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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젊음이여, 사유하고 행동하라 〈달팽이 걸음_이건용〉
2014. 6. 24 ~ 12. 14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안소연 (미술평론가)
  • 〈달팽이 걸음_이건용〉 展
    〈달팽이 걸음_이건용〉 展
  • 〈신체 드로잉 76-1〉(1976)
    〈신체 드로잉 76-1〉(1976)
  • 〈장소의 논리〉(1975)
    〈장소의 논리〉(1975)

1960년대 후반 홍익대 서양화과(現 회화과)를 졸업한 이건용(李健鏞, 1942~)은 1960년대에서 1970년대로 이어지는 한국현대미술의 실험성과 전위성을 대표하는 작가다. 그 시절, AG(한국아방가르드협회, 1969~1975), ST(Space&Time, 1971~1981), 제4집단(1970) 등의 소그룹에 가담하여 일본뿐 아니라 서구 현대미술의 변화에 촉각을 세웠던 국내 젊은 작가들은 예술을 통한 시대적 사명을 자각하려 했다. ST를 결성하여 10년간 이끌었던 이건용은, 당시 국내 화단에 맞서는 실험적인 전시들과 파리 비엔날레, 상파울루 비엔날레 등의 국제 전시에 참여하면서 개념미술과 행위예술을 통해 동시대 미술에 한 걸음 다가갔다. 1970년대의 삼엄한 유신체제와 급속한 경제발전의 그늘 속에서, 전 세계의 68혁명 세대가 공유하는 지적인 공감대는 그들에게도 거의 유일한 탈출구였을 것이다. 젊은 예술가들은 현실의 부조리를 직시하려 했으며, 68혁명의 여운이 남기고 간 예술의 담론들을 공유했고, 그리고 치열하게 행동했다.


| 달팽이 걸음

그토록 치열하게 요동쳤던 젊음의 순간들도 이제는 대부분 빛바랜 사진과 전시도록으로만 남았다. 최근에는 국공립미술관을 중심으로 한국현대미술사를 재조명하는 전시가 꾸준히 소개되고 있는데,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한국현대미술사의 역사적 정립을 목표’로 〈한국현대미술작가 시리즈〉를 기획했다. 지금 열리고 있는 전시 〈달팽이 걸음_이건용〉도 그 일환이며, 원로작가 이건용의 70년대 이후 대표작들을 조명한다. 1979년 제15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에서 보여준 이벤트 〈달팽이 걸음〉을 이번 전시의 타이틀로 삼은 것은, 1971년 〈신체항〉을 시작으로 한 그의 40여 년간의 작품세계를 회고할 때 여타의 잘 알려진 작품들 못지않게 그것이 갖는 위상을 쉽게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달팽이 걸음〉은 상파울루 비엔날레 이후, 1980년 동덕미술관을 시작으로 국내 전시에서도 몇 차례 소개됐다. 이번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에서는 개막일에 맞춰 작가가 당시를 회상하며 관객들 앞에서 〈달팽이 걸음〉을 재연했다. 전시가 있을 동안, 그 행위의 흔적은 전시장에 남겨져 있고, 동시에 과거의 영상과 사진 자료들이 충실하게 사건의 전말을 전달할 것이다. 사건의 내용은 이렇다. 작가가 전시장 한쪽 구석에 웅크리고 앉은 채 발 앞에 분필로 직선을 그리는 행위를 반복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이벤트는 긴 공간을 가로지르는 동안 그리기와 지우기의 흔적을 바닥에 남기게 된다. 이건용은 자신의 이러한 행위를 “논리적 사건(logical event)”이라 불렀다. 그가 말한 “논리”는 하나의 사건 속에서 적어도 행위의 방식과 과정이 그 결과와의 상관성으로 명백하게 드러나는 것을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달팽이 걸음〉은 분명한 신체의 흔적이다. 신체는 그에게 있어서 “경험이 이루어지는 장소”라고 했는데, 그는 결국 행위의 논리적인 조건 속에서 존재의 정당성을 규명한 셈이다. 


이건용에게 있어서 ‘신체’는 오랜 화두다. 그는 1970년대 초부터 광목천이나 생목(生木)을 이용해 장소와 시간성을 탐구하는 작품을 해왔는데, 그것은 당시 이미 그 전위적 실험성을 인정받았던 일본의 구타이 그룹 및 모노하 작가들과의 차이를 크게 제시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1970년대 중반에서 80년대 중반까지 구축해나갔던 〈신체 드로잉〉에서 그는, ‘신체적 회화’, 즉 ‘행위의 결과로써의 회화’라고 하는 자신의 확고한 예술적 신념을 드러냈다. 이번에 전시된 작품 중 상당 부분이 〈신체 드로잉〉인 것도 작가로서의 그의 면모를 살피는데 더없이 설득력 있는 태도를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예컨대, 전시장 중앙에는 1976년에 제작된 〈신체 드로잉〉 연작이 당시의 작업과정을 꼼꼼하게 기록한 사진 자료 및 영상들과 함께 전시됐다.


이때 드로잉의 과정 또한 하나의 이벤트와 마찬가지다. 〈신체 드로잉〉은 신체가 구속되는 조건에 따라 변화하는 행위의 흔적을 기록한다. 일례로, 이건용은 자신의 키만 한 길이의 나무 합판을 세워놓고 합판의 앞면이 보이지 않도록 자신은 그 뒤에 선 채, 팔만 앞으로 뻗어 최대한 긴 선을 위에서 아래로 긋는 평범한 행위를 반복한다. 합판의 상단부터 자신의 신체 한계치를 논리적으로 증명하는 선들이 가득 채워지면, 이건용은 톱으로 그 부분을 잘라냄으로써 합판의 조건을 계속 달리한다. 마침내 합판의 마지막 남겨진 부분까지 선들로 채워지면 드로잉은 완성되는데, 제일 처음에 잘려나간 합판의 부분이 드로잉에서는 반대로 가장 바닥에 놓이게 된다. 〈부목을 풀면서〉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작품 〈신체 드로잉 76-4〉도 비슷한 과정을 보인다. 이건용은 자신의 오른팔에 긴 부목을 대고 그것을 서서히 풀어나가면서 캔버스에 ‘구속의 드로잉’을 남겼다. 〈다리 사이로 선 긋기〉, 〈양팔로〉 등의 부제가 말해주듯, 신체를 구속하는 미묘한 조건들에 그가 그토록 예민하게 신체에 반응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대답했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화면과 그리는 사람의 눈과의 조응관계 때문에 행위자의 시선 앞에 화면이 놓이게 되며, 눈(지각)과 손(행위)이 동시적으로 작용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중략) 그러나 나는 그러한 회화작업 상의 인식관계를 포기함으로써, 신체가 지각자요 표현자라는 역설적인 회화인식 관계를 수립할 수 있었다.”
(이건용, 『신체적 회화』(1985) :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리플릿에서 재인용)


눈에 의한 지각을 포기하고, ‘눈의 경험’을 ‘신체의 경험’으로 대체하고자 했던 그의 직관은 모더니즘의 전통을 벗어나려 했던 혁명적인 시대의 소산이었다.  


| 저기, 여기, 거기, 그리고 어디

이건용은 여러 인터뷰를 통해서, 자신이 고등학교 때부터 심취했던 분석철학과 현상학에 대한 관심을 드러낸 바 있다. 그가 종종 말하듯, 그에게 “논리”는 하나의 기법이자, 무기다. 때문에 그는 당시 연극적 우연성을 강조했던 해프닝과 달리, 행위가 그 행위 자체를 논리적으로 규명해주는 이벤트에 더욱 주목했다. 특히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탐구에 이끌렸던 이건용은 이벤트를 통해 언어의 기능, 말의 의미를 개념적으로 확장해 나갔다. 1975년 〈AG〉 展에서 처음 실험했던 〈장소의 논리〉가 그렇다. 〈장소의 논리〉는 이건용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이번 전시에서도 관련된 사진 자료가 다수 공개됐다.


이건용은 바닥에 둥근 원을 그려 넣고 원 밖으로 나와서 손가락으로 그 원을 가리키며, “저기”라고 외친다. 다시 원 안으로 들어가 손가락으로 원을 가리키며, “여기”라고 말한다. 그곳을 등지고 나와 원을 바라보지는 않은 채 손으로만 등 뒤에 있는 원을 가리키며, 이번에는 “거기”라고 외친다. 마지막으로 연신 “저기, 여기, 거기”를 말하며 원 주변을 걷는다. 〈장소의 논리〉에서 그는 언어가 지시하는 장소성을 탐구했다. 그것은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언어’와 신체가 지각하고 존재하는 ‘장소’ 사이의 간극을 논리적으로 탐구한 것으로 그의 매우 깊은 철학적 사유를 보여준다.


무한한 공간 속에서 불완전한 선 하나로 ‘장소성’을 획득하고 그것을 “저기, 여기, 거기”라는 상대적인 이름으로 부르는 행위는 그가 줄곧 예술에 대해 선언했던 급진적인 태도와 매우 닮았다. 이건용은 전통적으로 예술을 정의하는 선명한 명제와 형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신체를 통한 철학적 사유를 멈추지 않았다. 1970년부터 달팽이 걸음처럼 잰 걸음으로 멈추지 않고 계속해 온 그의 탐구 주제는 시간, 공간, 관계, 신체, 행위, 과정, 기록, 비정형 등 지금 우리가 예민하게 반응하는 동시대 미술의 화두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것이 이미 백발이 성성한 원로작가가 35년 전 전시장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분필 자국만 희미하게 남겨놓았던 사건을 다시 재연하고 기록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된다. 〈달팽이 걸음〉에서 보여준 작가 이건용의 메시지에는 여전히 선동적인 힘이 남아있다.


젊음이여, 사유하고 행동하라. 비록 달팽이 걸음처럼 느릴지라도 멈추지 말기를.


  • 〈달팽이 걸음〉(1979)
    〈달팽이 걸음〉(1979)
  • 〈신체 드로잉 76-4_부목을 풀면서〉 (1976)
    〈신체 드로잉 76-4_부목을 풀면서〉 (1976)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아르코 웹진

[기사입력 : 2014.08.11]