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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당신이 사는 곳은 어디입니까?

심영규 (월간 SPACE(공간) 기자)
  • 금민정 숨 쉬는 문
    금민정 〈숨 쉬는 문〉
  • 문성식 6월의 뻐꾸기
    문성식 〈6월의 뻐꾸기〉
  • 조혜진 섬
    조혜진 〈섬〉


한때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줍니다”라는 TV CF가 안방에 방송되면서 아파트란 곳에서 단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나는 처음엔 피식하고 조소했지만, 갑자기 일종의 소외감을 느꼈다. 서울에서만 36년째 사는 서울 촌놈. 이사는 단 한 번, 초등학교 1학년 때 봉천동을 떠나 지금 사는 곳으로 온 게 전부다. 서울에선 하루에 6천5백 명이 이사를 한다고 하니 그야말로 ‘시티즌’이 아니라 ‘촌놈’일 수밖에 없다. 어렸을 땐 일 년에 서너 번씩 옮겨 다니는 친구를 보면, 부럽기도 했다. 가장 큰 이유는 집 때문. 지금도 부모님이 살고 계신, 30년 가까이 살았던 집은 1970년에 지은, 사람으로 치면 중년이 훨씬 넘은, 낡고 오래된 2층의 빨간 벽돌로 된 양옥이다. 외관도 지저분하고 무슨 무슨 ‘캐슬’이니 ‘타워’는 고사하고 지인에게 내보일만하지 않고 초라하다. 버젓한 우리 집이었음에도 아주 친한 친구 아니면 초대하지 않았다. 가장 불편한 것은 추위와 더위다. 겨울엔 춥고 여름에 더운, 그야말로 집 밖의 환경과 크게 다르지 않은 ‘친환경 주택’이었다.
한땐 그 낡고 오래된 집이 너무 부끄러웠지만, 이곳은 세상 둘도 없는 안식처이자 나의 ‘소우주’였다. 내 성장기의 모든 기억과 삶을 오롯이 담고 있는 공간이자 추억이고 장소다. 이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잔뜩 쌓인 짐 때문에 가끔 불편하지만, 또 다른 행복과 위안이 된다. 어디서 어떻게 살았는지 내가 살았던 동내 전체가 사라지고 매일 기억상실증을 앓는 도시인의 일상 대신 이런 장소와 내 물건이 있는 것은 축복이다. 낡은 난간 하나하나와 계단참마다 과거로 여행 갈 수 있는 소재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다 커버린 서른 살 직장인의 내가 한 공간에 겹겹이 쌓여 있다.

l 다시 집을 돌아보다

최근 집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많다. 천편일률적인 아파트를 떠나 개성 있는 집을 원하는 수요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성 건축가뿐 아니라 이제 시장에 진입한 젊은 건축가도 최근 활발히 주택 작업을 하고 있다. 실제 각종 미디어를 통해 완공된 집에 대한 소개들도 부쩍 늘어나고 있다. 이제는 관심뿐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책이나 전시 같은 다양한 방법으로 소개하는 사례도 많다. 이제 ‘아파트’, ‘단독주택’ 같은 단순한 선택을 떠나 구체적으로 ‘어떤 집’이냐가 중요해진 것이다. 특히 최근엔 여러 명 같이 사용하는 공유 주택이나 초소형 주택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있는데, 이는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다. 1인 주거가 늘어나고 있고, 아파트를 팔고 단독 주택으로 옮기고 있다. 더는 비싼 집이 자기 과시나 투기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점점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집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최근 사회적인 변화에 따라 집에 대한 다양한 전시가 이어지고 있다. 이전에도 건축이나 집에 대한 전시가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적은 없었다. 집을 주제로 건축가들이 참여하고 있는 전시는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리는 《즐거운 나의 집》,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협력적 주거 공동체》가 비슷한 시기에 시작해 내년까지 이어진다. 두 전시를 비교해 보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을 줄 수 있다. 그만큼 전시의 성격과 내용이 다르기 때문이다.

l 즐거운 집이란

12월 12일부터 2월 15일까지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리는 《즐거운 나의 집》 전시는 글린트와 아르코미술관이 공동 기획했다. 회화, 설치, 영상, 사진, 인포그래픽이 중심이며 서적과 도큐먼트를 추가했다. 시각예술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 10인과 건축가 그룹, 디자이너 그룹과 만화가, 영화감독 등이 참여하며, 이 밖에 집과 관련된 서적 및 도큐먼트 등 다양한 아카이브 자료를 모았다.
‘집’이라는 개념을 건축뿐 아니라 인문, 사회학적 동시대 담론을 통해 새롭게 접근해 많은 대중이 직접 집을 느끼고 현재 주거의 문제를 고민하고 내가 살고 싶은 미래의 집까지 생각해볼 수 있다. 또한 전시 기간 중 열리는 강연을 통해 건축으로서의 집이 아니라, 사회적인 맥락, 인문학적인 맥락에서 ‘가족’과 ‘집’의 의미도 짚어볼 수 있다. 전시는 제목 그대로 집과 함께 그 안에서 파생되는 삶에 대해 “행복하냐?”고 묻는다. 그것은 정말 행복이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다. 전시는 질문에 그치지 않고 관람객 각자의 기억과 경험을 소환하며, 이 때문에 스스로 ‘즐거운 집’을 정의하고, 자신의 가치관이 담긴 집을 생각해보고 공부해 볼 수 있는 자리까지 만들었다.
처음 방문하는 1층 제1전시실은 ‘미술관을 집으로 만든다’는 콘셉트로 정말 전시공간을 집으로 꾸몄다. 초입의 현관(스튜디오 152), 거실(정재호), 부엌(베리띵즈, 박소연), 다락방(금민정), 화장실(S.O.A.), 침실(비주얼스프럼), 마당(문성식)까지 집을 이루는 공간으로 나누었지만, 공간이 지니는 의미나 상징과 기억에 따라 자연스럽게 분리해 각 공간에 걸맞은 작가의 작품과 기억을 자연스럽게 환기시키는 설치와 디자인으로 구성했다. 각 전시실마다 감상에 대한 태도가 다르다. 제1전시실은 내가 기억하고 있는 물건과 집에 대해 마음껏 기억을 불러일으키면 된다. 만져보고 앉아도 보고 눕기도 하며, 뇌세포에 숨어 있는 집에 대한 향수를 끄집어낸다. 제2전시실에서는 재미있지만 슬픈 게임을 한다. 옵티컬레이스(O/R)의 작업으로 나의 경제 상황과 가족의 수입에 따라 내가 과연 서울이라는 곳에서 집을 살 수 있는 상황인지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 조혜진 작가의 〈섬〉은 낡은 철문과 유리로 번쩍번쩍 빛나는 고급 주상복합아파트 ‘타워’와 ‘캐슬’을 만들었다. 그러나 아픈 것만은 아니다. 유쾌한 반전도 있다. 김기조 작가의 작은 타이포그래피는 현실을 비꼬며 유쾌한 풍자를 보여준다. 제3전시실에서는 열심히 공부하면 된다. 일본이나 덴마크, 핀란드 등 해외 사례나 각종 책자를 통해 대안적인 주거에 대해 찾아볼 수 있다. 편안한 소파나 의자에 앉아서 움직이는 집이나 아주 작은 마이크로 하우스를 감상하는 건 덤이다.

l 함께 살기를 생각하다

통계청의 발표로는 2010년 기준으로 한국의 1인 가구는 전체의 23.9%였다. 하지만 6년 후인 2020년엔 1인 가구가 전체의 29.6%를 차지해 가장 보편적인 가구 형태가 된다. 2050년에는 1인 가구가 전체의 37%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측됐다. 한 언론사는 독거 남녀가 사회 구성원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싱글 코리아’의 출현이라고 크게 보도하기도 했다. 이런 급격한 변화에 따라 전통적인 의미의 가족과 이웃의 개념이 바뀌고 당연히 주거 형태도 바뀌고 있다. 앞선 전시가 당신의 집의 가치에 관해 묻는다면, 내년 1월 25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협력적 주거 공동체》는 다양한 대안 중 공동 주거라는 대안을 제시한다.
전시는 ‘내 공간의 3분의 1을 이웃과 공유하자’는 슬로건 아래 다양한 건축가들의 작업과 아이디어를 보여준다. 9명의 건축가와 팀이 참여한 각각의 시나리오는 자율적인 개체로 독립적이되 고립되지 않은 사회적인 주체가 공통으로 등장한다.
먼저 입장하는 데이터 라운지의 테이블에 앉아 간단한 사회 현황을 짚는다. 우리나라의 주거 문화와 시대별 변화 양상을 단순하게 표현했다. 전시장에는 김영옥의 〈3rd Scape〉와 신승수와 유승종의 〈Our Home/My City〉, 조재원의 〈우연한 공동체의 집〉 등 각 건축가의 아이디어를 볼 수 있다. 조남호의 〈수직마을 만들기〉는 100세대 3백 명이 사는 공동 주거의 모델로 일종의 생태적 매트릭스다. 각 세대가 3분의 1의 공유 영역과 3분의 2의 개인 영역을 가지고 스스로 자발적인 공유를 통해 공유하는 주거 환경을 만드는 모델이다. 전시장 안쪽에 PaTI+장영철의 〈피타집 다큐멘터리〉는 파티(PaTI, 파주 타이포그래피 학교)의 ‘공간 만들기’ 수업의 목적으로 진행된 프로젝트의 과정을 담은 영상이다. 학생들이 각목과 플라베니어를 이용해 함께 집을 짓고, 그중 두 명이 한 달 간 이 집에서 살아보며 겪은 경험을 기록했다. 짧은 영상이지만 내 집을 짓고 살아본다는 본질적인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기회다.
《즐거운 나의 집》을 기획한 이재준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협력적 주거 공동체》는 느슨하고 해체된 가족에 대한 이야기의 극복이며 《즐거운 나의 집》 전시는 좀 더 근본적인 이야기, 우리에게 가치 없는 집에 대한 역설이자 우리 기억 속에 항상 즐거운 것은 우리 스스로에게 있다는 메시지”라고 말한다. 이렇게 두 전시 모두 건축가가 디자인한 집을 보여주기보다 사회적인 산물로써의 집이 가지는 다양한 측면에 초점을 맞춘다. 스케치와 모형이 단지 미적인 대상이 아니라 각 모형과 사진이 가지는 사회적인 의미까지 생각해 볼 수 있다.


  • 유걸 Pebble&Bubble
    유걸 〈Pebble&Bubble〉
  • PaTI+장영철 피타집 다큐멘터리
    PaTI+장영철 〈피타집 다큐멘터리〉
  • 신승수와 유승종 Our Home/My City
    신승수와 유승종 〈Our Home/My City〉


(사진: 아르코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기사입력 : 2014.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