저희 단원들의 기량과 장영규의 음악이 그들을 감동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어요.

Q. 지난 10년간 유럽에서 투어 공연을 많이 했지만 이번 ‘땐스 3부작’, 특히 〈조상님께 바치는 땐스〉는 특별한 것 같습니다. 예전엔 다소 단발적으로 공연이 이뤄졌다면 이제는 지속성을 가지는 것 같아요.

2006년부터 유럽에서 꾸준히 공연했지만 지속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2013년 프랑스에서 공연하면서 유럽 무용계 네트워크가 확실히 저를 받아들인 것 같아요. 〈조상님께 바치는 땐스〉의 투어가 계속 이뤄지고 있는 것은 자신들 나름대로 검증과정을 마쳤다는 것을 의미해요. 이들 네트워크가 워낙 강력해서 한번 인정을 받은 안무가의 경우엔 계속 공연 기회를 주거든요. 제 경우 ‘미스터 단테’라는 에이전트 회사와 계약을 한 뒤 꾸준히 공연 의뢰를 받고 있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제부터가 승부처인 것 같아요. 당장 내년 파리여름축제에서 선보일 〈1분59초〉에 대해 고민 중이에요. 한국에서 지난 2013년부터 3년째 프로젝트로 진행해 왔지만, 내년 프랑스 사람들과 진행하면 아무래도 변화가 있을 수밖에 없거든요. 그리고 공식적으로 발표하긴 어렵지만 내년과 내후년에 유럽의 다른 극장과 페스티벌에서 신작을 선보일 좋은 기회를 가지게 될 것 같아요.

Q. 개인적으로 올해 프랑스 공연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제가 예술가로서 한국 사회에서 존재하는 방식, 그리고 한국의 역사성과 사회성이 들어간 제 작품이 해외에서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해외 투어가 계속되면서 무용단 단원들에게 그동안 많이 못 줬던 월급을 준 것도 큰 보람이에요. 한국에서는 공연 횟수 자체가 많지 않기 때문에 일정한 수입을 보장하기 어렵거든요.

Q. 프랑스에서 10월 말 돌아온 후 11월 5~8일 서울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심포카 바리-이승편〉을 바로 공연했는데요. 일종의 금의환향 공연이었던 것 같아요.

프랑스에 가기 전부터 계획됐던 것이에요. 지난 몇 년간 이 작품을 지방에서만 공연하고 서울에서 올리지 못했거든요. 〈심포카 바리-이승편〉은 9년 동안 꾸준히 공연되고 있는 데다 해외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 ‘땐스 3부작’ 공연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제겐 큰 의미가 있는 작품입니다. 그런데 프랑스 투어 때문에 이번 공연을 준비할 시간이 너무 부족했어요. 공연 홍보가 제대로 안 돼 관객이 적게 올까봐 걱정했지만, 다행히 기대 이상으로 많이 오셨어요. 그리고 이 작품과 이어진 〈심포카 바리-저승편〉에 대한 재공연 요청이 많아서 조만간 준비해야 할 것 같아요.

Q. 요즘 한국의 젊은 안무가들은 해외 진출에 적극적인 편입니다.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중요한 것은 안무가의 독창적인 시선이라고 봅니다. 팔리는 것부터 생각하면 좋은 작품을 만들 수가 없어요. 다만 안무에 대해 단순히 동작을 짠다고 생각하는 후배들이 적지 않은데요. 안무는 자신만의 미학적 관점을 찾는 게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한다고 봐요. 그리고 안무가마다 작업방식은 다르겠지만 하나의 주제를 깊이 고민하면서 계속 테스트 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봐요.

Q. 작품을 만드는 방식이 궁금합니다. 발표하는 작품마다 거의 국내외에서 주목을 받는 비결이 거기에 있을 것 같습니다.

돌이켜 보면 하나의 주제에 대해 3년 정도는 깊게 파는 것 같아요. 대학 시절엔 ‘나는 누구인가’, ‘여성은 무엇인가’, ‘죽음은 무엇인가’ 등 다양한 문제를 놓고 고민했어요. 그리고 이런 실존의 문제를 놓고 더 고민하기 위해 미국 유학도 갔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이런 고민들 끝에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되든 안되는 다양한 방식으로 테스트해봅니다. 그래서인지 제 작품을 보면 한 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땐스 3부작’, ‘렛(Let) 3부작’ 등 기본 3부작 시리즈인 경우가 많아요.

Q. 안은미 무용단의 댄서들은 춤을 잘 추기로 유명한데요. 안무가 못지않게 끼가 많고 존재감이 강한 것 같습니다. 어떤 기준으로 댄서들을 선발하는지 궁금합니다.

단원들에 대해 관객이나 평론가들이 ‘약을 먹은 것처럼’ 무대에서 뛰어다닌다고 농담하시는데요. 춤에 대한 단원들의 열정이 굉장합니다. 우리 무용단만의 독특한 에너지라고 생각해요. 현재 단원이 10명인데, 다들 5~15년 정도 춤춘 베테랑입니다. 저는 단원들의 기량과 함께 인성과 근성을 매우 중시해요. 오디션 가운데 하나로 노래방에서 4시간 동안 함께 놀기를 하는 것은 무용수의 체력과 즉흥능력 외에 인성을 파악하는 데 효과적이기 때문이에요.

Q. 끝으로 안무가 안은미는 독특한 비주얼로도 유명한데요. 삭발이나 원색의 의상은 트레이드마크입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그래도 요즘은 예전보다는 조금 덜 화려한 것 같긴 합니다.

제가 좋아서 했지만 어느새 저를 기억하는 대표적 이미지가 된 것 같아요. 과거엔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억압적인 분위기여서인지 대학에 들어온 이후 다양한 방법으로 나를 표현하려던 욕구가 강했어요. 요즘 조금 덜 화려하게 보이는 것은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다 보니 안전 문제 때문에 머리띠나 귀걸이를 할 수 없어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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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5.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