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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3D PRINTING & ART
예술가의 새로운 창작도구

박준수 (미술평론가)
  • 김창겸 〈삐딱한 레고〉

    김창겸 〈삐딱한 레고〉 

  • 댄 마이크셀 〈The mask series〉

    댄 마이크셀 〈The mask series〉 

역사적으로 과학기술의 발전은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쳐 왔다. 우리의 ‘예술적’인 삶으로 영역을 한정 짓더라도 과학기술은 거대한 변화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해부학은 인체를 더욱 실감 나게 표현할 수 있도록 하였고, 14세기 후반 유화가 발명되며 캔버스에 덧칠이 무한히 가능해졌다. 또한 튜브형 물감의 출현은 화가들이 거리로 나가 야외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하였다. 과학적 발견이 미술에 사용되는 기법에 영향을 미치는 직접적인 관계 외에도, 과학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변화하는 세계를 포착하는 미술가들의 새로운 시각 역시 과학기술의 간접적인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과학과 미술의 관계를 보여줄 수 있는 예들은 셀 수 없이 많겠지만, 가까운 시기에 미술적 패러다임을 통째로 바꾼 과학기술로 사진술의 발명을 꼽을 수 있다. 

19세기 초, 다게르, 루이 자크 망데 (Daguerre, Louis Jacques Mande 1787-1851)는 ‘빛으로 그리는 그림(photography)’ 다게레오타입 은판 사진술을 발명하며 가시적인 사진술을 세상에 내놓았다. 다게르가 제시한 최초의 사진 메커니즘은 19세기 중반이 되며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기계가 되었다. ‘빛으로 그리는 그림’은 화가의 붓놀림 보다 빠르고, 정확하며, 비용 또한 훨씬 저렴했다. 르네상스 이후 정밀하게 발전한 사실주의는 사진술의 발명과 함께 한순간에 위협받았고, 몇몇 화가들은 사진에서 회화의 종말을 발견하기도 하였다.

사진술의 출현 이후 약 20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새로운 과학기술의 혁신, 3D 프린터의 등장을 보고 있다. 최근 3D 프린터에 대한 저작권이 풀리며, 전 세계 어디에서나 이를 제작하고, 연구할 수 있게 됨에 따라, 관련 기술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대상을 스캔하고 재현해 내는 방식은 아직 개발되고 발전하는 단계여서 완성되었다고 보기 어려우나, 초기 다게레오타입의 등장이 회화의 영역을 위협하듯, 3D 프린터 역시 조각의 영역에 유사한 위협을 가하고 있다. 마치 사진처럼, 3D 프린터는 조각가의 손놀림 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하며, 역시 저렴하다. 그렇다면 3D 프린터의 출현은 현대의 미술가들에게 ‘조각의 종말’로 비춰질까? 이에 관한 전시가 현재 사비나미술관에서 진행되고 있다.

〈3D PRINTING & ART : 예술가의 새로운 창작도구〉 전시는 3D 프린터가 동시대 미술에 미칠 영향에 대해 이야기한다. 대상의 외형을 스캔하고, 이를 그대로 재현해낼 수 있는 사진술은 재현적 패러다임을 따르던 당시의 회화에 커다란 변화를 주었다. 사진이 발명될 당시의 회화는 화가가 눈으로 대상을 바라보고, 이를 2차원의 캔버스에 옮겨내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사진의 출현은 회화의 추상화(abstraction)를 야기했으며, 이는 수천 년에 걸친 회화의 역사상 매우 거대한 임계국면이라고 할 수 있다. 세부적인 차이가 있지만, 사진과 3D 프린터는 기술적인 공통점을 지닌다. 사진은 렌즈를 통해 대상을 스캔하고, 이를 2차원의 평면에 그대로 현상한다. 3D 프린터 역시 대상을 스캔하고, 이를 3차원의 영역에 그대로 재현한다. 3D 프린터와 조각가가 눈으로 대상을 바라보고, 이를 3차원의 물질을 통해 재현해 내는 과정은 사진과 회화의 관계와 매우 유사한 것처럼 보인다.

베른트 할프헤르 〈Morning Mountains〉

베른트 할프헤르 〈Morning Mountains〉 

베른트 할프헤르(Bernd Halbherr)의 작품은 사진과 3D 프린터가 다루는 ‘이미지’를 직접적으로 연결하고 있다. 갈등과 대립이 일어나는 지역의 이미지를 무작위로 골라 흑백 이미지로 변환한 후, 흑색은 낮게, 백색은 높게 변위지도를 만들어 이를 3D 프린터로 출력하였다. 좌대에 놓인 출력물들은 마치 산의 형태를 나타내는 듯 보이지만(실제로 작품의 제목 역시 〈Morning Mountains〉이다), 이들을 수직으로 위에서 내려다보면 작가가 선택한 이미지의 형태가 나타난다. 대상을 그대로 재현한다는 측면에서 3D 프린팅은 사진 현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할프헤르 작품의 경우 실재하는 대상을 결과물로 옮기는 과정에서 사진 촬영과 흑백 이미지로의 변화 과정을 거치며 3D 프린터의 ‘컴퓨터언어-화’ 되었다. 기본적으로 대상을 재현하는 3D 프린터의 특징은 할프헤르의 상상력을 통해 이미지의 변형과 재구성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박기진은 3D 프린터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요구되는 과정을 시각화하였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을 것만 같은 3D 프린터는 마치 편리함을 상징하는 듯하다. 하지만 작가는 종이컵이라는(대단한 창작이나 자율성이 필요하다고는 보이지 않는) 매우 단순한 형태를 만들기 위해 무수한 이진법의 언어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작가는 종이컵 형태를 프린트하는 데 필요한 프로그램 언어를 약 175,000장의 A4용지에 프린트하였으며, 그 위에 너무나 초라해 보이는 작은 종이컵을 올려놓았다. ‘1과 0’, ‘yes 또는 no’라는 단순한 물음과 답들이 끊임없이 이어져 3D 

린터라는 자유로운 표현의 신화가 완성 되는 과정이 무척 흥미진진해 보인다. 작가는 3D 프린터의 방대한 작업량을 가시화함으로써 이미 거대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기술과 이에 너무나 익숙해진 우리 삶의 관계를 재조명하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대중화된 사진술이 그렇듯, 미술가(artist)의 기술(art)은 보편화에 따른 일반화 과정을 겪을 가능성이 높으며, 미술가의 역할이자 특수성은 그 입지가 좁아질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여전히 디자인의 행위 주체라는 위치를 유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진과 회화, 3D 프린터와 조각의 관계는 각각 비교 대상이 되는 예술 영역(회화, 조각)이 눈으로 보는 대상에 대한 재현에 방점을 찍고 있는 경우에만 그 동일성이 성립한다. 사진의 출현 이후 회화의 역사가 끝날 것이라는 당시 미술가들의 예상과는 다르게, 회화는 인상주의에서 시작된 추상화 과정을 통해 사진으로부터 독립적인 예술 영역을 지켜낼 수 있었다. 3D 프린터의 출현 시기에, 그 비교 대상이 되는 조각은 19세기 중엽의 회화와는 전혀 다른 위치를 ‘이미’ 선점하고 있다. 시각예술에 있어서 3차원에 해당하는 조각(sculpture)과 설치(installation)는 이미 대상을 재현하려는 목적에서 벗어나 있었으며, 아방가르드 한 미술계에서 조각의 역사는 이미 사진의 등장으로 위협받은 과거 회화의 역사를 인지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3D 프린터가 가져올 편리함과 자유로움, 이에 따르는 뛰어난 경제성은 무한한 가능성을 제공한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김창겸과 댄 마이크셀(Dan Mikesell)의 작품들을 통해 우리는 3D 프린터가 가져올 확장성의 긍정적인 측면을 엿볼 수 있다. 3D 프린터의 보편화는 예술적 결과물을 만들기 위한 기술의 접근성을 보편화한다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완성품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예술가의 기술적 완성도를 3D 프린터가 대신해 준다면, 단순한 아이디어만으로 누구나 그럴싸한 결과물을 낼 수 있다.

그러나 박진현의 작품은 그나마 남아있는 인간의 역할에 의문을 던진다. 박진현은 3D 프린터의 등장과 미술가의 위치에 대한 이야기를 매우 직접적이고, 직설적으로 이야기한다. 작가는 3D 프린터를 이용해 꽃병을 제작하였다. 사실 꽃병은 프린트된 것이므로, 실질적인 제작은 3D 프린터가 한 것이다. 박진현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꽃병의 외형을 이루는 고정값을 5개만 컴퓨터에 입력한 후, 나머지 구체적인 곡선의 형성은 난수(亂數)로 두었다. 말하자면, 꽃병의 실질적인 디자인 역시 3D 프린터의 몫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술이 발명된 이후 회화의 종말이 올 것이라 예언했던 19세기 중반 미술가들처럼, 작가는 3D 프린터의 등장이 조각가들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을 제시한다. 결국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꽃병을 인간이 선택한다는 차원에서 가치 판단을 인간의 영역으로 남겨두고는 있지만, 작가와 작품의 관계에 있어서는 커다란 변화를 야기할 수 있다.

이는 20세기 초반 등장한 레디메이드(Ready-Made)와는 또 다른 차원의 논의다.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레디메이드 역시 인간의 디자인 하에 대량생산 체제에 의해 제작된 것들이며, 이를 작가가 ‘예술작품으로 선택’한 것은 공산품과 예술품의 경계와 분류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3D 프린터가 처음부터 끝까지 완성한 박진현의 〈꽃병〉에서 인간은 오로지 객체의 위치에만 놓이게 된다. 박진현은 3D 프린터가 ‘창작’한 꽃병에 개입하지 않으며, 이에 대한 선택을 관객의 몫으로 돌리고 있다. ‘박진현의 〈꽃병〉’에서 박진현은 뒤로 물러나 있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3D 프린터와 미술의 관계에서 제기될 수 있는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질문에 대한 대답 역시 우리들의 몫이다. 3D 프린터가 우리의 창작을 대체한다면, 다음 미술은 무엇인가?

  • 박기진 〈Who this am〉

    박기진 〈Who this am〉 


    (사진: 사비나미술관)
  • 박진현 〈The Vase〉

    박진현 〈The V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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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4.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