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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트로이카 : 소리, 빛, 시간 - 감성을 깨우는 놀라운 상상

박준수 (미술평론가)
  • 〈The Weather Yesterday〉
    〈The Weather Yesterday〉
  • 〈Electroprobe〉
    〈Electroprobe〉
  • 〈Calculating the Universe〉
    〈Calculating the Universe〉


  • 트로이카 展 포스터
    트로이카 展 포스터

현재 대림미술관에서는 〈트로이카 : 소리, 빛, 시간 - 감성을 깨우는 놀라운 상상〉 전시가 진행 중이다.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트로이카(Troika)는 3인의 젊은 아티스트 코니 프리어(Conny Freyer, b. 1976, 독일), 세바스찬 노엘(Sebastien Noel, b. 1977, 프랑스), 에바 루키(Eva Rucki, b. 1976, 독일)로 구성되어 있다. ‘소리로 들어가다’, ‘시간을 담다’, ‘물을 그리다’, ‘바람을 만지다’, ‘자연을 새기다’, ‘빛으로 나오다’의 여섯 개의 테마로 이루어진 이번 전시는 ‘소리, 빛, 시간 ― 감성을 깨우는 놀라운 상상’이라는 전시 부제가 이야기하듯, 트로이카 특유의 상상력으로 접근한 세 가지 종류의 인식을 다루고 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트로이카의 작품들이 관람객의 시각과 청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종합적인 감상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아날로그적 요소와 디지털 기술을 적절히 버무려 서로 다른 시간성이 공존하는 감각을 시각화한다. 트로이카의 작품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몽환적인 느낌은 이질적인 감각들이 하나로 혼합된 특징들에 기인하는 듯하다. 트로이카전을 방문하는 관람객들은 작품을 ‘감상’한다기보다 ‘경험’한다는 것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나아가 관람객들이 경험하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지나칠 수 있는, 매우 일상적이고 사소한 경험들이다.
트로이카의 작업은 관람객들이 그들의 삶에서 가질 수 있는 작은 호기심이나 관심에서 시작하여 그 사소함을 극대화시킨다. 이차적이고 부수적인 경험과 인식이 주된 경험으로 확대되는 작용은 매우 생경하게 다가온다. 이러한 생경함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감각기관의 우선순위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런 인식의 단계에서 시각을 일차적인 감각기관으로 사용하며, 실제로 시각은 다섯 가지 감각 기관 중 가장 빠른 반응속도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청각과 촉각, 미각, 후각은 이차적인 감각기관으로 우리의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경우, 시각은 절대적인 감각기관의 역할을 한다. 트로이카의 작품은 시각과 청각의 우선순위에서 청각적 경험에 상당한 비중을 둔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텔레비전, 각종 음향기기, 게임기, 시계, 노트북 등 다양한 전자기기들을 사용한 설치 작품인 〈Electroprobe〉는 이러한 청각적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중앙에 위치한 마그네틱 마이크는 주위에 놓인 전자기기들의 전자파를 읽어 관람객들에게 들려준다. 1층의 전시장으로 들어서면 〈Cloud〉를 처음 마주할 수 있다. 〈Cloud〉가 2층의 바닥과 1층의 천장 높이에 설치되어 있는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관람객은 이 작품을 시각보다 청각적으로 먼저 인식하게 된다. 1970~80년대 기차역, 공항의 안내판을 위해 사용되었던 구형 전자식 플립-도트(flip-dot)에서 착안된 플립 장치들을 이용하여 제작한 이 디지털 조형물은 과거와 현재의 모델들을 조합하고 재조명하였다. 작은 플립 장치들이 빠르게 회전하는 기분 좋은 소리는 키네틱 아트(Kinetic Art)의 화려한 시각적 움직임으로 관람객을 이끈다. 6월부터 대림미술관에서 새로 공개된 작품 〈Cloud〉는 런던 히드로 공항에 설치되어 공공미술로서 주목을 받은 작품으로, 대림미술관의 전시를 위해 특별 제작되었다. 아날로그적인 접근방식으로 디지털 기술의 효과를 표현하는 것은 트로이카의 특징적인 점들 중 하나이다. 일반적으로 생각되는 과거의 것과 현재 혹은 미래의 것들이 한데 어우러진 모습은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시간감각에 대해 재고할 기회를 준다.

시인이자 건축가인 함성호는 트로이카의 작품에 대해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과거의 기계는 덮개를 열고 들여다보면 그 안에 작동의 방식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그러나 디지털 회로에서는 기계의 작동 방식을 찾기가 쉽지 않다. (중략) 그러나 트로이카는 가장 간단한 방법으로 이 과정을 전달한다. 가장 아날로그적인 방법으로 가장 몽환적으로 표현한다.”


  • 〈The Sum of All Possibilities〉
    〈The Sum of All Possibilities〉

함성호의 서술은 트로이카의 작품들이 보여주는 최첨단 기술 혹은 최첨단 기술인 듯한 효과를 잘 설명한다. 실제로 트로이카의 작품 제작방식을 보면 사람의 수작업이 상당히 많이 포함되어 있다. 복잡한 수학공식에 의해 규칙적으로 배열된 〈Calculating the Universe〉는 오랜 기간 동안의 수작업으로 제작되었다. 작가들은 이 작품에서 이분법적 규칙이 세상을 지배할 수 있다는 믿음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고 하였다. 이분법적 규칙은 실제로 컴퓨터가 작동하는 가장 핵심적이고 기본적인 규칙인 이진법의 원리와 동일하다. 컴퓨터가 작동하는 이진법의 규칙과 더욱 복잡해진 수학적 규칙들은 이 규칙을 따르는 사람들의 수작업을 거쳐 복잡한 형상을 완성해 낸다.

〈The Sum of All Possibilities〉는 키네틱 작품으로 열두 개의 장치들이 각각 시계방향으로 돌아간다. 각각의 개체들이 서로 다른 속도로 회전하여 시시각각 다른 시각적 형태를 보여준다. 관람객이 작품을 감상하고, 그 앞에 머무르는 시간과 각도에 따라 서로 다른 형태를 띠는 〈The Sum of All Possibilities〉는 관람객과 작품의 관계, 감상에 쓰이는 시간과 위치, 각도에 중점을 둔 작품이다.
이러한 관계 설정의 미술사적 배경은 미니멀리즘(Minimalism) 미술에서 찾을 수 있다. 1960년대 중반 미니멀리즘의 등장은 직전 시기까지 미술의 영역을 아우르던 모더니즘적 사고에서 벗어난 새로운 경험을 야기하였다. 메를로 퐁티(Maurice Merleau-Ponty, 1908~1961)의 〈지각의 현상학〉에 관심을 가진 미니멀리즘 미술가들이 설정한 관람객과 작품 간의 관계는 이전 시기 추상 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ism)가 등장하기까지의 모더니즘적 비평을 이끈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 1909~1994)의 시각과는 확연히 달랐다. 미술 작품의 독립적인 존재, 그리고 이를 감상하는 관람객과의 단절은 모더니즘적 미술의 감상을 서술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전제였다.
그러나 미니멀리즘의 등장 이후 미술작품의 형태는 관람객의 위치에 따라 변화하며, 더 이상 작품은 독립적인 존재가 아닌, 관람객의 경험을 통해 그 형태와 의미가 완성되었다. 이후 프랑스의 미학자 니콜라 부리오(Nicolas Bourriaud, b. 1965)가 1990년대 미술의 특징으로 제시한 ‘관계 미학(Relational Aesthetics)’은 미술작품과 관람객 사이의 관계 형성의 중요성을 극대화 시킨다. 1990년대 이후 최근까지 활동하는 많은 작가들의 작품이 인터랙티브(interactive), 관계, 경험을 내세우고 있다. 


  • 〈Persistent Illusions〉
    〈Persistent Illusions〉 

엄밀한 의미로 말하자면, 트로이카의 작품은 관람객과의 관계를 작품의 형태와 의미의 결과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니콜라 부리오가 이야기하는 1990년대 관계 미학의 전통을 따르고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트로이카의 전시는 관람객의 경험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트로이카의 개인전이자, 국내에서 열린 가장 큰 규모의 전시이고, 대림미술관의 4층에 달하는 전시공간을 모두 사용함에도, 작품들의 수는 그렇게 많지 않다. 대부분이 설치작품인 이유도 있겠지만, 이처럼 절제된 작품 수는 관람객들이 작품을 충분히 경험할 수 있는 시간적, 공간적 여유를 준다. 트로이카는 각각의 경험에 따라 나름의 시각으로 작품을 경험하고, 자신만의 감각으로 작품을 완성해 나갈 수 있는 경험을 대림미술관의 트로이카 전시에서 가져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사진: 박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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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4.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