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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교류

베를린 바벨탑 프로젝트 2
증거들

나현 (작가)
  • 우물 제작(2013)
    우물 제작(2013) ⓒ나현
  • 우물_악마의 산, 베를린(2013)
    우물_악마의 산, 베를린(2013) ⓒSusumu Shimonish
  • 전시 광경_퀸스틀러하우스 베타니엔,베를린(2014)
    전시 광경_퀸스틀러하우스 베타니엔, 베를린(2014)
    ⓒ나현
이전글〉 베를린 바벨탑 프로젝트 1 독일 베타니엔 스튜디오 참가기 (바로가기)

나는 급속히 다인종 그리고 다문화 되어가는 21세기의 한국사회에서 과연 한민족으로서 자긍심을 나타내던 단일민족이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가지고 ‘나현 보고서-민족에 관하여(2008-2011)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나는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이 시대의 인류에게 민족이란 의미를 보다 진지하고 성숙하게 고려해 봐야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으며, 우연한 기회에 접한 1912년 독일 제국의회에서 벌어진 논의에 관한 자료와 베를린 악마의 산(Teufelsberg)이 담고 있는 역사는 나의 주관적 역사매칭 기제의 본능적(억지) 작동에 의해 ‘바벨탑 프로젝트(2012-)’라는 또 하나의 가지로 뻗어 나가게 하였다.
어쩌면 관객들은 베를린과 서울에서 바벨탑의 발견이라는 황당한 주장에 돌을 불끈 집어 들 수 있겠지만 나는 사적인 발굴 작업을 통해 하나하나 퍼즐을 맞춰 나가듯이 창세기를 비롯해 바벨탑에 관한 기록들을 바탕으로 우선 베를린 악마의 산부터 이곳이 바벨탑임을 증명해나가기 시작했다.

l 증거들

1912년 독일 제국의회에서는 인종혼합(Mischehen: 다른 민족/종교 간의 결혼, 특히 아리아인과 유태인 사이의 결혼. 나치스 용어)에 관한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제국의회는 당시 피식민지인과 식민지인 또는 타 인종과의 결혼을 법으로 금지함으로써 순수 혈통을 유지하고 만약 이민족과 결혼했을 경우 그들을 변태자 리스트에 올리는 것을 만장일치로 찬성하였다. 심지어 일부 강경파들은 혼혈 가정을 금지할 뿐 아니라 기존의 혼혈 가정 또한 인정하지 않기로 하였다. 그나마 일부 당원들은 특별한 규범 훈련을 통해 혼혈 가정을 융통성 있게 인정하자는 비교적 유연한 자세를 가졌었다. 이러한 인식의 차이는 역사의 지속선상에서 훗날 나치즘적 담론의 직접적 노선이 되었고, 유연한 규범을 주장하던 당원들은 바이마르 연합정당을 결성하게 되었다.
어쩌면 나치당과 히틀러의 출현은 이미 이때부터 예고되었던 것이었고 이후 두 차례의 커다란 전쟁과 광기에 가까운 인종 학살의 비극은 악마의 산(Teufelsberg)이라는 거대한 모뉴멘트를 베를린에 남기게 되었다.

(창세기11:6) 보라 민족이 하나요, 그들 모두가 한 언어를 가졌기에 이런 일을 시작하였으니, 이제는 그들이 하기로 구상한 일은 아무것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ANTIQUITIES OF THE JEWS. Chapter IV) 모든 인간들이 하나의 언어를 가지고 있었을 때, 그들은 마치 하늘에 닿을 것 같은 높은 탑을 쌓았다.

악마의 산을 오를 적에 나는 일반인들에게 개방되지 않은 정확히 말하자면 통행이 금지된 입구를 통해 올라갔다. 산세가 깊거나 높지 않아서 이 길은 약간 더 가파를 뿐, 그렇게 위험하지 않으며 조금만 오르게 되면 결국 다른 길들과 쉽게 만나게 된다. 그럼에도 내가 이 길을 고집하는 이유는 일종의 관음증이랄까, 길을 걷다 보면 산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즐거움에 사로잡히기 때문이다. 60여 년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산을 축조해 나가던 계단식 구조의 원형을 좀 더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고 그 단면에는 벽돌과 콘크리트 조각들을 포함하여 오랜 시간 동안 빗물이나 바람에 씻겨 나온듯한 산의 구성물들, 다시 말해서 베를린의 전쟁쓰레기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본 프로젝트가 일종의 발굴 프로젝트임에도 현실적으로 직접 악마의 산을 깊게 파 내려갈 수는 없으니 비스듬히 잘라놓은 케이크처럼 생긴 산의 단면을 직접 볼 수 있는 이곳이 산의 내용물들과 어떻게 이곳이 만들어졌는지를 확인하는 최적의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길에서 얻은 수확 중 하나라면 여기저기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벽돌과 조각들이 벽돌과 역청을 사용해 바벨탑을 더욱 견고하고 높게 축조하였다는 기록들을 확인시켜주고 있었다.

(창세기11:3) “가서 벽돌을 만들어 단단하게 굽자.”하고 그들은 벽돌로 돌을 대신하고 역청으로 회반죽을 대신하였다.

산의 내밀함을 감상하는 산행을 하며 약간의 숨 차오름과 등줄기에 흘러내리는 땀이 아직은 불쾌하지 않을 때쯤, 산 정상에 세워진 레이더기지에 다다르게 된다. 3중으로 둘러쳐진 철조망이 과거 냉전의 심각함을 드러내고 있다면 현재는 가지가지의 색과 재미있는 모양의 그래피티가 용도 폐기된 건물들을 비웃듯이 뒤덮고 있었다. 이곳 역시 자본주의의 세례를 비켜가지 못하고 얼마의 입장료를 지불해야만 내부로 들어갈 수 있는 관광 상품이 되어 있었다.
먼저 말했듯이 이곳은 냉전 시대 악마의 산꼭대기에서 전파를 발신하며 동독지역을 감청하고 정보를 수집하던 비밀 기관이었다. 인간의 욕망이 다시 한번 하늘을 향해 퍼져 나가고 있었던 곳이었다. 나에게 이곳은 바벨탑 꼭대기에서 니므롯 왕이 하늘을 향해 화살을 쏜 장소였음을 충분히 설명하고 있었다.


  • 인터뷰_크로이츠베르그(2013-2014)
    인터뷰_크로이츠베르그(2013-2014) ⓒ나현

탑이 상당히 높아지자 니므롯 왕은 꼭대기에 올라 이렇게 말했다. "자, 이제 우리가 꼭대기에서 신을 볼 수 있는지 한번 보자." 하지만 신이 보이지 않자 사냥용 활을 들어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신에게 닿을 수 있는지 한번 보자." 그는 구름을 향해 화살을 날렸지만 화살은 다시 땅에 떨어졌다.” ― 베르나르 베르베르, 〈신〉

2013년부터 일 년 동안 나는 베타니엔이 위치하고 있는 크로이츠베르그(Kreuzberg) 지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과의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크로이츠베르그에는 터키, 미국, 일본, 캐나다, 에티오피아, 그리스, 폴란드, 이탈리아, 이스라엘, 브라질, 한국 등 각국의 외국인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이들의 다양한 언어가 쏟아져 나오는 거리를 걷다 보면 가끔은 이곳이 베를린임을 잊게 해준다. 역설적이지만 이점이 베를린의 매력이기도 하다. 
나는 그들에게 세 가지를 물었다. 첫째는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었는가. 둘째는 지금 이곳에 살고 있어서 행복한가. 그리고 미래에 대한 계획을 물어보았다. 그들에게는 미리 자신들의 모국어로 대답하기를 부탁하였으며, 나는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영어 정도를 제외하고는 당연히 내용을 알 길이 없었다.
바벨탑 프로젝트에서 인터뷰 작업은 신이 다양한 언어를 만들어 서로의 소통이 어렵게 되자 인간들이 바벨탑 쌓기를 중단했다는 기록을 뒷받침하고 있는 증거이다. 2014년 더 이상 높아지지 않은 악마의 산 근처에는 수많은 언어들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창세기11:7) 가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에서 그들의 언어를 혼란시켜 그들이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창세기11:8) 거기서부터 그들을 그곳에서부터 온 땅 위에 멀리 흩으시니, 그들이 탑을 쌓는 것을 그쳤더라.

2013년 5월경 전날 내린 비에 나무와 식물들이 물을 흠뻑 머금고 본래의 색을 한껏 발하던 어느 날 나는 빅토르와 베를리너 포레스트 입구인 그루네발트(Grunewald)역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폴란드 태생인 빅토르는 일찍이 부모와 함께 영국으로 이주하여 살다가 현재는 베를린 훔볼트대학에서 식물학을 공부하고 있는 학생이다. 환경이 이렇다 보니 모국어인 폴란드어와 영어 그리고 독일어 3개 국어를 유창히 구사하는 재능 있고 발랄한 친구였다. 나는 오늘 이 친구를 악마의 산에 서식하고 있는 외래 식물 채집을 위한 조언자로 정중히 모셔왔다. 그리고 빅토르와 함께 채집한 식물들에 대해 좀 더 정확히 알아보기 위해 훔볼트대학의 식물원에 연구원으로 있는 마틴에게 다시 한번 확인받기로 미리 양해를 구해놓았다. 

  • 식물 채집_악마의 산, 베를린(2013)
    식물 채집_악마의 산, 베를린(2013) ⓒAiko Tezuka

산림에서 쏟아내는 과량의 피톤치드에 취해서인지 숲 속에 들어오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빅토르는 들뜬 감정을 숨기지 않으며 식물들에 대한 얘기들을 풀어 놓았다. 얘기들은 꽤나 흥미로웠으며 악마의 산에는 여러 종의 외래 식물들이 토착 식물과 함께 서식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떤 식물은 누군가 인위적으로 심었을 수도 있고 어떤 식물들은 새가 옮겼든지 바람에 실려 날아왔든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이곳까지 들어와 생존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외래 식물 채집은 악마의 산 생태계가 배타적 환경이 아니라 다양성이 존재하고 있는 곳임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나는 서울의 난지도에서도 외래 식물들을 채집할 계획이다. 난지도에는 어떤 식물들이 토종식물들과 어울려 생태계를 이루고 있을까.

l 우물

아침 일찍 베를린에서 거주중인 일본 작가 스스무가 나를 돕기 위해 스튜디오에 찾아왔다. 오늘은 악마의 산에 우물을 설치하는 날이라 현장에서 우물을 조립하고 사진을 촬영하는 등 혼자 하기에는 부담스러운 일들이 있어서 고맙게도 와준 것이다.

  • 식물 채집_악마의 산, 베를린(2013)
    식물 채집_악마의 산, 베를린(2013) ⓒAiko Tezuka

나는 그동안 베타니엔의 지하 목공작업실에서 테크니션인 피터의 도움을 받아 우물을 제작하였다. 이 우물은 라이프치히 근처에서 발굴된 7000년 전 목조우물의 제작방식을 따랐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서울 풍납동에서 발굴된 한성 백제시대의 목조우물의 제작방식도 독일의 그것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었다. 고고학자의 조언에 의하면 우물은 시간의 레이어(층)를 관통하고 있는 연대기적 다이어그램이자 보물창고이기에 발굴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장소라고 한다.

상징적인 제스처일 수 있지만 나는 악마의 산과 난지도 두 곳에 우물을 설치하였다. 이곳은 작가인 내가 사적이고 주관적일 수 있는 바벨탑을 찾기 위한 발굴의 시작점이다. 그리고 이 우물은 올해 초 바벨탑 프로젝트를 중간 발표하는 베타니엔 전시장에 다시 세워졌다. 이것은 바벨탑 프로젝트가 마무리되어가고 있음을 보여주기보다는 지금도 어느 곳에선가 바벨탑은 계속해서 세워지고 있다는 점을 알리는 것이며, 인류의 폭력은 역사 속에서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바벨탑은 하나의 판타지가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 공존하고 있는 엄연한 현실인 것이다.

이제는 서울의 바벨탑을 찾아 나서야겠다.

아르코 로고

[기사입력 : 2014.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